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었던 일본의 반란…이치리키, 응씨배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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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있었던 일본의 반란…이치리키, 응씨배 우승
| 박치문 중앙일보 바둑칼럼니스트 2024-09-26 오전 01:11 [프린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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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씨배에서 우승한 이치리키 료 9단. |
○● [출처: 중앙일보_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잊고 있었던 일본의 반란…이치리키, 응씨배 우승 ☞클릭
일본의 일인자 이치리키 료 9단이 응씨배에서 우승했다.
준결승에서 중국의 커제 9단을 만나 3번기의 첫판을 지고도 2승1패로 결승에 올랐다. 중국 셰커 9단과의 결승전은 3대0 완승. 이게 무슨 일인가. 우연인가. 우연일 리 없다.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일본바둑의 자신감이 이 결승전에서 폭발한 느낌이다.
일본이 세계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우승한 것은 19년 전인 2005년 LG배였다. 그나마 우승자는 대만 출신의 장쉬 9단. 일본인 우승자는 1997년 후지쓰배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이었으니 무려 27년 전의 일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지만, 일본바둑은 강산이 변하고 또 변하는데도 잠에서 깨어날 줄을 몰랐다. 세계 무대 연전연패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지만, 일본은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못 본 척했다. 침묵이나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일본바둑은 끝없이 추락했다. 한 예로 2002~2004년 3년간 일본은 삼성화재배 통합 예선에 179명이 참가했으나 본선 진출에 성공한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정상급 기사들은 일본 내 일정을 핑계로 세계 대회를 외면함으로써 수모를 피했다. 이 와중에 일본이 세계 최초의 세계 대회로 내세웠던 후지쓰배가 문을 닫았다. 회사 문제도 있었지만, 도쿄에서 한국 기사끼리 결승전을 연달아 치르는 상황도 한몫했다. 도요타덴소배도 사라졌다.
이런 가운데 전통의 3대 기전이 버틴 것은 기적이었다. 본인방전이 최근 대폭 축소됐지만, 요미우리 신문의 기성전과 아사히 신문의 명인전은 규모와 전통을 유지했다. 전국의 명소를 돌며 7판의 도전기를 치르고 이틀거리 바둑을 고수했다.
이야마 유타 9단이라는 탁월한 인물의 등장이 혹한기를 버티는 데 큰 힘이 됐다. 그는 20세 때 최연소 명인이 되더니 3대 기전은 물론 7대 기전을 휩쓸고 조치훈 9단이 세웠던 본인방 10연패의 기록도 깨뜨렸다. 파죽지세였다. 하지만 그는 국내 일정을 앞세우며 한국과 중국의 세계 대회에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만약 이야마마저 국제무대에서 참패한다면 일본 팬들에게 뭐라 해야 할까. 일본기원은 그걸 걱정했는지도 모르겠다. 하나 어떤 연유든 세계 무대를 외면한다는 것은 승부사로서는 괴로운 일이다. 이야마는 결국 세계 대회 참가로 방향을 틀었고 2018년 LG배에서 준우승하기도 했다. 때를 놓쳤는지 우승은 없었다.
이치리키 료는 달랐다. 그는 이야마와 국내 패권을 다투면서도 세계 대회에 누구보다 열심이었다. 지난번 응씨배에선 4강에 오르더니 이번에 결국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일본이 간절히 고대하던 우승컵이었다. 거의 모든 일본 매스컴이 우승 소식을 보도했다. 이치리키는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바둑의 판도를 이렇게 말했다.
“최강자는 신진서 9단이다. 그는 한 단계 위다. 그 외엔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한다. AI의 영향도 있어 톱 층의 실력은 팽팽해지고 있다. 단지 중국에는 톱에 필적하는 기사가 30~40명 있다. 그런 두께를 일본도 만들어가야 한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세계 대회 우승은 큰 의미가 있다. 계속 도전하고 싶다. 일본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데 앞장서고 싶다.”
이치리키 료는 27세. 이야마 유타는 35세. 일본바둑도 이들의 뒤를 이을 신인의 얼굴이 뚜렷하지 않다는 게 고민이다. 한국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지만, 신진서는 일당백이고 이제 겨우 24세다.
일본바둑은 바둑의 한 면, 한 시대를 대변한다. 느림이랄까, 고졸한 맛이 있다. 함께 숨 쉬며 고락을 함께하는 옛 승부의 정취도 있다. 이치리키의 우승과 더불어 일본바둑이 일어서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일본의 부흥은 세계 바둑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일본바둑이 지닌 형식미·전통미도 바둑의 외양을 꾸미는 데 도움이 된다. 얼마 전 일본은 우주류 다케미야 9단의 아들인 47세의 다케미야 요코 6단을 일본기원 이사장으로 선출했다. 일본 내에서도 변화를 원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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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
| 2024-09-26 오후 8:19:00 [동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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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리키료가 참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데 -나는 홍도장에서 공부를 하였다.그런데 제1회 응씨배를 우승한 조훈현 9단은 후지사와 슈코 9단이 아들처럼 생각하고 지도하여 대기사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맞는 말이고 제1회 응씨배에 초청을 받은것도 후지사와의 강력 추천에 의해서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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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
| 2024-09-26 오후 8:11:00 [동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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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국수는 일본기원 시절인 20세때 기력이 최절정이었다는 얘기는 상기 글의 필자인 박치문 위원께서 방송에서 직접하신 말씀입니다. 따라서 그의 기력은 일본기원에서 완성되었다는 실토인 셈이죠. 조국수가 제1회 응씨배에 초정을 받은것도 일본기원 출신이었기에 가능하였지 당시 한국바둑은 미미하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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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HI |
| 2024-09-26 오후 3:00:00 [동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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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서울대를 나왔고 전직 교사출신이라는 자가 국가관이나 민족의식이 단 1도 없다.
연금(年金)은 한국에서 월 200씩 받아먹는다면서
-독도는 일본령 다케시마요, 동해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오직 일본해만 존재할 뿐이다-
비인기 종목 바둑만 제외하고 인기 종목인 축구 배구 야구 등 모든 종목에서 한국은 일본에 게임이 안 된다라고 오늘 이 시간에도 일본 놈보다 더 광신적으로한국을 깔아뭉개고 다닌다. 이름 하여 윤실수
속된 말로 밥은 한국에서 쳐먹고 지게질은 일본에서 하는 놈이다.
애완견은 절대 주인을 무는 일이 없다는데 이 자는 시도 때도 없이 주인을 물어뜯는다.
그야말로 개만도 못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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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al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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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에콩이, 엘프..같은 토왜 종특자..들이 이에 해당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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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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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이 자는 욕을 사서 먹으면서 무수히 얻어 터지고 다닌다. 얻어 맞고는 비로소 쾌감을 느끼는 매져키스트적(피학적성충동자)인 정신병리환자다. 오로광장에서는 그걸 다 알고 있기에 나 말고는 아예 상대하려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 자는 또 망국적 친일 발언을 하면서 나에게 얻어 맞을 것을 구걸하고 다니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질환자 즉 중증 소시오패스(sociopat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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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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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돈 많은 토호(土豪)들이 죄를 짓고는 가난한 하층민들에게 돈을 주면서 대신 매를 맞아달라고 흥정하는 일이 있었다. 이때 호구지책(糊口之策)을 위해 죽을 각오로 매를 맞는 것을 -매품을 판다-라 했다. 흥부전에도 가난한 흥부가 돈 받고 매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물론 합법이었다. 그런데 윤실수 이 자는 자기 스스로 매를 맞기 위해 오늘도 이곳 저곳을 부지런히 쏘다니며 매 맞을거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병(病)치고는 참으로 괴이한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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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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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는 광주 출신의 임종석이 보다는 낫제! 김정은에 충성하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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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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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님이 옳은말 한 것 같은데, 왜이리 흥분하고 난리일까? 조치훈, 조훈현 다들 일본가서 실력을 갈고 닦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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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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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할건 인정하고, 그러나 지금은 일본보다 우리가 낫지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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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 |
| 2024-09-26 오후 2:45:00 [동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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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디아 고는 한국인이고 현대가의 며느리인데 리우에 이어 빠리에서도 여전히 뉴질랜드 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하여 우승을 하였다.왜일까? 10대 시절 골프를 연마한 곳이 뉴질랜드이기에...조훈현 9단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10세부터 20세까지 일본에서 바둑을 연마하였고 20세 무렵 가장 강했다고 스스로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의 제1회 응씨배 우승은 일본기원의 공로인 것이다.즉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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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ps |
| 2024-09-26 오전 10:24:00 [동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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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규정된 외국인 이름 표기법>
외국인 이름은 <원어국 발음대로 표기>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이며,
해당국/당사자에 대한 존중과 예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안 922alpha란 자가 이치리키료를 ”일력요“라 커제를 ”가결“이라
<의도적>으로 표기하며, ”외국인 이름 표기“를 왜곡하고, 한국의 발음체계를 교란시킨 바
있습니다.
사실, 외국인 이름은 잘못 표기할 수도 있고, 잘못 표기했다고 그리 큰 문제도 아니며,
읽는 분들이 알아보기만 하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항입니다.
그러나 <기본원칙을 거부>하고, 의도를 가지고 남의 이름을 제 멋대로 바꾸어
한자음으로 표기하고 있다면, 이는 다른 애기가 됩니다.
922alpha는 잘 몰라서, 과거부터 습관화된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식민사관이니, 한글을 망가뜨리는 원인이니, 뭐니 하면서
왜곡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원칙을 거부하고 있는 자>이지요.
그러면서도 ”원어국 발음대신 한자음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나 이유를 설명하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순간의 착오가 아닌, 유저님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는 <원칙적인 사항>이므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며, 이를 바로 잡고자,
관련법에 규정된 외국인 이름 표기법을 소개합니다.
<한국어의 외래어 표기법>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에서 제정하고, 1986년에 문교부 고시제85-11호로 공포되어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는 외래어 표기법을 말한다.
제4장: 인명, 지명 표기의 원칙
제1절 표기 원칙
제2항 외국의 인명, 지명은 원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 Ankara 앙카라, Gandhi 간디
제3항 원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
- Hague 헤이그(← 덴 하흐), Caesar 시저(← 카이사르)
제4항 고유 명사의 번역명이 통용되는 경우 관용을 따른다.
- Pacific Ocean 태평양(← 퍼시픽해), Black Sea 흑해(← 블랙해)
제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제1항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
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여기에서 과거와 현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신해혁명(1911년)이다. 전근대와 근현대를 구분
하기 위한 기준점이다.
제3항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과거와 현대의 구분 없이 일본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
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4항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
東京 도쿄, 동경
京都 교토, 경도
上海 상하이, 상해
臺灣 타이완, 대만
黃河 황허, 황하
상기 관련법을 보더라도,
최근의 외국인 인명인, 이치리키료를 ”일력요“라 커제를 ”가결“이라 부를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922alpha는 그 동안 외국인 이름표기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왜곡“하며,
한국의 발음체계를 교란시켜, 오로광장의 유저들을 혼란스럽게 한데 대하여 해명하고,
사과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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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alp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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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프는 지가 아는 게 전부인 줄 아는 무지렁이. 개정된 표기법에 잘못이 있다면 옳게 바꿔나가야 한다. 잘못 해석된 역사임이 분명해졌다면 바로 세워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하느님과 혼돈시켜 민족의 뿌리를 흐릿하게 만드는 자들을 용서해서는 안되듯이, 주시경 선생께서 성경을 번역하실 때 십시일반 이라는 뜻으로 십일조 라고 번역하신 것을 교묘하게 원래 성경의 뜻을 숨기거나 호도하여 10분의1 이라는 뜻만으로 한정하고, 거기에 하나 더 붙여서 "수입의 10분의1" 이라는 의미로 왜곡변조하여 성도들을 현혹시키는 자는 진실된 목자가 될 수없는 것이므로 이러한 잘못됨은 바로 새겨야 함이 옳은 것이다. 엘프가 어디서 한글전용 학회의 모자란 자들의 주장을 많이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다만 자신의 한계를 제대로 알아보고 남에게도 말을 하던지.. 강요는 잘못이다. 한글학회 내에도 제대로 된 학자가 있고 잘못된 자들도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중에도 식민사관을 정통사학이라 잘못배워 그것이 옳다고 생 고집을 부리는 자들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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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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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심한 놈 같으니라구! 현행법에 명확히 명시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오류를 고치
지 않고, 은폐하고, 비약하며, 본문과 상관없는 헛소리만 계속 늘어 놓고 있구나. ”원어국
발음대신 한자음으로 표기해야 한다“는 네놈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근거나 이유를 설명
해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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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alpha |
| 2024-09-26 오전 6:01: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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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바둑계로서나 일본 전체로서나
소림광일9단의 후지쓰배 우승이후 무려 27년만에 돌아온 국제전 승리가 일본인들에겐 특히 반갑기 이를 데 없겠다.
이는 일본국 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바둑계에서도 반기는, 모두가 좋은 일일 것이다.
한 중 일 대만 4국이 잘 어우러지고, 나아가 인도, 유럽의 각국이 여기에 가세한다면 흥행효과는 불문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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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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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또 고바야시 고이치를 "소림광일"이라 하는구나. 한국사람들에게는 고바야시가 익숙하다. 어떻게 쓰는
가는 네놈의 자유겠지만, 제발 또라이 짓은 그만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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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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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2alpha님! 소림광일(小林光一) 9단은 일본 현대바둑의 개척자 목곡실(木谷實) 선생의 수제자이자 그의 장녀인 고(故) 목곡예자(木谷禮子) 6단과 혼인하였고, 딸 소림천미(小林泉美) 3단을 낳아 길러 낸 목곡실(木谷實) 가문(家門)의 실질적인 계승자입니다. 소림(小林)은 만 72세인 지금도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전날 사이버 공간에서 이루어진 세계 유망주들의 기보를 분석한다고 합니다. 그 대상에는 신진서 박정환 최정 김은지 스미레 등의 기보가 단골 메뉴로 밥상에 오른다네요. 소림(小林)의 리즈 시절,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그 유명한 소림류 포석(小林流布石)-1,3,5포석이라고도 함-을 개발하였고, 소림류 포석(小林流布石)은 아마 프로를 떠나 실리를 좋아하는 한국 애기가들의 애용포석이 돼왔습니다. 소림은 조치훈 9단과는 4년 동문 선배이면서 두 사람이 일본 바둑의 자존심을 지켜 왔습니다. 암튼 목곡(木谷)과 소림(小林)은 스승과 제자, 장인과 사위, 사제지간(師弟之間)옹서지간(翁揟之間)에 일본의 현대 바둑을 개척한 가문으로 역사에 남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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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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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HIHI님의 글은 유장함이랄까, 고졸한 맛이 있습니다. 옛 문장의 정취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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