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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기원 건립'에 기여한 이후락 씨 타계
'朴정권 2인자 '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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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이 지난달 31일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그는 지난 5월 노환으로 입원, 치료를 받다가 뇌종양과 노환 등으로 병세가 악화돼 이날 영욕의 삶을 마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력의 최측근이었던 그는 (재)한국기원 초대 총재를 지내며 한국기원 건립에 기여하는 등 한국바둑 초창기 기틀을 세운 공헌자이기도 하다. 1924년 경남 울산에서 태어나 울산공립농고를 나온 뒤 1945년 12월 육군사관학교 전신인 군사영어학교 1기생으로 입교, 육군 정보국 차장 등을 지냈다. 유족은 이동훈 전 제일화재 회장 등 3남 1녀가 있다.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바둑의 저변이 취약했던 1960년대 당시에는 어쩔 수 없이 정권 실력자들과의 교유가 필요했다. 중앙정보부장, 청와대 비서실장 등을 지낸 이후락의 경우 뭇사람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조남철에게는 '바둑을 몹시 좋아하는 아마추어'일 뿐이었다. 이따금 자신의 집으로 직접 ‘당대 최고의 고수’를 불러 맨입으로 지도대국을 두던 이후락에게 조남철은 어느 날 “낼 것은 내고 바둑을 배우라.”고 따끔한 일침을 가했다. 조남철은 “무소불위의 권력자였던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조금 심했나’싶었지만 어차피 엎지러진 물이라 그냥 있었다.”고 회고했다. 과외수업료를 내지 않았던 이후락은 나중에 한국기원 이사장을 맡고 한국기원 건립에도 크게 기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조남철 회고록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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