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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인 친구와 싸울 순 없다!"
이강욱 8단이 전하는 LS컵 베트남바둑챔피언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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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에 단 하나뿐인 전국 바둑대회가 올해도 LS그룹의 후원을 받아 수도 하노이 ‘그랜드플라자호텔’에서 지난 8월25~29일 열렸다. ○● 관련뉴스 ☜ 클릭 ‘2013 LS컵 베트남바둑챔피언십’이 지난 호치민, 다낭에서 치른 대회와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매년 9월에 열던 대회를 올해는 8월로 당겼고 그 효과(?)로 대회 참가자가 역대 최고인 92명으로 늘었다. 그간 평균 참가자는 60여 명 선이었다. 작년 대회가 끝나고 듀이(DUY) 선생(호치민 시), 바오(BAO) 선생(하노이)을 비롯해 많은 바둑인들이 7월~8월에 대회가 치러지길 희망한다며 내게 대회 후원사인 LS측에 건의를 부탁하신 바 있다. 이유는 베트남의 방학시즌(6월~8월)에 대회가 열려야 보다 많은 참가자를 모집할 수 있고 특히 어린이들의 호응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간절한 희망이고 중요한 사안이라면 협회에 건의해도 될 것 같은데 직접 나서기엔 다들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대회를 9월에 여는 특별한 이유라면 바둑이 ‘비인기 종목’이란 점이다. 인기종목인 체스나 중국장기에 비해 아직은 아는 이도 별로 없는 바둑이 6~8월 베트남 황금기(?)에 치르는 것은 무모하다는 협회의 판단 때문이었다. 이 시기엔 국내외의 체스, 중국장기 대회들이 우선순위이고 이 대회들이 모두 끝나야 마지막에 바둑대회가 열리는, 베트남에선 바둑이 비인기 종목으로서 아직은 여러가지로 서러운 대접을 받는 실정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LS그룹 쪽에 건의를 했더니 감사하게도 베트남바둑협회에 강력히(?) 건의하여 모두의 바람대로 8월에 열 수 있게 되었다. 방학시즌에 열면 훨씬 많은 참가가 이루어질 거라고 호언장담하던 하노이의 바오 선생은 이번 대회에 30여 명의 하노이 대표선수단을 참가시켰다. 이 덕분에 (하노이 어린학생들의 많은 참가로) 역대 가장 많은 선수가 참가하는 대회가 됐다. 호치민 시에서도 팀 코치의 역할을 맡은 나를 비롯해 20여 명의 선수가 참가하였다. 늘 그렇듯 이제는 누가 우승하느냐의 여부는 내게 중요치 않다. 참가선수 모두가 사랑하는 내 제자들이니...다만 올해만큼은 하노이 팀의 오랜 숙원인 남자개인전 우승을 바랐다. (대회가 시작되고 지난 13년 동안 단 한번도 남자개인전 우승이 없었던 하노이 시다.)  ▲ 대회는 하노이 그랜드플라자 호텔에서 열렸다.  ▲ 호텔 밖에 걸린 현수막. 이렇게 시작된 대회 중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여자부 4회전 헝안(낀양 시) 대 킴렁(벤쩨 시)의 대결은 둘 다 전승을 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실상 우승을 결정짓는 중요한 일전이었다. 누가 이겨도 크게 상관없지만 이왕이면 나와 오래 함께 했던 헝안이 이겼으면 싶었다. 또 3회전에서 내가 아끼는 땀안에게 이긴 킴렁이니만큼 헝안이 대신 복수(?)해 줬으면 하는 마음과 더불어. 하지만 상황은 좋지 못했고 관전을 포기한 나는 대국이 일찍 끝난 학생들과 복기검토에 여념이 없었는데... 두 대국자 모두 집계산에 착오가 있었던지 계가를 마친 두 사람 모두 본인이 반집을 이겼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대회 심판이 있었지만 그 자리에서 정확한 승패 기록 없이 두 대국자 모두 본인이 이겼다는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는데...(멀리서 지켜보던 나 역시도 두 사람 모두 웃는 얼굴이 신기할 정도였다. 도대체 누가 이긴 건지??) 대진표에는 헝안의 승리로 표기되었고 이에 킴렁이 문제제기를 하며 사건은 시작되었다. 두 사람 모두 본인의 승리를 주장하니 베트남 심판진은 급기야 내게 도움을 요청해 왔다. 달리 방법이 있겠는가. 하는 수 없이 복기를 해야 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두 사람의 복기가 달랐다. 둘 다 본인이 반집 이기는 그림이 맞다고 주장하니 난감했다. 최종 결정은 베트남 심판진이 다음날 재대국을 결정하며 일단락 지었는데 헝안은 적잖이 마음이 상했나 보다. 그날 저녁 내 방에 찾아온 헝안이 억울함을 호소했다. 분명히 본인이 이겼는데 재대국은 억울하단 입장이었다. “헝안, 아직도 억울하니?” “네. ㅜ.ㅜ” “헝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괜찮을까?” “무슨??” “이번 문제는 두 대국자의 잘못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 진정 바둑을 좋아하고 즐기는 바둑인이 승패를 가지고 서로 싸우는 모습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닐까? 지난 3년간 대회를 지켜봐 왔지만 6~7살의 어린아이들도 승패를 정확히 알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며 이런 문제가 없었는데 베트남에서 제일 잘 둔다는 두 어른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건 옳지 않다 생각해. 마냥 억울해 하기보다는 두 대국자 모두 반성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 특히나 내 학생이 이런 일에 연루되는 건 원치 않아. 다행이 내일 한번 더 기회가 주어졌으니 더이상 억울해 말고 즐겁고 편안한 마음으로 대국에 임했으면 좋겠어.” 묵묵히 내 얘기를 듣던 헝안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선생님 말씀이 맞는 거 같아요. 덕분에 마음이 편해졌고 내일은 즐길 수 있을 거 같아요. ^^ 고마워요 선생님.” 얘기하는 내내 행여 자존심 상해하지 않을까? 마음을 풀어주려다 더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조마조마했지만 다행이도 내 뜻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는 헝안이 고마웠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다음날 재대국을 준비했는데...  ▲ 여자부, 3년간 나와 함께 공부하고 있는 땀안(왼쪽. 호치민 시) 과 헝안(낀양 시)의 대결. 아침이 밝았다. 여느 때와 같이 대회장에 들어섰는데 헝안의 룸메이트가 내게 헐레벌떡 뛰어온다. “선생님. 헝안이 기권하겠대요. 어떡해요?ㅜ.ㅜ” ‘잉?? 뭐지??’ 어젯밤 분명히 내일 땀안의 복수를 제대로 하겠다며 웃으며 헤어졌는데 밤새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걸까? 혹시 내 얘기가 영향을 끼친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서 헝안에게 대놓고 이유를 물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헝안의 SNS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와 있었다. “난 바둑을 이기기보다는 즐기기 위해 이번 대회에 참가했다. 더이상 승패에 연연하며 같은 바둑인, 친구와 싸우고 싶지 않다.” 보다 많은 내용이 있었지만 대략 중요한 내용은 이런 뉘앙스의 글이었다. 사실상의 우승이 결정되는 중요한 대국이었는데 과연 나라면 어땠을까? 어젯밤에는 그럴싸하게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얘기를 했지만 과연 내가 그런 상황이었다면 헝안과 같은 결정을 할 수 있었을까? 헝안의 용기에 난 한없이 작아짐을 느꼈다. 바둑도 약하고 나이도 어리지만 선생인 나보다도 용기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함께. 그날 밤 헝안에게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우승은 놓쳤지만 난 네가 진정한 승자라 생각한다. 고맙고 미안하다.”  ▲ 현지 방송국에서도 취재를 나올 정도로 관심을 끌었다. 대회기간 내내 페이스북의 베트남 바둑페이지(https://www.facebook.com/groups/136820606367854/) 또한 후끈 달아올랐다. 다름아닌 베팅! 매 라운드가 벌어질 때마다 관심대국을 선정하여 각자의 배당률까지 책정, 베팅하는 모습이 전문 베팅사이트의 그것이었다. 베트남 사람들이 스포츠베팅을 좋아하는 것은 누누이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바둑까지 이렇게 즐길 줄은 몰랐다. 바둑이 국민들의 관심을 끌려면 축구와 같이 베팅이 활성화되어야 한다는 그들 나름대로의 이유 또한 재미있다. 적게는 100,000동(약 5,000원)에서 많게는 500,000동(약25,000원)까지 베팅액수가 치솟는 등 인터넷 베팅의 열기 또한 대회 못지않았다. 스포츠베팅에 관심 없을 것 같은 여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재미 꽤나 봤다는 후문이다. ^^ 객관적인 실력을 다 꿰뚫고 있는 내게도 유혹의 손길(?)을 뻗쳤지만 내게는 모두 한결같은 사랑하는 내 제자들! 입맛을 다시며 냉정히 뿌리쳤다. ㅋㅋㅋ 대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개최도시인 하노이 팀은 대회사상 첫 남자개인전 우승(Pham Anh)과 단체전 우승 등 남자부를 휩쓸었고, 호치민 팀은 대회 최다 메달, 여자부 단체전 우승, 남자단체 2위로 체면치레했다. 늘 여자, 어린이부에서 강세를 보이던 벤쩨 시 또한 어김없이 여자개인, 어린이부문에서 좋은 결과를 내는 등 모두가 웃을 수 있는 결과였다.  ▲ 하노이(왼쪽)와 호치민(오른쪽)에서 온 두 꼬마아가씨. 하지만 이처럼 좋은 상황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안 좋은 소식도 함께 듣는 것이 아쉽고 안타깝다. 베트남에선 각 도시 바둑대표선수들에게 지원금이 지급되고 있다. 바둑뿐만이 아닌 모든 체육종목에 해당되는 얘기이다. 보다 자기 분야에 집중하여 실력연마, 후진양성에 힘쓰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약 두달 전부터 하노이에선 지원금이 끊겼단 얘기를 들었다. 지원을 받으며 바둑만 하던 이들이 앞으로는 본인들의 일자리를 찾아야 하니 바둑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 같다는 걱정들이 많았다. 이번 대회에서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린 하노이 팀의 결과가 바둑환경 개선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대회는 잊지 못할 대회로 기억될 것이다. 큰 도움은 아니었겠지만 매달 2번씩 왕래하며 함께 공부했던 하노이 팀이 좋은 성적을 올린 점, 또 앞으로의 활동 방향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약 5일간 베트남의 모든 바둑인들과 함께하며 유대감이 더욱 돈독해 진 점 등... 대회를 마치고 호치민에 돌아온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치 상사병에 걸린 듯 대회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벌써부터 내년 대회가 기다려진다. 끝으로 늘 끊임없는 관심과 후원, 시상식의 참가 등 물심양면으로 대회를 후원해주시는 LS그룹의 구자홍 회장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올린다. 8월 개최에 큰 힘이 되어주신 LS전선의 이승찬 법인장님, 대회기간 내내 대회장에 방문하여 저녁회식을 시켜주시며 하노이 선수들의 사기진작에 신경 써주신 하노이 한인기우회 여러분께도 감사의 말씀드린다. [베트남 호치민 시=이강욱 8단]  ▲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 유행하는 최신포석이 인기다.  ▲ 신개념 베트남식 우주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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