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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浮生六記 8 | 문학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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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 浮生六記 8
글쓴이 윤실수   조회 111
일식집의 고객이 날로 늘어나자 일손이 부족하여 일본인 유학생을 알바생으로 쓰기로 하였다.
일본인 유학생은 표정이 밝은데다 기모노를 차려입고 써빙을 하니 인기만점이었다.
이에 자극을 받았는지 연숙도 재팬 타운을 찾아 기모노를 구해 입고 식당일을 하였다...
내가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연숙은 "드라마를 보세요! 일본인 역을 하는 여자는 한국배우라도  기모노를 입지 않나요?  여기는 일식집이니 웨이트리스도 기모노가 더 어울린다구요!"
그 즈음 미국에는 현대자동차의 '엑셀'이 수입되어 점차 인기를 높혀가고 있었다.
그동안 아시아 국가로는 일본만이 자동차를 수출해서 그런지 대다수의 미국인들은 현대자동차를 일본회사로 잘못 알고 있었다.
Hyundai의  발음이 일제 Honda 와 유사한데다 Todai 라는  일식 뷔페 식당이 미국 도처에서 인기리에 성업중이었다.
기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제품이 잘 팔리면 그만이기에 현대자동차 측에서는  현대차가 일제가 아니라고 굳이 밝힐 까닭은 없었나보다.
따라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대차가 일제인것으로 알고있는 미국인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 주방장이자 일식집 주인인 나에게 일본인이냐고 물어 온 미국인은 없었다.
그들은 요리가 맛있으면 그만이지 주방장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는 관심밖인 것이다.
미국내의 태권도 도장도 마찬가지로 요즘은 미국인 사범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연숙이 굳이 기모노를 입었다는것은 인기좋은 알바생에 대한 질투심 때문인것 같았다. 
인기는 곧 팁으로 직접 연결되는 곳이 바로 미국의 식당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바램대로 식당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였다.
그즈음 한국예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셔 나는 꽤 많은 유산을 상속받게 되었다.
나는 일식집을 아내에게 맡기고 LA의 한인타운에 전자제품 매장을 새로 오픈하였다.
 새로 채용한 주방장에겐 적지 않은 월급을 지급해야 했기에 나로선 모험이 아닐수 없었다.
그런데 반신반의 하던 전자제품 매장은 기대 이상으로 번창하였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LA지역에 뜻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흑인 거주 지역에서 편의점인 리커스토어를 운영하던 두순자라는 한국여인이 쥬스를 훔치던 흑인 소녀와 다툼을 벌이던 중 총을 발사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이었다.
그후 발생한 LA 흑인폭동은 흑백간의 갈등인 로드니 킹 사건이 직접적 원인이었지만 
LA의 한인타운이 직격탄을 맞았다. 
LA 지역의 한인업소는 성난 흑인들의 타겟이 되었고 나의 전자제품 매장도 흑인들의 방화에 의해 전소되고 말았다.
싯가 백만불 어치가 넘는 나의 매장의 가전제품들이 화재로 유실되거나 약탈을 당하였다. 
대졸 신입 사원의 연봉이 3만불 정도이던 1992년년 5월의 백만 달러는 무척 큰 돈이었다..
다행한 것은 아내가 운영하던 일식집은 백인 거주 지역에 위치하고 있었기에 무사하였다.
따라서 나의  전자제품 매장은 파산을 하였지만 그 나마 내가 돌아갈 곳은 있었다.
일식집으로 다시 돌아온 며칠후 알바생이 뜻밖의 귀뜀을 내게 은밀히 해 주었다.
알바생은 나의 부재기간중 연숙과 주방장의 관계가 심상치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두 사람이 주방에서 은밀히 키쓰를 나누는 장면을 직접 목격했다고도 하였다.
그러나 나를 대신하여 일하던 주방장은 이미 해고를 당한 상태였기에 나는 아내에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이 모두가 나의 욕심에서 비롯된 사단이 아닌가 말이다.
 LA의 매장에 진력하느라 우리는 그간 기러기 부부 생활을 하였으니 아직 20대 중후반의 젊은 아내가 외도를 하는것은 어쩜 당연하였다.
나 역시 멀리 한인타운에 따로 거주하며 홀로 독수공방을 한 것은 아니었다.
캘리포니아 주 에서는 술집에 칸막이도 금할 정도로 매춘행위의 단속이 엄격하지만
한인타운만은 예외였다.
한인타운은 주로 한인들이 거주하기에 마치 특별 자치구인양 당국의 단속이 느슨하였다. 
따라서 한인 전용의 룸쌀롱과 맛사지 업소들이 음지에서 은밀히 매춘 영업을 하였다. 
호스트 바도 서울보다 LA 한인타운에서 먼저 횡행 하였을 것이다.
나도 퇴근후 그런 매춘 업소를 종종 들렀으니 어떻게 아내를 탓할수 있겠는가?
다행히 떠난 주방장과의 불륜관계가 더 이상 이어지는것 같지는 않아 나는 아내의 일탈을 불문에 부치기로 하였다.
 주인인 내가 장기간 자리를 비워서인가 일식당은 매상이 예전보다 지지부진하하였다.
그런데 그런 상태에서 매상을 전처럼 회복시켜준 도우미는 뜻밖에 히데오 노모 라는
 야구 선수였다.
일본 출신인 그가 다저스에서  빼어난 성적을 거두자 일식집도 덩달아 손님으로 북적였던 것이다.
노모의 성공은 박찬호 선수로 이어져 나는 MLB 야구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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