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나무라고 의심했던

검은 나무가 무성해지는 걸 지켜보았다

지켜보는 동안 저녁이 오고

연둣빛 눈물에서 피가 흐르고

어둠에 혀가 잠기고

지워지던 빛이

투명한 칼집들을 그었다

(살아 있으므로)

그 밑동에 손을 뻗었다

살아 있으므로 시인은 당연하게 “죽은 나무라고 의심했”지만 검게 무성해지는 나무를 보고 그 밑동에 손을 뻗는다. 이 시에는 익숙한 어둠, 나무, 검은색, 저녁, 피, 지워지는 빛, 손 등의 시어들이 함께 나온다. 침묵의 관조라고 할 ‘희망 없이 세상 긍정하기’의 시편들이 이렇게 종결된다. 아픔으로 병든 세상의 폭력성을 증거하는 작가의 소설 속 주인공들을 생각하게 하는 시 여행 역시 이렇게 끝을 맺는다. 작품 속 인물들이 이제 어떤 길을 걸을지를 생각하는 것은 시와 소설의 가까운 거리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