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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천상병 시인의 “바둑 힘”
글쓴이 원술랑      조회 198   평점 810    수정일 2017-09-12 오후 5:44:00






종로 인사동 14길 좁다란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歸天”이라는 전통 찻집이 보인다. 얼마 전 그는 그곳에서 옛 친구를 만났다. 한 시간여 정도 독서할 요량으로 약속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에 도착한 그는 벽면 서가에서 천상병의 산문집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꺼내 펼쳐 든다. 



십수 년 전 어느 봄날의 오후 교보문고 광화문 본점에서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를 사 들고 “歸天”으로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목순옥 여사가 직접 만들어 준 모과차를 마시며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다.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책장을 넘기다가 “한 번이면 족하다”는 수필이 그의 눈을 단박에 사로잡는다. 그때 당시에는 바둑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때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천상병 시인도 바둑을 즐겼다고 생각하니 그는 미소를 머금으며 천천히 읽어 내려간다.       






『(전략) 3시 후에는 한국기원에 기어코 나가서 5시까지는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 돈이 없어서(백 원이지만) 바둑을 안 둔다. 사실은 5급에서 6급으로 떨어지는 판국이니, 돈이 없어서가 아니고 하나의 핑계이다. 내 바둑 친구들은 다 1급인데, 심지어 5급인 친구들도 나하고는 바둑을 두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를 18급과 같은 터무니 없는 초하수자 취급을 하니까 말이다. 심지어, 카운터를 지키는 아가씨하고 바둑을 두는 판이니, 내 바둑 힘이 얼마나 약하다는 것이 추측된 것이다.



나하고 바둑 두는 아가씨는 급수가 12, 13급은 되는데 나한테는 9급이나 놓고 두는데도 내가 지니 알만하다. 심지어 그런 것이다. 얼마나 초하수인가. 그러니 남의 바둑 두는 걸 구경만 한다. 잘 두는 사람의 바둑은 구경만 해도 큰 공부가 되고도 남는다.



나는 그런 구경을 하는 것이 수없이 많다. 이러저리 걸어 다니면서 1급수들이 두는 바둑을 기웃기웃하지만 심심치는 않다.



그런데 요사이 기묘하게 내 마음 속에서는 5급이 다 된 것 같은데 아직 한 번도 두어 본 적이 없어 여전히 6급이다. 사실은 6급도 약하지만 할 수 없다. 6급끼리 둘 때 내가 흑돌을 쥐어야 시합이 이기고 지고 하니 약하지 뭐냐. 그런 내 바둑 세기이니 친구나 알만한 사람들은 같이  상대해서 바둑을 안 두어 준다니까.



내 아내는(내 아내도 기원에서 집에 가는 시간 오후 5시를 지키자고 여러 번 기원에 왔었다. 그러니까 바둑도 14급 정도 된다) “7급이라야 알맞은 급수”라고 일러준다. 그런 7급까진 아무래도 내려가기가 싫다. 5급 6급도 아니고, 7급이라니 말도 안된다. 그런 내림은 마치 내가 사기를 치는 꼴이 된다. 



이건 비밀이지만 나는 바둑을 둘 때 단돈 50원이라도 내기 바둑 두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 50원은 내가 그것밖에 없으니까 그렇다. 심지어 집으로 돌아갈 버스비를 털어놓는 것이다. 그래서 버스삯은 언제나 아내가 내기 마련이다. 나는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버스삯을 내고 싶어 죽겠는데도 그렇다. 단 한 번이라도......



원고료를 받아 거머쥐고 있는 날이나, 그 직후라면 내가 낼 수가 있을 텐데. 그 원고료는 원고를 먼저 쓴 다음에라야 원고료가 생기는데, 나는 여러 달 동안 글이 막혀서 안썼으니 원고료가 언제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받을 수가 있을 것인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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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정원 | 2017-09-11 오후 11:45  [동감 0]    
귀천이 없어졌다던데 아직 그자리에 있나요
원술랑
09-12 오후 5:54
비밀정원님, 반갑습니다. 네, 맞습니다. 자리를 옮겼지요. 지금은 목순옥 여사의 조카 목영선 씨가 운영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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