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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바둑전도사' 김교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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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은 족히 돼 보이는 한 노인이 사이버오로 사무실에 들어선다. 여행용 가방 하나를 질질 끌고서. 예술가들이 흔히 쓰고 다니는 베레모도 척 걸쳤다. 처음엔 여행용 가방 가득 소소한 물건을 담고 사무실을 골라 다니는 잡상인인 줄 알았다. 그러기엔 첫인상이 묘했다. 뭔가 호소하는 듯한 눈빛. 동시에 안타까운 아쉬움과 자긍심, 자부심 같은 게 만면에 흘러넘치는…. 한마디로 ‘묘한 포스’가 느껴지는 노인이었다. 얼라? 그런데 막내 이도윤 기자가 포르릉 일어나 굽신 인사를 한다. 노인 역시 몇몇 직원에게 아는 체를 한다. 한두 번 출입한 게 아닌가 보다. 그날 사이버오로 사무실을 찾은 명분은 ‘기보 입력 프로그램’ 사용법을 숙지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런 방문객, 솔직히 반갑지 않다. 기초적인 컴퓨터 사용법은 개별적으로 익혀야 할 부분이지 사이버오로 직원이 일일이 설명할 업무가 아니다. 하지만 연세 지긋한 사용자가 많고 컴맹에 가까운 분이 적지 않다 보니 한두 시간씩 울며 겨자먹기로 전화통에 붙들려 있을 때가 있다. 찾아오기까지 하는 분도 있다. 이런 케이스에 걸리면 반나절이 후딱이다. 시간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같은 설명을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 게 고역이다. 알고 보니 바둑계에선 제법 얼굴이 알려진 노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품깨나 팔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노인바둑 전도사’였다. 학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나 찾아다니고 주로 명지대 바둑학과에 자주 드나들며 김진환 교수, 성기창 강사에게 도움을 받아오던 차(그래서 이도윤 기자가 아는 체를 했다) 요즘은 사이버오로에 안면을 트고 종종걸음하는 참이다. 이전에 한국기원이나 기사실, 대한바둑협회 문턱을 수없이 넘나든 건 말하나 마나. 문전박대를 당하지는 않았으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곳에 자꾸 드나드는 것도 눈치 보이고 잡상인 취급밖에 더 당하겠는가 싶어 발길을 끊었다. 바둑단체들 나름 재정 형편과 고충이 적지 않겠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경영진단사 자격증 제70호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제1회 바둑지도사 제13340호 한국기원 스포츠바둑 지도사 제4-15호 한국기원 공인 아마6단 제6633호 노인이 내민 명함에 또박또박 박혀 있는 문구이다. 그리고 그 위에 ‘시민강사 김교학’이라고 박았다. 그냥 ‘강사’가 아니라 ‘시민강사’였다. 명함 이면엔 “분당, 용인 시민을 위한 무료 바둑강좌 개설”이라고 쓰여 있다. 시민을 위한 무료 바둑강사. 무료강좌는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 주택전시관 내에 있는 분당노인종합복지관(월요일 1시-3시)과 용인시 수지구 죽전동 꽃메마을 앞 새에덴교회(화요일 1-3시)에서 매주 열고 있다. 올해 73세. 김교학(金敎學)이라 작명한 강사명도 교학상장(敎學相長)에서 따왔다. 가르치면서 자신도 배우고 다시 가르치는, 그 나이에도 성장 중인 노인이다. 컴퓨터로 기보도 뜨고 첨단 기기(프로젝터)로 강의하는 방법도 배우고 활용할 줄 아는 최신식 노인이다. 메인 사진에서 보듯, 여행객들이나 끌고다님직한 가방에는 손수 제작한 강의교재와 빔프로젝터가 들어있다. 자가용도 없이 이걸 끌고 지하철로 복지관으로 천지사방 강의를 열만한 곳을 찾아다닌다. 돈벌이라면 모를까 무료강의니 품값이 나올 리 없다. 그럼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이겠는가. 바둑이 좋아서지. 한마디로 ‘열정’ 덩어리의 노인이다. 뜨거운 열정만큼이나 열의도 탱천이다. 재정 탓, 환경 탓, 인력 탓만 늘어놓는 바둑단체들은 쥐구멍을 찾아야한다. 백번 전하는 기사 한줄보다 핏대를 세우며 쓴 이 분의 글 한장이 절절하다. 불쑥 꺼내 건넨 내용이 이러하다. 노구일지나 의분은 열혈청년이다. 아마추어바둑 교육장의 현실 한국기원에는 아마추어 바둑인들에 대한 바둑교육장은 없습니다. 국민은행에서 30억원을 후원하여 한국바둑리그전은 만들고 온갖 신경을 쓰면서 일반인들을 위한 바둑교육장은 왜 만들지 않습니까? 대한바둑협회는 바둑대회는 수없이 개최하나 아마추어 성인(노인)바둑 교육장은 왜 기획하지 않는지? 아마추어 바둑보급을 사명으로 출범한 단체가 어디입니까. 일반인들이 즐기는 바둑기원은 많지만 바둑을 가르치는 곳이 없습니다. 세계 유일의 바둑학교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또는 대한바둑학회가 있으나 일반인들에 대한 바둑교육장은 없습니다.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제1회 바둑지도자 양성과정을 수련하고 한국기원 제2회 스포츠바둑지도자 자격증과 아마6단 자격증을 받았으나 몇년이고 장롱 안에 처박혀 있어도 누구하나 불러주는 이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재교육 통지도 단 한번 없는데 무엇 때문에 100여만원의 경비가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안국동 시립노인복지관에 바둑교실을 개설하여 몇년 동안 하였으나 보수는 없고 봉사뿐입니다. 성동구 시립노인복지관(한국기원근처)에 유일하게 바둑교실을 만들어 3년 동안 노인 일자리 창출 팀으로 활동하였습니다. 분당구 정자동에 노인종합복지관이 2007년 12월 개관, 2008년 2월부터 국내유일의 바둑교육장을 개설하여 사회교육학과로서 당당하게 자리매김하여 발전하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첨단교육시설이 완비되어 빔 프로젝트 대형화면에 무선마이크로 사이버오로 인터넷바둑을 생중계하고 바둑교재를 직접 만들어 수강생들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힘도 없고 돈도 없는 늙은이가 오로지 열정 하나로 부딪쳐 만들어나갈 뿐인 게 아쉽고 안타깝습니다. 바라는 바는 한국기원, 대한바둑협회, 명지대학바둑학과, 대한바둑학회, 대한노인회, 서울시내 노인종합복지관의 관계자들이 한번이라도 좋으니 시찰참관하여 더 많은 곳, 더 넓고 쾌락한 곳에서 바둑교육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소망뿐입니다.  ▲김교학 강사가 손수 만든 20쪽 분량의 바둑교재. 수강생에게 무료로 배포하고 있다. 이를 위해 김강사는 사무용 복사기까지 구입했다. 노인바둑에 신경써야 하는 이유 노인의 소망은 거창하지 않다. 한국기원은 고사하고라도 대한바둑협회가 생긴 지 4년. 대한체육회의 어엿한 정가맹단체가 되었어도 아마추어 보급에 대한 사정은 그리 달라진 것도, 눈에 띄는 것이 없긴 마찬가지다. 오직 정가맹단체 가입만을 목표로 달려오진 않았을 터. 노인강사는 이를 지적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날로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단 몇 푼이라도 정부예산이 떨어지고 있을 텐데 노인바둑을 위해, 아니 바둑교육시설 마련에 돌릴 여유가 그토록 없는 것인지. 예산은 차치하고 신경이라도 좀 써주던지. 인력난 탓에 그조차 욕심이라면 본인이 뛰고 있는 현장이라도 한번 걸음해 판단해 주시던지. 누가 시켰냐? 시키지도 않은 일을 사서 고생이라고 지청구를 주면 할말은 없다. 저 좋아서 시작한 일 이제와 단체에 기대려 하느냐, 대가를 바라는 투정으로 바라보면 침묵해야 한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쯤은 염두에 두자. 한국은 2000년에 이미 ‘고령화 사회(노인 인구비율 7.2%)’에 진입했다. 2007년 기준 노인 인구비율은 9.85%에 달한다. 2018년엔 14.3%로 ‘고령사회’, 2026년엔 20.8%엔 '초고령사회'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바둑은 노인에게 소일거리 차원을 넘어 치매 예방에 좋다는 학설은 이미 사실로 입증되고 있다. 날로 세대간 계층간 대화가 단절돼 가고 있는 마당에 남녀노소가 어울릴 수 있는 소통의 매개체로 바둑이 그만이다. 스타크래프트는 노인과 젊은이가 함께 즐길 수 없어도 바둑은 유치원 손자 손녀와도 머리를 맞댈 수 있는 전통놀이다. 2008 한국갤럽조사에 따르면 바둑을 배우는 경로가 여전히 ‘친지, 친구, 동료 등의 지인을 통해(61.3%)>독학(15.9%)>군복무중(7.4%)>바둑교실(6.0%)>TV나 인터넷 매체(5.8%)>학교(2.4%)’ 순으로 나타났다. 이는 바둑보급 시스템이 여전히 미비하며 배움터가 마땅치 않아 쉽게 입문할 수 없는 구조적, 환경적 걸음마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고서야 어찌 생활체육으로 기능하길 기대하는가. 바둑을 배우지 못한 이유도 ‘배울 기회가 없어서(42.1%)’가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계기(기회)란 노출과 접촉 빈도가 많아지면 자연 느는 것이다. 기회가 닿지 않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향후 바둑을 배울 의향을 묻는 질문에 16.3%가 “있다”고 답했다. 무엇보다 국민의 과반수(53.3%)는 다른 취미나 오락에 비해 바둑이 상당히 유익하다고 인식하고 있으며, 국민 10명 중 8명은 바둑이 자녀교육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정도로 바둑을 유익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바둑보급의 중요성에 대해선 천번만번 부르짖어도 과하지 않다. 바둑에 대한 국민 인식조사를 벌여 이러한 자료를 구한 것도 그 중요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보급할 것이냐인데, 모든 조건을 충족시킨 다음에야 100m 출발총성을 울리겠다는 마음가짐은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거나 진배없다. 밑그림, 큰 그림만 구상하며 때를 기다리느니 차라리 발품을 팔아라. 현장에서 이뤄지고 있는 풀뿌리 보급부터 파악하다 보면 방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김교학 강사는 좋은 사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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