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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호 신임 한국기원 사무총장
“퇴임하는 날까지 초심 잃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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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이 처음 공식경기로 채택된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셋을 휩쓸어온 명장 양재호 9단(48)이 재단법인 한국기원의 실무를 총괄 지휘하는 사무총장으로 선임됐다. 팬들은 그를 부드럽고 섬세한 사람이라고 한다. 맞다. 그의 얼굴은 늘 웃는 부드러운 표정이다. 그를 알게 된 지가 20년이 넘었지만 웃음을 잃은 그의 얼굴을 본 기억도 없고 웃지 않는 그의 얼굴을 상상해본 적도 없다. 그러나 그가 냉철하고 독한 일면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패왕전 준우승(87년), 동양증권배 우승(89년), 명인전 준우승(92년), 맥심배 준우승(2005년), 팬들이 손꼽는 최고의 방송해설자. 사실, 그는 한국 바둑계에서 ‘승부’와 ‘보급’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은, 몇 안 되는 유능한 사냥꾼이다. 그의 온화한 표정에 익숙한 사람들은 가끔, 그가 이룬 성공이 그런 독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잊는다. 바둑관계자들과 바둑저널이 그의 사무총장 취임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사무총장 하마평이 있을 때마다 이름이 거론돼왔으면서도 계속해서 자리를 사양해온 그가 사무총장직을 수락한 이유는 무엇일까. 취임준비에 분주한 양재호 9단을 만나 그 결심의 말을 들어봤다. -축하를 해야 할지 위로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터뷰 요청도 많고 이런저런 이유로 찾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을 때는 축하 일색이었는데 이번에는 축하만이 아니라 우려와 위로의 말도 많았다. 모르진 않았지만 한국기원 사무총장이 어떤 자리인지 새삼 실감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우려, 잊지 않겠다. -사무총장은 대국도 할 수 없고 방송 해설도 맡을 수 없다. 승부, 보급 양쪽에서 그만한 위상을 누린 사람도 많지 않다. 아쉬움이 있지 않나. 수입도 많이 줄 것 같은데…. 사무총장은 욕먹는 자리다. 그런 각오는 돼있다. 꼭 해야 할 일들이 있고 더 이상 미룰 여유가 없다는 위기의식이 컸다. 결심한 이상 수입은 큰 걸림돌이 아니었다. -집의 반응은 어떤가. 양 총장이야 결심한 이상 수입이 걸림돌은 아니라고 하지만 집에서는 좀 다를 것 같은데…. 1년 전에도 총장 하마평이 있었다. 그때는 ‘누구 과부로 만들일 있냐’며 펄쩍 뛰었다. 살림하는 사람이야 아무래도 수입에 좀 더 민감하지만 아내도 그런 이유로만 반대한 것은 아니다. 프로기사의 부인으로 살아가는 이상 바둑계 일을 모를 수가 없다. 당연히 사무총장이 어떤 자리인줄 안다. 그래서 처음엔 아내도 반대가 심했는데 아시안게임 우승 이후 많이 누그러졌다. 아시안게임 기간 동안 스트레스가 극심했는데 그걸 극복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아, 이 사람이 해낼 수 있겠구나’ 그런 믿음이 생긴 것 같다. 고마운 일이다. -취임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나.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하고 있다. 우선은, 자기관리다.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 방만하게 살았다. 정해진 출, 퇴근 시간이 없는 프로생활이라는 게 좀 그렇다. 요즘은 건강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다. 그게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자기절제, 자기관리에 실패한 사람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나. 오랫동안 중단했던 조깅도 다시 하고 술, 커피를 대폭 줄였다. 일찍 자고 숙면을 취하려고 애쓰는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된다. 아무튼 덕분에 생활이 건전해졌는데 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자주 새벽에 잠이 깬다. 다시 잠을 청하기도 어렵고 해서 책을 읽는다. 새벽에 독서하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또 바둑계 안팎에서 멘토 역할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분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뚜렷한 목표와 도덕적인 의지가 있어도 혼자만의 생각에 갇힌 사람은 편견에 사로잡히기 쉽고 독선에 빠지기 쉽다는 걸 안다. 직원들에게 ‘소통’과 ‘균형’을 중시하는 사무총장으로 인정받고 싶다. - ‘양재호 사무총장’설은 이전부터 여러 차례 있었다. 이번에 사무총장 선임을 수락하게 된 특별한 계기라도 있나. 앞에서 잠깐 언급했지만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바둑계가 총체적 위기에 직면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울타리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걸 잘 의식하지 못한다. 솥에 개구리가 좋아하는 적당한 온도의 물을 붓고 서서히 가열하면 죽을 때까지 죽음의 위기를 깨닫지 못한다는 비유가 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위기불감증’은 바둑계에도 있다. 나는 토너먼트 프로, 방송해설자로 팬들에게 과분한 사랑을 받았고 수입도 작지 않았다. 솔직히, 나의 활동시기까지는 그런 것들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후배들이다. 팬들은 갈수록 줄어들고 각계각층에 포진된 후원자들의 고령화는 가속이 붙고 있는데 그 이후가 없다. 바둑을 좋아하고 후원에 관심을 갖는 젊은 후원자가 없다는 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위기의식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신예들의 대국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젊은 프로들이나 프로를 지망하는 유망주들이 인터넷 바둑사이트의 속기전에 매달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다양한 대회를 유치해 신예들의 대국기회를 늘려야 하고 팬들이 즐거워할 수 있는 행사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 현재 잘 진행되고 있는 군부대 바둑병영교실 구축사업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바둑저변확대는 물론, 젊은 프로들의 병역문제도 거기서 실마리를 풀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할 일이 너무 많지만 우선, 총장 취임 뒤에 6, 7개 역점사업을 추진할 생각이다. 방금 설명한 일들과 바둑영재 육성, 대학바둑보급, 여성바둑 장려, 고령화시대에 맞는 보급도 준비해야 한다. 회관건립, 바둑 스포츠토토 사업도 시급하고 대한바둑협회와 통합하는 일도 재추진돼야 한다. 다른 스포츠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듣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 역대 사무총장 중 누구도, 열거한 일들 중 어느 것 하나 속 시원히 해결한 예가 없다. 지금까지 한국기원이 보여준 동력으로 그 많은 일들을 잘 해낼지 우려가 된다. ‘양재호는 온건해서 한국기원이나 바둑계의 난제들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더러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승부 이외의 곳에서 그런 기질을 보여줄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그렇게 온건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양재호는 냉철하고 독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물론, 목표로 잡은 역점사업들을 쉽게 해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청사진에 맞춰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순차적으로 최선을 다하겠지만 나는 독불장군도 아니고 슈퍼맨은 더더욱 아니다. 직원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협력이 필요하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한국기원 사무조직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진급시스템이다. 입사해서 성실하게 근무한 사람이면 누구나 40대 초, 중반에 부장이 되는데 한국기원 직원으로 진급할 수 있는 자리는 거기가 끝이다. 40대에 정년을 맞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 상황에서 ‘주인의식’이라든가 새로운 업무에 대한 의욕이 생길 리가 없다. 그런 문제점을 잘 알고 있고 반드시 해결할 생각이다. 열정은 강요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고 싶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성취동기가 부여돼야 한다. 기업운영의 마인드가 필요하다. 직원들에게 ‘열심히 노력하고 능력을 발휘하면 나도 한국기원의 경영자가 될 수 있다’는 의욕고취의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한국기원이 무능하다고 욕을 먹을 때가 많은데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보면 결코 무능하지 않다. 조직은 오케스트라와 같다. 지휘자와 연주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팬들에게 멋진 공연을 보여줄 수 있다. 능력 있는 직원,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 인재를 키우지 않는 조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구상중인 모든 역점사업을 실현시킬 수 있는 절대조건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기원 직원들의 처우를 이야기하면 프로기사들의 복지도 반드시 거론된다. 한국기원의 복지정책에 프로들의 불만이 많은 것으로 안다. 복지는 예산이 필요하다. 대회를 많이 유치하고 보급에 관련된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면 해결이 가능하다고 본다. 사무총장이 앞장서서 열심히 뛰겠지만 이런 일들은 하루아침에 해결할 수 없고 무작정 서두른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신념과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사무총장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기원 조직의 체질개선도 프로들의 복지문제 해결과 무관하지 않다. 좋은 정책을 만드는 일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바른 실행이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사무국 직원들과 프로기사 전체의 이해와 협조가 있어야 한다. 그런 화합을 이끌고 최선의 결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취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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