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Home > 뉴스
창하오·구리·커제…‘한국 킬러’ 키운 녜웨이핑
창하오·구리·커제…‘한국 킬러’ 키운 녜웨이핑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언론보도]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2020-11-25 오전 10:40   [프린트스크랩]
  • 트위터
  • 이메일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페이스북
▲ 일러스트=김회룡


[출처: 중앙일보]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창하오·구리·커제…‘한국 킬러’ 키운 녜웨이핑○● 기사 원문(11월 25일, 경제 7면 ) 보기 ☜ 클릭

■ 조훈현에게 져 추락한 중국 영웅
■ 이창호 기록 넘으라고 커제 격려


커제는 7세 때 지방에서 올라와 베이징의 녜웨이핑 도장에 들어갔다. 녜웨이핑 9단은 커제 9단이 한국의 신진서 9단을 꺾고 삼성화재배 우승컵을 차지하자 “커제의 다음 목표는 18번, 28번 우승”이라고 말했다. 커제는 삼성화재배 우승과 함께 메이저 세계대회를 8번 우승했는데 이것은 구리 9단이 세운 중국 최고 기록과 같다.

그렇다면 18번 우승은 무슨 의미일까. 이창호 9단은 속기대회 등을 제외한 메이저 세계대회서 17번 우승했다. 녜웨이핑은 이창호의 기록도 넘어서서 명실상부 세계 최고가 되라고 말한 것이다.

녜웨이핑은 사업가로 성공했다. 베이징에 ‘녜웨이핑 바둑도장’을 세운 것이 1999년인데 어느덧 전국에 50개의 지점을 두게 되었고 원생은 1만명에 달한다. 웬만한 학교 수준을 넘어선다. 그는 세계 최고가 되기 직전 패퇴했으며 승부사로서의 인생은 그 순간 막이 내렸다. 하지만 녜웨이핑은 창하오, 구리를 차례로 키워내 세계 최고에 도전했고 커제에 이르러 드디어 그 꿈을 이루려 하고 있다.

녜웨이핑은 독특하다. 심장이 약한데도 점심때 독한 백주를 한 병씩 마셨다. 두 번 이혼했고 세 번 결혼했다. 언제던가. 양회(兩會)의 일원이 되어 전국인민대회에 참여했는데 그게 무척 자랑스러웠던지 회의 때 달던 빨간 명찰을 밖에서도 계속 달고 있었다. 그는 권력을 즐겼다.

녜웨이핑의 바둑인생은 파란만장하다. 제1막은 문화혁명이다. 스승은 조리돌림 끝에 죽음을 맞았고 녜웨이핑은 만주의 돼지농장으로 쫓겨갔다. 정치권력의 유탄을 맞은 고통의 시기다. 제2막은 화려하다. 중일슈퍼리그에서 연전연승하며 ‘철의 수문장’이란 별명을 얻었고 정부로부터 ‘기성’ 칭호도 받는다. 바둑 종주국의 위상을 되찾아 줄 영웅이 탄생한 것이다.

제3막은 좌절이다. 아니 절망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제1회 응씨배 결승전에서 한국의 조훈현 9단에게 패배한다. 영웅이 추락했다. 절대권력자 덩샤오핑의 총애와 ‘녜웨이핑은 불패’라는 대륙 인민들의 굳센 믿음이 오히려 납덩이처럼 그를 짓눌렀다. 이후 녜웨이핑은 국제무대에서 사라졌다. 그는 끝내 세계대회 무관으로 선수생활을 끝냈다. 37세 동갑내기 조훈현 9단이 이후에도 8번이나 더 우승한 것과는 큰 차이였다.

중국 내에서도 녜웨이핑은 마샤오춘에게 꺾였다. 마샤오춘 9단은 1995년 중국 최초의 세계대회 우승자가 된다. 그는 녜웨이핑을 “세계대회서 우승해 보지 못한 사람”으로 표현했다. 네웨이핑의 가장 아픈 곳을 건드린 것이다.

제4막은 ‘끝없는 도전’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녜웨이핑은 창하오라는 제자를 키웠다. ‘6소룡’이라 이름 붙은 신예 그룹과 선두에 선 창하오 9단을 향한 대륙의 기대는 뜨거웠다. 하지만 창하오 역시 이창호의 철벽에 가로막혀 연전연패하고 말았다.

다음 제자인 구리 9단은 좀 더 강력했다. 한국의 이세돌 9단과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메이저 세계대회 8회 우승이란 금자탑을 이뤘다. 그러나 구리는 이세돌과의 10번기에서 완패했다. 세계대회 우승 횟수에서도 이세돌은 14회로 구리보다 크게 앞선다.

커제가 바로 이 시점에서 등장했다. 한때 녜웨이핑 도장의 꼴찌였던 커제가 빠른 속도로 세계 최고를 향해 질주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잠복(潛伏)’이란 ID로 온라인에서 매년 1000판 이상을 두었다. 온라인에서 한국기사와의 대국을 고집한 이유를 묻자 “한국을 이기고 최고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 점은 녜웨이핑의 평생 소망과 똑같다.

세계 최고를 향한 커제와 신진서의 대결은 그래서 더욱 드라마틱하게 다가온다. 신진서는 커제의 표현대로 “가장 강력한 뒷물결”이자 한국의 보루이기 때문이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rjsrkdqo |  2020-11-26 오후 3:47:00  [동감0]    
!
참나이런 |  2020-11-25 오후 10:37:00  [동감1]    
박치문 선생님 글 참 잘 쓰십니다. 잘 읽었습니다.
tjddyd09 서울대 국어 국문학과 출신 이신데 당근 글을 아주 잘 쓰시지요,  
econ |  2020-11-25 오후 8:01:00  [동감1]    
섭위평은 52 년생 조훈현 국수는 호적상 53인데 위의 필자는 호적이 한살 줄었다는 사실을 알기에 동갑내기라 적었다. 조훈현 소년은 62년 입단이니 한국 나이로 11세 입단 즉 만 10세가 팩트, 양딩신은 9세 입단이라는데 중국의 호적도 못미더움
사황지존 |  2020-11-25 오후 7:03:00  [동감1]    
창하오는 이창호에 막혔고 구리는 이세돌과 대등했다만 세계대회 우승횟수에서 밀리는데
커제가 나와서 중국 세계1인자 시대가 열렸는데 이들 모두가 네웨이핑 도장 출신의 제자
라는건 그스승이 그만큼 위대하다는거네 기사가 재미있고 내용도 알차네요 잘읽었어요 예
전 21세기 걸작전 아주재밌게 봤고 소장도 하고 있는데 바둑티비에세 21세기 걸작전 2편을
만들어 주면 좋겠네요 목진석 사범과 박치문 진행으로 그때 그대로 보고싶군요
tjddyd09 글쓴이 삭제
에라이샹 |  2020-11-25 오후 5:22:00  [동감3]    
① 커제는 자신의 전성기 최정점이 될 2022년을 아직 2년이나 남겨둔 상태임에도 메이저
대회 우승횟수가 벌써 8번째다. 평균적으로 만25세가 뇌세포 최다 개수 및 최고 활성화 시
점이다. 지금 같은 상승세라면 이세돌의 통산 14회 우승기록 돌파 정도는 손쉬워 보이고,
이창호의 통산 18회 우승기록마저 그리 어렵잖게 돌파해낼 기세다.
에라이샹 ② 커제 자신이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 그런 커제 앞에 지금 유일한 걸림돌은 신 진서일 뿐이다. 커제가 이창호나 이세돌, 박정환에 대해선 칭찬 멘트 일색이지만, 유독 신진서에 대해서만큼은 연속하여 폄하 멘트를 날리고 작금에는 무례할 정도 로 도발하는 속사정이다. 아무튼 이창호 신화의 온전한 보전 여부는 신진서가 향 후 2~3년 내에 커제를 극복하느냐 못하느냐에 전적으로 달려있다. 신진서 화이 팅!  
에라이샹 글쓴이 삭제
에라이샹 ③ 바로 그래서다. 왕년에 이창호나 이세돌 팬이었다면 지금 신진서를 더욱 응원 할 수밖에 없다. 이창호 신화를 지켜내라는 시대적 책무가 약관 20세 신진서의 양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지금 아닌가. 물론 신진서 아닌 커제를 응원한다고 해서 전혀 문제될 일도 아니다. 다만 이창호나 이세돌 팬임을 자칭하면서도 그런다는 것은 명백한 ‘자기모순’이다. 머리가 다소 모자란다거나 심지어는 초기 정신분열 조짐일지 모른다는 빈축을 살 수도 있다. 우리의 신화 이창호나 이세돌을 커제로 갈아탈 순 없는 노릇 아닌가. 우리에겐 신진서가 있다!  
봉수워너비 |  2020-11-25 오후 4:37:00  [동감0]    
그래도 커제는 마효춘의 후계자
섭위평같은 큰 그릇이 아니다
커제가 동네북 될 날을 기다려본다
짜베 |  2020-11-25 오전 11:51:00  [동감1]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글 잘 보았습니다.
군더더기 없이 박진감 있게 써내려간 글체가 어딘지 낯이 익어 글쓴이를 봤더니
역시, 박치문
예전에 박치문님의 바둑해설이 좋아서 신문을 구독한 적이 있습니다.
tjddyd09 박치문 선생은 중앙일보 왕위전 관전필자로 최고위원 이었지요, ㅋㅋㅋㅋ  
tjddyd09 |  2020-11-25 오전 11:23:00  [동감1]    
섭위평 ( 녜 웨이핑)은 고질적인 심장병 때문에 바둑으로 세계 일인자 자리엔 오르지 못했지요, 조훈현 역시 36세때인 89년도 제1회 응창기(잉창치)배 대회에서 우승 했다지만 세계 일인자는 아닙니다, 중국은 70년대에 강청이 일으킨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섭위평은 반동 부르조아로 몰려 숙청 당했고 돼지 우리 막사에서 돼지 똥이나 치우며 살아야 했습니다, 마효춘 (마 샤오춘 )말마따나 섭위평은 세계 대회 우승이 한번도 없지요, 중일 슈퍼 대항전(85년도)에서 일본의 내노라 하는 기사들 연타로 쓰러뜨려 스타가 된것 뿐 입니다, 사실 그 사건으로 콧대가 하늘 높은줄 몰랐던 일본의 기세가 많이 누그러 지긴 했지만요,
maha0721 09땡칠이 모리는기 없네. 맨날 똥줏어 묵으러 댕기는줄 알았는데 공부도 좀 했구나. 그래 이런거를 보여조야재.맨날 남의 글에 똥싸지르는거는 이제 고마혀라이~  
tjddyd09 여러분 !!~~밑에 있는 maha 0721, 이 아이는 상대 하지 마세요 !~~. 이놈은 조두순, 강호순, 유영철, 안인득 같은 놈 입니다, 서초동 윤서방파 두목 윤짜장의 부하 입니다, 사위 찬스, 남편 찬스로 유명한 윤서방 말이죠, 그런데 윤서방파 두목 윤춘장, 장모 수사는 언제 하나요 ??  
conth tjddyd09 한심한...  
padon 성용아, 조훈현은 명실상부 세계1인자였단다. 그리고 섭위평은 심장병때문에 일인자가 못된것이 아니라 조훈현의 벽에 막혀서 못된 것이란다. 조훈현 이전에는 일본의 강자들을 전부 꺾고 중일슈퍼대항전에서 중국에 우승컵을 가져왔지. 응창기가 응창기배를 만든것도 섭위평을 일인자라고 확신하고 만든 것이란다. 그러나 조훈현이라는 진짜 1인자에게 막힌 것이란다. 심장병이 있었어도 일본의 강자는 모조리 꺾었단다. 성용아, 너같이 어린애는 조금 더 수양하고 이런데 글을 써야 하는 것이란다. 작은 대구리로 함부로 여기저기 써서는 안되는 것이란다.  
tjddyd09 padon 아가야 !~ 조훈현은 최전성기때 한국내 에서나 최고 였지, 당시 세계 바둑은 일본이 최강 이었단다, 아가야 !!~ 어린 네가 뭘 알겠니 ?? 조훈호ㅕㄴ 당시엔 일본에 대삼관 획득 두번에 빛나는 조치훈님이 세계 일인자 였고 고바야시 고이치, 다께미야 마사키, 사카다 에이오, 후지사와 슈코 같은 기사들이 나름 한세대를 풍미 했던 사람들 이라 할수 있단다, 조훈현이 조치훈 처럼 일본으로 건너가 활동 했다고 하더라도 이런 기사들에 막혀 일인자가 되긴 아주 힘들었을 것이다,  
tjddyd09 85년도 중일 슈퍼 대항전 (일본에선 한국은 한수 아래라 보고 아예 참가도 안 시켰음), 에서 네웨이핑은 대단한 활약을 했지만 딱 그거 밖엔 없단다, 아가야 !~ 네웨이핑이 세계대회 타이틀 따낸게 단 한개도 없단다, 알겠냐 ??  
tjddyd09 padon, 아가야 !!~ 엄마 젖이나 더 먹고 와라, 너같은 구상유취, 젖 비린내 나는 애가 뭘 안다고 여기다 댓글을 싸지르니 ?? 조치훈이 80년초에 명인 획득후 잠시 방한 했을때 조훈현과 KBS 특별대국 으로 두판 열린거 다 개털린거 모르지 ?? 당시에 한국 바둑의 최강 이라던 조훈현도 조치훈 보다는 한참 아래였단다, 이 젖 비린내 나는 어린 아가야, ㅋㅋㅋㅋㅋ  
tjddyd09 김은지 살려내라고 여기 저기 쌍욕 이나 하고 돌아 다니는 아가야 !!~~ㅋㅋㅋ 여기서 꼴갑 떨지 말고 한국기원 앞에 가서 피켓 들고 데모나 해라, 천막 농성 이라도 하던지, 병시나, ㅋㅋㅋㅋㅋㅋ  
현무25 09는 조울증 환자같음. 이사람 건들면 손해.  
tjddyd09 현무 25야 !!~ 너도 한국기원 앞에 가서 김은지 살려내라고 데모나 해라, ㅋㅋㅋ아님 일당 5만원 받고 태극기 틀딱이들 이랑 시위나 하던지, ~~~~...니들 멍청이들 때문에 점점 한국 바둑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중 이다,  
FirstPage PrevBlock   1   NextBlock LastPage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