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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기들의 소망과 절규, 그 간절함의 결말은
강창배 입단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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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영화관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저자 박현욱 씨가 신간 단편소설집 ‘그 여자의 침대’를 발표했다. 신문을 펼치다 우연히 알게 된 ‘그 여자의 침대’는 ‘아내가 결혼했다’의 유쾌한 상상력만큼 빠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남녀관계의 모호함, 그리고 행복의 조건을 자문하게 만드는 작가 특유의 위트가 잘 녹아있는 작품이다. 사실 그런 건 독자들의 취향문제니 고리타분한 감상론은 덮어두자. 내 눈을 번쩍 뜨이게 한 건 다름 아닌 그 신간에 바둑을 주제로 한 단편 ‘이무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프로지망생들의 입단 도전기를 슬라이드 필름 돌리듯 세밀히 묘사하고 있는 이 작품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들의 애절한 소망과 절규를 작가 특유의 감수성과 바둑에 대한 풍부한 지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 불운의 가슴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보는 이들의 눈시울을 떨리게 한다. 어렸을 때부터 입단유망주로 불린 강군은 바둑에 자신의 모든 것을 불사른다. 기재가 넘쳤던 강군인지라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온 지 몇 년 안돼 연구생 1조까지 올라섰고 그의 이름은 언제나 입단 1순위로 거론된다. 허나 인정받았던 실력만큼이나 입단의 문턱이 낮은 것은 아니었다. 한두 번의 낙방은 운 탓으로 돌릴 수 있겠지만 계속된 좌절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마저 상실하게 만드는 지독한 회한으로 되돌아오기 마련이니. 결국 강군은 나이 제한에 걸려 연구생 퇴출위기에 내몰리고 마지막 기회가 될 연구생 입단대회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다. - 사람들이 몰려온다. 모두 숨을 죽이고 결과를 지켜본다. 사석이 많고 집이 커서 계가에도 시간이 걸린다. 거의 모든 집들이 메워진다. 반상에 남은 공간이 거의 없다. 남은 것은 백의 세 집. 그리고 흑의 열한 집. 여섯 집 반의 덤을 제하면 흑의 한 집반 승리. 리그전의 반집 패배에 이어 이번에는 한 집 반. 도합 두 집이 하늘로 오르려는 강의 발목을 붙잡았다. 승리를 확인하고는 기쁨에 젖은 것도 잠시. 김은 고개를 푹 숙인다. 강 앞에서 차마 기쁨을 표현할 수 없는 탓이다. 그러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빠른 걸음으로 대국실을 빠져나간다. 누군가 반상 위의 어느 지점을 가리킨다. “여기에서 잘못된 거 아닌가.” 강의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다. 강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세상이 멎어 있는 것만 같다. - 강군은 마지막 입단관문마저 패배의 쓰디쓴 잔을 들이킨다. 하지만 지독한 패배의 아픔만큼 모든 것을 털어낸 홀가분함은 그의 마음을 잔잔하게 가라앉힌다. - 구름처럼 몰려들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하나 둘 자리를 벗어난다. 끝났다. 강도 자리에서 일어난다. 끝났다. 거리에는 어느덧 어둠이 깔려 있었다. 끝났다. 강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홀가분함이 강을 감싸주었다. - 혹자들은 입단의 높은 문턱을 한국바둑의 경쟁력이라 평하기도 한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동안 한국바둑이 세계 최정상의 위치를 고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경쟁력이 바탕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인의 좌절과 고통을 밑밥으로 삼는 것이 경쟁의 속성이라지만 제도의 그늘에 던져진 낙오자들의 실상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프로가 되기 위해서 오랜 세월을 바둑 하나로 살아왔던 그들. 각고의 인내로 무장한 숱한 세월들을 입단의 실패로 모조리 돌려버리기엔 그들의 희생이 값비싸기만 하다. 그러나 세상은 승자 독식의 고스톱 판만은 아니잖은가. ‘파이는 작고 먹을 사람은 많다.’ 한국 바둑의 비좁은 입단관문을 위안하기 위한 너스레로 자주 듣는 말이다. 좋게 말한다면 입단문을 확대시키는 것이 한국바둑계의 성장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는 해석이다. 양반은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체면 따지다 얼어죽을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떤 식으로든 변화를 구하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때다. 시도조차 않고 그래 봤자다, 그럴 것이라는 자세로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외침 없이 메아리를 듣고자 하는 거나 같다. 한국 현대바둑이 움을 트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입단의 관문은 철옹의 성역이었다. 철문에 조금씩 구멍을 내는 조그마한 변화만 주었을 뿐 수십 년이 지나고 광속의 21세기에 이르러서도 그닥 변화가 없다. 다들 기억하시리라. 2006년 말 입단관문을 뚫은 한상훈 3단이 입단하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뛰던 일을. 2007년 왕위전 도전자 결정전과 삼성화재배 8강에 올라선 것도 모자라 올해 초 LG배 세계기왕전에선 초단 신분으로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가는 사상초유의 진기록을 토해냈다. 그의 놀라운 활약에 언론의 들쑤심은 당연했고 그는 인상 깊은 한마디를 던진다. “지금 연구생 최상위자 가운데 4~5명은 나보다 약하지 않다.” 나보다 약하지 않다? 무슨 말인가? 말을 살짝 돌리면 나보다 강하다란 뜻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없다는 얘기다. 한국바둑의 큰 재산일 수가 있는 이들이 그저 용으로 승천할 날만 기다리다 명을 다해버린다면 이 막심한 손해는 누가 보상해줄 수 있을 것인지 묻고 싶다.  비단 한상훈 3단에 국한된 사실은 아닐 것이다. 이무기에서 용으로 승천한 이들의 활약상을 지켜보면 그들의 갈증이 얼마나 깊었는지 잘 알 수 있다. 12월 한국랭킹 11위에 랭크돼 10위권 진입을 노리는 강유택 2단이나 18위의 박정환 2단, 오스람코리아배에서 우승한 김승재 2단 등 많은 신예들이 입단의 문을 넘자마자 무시무시한 폭발력으로 팬들 앞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바둑이 스포츠라면 과연 어느 스포츠 종목에서 이런 특이한 현상을 찾아볼 수 있겠는가. 한국바둑의 위기란 얘기가 쏟아져 나오면서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상금제와 같은 논의가 자연스레 오가는 현실이다. 찬반 투표까지 했다. 놀라운 변화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좌로 가든 우로 가든 속도를 더 내야 한다. 행동이 절실한 시기라는 말이다. 상금제의 논의를 들춰보면 찬반양론의 문제에서 기사들의 복지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건 입단문제와도 동떨어지지 않은 현상인데 프로기사들에게 지급되는 단 수당이 입단문호를 넓히는 데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230여명의 프로기사들에게 돌아가는 단 수당만 매년 몇 억원의 지출을 쏟고 있는 마당에 더 많은 기사들을 포함시키면 당장 재정의 곤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얘기다. 허나 이런 것은 외고집. 단 수당을 폐지하고 대회 출전자격만 줄 수 있다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다. 콜롬부스의 달걀깨기를 알면서도 고치지 못 한다면 이건 큰 문제이지 않겠는가. 한국바둑은 큰 변화의 소용돌이가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80-90년대의 활황은 다시 오기 힘들다는 비관론자들과 바둑이 동양에만 머무르지 않는 전 세계인의 문화스포츠가 될 것이란 낙관론자들의 견해에서 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더 많은 것을 대비해야 하겠다. 그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이들은 다름 아닌 입단의 고통을 뼈저리게 잘 알았던 이들이기에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강창배 아마 7단이 입단 관문을 뚫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바둑 인생을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이 입단을 확정 지은 바로 오늘이라 자신 있게 말한다. 프로의 꿈 하나만으로 살아온 세월들을 단숨에 보상받는 날인데 어찌 기쁘지 않겠는가. 강창배 아마 7단, 아니 이제 프로가 된 강창배 초단의 환한 웃음 속에서 하성봉 아마7단의 안타까움이 오버랩 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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