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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이야기(38) = 도토리가 풍년이라는데.... |
| 글쓴이 핸디산맥 조회 380 |
작성일 2003-10-01 오후 1:57: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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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30일 대전일보
올 가을 농촌 산간지방엔 도토리가 풍년이다. 도토리 나무를 애써 두드리지 않아도 나무가 있는 자리에는 도토리가 널려 있다. 그렇지만 농촌 주민들은 수확철을 맞아 바쁜 일손으로 인해 도토리를 주울 여유조차 없다. 오히려 걱정이 앞선다. '도토리가 풍년이면 나락 농사는 흉년'이라는 속설 때문이다. 농촌 어른들의 경험을 통해 전해 내려오는 이같은 속설이 말해주듯 올해는 농작물 작황이 좋지 않다. 여름 내내 잦은 비가 내렸고 저온에다 태풍 등 나쁜 기상조건으로 농민들은 농사에 최대의 시련을 겪어야 했다. 예년에 보지 못했던 기상 악조건으로 농민들은 풍요로워야 할 가을을 시름속에서 보내고 있다.
그나마 최근들어 맑게 갠 하늘을 쳐다보며 한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가을철 황금햇살과 10℃를 오르내리는 일교차는 이삭이 익어가는 등숙기에 최적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농업전문가들은 10월 초순까지 이런 많은 날씨가 계속된다면 벼농사의 경우 최대의 흉작만은 면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도 기대일 뿐이다. 일선 농민들은 이미 많은 비와 저온으로 인해 쌀 수확이 30%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예년의 경험을 보면 여름철 기상이변은 아무리 가을날씨가 좋다해도 쭉정이가 많아 실제 수확량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농촌 어른들은 도토리가 풍년이라는 사실에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다. 농민들의 더 큰 불만은 비단 수확량이 얼마나 나올 것이냐 보다도 농정당국이나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농정사회였던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아도 불과 몇해전까지만 해도 벼농사 작황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려오면 정부는 물론 온 국민이 함께 걱정하며 손발걷고 나설 정도였다.
하지만 요즘 상황은 완전 딴판이다. 농정당국은 오히려 늘어만 가고 있는 쌀재고분 처분이 쉬워질 것이라며 내심 반기는 듯한 분위기다. 현재 쌀 재고량은 1040만석으로 적정재고 600만석보다 440만석이 초과되고 있고 재고관리비용만도 연간 2000억원에 달한다. 쌀 재고 처리에 난감해하던 정부로서는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도시민들도 농사가 흉년이냐, 풍년이냐는 관심 밖이다. 경기불황으로 당장 먹고살기 힘든 판에 농민들까지 걱정해줄 여유가 없다는 반응이다. 농업을 천직으로 삼아온 농민들만 최악의 흉년을 면해 보려고 안간힘일 뿐 그 외의 사람들은 관심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농민들로서는 어디 기댈 곳조차 없이 외로운 가운데 한톨이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팔을 걷어붙여 보지만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개방화니 뭐니 해서 외국산 농산물이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고 우리 농산물이 설 곳이 없어지고 있는 판에 정부나 국민들이 관심조차 보이질 않으니 화가 치밀어 오른다.
산업화니 첨단화니 하지만 농업은 여전히 나라의 기본 산업이다. 농업이 차지하는 국가경제적 영향력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먹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외국에서 사다 먹으면 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그것은 우리의 목줄을 외국에 맡기자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래서 식량문제는 단순한 경제 논리가 아닌 안보차원에서 보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제부터라도 흉작 속에서 한 톨이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몸부림치고 있는 농민들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우선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농민들의 사기를 복 돋아 줄 정책을 내놔야 한다. 도시민들도 농촌현실을 남의 일로만 미루지 말고 보다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한다. 직접 농촌에 내려가 일손을 도와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처지라면 위로전화라도 하면 어떨까. 도시민의 관심과 격려는 흉작시름에 빠져있는 농민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도토리가 풍년이라는데 우리 농업이 '개밥에 도토리'로 전락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될 일이다.
<정세인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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