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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두기
글쓴이 연아의남편      조회 486   평점 620    작성일 2017-04-18 오후 5:12:00


우리는 바둑을 일찍부터 즐겼다. 7세기 전반의 『구당서』에 “고구려에서 다른 놀이와 함께 바둑을 즐겼다.”라고 적혔었고(권199 「고려전」), 『북사(北史)』에도 “고구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놀이 가운데 특히 바둑을 가장 좋아한다.”라는 기사가 있다(권94 「고구려전」). 백제도 마찬가지이다. 『수서』에 “백제에서 바둑을 즐겨 둔다.” 하였고(권81 「백제전」), 6세기 중반기의 『주서(周書)』에도 “백제에 투호(投壺) · 저포(樗蒲) 등의 잡희(雜戱)가 있으며, 그 가운데 혁기를 첫 손에 꼽는다.”라는 내용을 보였었다.

이것은 예로부터,  바둑을 우리들이 즐겼다고, 문헌에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여러가지의 놀이들  가운데서 지나치게 좋아하는 놀이로서 요샛말로  흥행에 성공  했다는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백제 개로왕은 바둑을 지나치게 즐겼었다. 21년(475) 거짓 죄를 짓고 온 고구려 중 도림의 바둑 꾐에 빠져 고구려의 침공에 손을 쓰지 못하였고, 결국 목숨까지 빼앗겼다. 이로써 백제는 도읍을 웅진(公州)으로 옮기고 말았다(『삼국사기』 권25 「백제 본기」).

이것도 역시, 오락에 빠져 헤어나야 하는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다 주는데 비해서, 마냥 의미없는 쾌락으로 즐겨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겠다는 의미릏 가져다 준 예이다.

신라도 예외가 아니었으며, 수준이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효성왕 2년(738) 봄, 당에서 성덕왕의 부음을 듣고 조문사절을 보낼 때, 현종은 좌찬선대부 형숙(邢璹)에게 “…(전략) 신라사람들은 바둑을 잘 둔다니, 이에 능한 병조참군 양계응(楊季膺)을 부사로 데려가라고”한 것이다. 중국에서 바둑으로 이름을 떨친 이가 있었다. 당 희종(僖宗, 874~888)의 바둑 비서였던 박구(朴球)가 그 사람이다. 그가 돌아올 때 장교(張喬)는 전별시(「송기대조박구귀신라(送碁待詔朴球歸新羅)」)를 지어 찬양하였다.

바둑두기에서 신의 한 수란 말을 우리들이 종종 쓰는데, 이 말의 기본적인 뜻을 풀이 하자면, 해당되는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라는 말로 의미가 있는데요... 기본적으로 묘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고려에서는 바둑 잘 두는 이를 오늘날처럼 국수(國手)라 불렀다. 바둑으로 불행을 스스로 부른 일이 또 있었다. 거란 침입 때의 전선 사령관 강조(康兆 ?~1010)가 통주성 사령부에서 바둑을 두다가 때를 놓쳐 목숨을 잃은 것이다. 부하가 적의 급습을 여러 번 알렸으나, 바둑판에서 주춤거리다가 사로잡히고 말았다. 적장이 결박을 풀며 “내 신하가 되겠느냐?” 묻자, “고려사람인 내가 어찌 다시 너의 신하가 되겠는가?” 하였고, 살을 저미며 다시 물어도 마찬가지였다(『고려사』 권127 「열전」 권제40 강조).

고려의 바둑도 상당 수준이 뛰어났다고 되어 있었다. 13세기 중엽 이부원외랑(吏部員外郞) 곽희빈(郭希彬)과 낭장(郎將) 조정통(曺精通)이 원 황제의 부름을 받아 바둑 원정을 간 것이다(『고려사』 권28 세가 충렬왕 즉위년 6월 「곽희빈」).

이렇게 수준이 높아져 있었서 인지, 지금도 세계적으로 우수한 바둑 인재가 우리나라에서 배출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웃어른께 존댓말 사용하기, 전철이나 버스에서 자리 양보하기 등은 웃어른을 존경하는 문화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오락이나 쾌감이 있어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내는 것 이상으로, 바둑두기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입니다.

바둑두기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현대에 맞게 계승, 발전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답니다.

전통 문화는 민족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연결하는 수단이 됩니다. 또한 우리 민족과 국가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높이는 데 기여할 수 있고, 전통문화를 바탕으로 부가 가치가 높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 국가 경제를 발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바둑두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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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내평안 | 2017-04-18 오후 8:16  [동감 1]    
놀랐습니다. 언제 이리 기사를 연구하셨나요? 잘봤습니다.
연아의남편
04-19 오전 8:41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세요!
팔공선달 | 2017-04-19 오전 9:52  [동감 1]    
저는 궁금한게 그 당시에 승패를 가늠 할 기준은 있었를까. 하는 것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연아의남편
04-19 오전 11:36
양자가 더 이상 둘 곳이 없다고 합의할 때, 집 수 계산이나 계가를 하는 방식은 같다고 생각합니
다. 전, 그기까지 미처 생각 못 했어요.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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