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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돌(이창호-이세돌)콤비 우승 원정기3
‘방콕모드’로 컨디션조절, 중화영웅 창하오 격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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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식기도라도 하나? 상하이에 도착하자마자 ‘방콕모드’로 맞춰놓고 식사시간, 그것도 이창호-이영호 형제와 가진 16, 17일 저녁 딱 두 번을 제외하고는 좀처럼 방에서 나오지 않은 이세돌 9단을 두고 하는 얘기다. “밥 먹으러가자고 해도 ‘싫어요’ 하고 컵라면이라도 가져다줄까 하고 물어도 ‘괜찮아요’ 하니 그냥 내버려둘 수밖에요. 그래도 뭐든 요청하면 해줄 수 있도록 항상 준비는 하고 있어야죠.” 한국기원 기전사업팀 이한나 씨의 말이다. 이세돌 9단은 창하오 9단과 겨루게 된 18일 아침식사도 걸렀다. 그럼, 점심은? 그것도 그냥 훌쩍 건너뛰었다. 이쯤 되면 ‘방콕모드’ 정도가 아니라 ‘좀머씨모드’다(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모르시는 분들께는 죄송하다). 그냥 ‘제발, 날 좀 내버려두시오’라는 거다. 체력관리를 그렇게 해서야 어디 제대로 승부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지만 대국개시 10분 전 상하이문화원 3층 대국실에 나타난 이세돌 9단의 얼굴은 너무나도(?) 멀쩡했다. 음료수가 준비된 탁자 앞에서 허리를 굽혀 차 한 잔을 준비하는데 사방에서, 그것도 턱밑까지 파고들어 카메라를 들이밀고 셔터를 눌러대는 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잠시 밖으로 피난.  스타는 괴롭다. 카메라맨들은, 스타의 일거수일투족에 목마른 독자들에게는 최고의 메신저겠지만 타깃으로 잡힌 스타들의 눈에는 때때로 거칠고 사나운 하이에나의 무리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메라맨이 없으면 스타의 얼굴도 사라진다. 둘은,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다. 5분 전쯤 창하오 9단이 텅 빈 기자실로 들어선다.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다시 포탄이 떨어질 확률이 적은 법. 이곳에 있던 기자들은 모두 카메라를 들고 대국실로 이동했다. 기자실에는 공개해설장을 거쳐 대국실로 들어가는 통로가 있다.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피해 잠시 이곳에 머물다가 대국개시 직전에 대국실로 들어가겠다는 생각일 것이다. 흠, 괜찮은데? ‘태양(카메라 플래시)을 피하는 방법’이라. 비의 노래 제목을 떠올리며 이세돌 9단에게도 알려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대국이 시작됐다. ‘중화영웅’과 ‘중화무적’의 대결. 지난해 이창호, 박영훈 9단을 연파하며 중국에 첫 우승의 감격을 안겨준 창하오 9단이 ‘중화영웅’이라면 2008년 중국바둑리그 주장전 8전 8승 불패의 기록을 세운 이세돌 9단은 ‘중화무적’이다. 중화무적! 중국 땅에선 적수가 없다. 상대가 ‘중화영웅’이라 해도 그건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더하다. 이즈음의 ‘중화영웅’은 ‘중화무적’을 상대로 10연패의 시련을 겪고 있으니까.  ‘꿩 잡는 게 매’라더니 과연, 옛 속담은 그른 게 없다. 하루 전 일본 최후의 보루 다카오 신지 9단을 무너뜨리고 기세를 올린 창하오 9단은 승자 인터뷰에서 ‘다카오 신지를 꺾으며 기세의 흐름을 타고 있는 내가 이세돌보다 유리하다’며 필승의 의지를 불태웠으나 의지와 현실의 차이는 분명하고도 냉혹하게 드러났다.국면은 초반 ‘중화영웅’의 우변 갈라침(백1), ‘중화무적’의 한칸 육박(흑2)에 입 구자(백3)로 견고하게 자세를 취해 쌍방 먼 길을 떠나는가 싶었던 순간, 강렬하게 내리꽂힌 해머 한방(흑4)으로 급류를 타기 시작했다. 번개 같은 감각과 수읽기. 폭풍처럼 몰아친 우변 공격은 ‘쎈돌’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준 명장면으로 꼽을 만하다. 지난해의 영광을 재현하려던 ‘중화영웅’은 반격다운 반격 한번 제대로 못해보고 전국을 헤매다가 무릎을 꿇었다(상세한 대국 내용은 이미 해설도, 뉴스도 전해졌기 때문에 여기에 다시 옮기지 않는다). 김인 단장과 유충식 한국기원 부이사장, 이창호-이영호 형제는 상하이 한국문화원에서 마련해준 5층 ‘특별관전실’에서 대형 스크린으로 이 대국을 지켜봤다. 시종 여유 넘치는 분위기였는데 오후 5시 무렵 스크린에 비친 대국 해설창에 ‘[현장소식 흑 불계승] 3초전입니다’라는 강동윤 9단의 멘트가 뜨자 일제히 폭소를 터뜨렸다. 거의 정확하게 3초쯤 뒤 해설창에 [현장소식 흑 불계승]이 떴으니, 타이밍 좋은 천재의 재치란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가.  그런데 ‘[현장소식 흑 불계승] 3초전입니다.’ 이 말이 그렇게 웃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을 위한 사족 하나. 대국이 끝나면 항상 현장의 입력자가 해설창에 [현장소식 흑(또는 백) 불계승(또는 O집반승)]이라는 대국결과를 입력시키는데 그런 내용을 익히 알고 있던 강동윤 9단이 ‘승부 끝났다. 곧 돌을 거둘 것 같다’는 말을 익살스럽게 돌려서 표현한 것이다.대국이 끝나고 30분 가까이 복기가 이어졌다. 아무리 강철체력이라도 아침, 점심 두 끼를 건너뛰고 3시간 이상 한 자리에 앉아 정신을 쏟아 붓고 나면 파김치가 되기 마련. 쇄도하는 인터뷰 요청 마이크와 사방에서 폭죽처럼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에 휩싸여 오도가도 못 하는 이세돌 9단을 본 김인 단장은 즉각 ‘나 말 안 통해’작전으로 모든 공세를 뿌리치고 ‘쎈돌’을 구해냈다. 오후 6시. 선수단은 상하이 한국문화원 하현봉 원장(상하이 총영사관 문화영사 겸임) 초청 만찬에 참석했다. 장소는 숙소에서 버스로 약 20분쯤 거리에 있는 하이둔호텔 3층 퓨전한식당 ‘한마당’. 이 자리에는 김정기 총영사가 함께 했는데 향후 해외 바둑행사 진행에 크게 도움이 될 정보를 많이 얻은 유익한 자리였다.  상하이 한국문화원은 이번 대회의 장소(대국실,, 검토실, 공개해설장, 사진전시 공간까지)를 무상으로 제공했는데 이외에도 한국의 기업이나 단체가 상하이에서 한국문화를 알리는 행사를 주관할 경우 장소를 무상 제공하는 것은 물론, 행사관련 호텔비용 할인까지 중개하는 등 섬세한 대민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오후 8시. 만찬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이창호, 이세돌 9단이 나란히 앉아 뭔가 대국(대 창하오 9단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기자가 그 뒷좌석에 앉자마자 두 사람 모두 조개처럼 입을 다문다. 아아, ‘기사’와 ‘기자’. 다른 것이라고는 7번째 자음 ‘ㅅ’과 9번째 자음 ‘ㅈ’의 작대기 하나인데 그 사이가 이다지도 멀단 말인가.  호텔에 도착한 이세돌 9단은 다시 ‘좀머씨모드’로 전환할 생각인가보다. 19일 아침, 점심도 알아서 먹고 대국장에도 알아서 갈 테니 신경 쓰지 말라고 한다. 비상식량으로 기자의 방에 들러 컵라면 2개를 가져갔다(뭐, 컵라면이 필요하다기에 우승 협조차원에서 기자가 자진납세한 거다).“고맙습니다. 근데, 제가 전재산을 가져가네요. 헤헤~” 어느덧 20대 중반인데 이를 가지런히 드러내고(특히 앞니 둘이 돋보인다) 활짝 웃는 저 얼굴은, 천하제일을 다투는 승부사에겐 대단한 실례의 표현이지만 정말이지 귀여운 토끼 같다. 10년만에 등장한 우승해결사 ‘쎈돌’. 좋은 밤, 좋은 잠, 좋은 꿈꾸고 좋은 아침 맞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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