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살(만6세)에 국민학교 입학하였다.

동급생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가 한살 더 많았다.

당시 공무원들은 학령아동이 있으면 무슨 수당이라도 있었는지 아버지는 극구 엄마의 반대에도 불구, 입학하게 하였다.

그래도 키가 제일 작지는 않았다.

과수원집 아이와 백가마을 아이는 나보다 더 키가 작았다.

그래서 번호가 3번이었다.

그때는 한반에 보통60명이 넘었다.

그러니 선생님인들 자상하게 아이들을 보살필 수 없었겠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자선생님들의 경우 엉터리들이 많았다.

뻑하면 자습을 시키곤 창문밖을 내다보며 헐렁한 바지춤뒤 엉덩이쪽으로 손을 집어넣곤 다시 그 손을 코에대곤 컹컹거리는 선생도 있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모회간부 엄마들이 학교방문하면 그 엄마들의 아이들을 괜히 일으켜세우곤 발표를 하게하고 읽기를 시키곤 하였다.

일고여덟살의 눈에도 무언가 부조리함과 편향적이고 정의롭지 않은 느낌이 들었었다.

방학이면 뒷산에 사오륙학년 형들과 전쟁놀이와 파편들을 줏으러 다녔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먹을 것들이 흔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집은 아버지가 세무공무원이어서 인지 과일들이 자주 들어오고 부엌에는 늘 돼지 뒷다리가 걸려 있었고 그 뒷다리는 아궁이연기로 자동훈제가 되어 거무튀튀해도 오래 될수록 맛은 좋았다.

다른집아이들은 형편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고 간혹 마을에 들르는 엿장수는 늘 인기였다.

전쟁이 끝난지 꽤 오래되었지만 산에는 파편들과 탄피 심지어 불발탄까지 있었다.

고지의 충혼탑이 있는 곳은 놀이의 중심터이자 집합처이기도 하였다.

그 곳은 나름 정리정돈이 되어 뱀들이 자주 출몰하는 산속의 다른 곳보다 안전한 곳이었다.

상급학년 형들끼리 말다툼이 있었고 철도청 마로보시(무슨뜻인지 잘모르지만 일본어 같기도하다.)집 아들이 머리통만한 돌덩이를 집어던졌다.

소시집아들과 마로보시집 아들은 같은 5학년이며 기세에서 밀린 마로보시형이 돌덩이를 던진 것이다.

어린눈에도 그 것은 비겁하고 저질러선 안되는 행동이었다.

주변 형들이 말릴 틈도 없이 그 돌덩이는 소시집형의 아랫배를 때려버렸다.

욱하고 쓰러졌던 소시집형이 끙끙대고 일어났다.

형들이 괜찮나무어라 하면서 둘러쌓고 마로보시형은 씩씩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괜찮다는 시늉을 하던 소시집형이 아랫배를 움켜쥐고 혼자 먼저 산을 내려갔다.

잊어버리고 지나갔다.

소식이 들렸다.

소시집형이 그 다음날 죽었다는 소문이었다.

우리집은 소시집형의 집과는 거리가 상당했고 상호간의 대화는 나이차 때문인지 그리 없었다.

그러나 그 형의 얼굴실루엣은 지금 어렴풋이 떠오르긴 하지만 선명하진 않다.

또 잊어버리고 지나갔다.‘

어느 날, 교무실 급사누나가 교실로 들어오더니 5학년 모선생님이 나를 부른다고 하였다.

영문도 모른체 교무실로 갔다.

그 여선생님은 언젠가 나에게 나의 큰형님에 대해서 물은 적이 있는 분이었다.

큰형님은 당시 모중학교 미술교사였고 뻑하면 솔밭에 이젤을 세워놓고 그림을 그리곤 하였다.

그 솔밭은 우리학교가는 길목이며 간혹 선생님들도 지나다니는 곳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형님은 우리학교 어떤여교사를 짝사랑하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5학년 담임은 내게 우체국예금통장을 내밀며 죽은 소씨집아들의 엄마에게 전해달라고 하였다.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런 일이 있으면 선생님이 직접방문하여 죽은아들의 엄마를 위로하는 것이 정상인듯하다.

그때는 의무적으로 크든적든 소정금액을 예금하게 하였다.

그 통장을 들고 소씨집을 갔다.

좀 난감하단 느낌은 들었지만 선생님이 시키는 일이니 도리 없었다.

소씨집아들이 죽은지 한달도 넘었지만 그 날도 그형의 엄마는 눈주위가 퉁퉁부운 얼굴이었다.

남편없이 홀로키운 외아들이 죽은 것이다.

통장을 내밀자말자 엄마는 나의 손을 부여잡고 통곡을 하였다.

괜시리 나의 눈시울도 붉어지고 콧잔등이 시큰거렸다.

그러나 무어라 할 말도 생각나지 않고 할 말도 없었다.

그냥 망연히 서 있을 뿐.....

방에 들어갔다 나오더니 신문지에싼 사탕과 곶감을 주었다.

집에 가면서 먹으라고.....

지금 생각하면 죽은아들 생각하여 살았을때처럼 먹이고 싶어 사다 놓은 듯 하였다.

그 사탕을 입에 물고 걸어오는 길 내내 괜히 서러웠다.

이유는 모른다.

다시 세월 흘러 2학년이 되었고 어느 날, 큰형님에게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도저히 내맘속에만 두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날, 그 다툼의 현장에 있었던 형들 어느누구도 그 일에 대해선 입들을 열지 않았다.

그 여선생님이 준 통장이야기와 죽은 소씨집형의 엄마이야기도 하였다.

“그래에....그런 일이 있었나...참 안됐구나...쯧쯧쯧....우짤끼고....XX야 세상에 말이다. 내맘대로 안되고 뜻대로 안되는 일들이 더 많응기라...”

큰형은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성장하고 세월 흐르고 나이 먹었지만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지고 통장을 받던 소씨집형 엄마의 통곡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다.

먹고살기 분주한 나날이었지만 고향의 송년동문회와 동창회소식은 늘 관심이 있었다.

어쩌면 그 일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동안 열 번도 넘게 회비를 내고 참석하였지만 철도마로보시집형은 단 한번도 동문회에 오질 않았다.

모임이 끝나면 그형과 둘만의 술자리를 만드리라 늘 생각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버지산소문제도 있고해서 고향을 가면 늘 마로보시형에 대해서 선배들에게 물어보곤하였다.

우리아버지 산소에는 아카시아가 너무 빨리 자랐다.

이 것은 잘라서 될 일도 아니고 약을 뿌려도 또 자랐다.

그래서 형제들과 상의하여 산소파주는 읍내포크레인을 불러 싸악 밀어버리고 큰돌들을 깔고 복토후, 주변도 탁트이고 아카시아도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엔 충청도이원까지 가서 소나무 묘목을 사다 심었다.

느리긴해도 그 소나무들이 지금은 꽤 튼실하다.

어느 선배가 읍내쪽어귀에 찜질방개업 했다해서 십여년전에 일부러 찾아갔다.

그 선배는 마로보시형과 동급생이었고 그 날 현장에는 없었다.

“아...가가 술삥걸리가주고 안죽었나....대구팔달시장 로타리쪽에 금빵 꽤 오래했제...하 색히가 가게는 마누라한테 맥끼고 맬 하루도 안걸르고 쳐묵띠마느 배에 물차고 그라고는 죽어삐릿찌...지꿈은 금빵이름도 먼쥬얼리로 바꾸고 아들이 대물림한다아이가..목은 존자리제..”

어쩌면 그 마로보시형도 마음의 저편 한구석엔 그 소씨집형의 망령이 자리했는지도 모르겠다.

고향에 어쩌다가면 다들 외지로 혹은 병들어 죽은 분들도 부지기수이다.

한때는 모두 철없이 설쳐대고 망둥이처럼 날뛰던 얼굴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때를 떠올리면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그리워지는 것은 또 무엇인지....

곰곰 생각하면 소씨집형은 아마 장파열 인듯도 하다.

얼마나 아팠을까....그 날밤 아랫배움켜쥐고 얼마나 신음하였을까...

평소에도 말이 별로 없던 형이었다.

아버지없이 홀엄마의 아들.......

XX형......그때 일학년후배가 평생 잊지않고 살아왔다는 것만 알아주세여....

이제 내맘속의 돌덩이처럼 무거운그림자였던 소씨집형도 잊고 내려 놓을 때가 된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