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댁에 바둑TV 놔 드려야겠어요!"
"아버님댁에 바둑TV 놔 드려야겠어요!"
실버세대, 실버바둑을 생각할 때
[김인국수배 취재기 ] 정용진  2013-11-04 오전 03:52   [프린트]
▲ 바둑으로 평생건강! '바둑알 소원적기'에 누군가 써 붙인 이 말보다 시니어대회에 더 적절한 말이 있을까. 실버세대를 위한 실버바둑에 한시바삐 눈을 돌려야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국바둑의 위기’를 입에 담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프로바둑이 눈에 띄게 중국에 밀려서 위기라 하는 것이 아니다. 바둑인구의 감소, 특히 젊은세대의 외면에 크게 불안감을 느낀 탓이다. 이러한 때, 바둑계는 유치부와 실버세대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전국 각지의 바둑대회 진행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는 A7의 홍시범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유치부라 하면 초등학생 저학년까지를 포괄하는 연령을 말합니다. 요즘은 전국대회에 가령 평균 1,000명이 출전한다면 유치부 참가자가 600명에 이릅니다. 어린 자녀가 대회에 출전하면 부모 중 한명은 거의 손잡고 나오게 돼 있죠. 지자체장들이 바둑대회를 여는 이유 중 하나이지요. 지역 홍보도 되고 부모 표(선거)도 얻을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템이 바로 바둑입니다. 우리 바둑계의 향후 10년은 바로 이 유치부 자원이 먹여살릴 거라고 전 생각합니다. 여기에 큰 관심을 두어 공을 들여야 합니다. 초등 고학년만 되어도 입시공부에 초점을 두는 시대라 바둑을 끊습니다.”


▲ 어린이대회는 많아도 실버세대를 위한 별도의 바둑대회는 거의 없다.

또 관심을 두어야할 분야가 있다. 실버바둑. 우리나라도 실버세대의 급격한 확산으로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으며, 2019년이면 노인층이 14.4%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기자가 월간바둑 잡지를 만들던 1990년대만 해도 주 독자층은 30~40대였다. 이것이 10년 지날 때마다 한칸씩 이동하더니, 지금 대세를 이루는 바둑사이트의 주 회원은 50~60대이다. 70대 회원 수도 적지 않다.

그런데도 우리 프로기사나 바둑강사들이 아이들 방과후학교처럼 노인시설에 나가 바둑을 보급하는 사례를 거의 듣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멀지 않은 장래에 자동의료화 시스템이 갖춰질 거라고 한다. 공상과학 영화에서 본, 아침에 일어나 소변을 받아 첨단 의료기기에 놓으면 자동으로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고 식단까지 알려주는 그런 장면이 구현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다.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세대에 투입되는 복지예산은 장난이 아니다. 따라서 노인의 건강은 곧 예산의 절약을 의미하고, 모든 국가는 어떻게 하면 노인들의 건강을 지킬까 고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바둑의 역할은 중요해진다. 한국기원은 미리미리 이 점에 눈을 돌려야한다. 명지대 같은 바둑학과는 노인바둑에 대한 전문가를 양성할 가치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이나 중국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치매에 걸린 프로기사는 아직 보지 못했다. 치매는 가정의 재앙이란 말이 나올 만큼 혹독한 우환이다. 향후 국가는 치매환자를 돌볼 의무를 지게 될 것인데, 치매 발병확률을 줄이는 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이때 바둑만한 종목이 없다.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즐기며 예방할 수 있는 게임으로 바둑은 고스톱에 댈 것이 아니다.

특수한 사례이긴 하겠으나, 올 봄 방영된 KBS 1TV의 '생로병사의 비밀-100세 시대, 신인류의 조건' 2부 늙지 않는 뇌 편에서 40대 수준의 뇌 건강을 가진 77세의 최고령 프로바둑기사 최창원 6단을 소개한 바 있다.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오래 살 것인가로 장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며, 2050년 세계인의 평균수명은 100세로 예상하고 있다.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 바둑대회 취재를 하다 졸지에 ‘칼럼’을 쓴 격이 됐다. 김인국수배 같은 시니어바둑대회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실제 김인국수배에 참가한 고령의 출전자들은 하나같이 정정했고 즐거워했다. 국내, 국외 참가자 중 눈길을 끄는 팀과 선수를 따로 만나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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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친구' 아스유키 씨와 하루미 씨

남자단체전 ‘오사카(Osaka)’ 팀으로 출전한 스미쿠라 아스유키(角倉康之) 씨는 1933년 12월생이다. 우리나라 나이로 치면 81세. 여자단체전 ‘글로벌(Global)’ 팀의 다케치 하루미(武知ハルミ) 씨는 1939년생이다.



이들은 2000년대 초까지 명맥을 유지했던 부산 최고위전에 해마다 참가한 인연으로 한국의 바둑친구들을 사귀고 김인국수배에도 매년 오고 있다. 특히 영어를 할 줄 아는 하루미 씨는 전 세계 바둑대회에 다니고 있다는데 지금까지 30여 나라는 방문했다고 하니 대단한 노익장이다.

20세 무렵 의사인 남편이 바둑을 알려줬는데 자녀 양육에 매달리느라 즐기지 못하다가 40대에 이르러서야 본격적으로 두게 되었다.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이 뭐냐고 묻자 대뜸 ‘메이드 프랜드(Made Friend)'라 말한다. 유럽의 바둑친구 집에서 일주일 묵으면 그 친구가 일본에 왔을 때 하루미 씨 집에서 묵는 식이다. 한국의 남치형, 천풍조, 디아나 같은 해외통 프로기사며 다니엘라나 김향희 씨 등의 아마 애호가치고 하루미 씨 집에 안 묵어본 이가 없다.

김향희 씨는 “하루미 씨가 한번은 유럽의 바둑친구 사진을 보여주겠다 해서 봤더니 독일의 20대 젊은 남자였다.”며 깔깔대며 웃는다. 팔순이 되어가는 할머니가 20대 남자 바둑친구 집에 스스럼없이 묵을 수 있는 힘. 이것이 인종과 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바둑의 힘이자 매력이다.


▲ 하루미 씨는 한중일 연합팀인 '글로벌' 팀 선수로 출전했다.

아마6단인 스미쿠라 아스유키(角倉康之) 씨는 부산 최고위전에서 4강에 입상한 적이 있으며 재작년 김인국수배에서도 8강에 들어 20만원의 상금을 한국친구들에게 사시미 턱으로 쐈다. 경찰을 하다 은퇴한 그는 영어를 못해 하루미 씨가 가는 곳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며 웃는다.

부산에 사는 김향희 씨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대단한 사람이었던 듯하다. 부산역 앞에 광장기원이 있었는데 최고위전 대회가 끝나면 아스유키 씨는 그곳에서 늘 내기바둑을 두었다고 한다. 한국사람들은 내기바둑 아니면 바둑을 잘 두어주지 않았으므로. 돈이 가득 든 전대를 두르고 바둑을 두던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한국의 바둑인들에게 밥도 잘 샀다고 한다.


▲ 아스유키 씨는 '오사카' 팀으로 참가해 6위(장려상)에 올랐다.

국내에서 열리는 대회도 아니고 어떤 매력이 있기에 해외 바둑대회에까지 참가하냐고 물었더니 “프로기사를 만날 수 있고 각국 선수들, 친구들을 만날 수 있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답한다.

일본에는 김인국수배와 같은 시니어들만을 위한 바둑대회가 없냐고 물었다. 이런 대회는 없고 시니어(60세 이상)를 위한 전국체전 격인 내셔널올림픽이 있다 한다. 모든 스포츠종목을 망라한 대회인데 여기에 바둑종목이 있단다.

폐막 시상에서 스미쿠라 야스유키(角倉康之) 씨는 만수무강상을 받았고, 다케치 하루미(武知ハルミ) 씨는 우정상을 받았다.



미수(米壽) 앞둔 아버지를 위해 참가한 '부자지간' 팀

남자단체전 팀 중에 눈길을 끄는 팀명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셋이 팀을 이룬 ‘부자지간’ 팀. 함평에서 온 아버지 노수천(85세), 둘째아들 노보근(63세, 광주 거주), 셋째 노춘근(61세, 수원 거주), 막내 노형만(53세, 서울 거주) 씨다.


▲ 왼쪽부터 막내아들 노형만, 장남 노봉근, 아버지 노수천, 둘째아들 노보근, 셋째아들 노춘근 씨.

6남1녀의 가족인데, 장남인 노봉근(67세, 목포 거주)와 넷째인 딸 노영선 씨 또한 바둑을 두는 바둑가족이었다. 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니까 자식들이 자연스레 어깨너머로 배우게 됐다. 아마6단인 막내아들이 최고수이고 바둑을 제일 좋아하는 건 딸이라고 한다. 목포에 사는 노영선 씨 또한 이번 대회 개인전에 출전했지만 대회 첫날 목포에서 다문화가정 바둑평가회가 겹치는 바람에 기권하고 가야했다. 방과후학교 3곳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바둑선생님이다.

부자(父子)들의 김인국수배 참가는 이번이 처음이다. “내년 1월에 미수(米壽, 88세)를 맞는 아버지를 위해 뭔가 기념할만한 게 없을까 궁리하던 여동생의 제안으로 참가하게 되었다”고 첫째아들 노봉근 씨가 귀띔한다. 기력으로 치면 5급인 아버지보다는 아들 4형제가 선수로 출전해야 하지만 아버지에게 아들들과의 추억을 만들어드리고자 참가한 대회인 만큼 장남이 빠졌다. 그야말로 참가하는 데 의의가 큰 출전이었다.



함평 본가에는 바둑판이 2개 있어 명절이나 온 가족이 모일 때면 의당 바둑판이 벌어진다. 이 집에는 명절 고스톱 같은 게 있을 리 없다. 1927년생인 아버지 노수천 씨는 그러고 보니 이번 대회 최고령자이기도 한데 대국자세가 푸른 대나무마냥 꼿꼿했다. 정정한 모습이었다.

아버님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다는 광고문구가 이 집에 오면 ‘바둑TV 놔드려야겠어요’로 바뀐다. 바둑이 없으면 살맛이 안나는 아버지를 위해 자식들은 당연히 바둑TV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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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2013-11-04 오후 1:39:00  [동감0]    
우선 수입이 되던 안되던 노인바둑보급으로 눈길 돌리는거 대찬성 입니다 좋은 의견이고요
그것을 틈새시장전략이러고도 하고
高句麗 |  2013-11-04 오후 1:41:00  [동감0]    
결국은 노인에게로 돌린다는 말이군요 노인에게 돌리는것 대찬성입니다 바둑도 장사가 되야 바둑종사가가 먹고 살텐데
노인들을 상대로 해서 장사가 될런지 그게 걱정입니다 장사가 안된다고 해서 노인들 바둑보급하지 말라는게 아니라
장사가 되던 안되던 노인바둑열심히 보급해서 명맥이라도 이어가야 합니다 그렇지만 바둑계의 수입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도라온맹호 |  2013-11-04 오전 8:28:00  [동감0]    
가능하면 내년 강진 시니어 대회에 출전 하고 싶십니다.
오로에서도 시니어 회원들이 많이 참가할수 있도록 다리를 놓와주면 고맙고 보람될턴데....
8월의볏임 |  2013-11-04 오전 6:43:00  [동감0]    
의미가 심장.
세상과 만나는 가장 민감한 자리 중의 하나인
손가락 끝의 온도가 올라가기에 그럴까, 싶습니다.
인동초7 |  2013-11-04 오전 4:26:00  [동감0]    
치매에 바둑이 좋다는게 사실인가요?
트로터 그건 이미 오래전에 증명되어 알려진 사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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