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어걸이 등장하는 바둑대회
성시바둑대항전 참관기
|
||||||||
항주(杭州, 항저우)에도 비가 내린다. 만추를 재촉하는 가을비다. 홍콩 인근에 상륙했다는 태풍 하이마의 영향은 응씨배 결승이 열리는 상해(上海, 상하이)뿐 아니라 항주에도 며칠째 비를 뿌리고 있다. 항주는 상해에서 고속열차로 1시간을 웃도는 거리. 기온이 다소 후덥지근하고 습한 중국 남동쪽 해안지역에 연일 내리는 비라 마치 우기(雨期) 같다. ▲ 우산을 들고 항주의 유명사찰 영은사를 관광하고 있는 한국에서 온 예쁜 여자기사 두 명의 뒷모습. 누구일까요? 다음주초까지 오를 성시바둑대항전 관련기사를 계속 읽다보면 누군지 알게 된다. ^^;; 중국은 지금 온통 바둑잔치판이다. 22일부터 상해에서 제8회 응씨배 결승5번기 3~5국을 시작했고, 24~25일에는 강서성(江西省, 장시성) 남창(南昌 난창)시에서 한중일 신예대항전이 열린다. 응씨배에는 박정환 9단이 탕웨이싱과 우승을 다투고 있고, 한중일 신예대항전에는 신진서 6단이 출전해 리친청, 이치리키 료와 대결한다. 그리고 이곳 항주에서도 22일부터 2016-2017 성시바둑대항전 예선리그 최종 8~10라운드를 성대히 펼치고 있는 중이다. 기자들은 흔히 ‘성대’하다는 표현을 습관적으로 갖다붙이곤 한다. 하지만 이번은 과장이 아니다. 말 그대로 성시바둑대항전은 성대하다. 2015년부터 열린 성시바둑대항전(城市围棋联赛)은 대회명에서 알 수 있듯 중국 전역의 성(省)을 대표하는 주요 시(市)들이 겨루는 대항전이다. 2016-17시즌에는 북경(北京, 베이징), 상해를 비롯해 광주(廣州, 광저우), 무한(武漢, 우한) 등 24개 팀이 출전했다. 첫 대회는 중국 팀끼리 겨뤘지만(16개 팀 참가) 장차 국제 도시대항전을 염두에 두고 올해 2회째는 서울팀을 특별 초청했다. 각 팀마다 후원하는 지역기업이 있으며 후원사의 사명이나 브랜드를 팀명 뒤에 붙인다. 그러니까 세계사이버기원에서 후원하는 서울팀의 팀명은 ‘서울 오로’다. ![]() ▲ 성시바둑대항전은 중국 전역의 성과 시를 대표하는 24개 도시팀이 출전해 내년 3월까지 2016-17시즌을 펼친다. ![]() ▲ 2016-17시즌 개막식은 지난 7월2일과 3일 중국 광시좡족자치구(广西壮族自治区) 남녕(南寧, 난닝)시에서 열렸다. 개막식에서 각팀 단장들이 단상에 자기팀 앰블럼을 들고 기념촬영한 장면.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서울 오로팀 김범준 단장이다. 대회방식은 각조 6개팀씩 A~D조로 나눠 초청&원정(홈&어웨이) 경기로 10라운드를 벌여서 각조 상위 4팀이 본선16강에 오른다. 이때부터는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린다. 일단 개막식 때 모두 모여 1~3라운드를 치르고 이후 홈&어웨이 방식으로 4~7라운드를 펼친 다음 다시 나머지 3판을 한 도시에 모여 조별예선을 마친다. ![]() ▲ 조별리그 최종 3판을 10월 22~23일 이틀간 항주에서 두고, 여기서 본선에 오른 16개팀이 24일 본선16강전까지 치르고 헤어진다. 사진은 항주시 외곽에 자리한 나라다 리조트(NARADA Resort) 전경. 호수를 끼고 있는 그림 같은 휴양지다. ![]() ▲ 리조트 입구에는 대회를 알리는 대형 입간판이 서 있다. ![]() ▲ 대회장은 2층. 계단을 오르면 대면하는 대회장 입구에서부터 엄청난 스케일에 헉,하고 놀라게 된다. ![]() ▲ 통로에 각팀 선수단 사진과 프로필이 붙어 있다. ![]() ▲ 유일한 외국 초청팀 서울 오로팀 선수단 소개가 보인다. ![]() ▲ 리허설 장면. 한눈에 보기에도 무지막지(?)하게 넓어 보이는 공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중국의 갑조와 을조 리그는 중국을 대표하는 프로리그다. 1부리그인 갑조리그가 우리나라의 KB바둑리그라면 2부리그인 을조리그는 퓨처스리그 격이랄 수 있다. 그런데 이 성시바둑대항전은 특이하게도 프로와 아마추어가 팀을 이뤄 출전하는 리그다. 지역을 연고로 하는 도시대항전이라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내셔널리그에 빗댈 수 있겠지만 아마추어만이 아닌 프로가 참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단, 중국랭킹 100위 안에 드는 프로기사는 감독이나 코치는 할 수 있어도 경기에 출전할 수 없다. 대신 올해 첫 사례로 초청한 서울 오로팀에 한해서만큼은 랭킹 100위 기준을 면해 주었다. 이 덕분에 서울 오로팀은 신진서, 신민준 ‘양신(兩申)’에 이영구 9단 같은 상위랭커들이 가세할 수 있었다. 단체전의 승부가 꼭 네임밸류에 따라 갈리는 건 아니다. 더구나 1:1 개인 성적을 합산해 승부를 가리는 방식이 아닌 바둑 한판을 바통터치하는 계주처럼 구간을 정해 릴레이로 두는 방식일 경우 의외의 변수가 적잖이 작용한다. 이 대회는 3구간으로 나눠(초반전은 1~60수까지, 중반전은 61수~141수까지, 종반전은 142수~종국까지) 두며 선수는 최소 3명에서 6명까지 출전 가능하다. 단, 여성선수 1명과 아마추어 선수 1명을 반드시 출전시켜야 하며 이들은 최소 각 20수씩 두어야만 한다. 선수교체뿐 아니라 한 경기 세번의 작전타임을 불러 팀원들이 연구한 비기를 코치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선수순번과 교체 운용에 따라, 또 작전 타이밍에 따라 변수가 많이 작용한다. 그렇다고는 해도 선수 면면의 실력만 놓고 보면 서울 오로팀이 강력한 우승후보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우승컵을 외국 도시에 넘겨줄 수도 있을 결정을 태연히 했다. 자신감일까 배려일까. 아니면 중국바둑의 배포일까. 설령 서울 오로팀이 우승한다한들 한국은 물론이고 덩달아 일본까지 이 대회에 관심을 갖게 되고(서울 오로팀이 참가하기 전까지 우린 이런 대회가 생긴 줄도 몰랐다) 향후 외국 도시들도 참가할 의욕을 부추길 것이다. 미꾸라지 키우는 연못에 메기 한 마리를 넣은 효과로 대회에 대한 흥미을 더욱 북돋웠을 것이니 중국으로서는 결코 밑지는 장사가 아니란 생각을 했을 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 좀 무섭다. 메이저 세계대회(응씨배)와 신예대회(한중일 신예대항전) 두 개를 거의 동시에 열면서도 항주에서 이처럼 스케일 큰 바둑잔치판을 또 하나 벌이는 뚝심이라면 이건 중국바둑의 저력, 힘이라고 해야한다. 상해와 남창에서 여는 국제대회로 중국기원 수뇌부들이 제법 걸음했음직한데 항주에 날아온 인사들 또한 유행하는 말로 ‘장난’이 아니다. ‘총결집’한 모양새다. 녜웨이핑, 마샤오춘, 왕루난(王汝南), 화이강(華以剛) 등등...중국바둑계를 움직였거나 움직이고 있는 거물들이 대거 등장했다. 우리에게 친숙한 류샤오광(劉小光) 차오다위안(曹大元), 화쉐밍(华學明) 같은 기사도 나란히 자리했다. 이 대회를 창설하고 지속하기 위해 모은 종잣돈만 1억 위안, 우릿돈으로 대략 170억쯤되나. 중국의 아마추어들이 참가하는 내셔널리그 같은 대회쯤 여겨 넘기기엔 성시바둑대항전이 중국에서 얼마나 영향력 있는 대회인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 ▲ 22일 오후2시반부터 개막식을 시작했다. 흑백의 바둑을 형상화한 남녀 무용수의 퍼퍼먼스 공연으로 개막 분위기를 띄우고-. ![]() ▲ 중국바둑계 인사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사진은 중국바둑협회 왕루난 회장. ![]() ▲ 항주라운드의 메인이벤트는 녜웨이핑 9단이 이끄는 북경팀과 마샤오춘 9단이 직접 선수로도 뛰고 있는 광주팀 간 대결이다. 양팀 선수소개가 이어지고-. ![]() ▲ 양팀 감독들의 입씨름(?)이 대회를 분위기를 후끈 달군다. ![]() ▲ 녜웨이핑 9단은 여전한 중국바둑의 영웅이었다. 녜웨이핑 9단이 소개되자 관객석에서 난리가 났다. ![]() ▲ 마샤오춘 9단의 인기도 못지않다. ![]() ▲ 양팀 단장이 서로 선전을 다짐하는 악수를 한 뒤 앰블럼을 교환한다. 영락없는 스포츠 경기의 모습이다. 중국이 본시 어떤 분야건 대륙적인 스케일로 유명짜하지만 그래도 바둑에 관해서만큼은 ‘아직은 일본, 한국!’이란 고정관념의 끈을 놓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흘러간 옛말이다. 바둑에 관해서도 이들의 스케일, 장난이 아니다. 이번에 모처럼 중국취재에 나서 이들의 저력과 규모를 직접 목도하면서 느낀 기분은 이런 것이랄까. 달도 안 뜬 밤길에 눈군가 슬며시 다가와 느닷없이 목덜미를 쓰다듬듯한 ‘서늘한 두려움’이랄까. 80년대말 처음 일본바둑을 취재했을 때 그들의 정교하고 질서 있는 바둑시스템과 문화의 깊이에 새삼 놀랐다면 지금 중국바둑을 목격하면서 받은 인상은 엄청난 규모와 폭! 이것이다. 흡사 B29 폭격기가 내 머리 위에서 새까맣게 투하하는 폭탄세례를 쳐다보며 아연실색하는 기분? 예전 일본에서는 부러웠지만 지금 중국에서는 솔직히 두렵다. 세계무대 꼭대기에서는 한국바둑이 간신히 힘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양상이라지만 산정 아래에서는 중국은 이미 한국을 앞질렀다. 갑조리그만 봐도 그렇고 세계대회 개최 회수도 그렇다. 틀에 박힌 판에서 벗어나 다양과 다변을 시도하는 실험성과 혁신, 과단성에서도 그렇다. 성시바둑대항전은 대표적인 예다. (우리가 아직도 바둑이 스포츠냐 아니냐 어정쩡한 걸음을 취한 채 이것저것 재고 있는 사이 중국은 좌고우면할 것 없이 바둑은 스포츠라며 한길로 직진한 차이. 비단 꼭 스폰서 문제로만 변명을 늘어놓을 일이 아니다.) 성시바둑대항전(城市围棋联赛)의 영문표기 약자는 CWL이다. City Weiqi League. 다들 CWL대회라고 부른다. 앞서 사이버오로 기사에서 박주성 기자가 상세히 소개한 바 있다. 아래 링크를 걸어놓으니 꼭 다시한번 보시기 바란다. 요즘 우리나라 바둑TV에서 방영하고 있는 '알파고-이세돌 대국기념 릴레이페어 바둑대전' 방식이 이 대회를 보고 “어, 이런 대회도 가능하네. 재미있군.” 하며 만든 대회다. ○● 바둑의 미래, 팀플레이! CWL 서울 온다 ☜ 클릭 상금도 장난이 아니다. 포스트시즌 8강부터 받는 상금 총액이 238만 위안(한화 약 4억 원)이다. 우승은 88만 위안(약 1억 5천만 원), 준우승 46만 위안(약 7천8백만 원), 3위 32만 위안(약 5천4백만 원), 4위 22만 위안, 공동 5위(네개 팀)이 10만 위안이다. 10만 위안이면 10월 현재 환율로 한화 약 1천7백만 원이다. ![]() ▲ 개회선언도 인상적이었다. 무대 왼쪽에 설치한 대회 영문 약자이자 로고인 CWL 상단의 단추를 누르자 불이 들어오고 동시에 무대 전면 스크린에 바둑판과 알의 이미지 그래픽이 분출하는 용암마냥 솟구쳐 올랐다. 징을 두드리는 우리와 차원이 달랐다. ![]() ▲ 무대 좌우로 북경팀과 광주팀이 자리(그러니까 일종의 더그아웃)를 잡자마자- ![]() ▲ 요란한 음악이 울리고 기다렸다는 듯 치어걸들이 우르르 달려나와 현란한 율동을 선보인다. ![]() ▲ 바둑대회장이 아니라 농구장에 온 것 같다. 치어걸들의 응원율동은 한 경기 3구간(초중종반) 중간 5분간 휴식 때도 선보인다. 3번의 작전타임과 3명까지 선수교체를 허용하는 CWL은 미국 농구리그 NBA를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 ▲ 마샤오춘 9단의 광주팀은 무대 오른쪽에 자리했다. ![]() ▲ 대국은 주최측인 성시바둑연맹이 개발한 인터넷 바둑프로그램으로 둔다. 대국선수는 상대편 더그아웃 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둔다. 그래야 자기편이 검토하는 소리를 듣지 못할 테니까. ![]() ▲ 양팀 가운데는 이렇게 심판석이 자리하고 무대에서는 마이크를 들고 공개해설을 한다. 코앞에서 선수들이 바둑을 두어도 개의치 않는다. 이들에게 바둑은 어디까지나 스포츠 경기다. 관객이 같은 공간에서 함께하지 않는 스포츠는 바둑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어하는 거 같다. 관객들이 연구검토하는 모습이나 선수를 카메라에 담아도 제지하지 않는다. ![]() ▲ 오늘 해설자는 화이강 8단과 쉬잉(徐瑩) 5단이다. 해설 중간중간 다음수 맞히기 퀴즈를 내는 등 관전객과 함께하려 애썼다. ![]() ▲ 개막식 전에 이렇게 빨간통을 목에 걸고 관객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여성요원이 여럿 보이기에 오징어 땅콩을 파는 이들인 줄 알았다. ^^;; 알고 보니 사전에 나눠준 우승팀 알아맞히기 티켓을 수거하는 중이었다. 오늘 어느 팀이 이길까요? 이런 단순한 질문에 그치지 않고 가령 162수의 위치는 어느 쪽일까요? 대국 결과는 몇 집으로 날까요? 이런 식의 질문도 있었다. 푸짐한 상품이 걸린 추첨식은 관객을 마지막까지 기대하게 만드는 또다른 즐거움이다. ![]() ▲ 바둑과는 무관해 보이는(?) 요란하게 화장한 아가씨가 기념셀카를 찍는 줄 알았다. 지역 방송국에서 나온 리포터다. 성시바둑대항전은 각 성과 시 체육국에서 적극 후원하는 대회다 보니 지역 언론의 취재도 매우 적극적이라고 한다. 매 라운드 경기는 지역의 주요 방송국이 생중계하고 공영방송 CCTV에서는 채널5에서 주요 대국을 골라 정기적으로 방영하고 있다. ![]() ▲ 대회는 오후2시반부터지만 바둑잔치는 오전10시반부터 일찌감치 시작한다. 바둑팬들을 위한 바둑토크, 다면기, 미니대회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돼 있다. ![]() ▲ 대회에 참가한 손자의 대국모습을 자랑스러운 눈으로 지켜보는 할머니. 종일 서 있어도 조금도 피곤하지 않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부모의 마음은 매한가지다. ![]() ▲ 사인공세에 마샤오춘 9단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할 정도. ![]() ▲ 열렬한 어린바둑팬. 오늘날 중국이 한국을 밀어내고 세계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힘의 원천이다. ![]() ▲ 보라, 관전석에 앉아 기다리는 시간에도 이처럼 바둑책을 펼쳐 보는 아이가 수두룩한 나라. 두렵다고 한 말, 호들갑이 아니다. 자, 이제부터는 성시바둑대항전 24개팀 가운데 유일한 '외인부대' 서울 오로팀이 활약하는 모습을 볼 차례다. 어느새 새벽, 항주는 여전히 우중이다. 다음편으로 잇는다.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