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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 국수 떠나다. 청산(靑山)의 발자취 上
김인 국수 떠나다. 청산(靑山)의 발자취 上
향년 78세, 간암 투병 중 별세
[궂긴소식] 박주성  2021-04-04 오전 10:10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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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년의 김인. 매년 11월 김인국수배 개막식 단상에서 서서 참가 선수들을 격려했다.


‘영원한 국수’ 김인 9단이 4일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

한국바둑계의 거목 김인 9단은 1966년 10기 국수전에서 우승한 후 71년 15기까지 6연패를 달성해 바둑계에서는 ‘김국수’라는 별호로 통했다.

1943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난 고인(故人)은 58년 입단했고, 62년 도일해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문하생으로 유학했다. 63년 귀국해 통산 30회 우승, 22회 준우승의 기록을 남겼으며 83년 9단으로 승단했다.

15세의 나이에 프로에 입단해 63년간 한국기원 전문기사로 활약하며 1568전 860승 5무 703패의 통산전적을 남겼다.1968년 작성한 40연승은 현재까지 한국기원 최다연승 1위 기록이며, 67년 승률 88.1%(37승 1무 5패)와 68년 승률 87.72%(50승 7패)는 연간 최고승률 3위와 4위 기록으로 남아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임옥규 씨와 1남(김산, 며느리 김지선)이 있으며 발인은 6일, 장지는 경기도 광주 시안추모공원이다. 장례는 한국기원장으로 치른다.

- 빈 소 : 연세대학교 신촌장례식장 특2호실(지하2층)
- 영결식 : 4월 6일(화) 오전 9시(1층 영결식장)
- 발 인 : 4월 6일(화) 오전 10시
- 상 주 : 김산, 며느리 김지선
- 연락처 : 02-2227-7500(장례식장), 010-2111-3210(상주)


-관련기사 ○● 한국바둑의 도약시기를 빛낸 김인 9단 (☞클릭!)

■ 국수의 발자취 : '상경'과 '도일'- 인생을 건 두 번의 도전

'김인이 풍기는 이미지는 바다(海), 그리고 바위(岩)다. 그에게선 언제나 바닷바람 냄새가 맡아진다. 바다는 모든 것을 지켜보되 침묵하고, 그 모두를 포용하며 덮는다. 그 바다 위엔 세상의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난 자유의 바람이 분다. 그 어떤 광풍이나 해일이 덮쳐도 꿈쩍 않는 거대한 바위. 바둑판을 벗어난 일상 생활에서도 그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거대한 바위로 수십 년 간 똑같은 모습을 보여왔다.'- 이홍렬('김인 국수 전집' 서문에서)


▲ 빛바랜 사진. 젊은 시절 김인의 대국 장면.




김인 국수의 고향 전라남도 강진은 '남도 1번지'라 불린다. 남쪽 바다의 첫 육지와 그리 멀지 않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생활을 했고, 영랑 김윤식 시인 생가가 있는 곳이다. 김인에게서 늘 포용하는 바다의 내음이 풍겼던 이유다.

지난 10년 넘게 강진에선 김인국수배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가 열렸다. 매년 11월 즈음, 김인은 한국기원이 고향에 마련한 무대에 섰다. 그리고 단상에서 항상 "흔히 나이가 들면 기력이 쇠퇴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로 서두를 열었다.

바둑은 평생 짊어졌던 화두였다.


▲ 매년 고향 강진에서 김인국수배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가 열렸다.

소년의 아버지는 강진읍장이었다. 학교를 파하고 읍장관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길이었다. 하나는 경찰서 앞으로 지나가는 길이었고 또 하나는 도립병원을 거쳐 가는 길이었다. 소년은 늘 경찰서 앞길로 다녔다. 그러다 어느 하루, 왜 그랬는지 소년은 도립병원 쪽 길을 택했다. 그렇게 타박타박 걷는데 병원 앞 정자나무 아래에서 병원의사가 중학교 형 한명을 앞에 앉혀 놓고 바둑을 두는 게 보였다. 소년은 걸음을 멈추고 구경했다.

병원의사는 그때 막 결혼한 신혼이었으며 중학생 형아는 안영이(월간바둑 편집장을 지냈으며 한국의 ‘바둑서지학자’로 안영이 선생)였다. 이날부터 소년의 귀가가 늦어졌다. 매일 밤늦게 아이가 집에 들어오자 엄마가 저간의 사정을 수소문했고, 아빠에게 신혼 의사와 날마다 바둑을 두다 늦는다는 걸 알렸다.
- 정용진('소년의 가지 않은 길, 운명의 길'에서)

김인에게 바둑은 운명이었다. "기억이 나는 풍경 시작부터 늘 바둑판이 있었다."라고 말했다. 한글을 깨칠 즈음 자연스럽게 바둑을 접했다. 집에서 셋째 형님이 곧잘 바둑을 두어주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우연한 만남으로 인생의 행로가 정해졌다. 8급 수준이었던 동네 의사와 통금 직전까지 바둑을 두다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아버지는 철없는 아들을 혼내지 않았고 오히려 강진에서 가장 바둑을 잘 둔다는 최경연 씨에게 데려간다.


▲ 바둑공부를 하기 위해 서울에 온 중학생 소년 김인. 교복차림으로 한국기원을 처음 방문했을 때의 모습이다. (사진자료/월간바둑)


일 년 남짓 바둑을 배우다 1955년 봄, 열세 살 나이에 홀로 바둑판을 들고 서울행 야간열차를 탔다. 명동 송원기원에서 조남철 선생을 찾았다. 이때 소년에 성장을 도운 이로 이학진 옹( 2009년 향년 99세로 별세)도 있었다. 구한말 마지막 왕족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 공의 사위다.

이학진은 생전 인터뷰에서 어린 나이에 상경한 김인에 대해 "투지와 뚝심이 강했어. 기재는 이미 소문이 나 있었고. 입단은 시간문제라고 다들 입을 모았었지. 김봉선 씨(작고한 원로 프로기사)한테 지도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입단했어."라고 평가했다. 이어서 "당시 나도 사정이 여의치 않아 덕망 있는 사람에게 연결해주지 못했어. 그때를 생각하면 늘 미안해."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나중에 이학진 옹이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경제적 어려움을 돌봐준 이가 김인과 조훈현 9단이었다.

상경한 지 3년 6개월이 지난 1958년 15세 나이로 입단했다. 전문기사로 두각을 드러내며 '중후한 기풍과 심연의 수읽기'라는 평가를 들었다.

61년, 19세 김인은 6기 국수전 도전자가 된다. 조남철과 승부를 겨루던 도전기 중에 일본 유학 이야기가 나왔다. 단 1승만을 건진 국수전 도전기를 뒤로하고, 대회를 마친지 4일 만에 유학길을 떠났다.

'상경(上京)'에 이은 '도일(渡日)'은 김인에게 인생을 건 두 번째 도전이었다.


▲ 한일교류전에서 한국바둑의 자존심을 걸고 대국하고 있는 청년 김인.


새로운 수련장은 기타니(木谷實) 도장이었다. 시험기 등을 거쳐 당당하게 3단을 인허받았다. 입단 대회를 거치지 않고 면장을 받은 건 우칭위안 9단 이후 두 번째였다. 다른 일본기사들의 반발도 있었지만, 곧 실력으로 구설을 제압했다. 곧 ‘김죽림(金竹林) 시대’라는 신조어의 주인공이 되었다.

김인 · 오타케 · 린하이펑(林海峰), 이 세 사람이 미래 일본 바둑계를 이끌어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청년 김인은 도쿄 외곽의 하숙집에서 기타니 도장을 출퇴근하며 조치훈이나 고바야시 같은 어린 원생들을 지도했다. 수석 사범의 위치였고, 기타니 도장에서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63년 일본으로 건너간 지 1년 8개월 만에 홀연히 귀국했다. 병역문제도 있었지만, 수업 기간을 2년도 채우지 못한 이유는 틀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성품 탓이었다. 일본식 도장 생활은 그에게 맞지 않는 옷이었다.

한국으로 돌아와선 바로 조남철의 20년 아성을 허물고 '무적' 김인시대를 구가했다.

■ 대전환의 날. 그리고 '김인 시대'

1963년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김인은 신변을 정리하고 다시 본격적으로 승부에 몰입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2년째는 26승3패(비공식 포함)로 무려 89.7%에 달하는 가공할 승률이었다. 65년 다시 국수전 도전권을 얻었다. 도전 5번기는 1966년 1월 13일 1국을 시작해 2월 초에 제4국을 마쳤다.

김인 5단은 1966년 조남철 8단에게 도전해 3대1로 조남철의 장기집권을 끝냈다. 새 시대가 열렸다. 이렇게 한국바둑의 봄은 청산(靑山)에서 시작한다.

국내 최초 본격 신문기전이 '국수전'이다. 동아일보에서 개최했다. '국수 제1위전'이란 이름이 10기까지 이어지다 11기부터 국수전으로 개명했다. 초대 국수가 고(故) 조남철 9단이다. 한국바둑의 새벽을 연 개척자는 이후 9년 동안 국수봉을 홀로 지켰다. 당시 국수라는 호칭은 대명사에 가까웠다. 절대강자는 늘 외로웠다. 발자취마저 묻혀버린 산야를 보며 폭설을 뚫고 누군가 자기를 찾아오길 원했다.

대전환의 날은 66년 2월 10일이었다. 국수의 이름이 달라진 날이다. 주최사 동아일보에선 다음날 1면에 최종국 기보를 실으며 대서특필했다. '조8단이 20여 년 군림해 온 한국기단은 약관 23세 김5단에 의해 판도가 달라진 것이다.'라는 게 주 내용이다.


▲ 1966년 2월 11일 자 동아일보 1면에선 '세계바둑계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한국과 일본에서 같은해, 같은 나이의 국수(김인)와 명인(임해봉)이 새 세대의 기수에 의해 대체된 것도 기연이라 아니할 수 없다.'라고 적었다.


▲ 3면 사회면엔 '조남철 10년 왕국 무너뜨린 조용한 신풍'에 이어 ‘7시간의 각축’이란 제목으로 1면 기사의 3배에 달하는 해설 기사가 별도로 실렸다.


국수전 주최사 동아일보뿐이 아니었다. 유수 일간지들이 새 국수 탄생을 축하했다. 조선일보는 '오전 10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10시간 동안에 걸쳐 참의원 오위영(정릉)씨 댁에서 벌어진 대국에서 김5단은 2시간 48분의 시간을 남겼으며 조 8단은 5시간의 제한시간을 모두 소비하는 빠듯한 대전을 보였다.'라며 상세한 대국내용까지 소개했다.

당시 조남철 선생이 "이렇게 언론이 바둑뉴스에 열광적인 줄 알았다면 진즉 져 줄 걸 그랬다."고 독백할 정도였다. 66년 국수전 혁명은 이듬해 월간바둑 창간(67년 8월)의 원동력이 된다.





▲ 김인시대, 영광의 시작을 알렸던 기보.
제10기 국수전 도전 5번기 4국.
●조남철 8단 ○ 김인 5단. 222수 백 6.5집 승(덤 4.5).

각자 5시간이 주어진 바둑이다. 조국수는 깨끗한 한복을 입었고, 도전자 김인은 셔츠 차림으로 마주 앉았다. 서로 맞절을 하고 대국을 시작했다.

조국수는 초반 실리위주로 착점했고, 도전자는 두터운 세력을 펼쳤다. 조국수가 4시간 55분을 다 쓰고 초읽기에 들어갔을 때 김인의 소비 시간은 2시간 6분이었다.



▲ 장면1. 백5(실전 백48수)는 날이 선 비수를 정면으로 대하는 느낌이다.


▲ 장면2. 백4(실전 백94수)로 뭉뚝하게 틀어막는 수도 '김인'답다.


다음 기 국수전부터 2년 연속 도전자 윤기현을 3-0으로 돌려보냈다. "승부세계에서 비정(非情)이 미덕(美德)이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후 국수 6연패와 왕위 7연패(통산 8회)를 달성하며 제왕으로 군림한 김인이 77년까지 획득한 타이틀만 30개를 넘어섰다.


청산(靑山)의 발자취 下편으로 이어집니다.
클릭☞○● 스러진 천원(天元). 청산(靑山)의 발자취 下

▲ '현묘함을 낚다'라는 뜻의 "鉤玄(구현)"은 김인 국수가 자주 쓰는 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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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mi0331 |  2021-04-06 오전 9:23:00  [동감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12ottawa |  2021-04-06 오전 12:38:00  [동감1]    
진정한 호랑이 선생이 가셨네. 바둑두는 걸 아름답게 하신분. 사랑합니다
campo |  2021-04-05 오후 10:11:00  [동감1]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몇년전 우연한 기회에 룸사롱 비슷한 곳에서 술한잔과 노래도 불렀는데, 호방한 인상이 아직도 남네요|
econ |  2021-04-05 오후 9:55:00  [동감1]    
여러분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호적 나이로 계산합니까? 호적은 한낱 서류일뿐 왜곡투성이이지요! 김인 국수는 물론 문재인 대통령도 호적이 부정확합니다. 그는 대학의 71 학번으로 나도 71이지만 52년이상이 거의 전부입니다. 따라서 53년으로 되어있는 문통의 나이는 난리통에 준것일뿐이지요.. 저 역시 호적이 2년 줄어 난감했습니다. 군대를 늦게 가 동생벌 되는 선임병들에게 많은 수모를 당했고요. 8순의 김인 국수가 엉터리 호적때문에 78세를 사신것으로 기록된다면 호적이 없는 나그네가 졸하면 0살에 사망??? 공문서는 어쩔수 없지만 사람이 사망한 나이는 제대로 기록돼야할 것입니다.
510907 글쓴이 삭제
510907 참 많이 아시네요  
쌍피조개 |  2021-04-05 오후 7:47:00  [동감1]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강진은다산초당엔예전에황진이도다녀갔다고알고있습니다
윤실수 |  2021-04-05 오후 7:28:00  [동감1]    
요즘 역사왜곡 문제로 드라마가 퇴출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둑계에도 왜곡이 난무합니다. 김인 국수의 실제 나이는 42년 생으로 금년 팔순입니다. 그런데 호적 나이를 들이대 만 79년 사신분을 78년 살았다고 한다면 영원한 국수의 개인사 왜곡입니다. 또 11세에 입단한 조훈현 국수를 잘못된 호적을 들이대 9세 입단이라고 하는 것은 바둑사 왜곡이지요. 역사 왜곡은 안되고 바둑사 왜곡은 괜찮습니까? 하긴 그렇지요. 역사는 중요하지만 바둑사 따위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니...이제부터 조훈현의 입단이 만 10세가 아닌 9세라고 하는 인간은 왜곡이니 드라마처럼 바둑계에서 퇴출시킵시다.
uwahee 당신의 왜곡된 시선이 더욱더 문제 입니다.  
서로서로 |  2021-04-05 오후 6:48:00  [동감1]    
구현이 아니고 조현 아닌가요?
서로서로 |  2021-04-05 오후 6:40:00  [동감1]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성실해유 |  2021-04-05 오후 5:49:00  [동감1]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김종혁 |  2021-04-05 오후 3:44:00  [동감1]    
이 기사 중에서 옛날 최고의 국수 김인 프로님의 별세하는 나이를 향년 78세가 아니라 향년 80세로 고쳐야 합니다.!! 어쨌든 김인 프로님 암으로 돌아가셔서 너무 안타깝습니다.ㅠㅠㅠㅠ
윤실수 글쓴이 삭제
안장구 |  2021-04-05 오후 2:40:00  [동감1]    
또 하난의 별이 떨어져 가는군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830fafo |  2021-04-05 오전 8:01:00  [동감1]    
海岩..이라는 글자가 선생의 인품을 짐작케 합니다.
삼가 고인의 영전에 애도를 표합니다.
하늘에 계셔도 한국바둑계를 지켜보며 보우해 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묵념..
용두버들 |  2021-04-05 오전 1:26: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까르피디엠 |  2021-04-05 오전 1:00:00  [동감0]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바둑정신 |  2021-04-04 오후 11:52:00  [동감0]    
김인
단순 |  2021-04-04 오후 11:31: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ehappy! |  2021-04-04 오후 10:49: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고이 잠드소서!!!
대충대충 |  2021-04-04 오후 10:35: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78세라, 너무 빨리 가신 느낌입니다.
아직도 후학들에게 가르칠 것이 많은데...
아프로뒤태 |  2021-04-04 오후 10:20:00  [동감0]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치즈 |  2021-04-04 오후 10:11: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미추홀★ |  2021-04-04 오후 9:58: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cjwoo |  2021-04-04 오후 9:38:00  [동감1]    
몇 십년전 이창호 전성시절에 바둑 티브에 나와서 이창호의 끝내기를 감탄 하시며 해설하던
국수님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르네요.. 삼가 고인의 평안한 휴식과 위로를 전합니다.
다정아비 |  2021-04-04 오후 8:52:00  [동감0]    
바둑 실력과 인품으로 바둑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김인 구단.. 이제 고인이 되셨네요
조남철 선생과 더불어 한국바둑의 초기 개척자로 길이 기억되겠지요
삼가 명복을 빕니다~
낭만류 |  2021-04-04 오후 7:33: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형남 |  2021-04-04 오후 7:24: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른한오후 |  2021-04-04 오후 5:44: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10907 |  2021-04-04 오후 4:39:00  [동감0]    
더 좋은 곳에서 영생 하소서
밀레나 |  2021-04-04 오후 4:08:00  [동감0]    
오늘 자 조선일보에서 김인 국수님께서 영면하셨다는 비보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선생은 한국 바둑계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abostar |  2021-04-04 오후 3:38:00  [동감0]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푸른달 |  2021-04-04 오후 3:12:00  [동감0]    
바둑계의 가장 큰별이 지셨습니다.
진심으로 존경해왔던 김국수님 ..
부디 하늘에서도 생전처럼 국내 바둑계를 돌봐주시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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