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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생육기 16 | 문학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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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부생육기 16
글쓴이 윤실수   조회 82

2004년쯤의 어느날 TV에 동향 친구인 황우석이 등장하여 나는 무척 반가웠다. 그와 나는 나이도 출신교도 학번도 고향도 같다. 따라서 나는 한국에 돌아온후 그에게 최 우선하여 연락을 취했었다. 내가 생면부지의 황우석 친구와 만나게 된것은 순전히 박통의 유신 때문이었다. 1972년 10월 유신으로 대학이 폐쇄되자 대학생인 우리는 할일이 없었다. 따라서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나의 과친구가 대전고 동문이라며 황우석을 술자리에서 내게 소개하는 것이었다. 우석은 겉보기엔 호남형이었는데 혐오스런 수의대에 다닌다는 것이었다. "황형! 나는 운동을 좋아해 체육과에 들어 갔다지만 황형은 어찌하여 명문 대전고 출신이 가축들 거세나 하는 수의대를 다니오?" 나는 술김에 좀 오버 하였지만 아주 틀린말은 아니었다. 당시 수의대는 별볼일 없어 예 체능계를 제외한다면 입학 성적이 바닥인 학과였다. 복제니 생명과학이니 하는 말은 먼 훗날의 이야기고 당시는 그랬었다는 말이다. "수의사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아주 좋은 직업입니다.수입도 많고요!"황우석이 내게 변명하듯 말해 주었다. "그럼 황형은 졸업후 미국에 가면 되겠네요?"내가 비아냥 거렸다. "그럴겁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태평양을 건널겁니다. "잘해 보시오 황형!" 우리는 그렇게 유신 때문에 만난 그렇고 그런 사이였지만 휴강이 길어지자 제법 자주 만났고 그때마다 술을 마시며 서로가 신세한탄을 했었다. 그런데 내가 오랫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황우석 친구가 박사가 되었다는 것이 아닌가? 따라서 나는 진정 축하의 말을 전해 주려고 겸사겸사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성공한 옛 친구에게 혹 술이라도 한잔 얻어 먹을지 누가 아는가? "황형! 박사가 되었다고? 혹 가라는 아니겠지?" "이 친구야! 난 한국이 아니라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다구! 격이 사뭇 다르지!" "그래? 수의사 주제에 도대체 뭘 연구했는데?" "복제! 자네 복제양 돌리 알지? 나는 양이 아니라 소를 복제할 셍이네!" "햐 꿈도 야무지시네! 일본에서 학위를 받았다면 교수는 따논 당상인데 무슨 복제소 씩이나?" 그랬었는데 얼마후 TV 에서 황우석 박사가 소를 복제했다며 송아지를 받아내는 장면을 보여주는것이 아닌가? 나는 반가움에 전화를 걸어 축하의 말을 전하고 복제소 논문이나 하나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데 까짓 논문 엣 친구에게 한 부 건네 주기가 뭘 그리 어려운지 난색을 표하는 것이었다. 난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음을 직감하였지만 존게 좋다고 그냥 함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모 일간지에서 "황박사가 서울 의대도 갈수 있었는데 수의대를 갔다며 황비어천가를 써대고 있는것이 아닌가? 도대체 황박사의 약점이 무엇이길래 그를 위해 그런 유치한 변명이 필요했단 말인가?
게다가 시중에는 황우석 박사를 영웅으로 묘사한 여러 가지 위인전이 낙양의 지가를 올려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대학을 다닌 사람인 나는 조작된 영웅만들기 출판물 임을 즉각 알아차릴수 있었다. 우리 시대의 수의대와 의대는 하늘과 땅 차이인데 그게 말이 되는가? 의사는 인체와 동물을 모두 연구할수 있지만 수의사는 동물만 가능할뿐 인체 연구는 할수 없다. 따라서 서울 의대에 갈만한 사람이 수의대를 갔다는 소설은 우리 세대에게는 먹히지 않는 허구인 것이다. 매스컴에서 그같이 무분별한 황비어천가를 써 대자 그에 대한 폭로가 곳곳 에서 이어졌다. 우선 황박사 영웅만들기의 원조인 복제소 영롱이 부터가 가짜라는 루머였다. 복제양 돌리의 경우 논문으로 복제 양 임이 밝혀졌는데 영롱이의 경우 논문이 부재한다는것이다. 이에 대해 황박사는 논문을 분실했노라고 변명하였기에 의문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 다음은 황박사가 친구의 아내를 빼앗았다는 낯 간지러운 소문이었다. 황박사가 조강지처 아내와 이혼을 한후 친구의 아내와 재혼을 한 것은 나도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생활 문제 이기에 조작 사건의 본질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황박사가 얼마나 일그러진 영웅이었으면 이런 쓸데없는 비난까지 받았을까! 아니나 다를까 그 후의 사건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이 한편의 드라마 처럼 극적으로 전개되었다. 나는 배아 줄기세포가 조작임이 밝혀진 이후에도 그를 두둔하는 사람들이 다수임을 보고 이 나라는 아직 멀었다고 실망하였다. 앞서 말한 캐나다의 밴 존슨 사건과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가? 그런 사건에도 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훗날 국정농단 사건이 발생하여 탄핵으로 이어졌다. 그로 인해 황우석 사태의 폭로자였던 최승호 PD는 훗날 MBC사장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의 시민혁명은 성공하였지만 한국인들의 시민의식은 아직도 여전히 후진적이다. 제천 화재 참사 사건에서 보듯 주차 금지구역에 차를 세우는등 안전 불감증은 여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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