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사업가와 인민대회장…응씨배의 추억
대만 사업가와 인민대회장…응씨배의 추억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언론보도]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2020-10-01 오후 00:00   [프린트]


[출처: 중앙일보]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대만 사업가와 인민대회장…응씨배의 추억
○● 기사 원문(9월 23일, 경제 7면 ) 보기 ☜ 클릭


■ 덩샤오핑 시절 중국에서 첫 대회
■ 올해 신진서 등 한·중·일 4강


잉창치(應昌期, 1914~1997)는 중국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태어난 대만 사업가다. 장제스(蔣介石)와 동향이자 재무담당으로 장제스와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배해 대만으로 탈출할 때 함께 갔다.

내가 잉씨를 처음 본 것은 1982년 가을이었다. 한국-대만 교류전에 선수로 참가하여 타이베이에 갔던 것인데 거기서 대만 팀 단장 잉씨를 만났다. 정원이 아름다운 저택에서 노부부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손님을 맞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몇 년 후 잉씨는 돌연 거액의 상금을 내건 세계대회 개최를 선언했다. 이게 응씨배였다. 자존심 상한 일본이 후지쓰배를 급조하는 바람에 첫 세계대회의 영예는 빼앗겼지만 새 변화의 주인공은 잉씨였다. 대회는 베이징의 인민대회장에서 열렸다. 전국인민대회가 열리는 바로 그곳에서 대만 재벌이 주최하는 바둑대회가 열렸다. 중국과 대만이 멀리 틀어진 지금으로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당시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끄는 중국은 달랐다.

조훈현과 네웨이핑의 결승 5번기는 항저우에서 1대1을 이룬 뒤 3국이 잉씨의 고향인 닝보에서 열렸다. 닝보는 청나라를 몰락시킨 아편전쟁의 무대. 덩샤오핑은 그곳에 중국 자본주의의 상징이라 할 자영상점 1호를 세웠다. 중국은 막 달아오르고 있었고 그런 분위기 탓인지 닝보 기차역은 몰려든 환영인파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온갖 소리로 귀가 먹먹했다. 바둑대회를 들고 40년 만에 고향을 찾아온 잉씨는 행복해 보였다.

닝보에서 진짜 놀란 것이 있다. 잉씨가 안내한 곳에 장제스의 사당이 있었다. 본토 수복을 유훈으로 남긴 적군의 대장인데 그를 모시는 사당이 도시 가운데 아주 근사하게 자리 잡은 채 관광객을 맞고 있었다. 장제스의 뒤를 이어 대만 총통이 된 장징궈(蔣經國)가 젊은 시절 군대의 파일럿으로 활동한 모습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분단국가에서 오래 살아온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풍경이었다.

잉씨는 1997년 사망했다. 죽기 전에 잉창치바둑기금회를 설립하여 바둑대회들이 계속될 수 있도록 준비했다. 지금도 응씨배 외에 세계청소년선수권 등 9개 대회가 매년 치러지고 있는데 6개가 중국에서 열린다.

잉씨는 바둑대회 개최 이유로 ‘잉씨룰’ 보급을 전면에 내세웠다. 잉씨는 바둑 룰의 많은 허점을 고치고자 30년을 연구한 끝에 ‘전만법’이라는 새 룰을 만들었다. 쓰기에 불편한 탓에 대중 보급은 부진하지만 허점이 없는 룰임엔 틀림없다.

바둑기금은 지난해 아들 잉밍하오(應明浩) 회장이 작고하며 딸 잉러우어(應柔儿)가 맡고 있다. 잉씨 집안에서의 바둑 사랑은 점점 엷어져 가고 중국과 대만 사이의 파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응씨배를 포함한 수많은 바둑대회는 계속될 수 있을까.

다행히 코로나 사태로 연기되었던 응씨배가 지난 8일 온라인대국으로 개막했다. 4강의 얼굴은 한국의 신진서 대 중국의 자오천위, 중국의 셰커 대 일본의 이치리키 료의 대결이다. 신진서와 셰커 20세, 자오천위 21세, 이치리키 료 23세. 모처럼 한·중·일이 어울렸고 대만은 이번에도 없다.

1993년의 어느 날 잉씨는 2회 우승자 서봉수 9단과 나를 저녁 식사에 초대해 이렇게 물었다. “대만이 바둑 강국이 될 방법은 없을까?”

그게 마지막이었다. 역사의 풍운에 한쪽 발을 담근 채 바둑에 돈과 열정을 쏟아부었던 거물 잉창치는 투병 끝에 4년 후 세상을 떠났다. 이제 그를 향한 박수 소리는 희미해졌다. 그가 바둑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알 수 없지만 한국바둑은 잉씨를 고맙게 생각한다. 변방의 한국바둑이 응씨배를 통해 일어섰다는 건 세상이 다 안다. 보통 인연이 아니다. 내 개인적으로는 닝보의 장제스 사당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박치문 바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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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촌愛 |  2020-10-04 오후 5:10:00  [동감0]    
잉씨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잘은 모르지만,,,일본의 도장문화,,,한국의 빨리빨리문화(인터넷바둑)
중공의 인해전술문화(?)..에 비해 대만은 이것도 저것도 없는듯 하다..
굳이 국토와 대치 상황 등이 비슷한 한국과 대만을 비교한다면
한국인의 우수성이라고 딱히 말 할 수 밖에 없을 듯 하다.
삼성,LG,이창호,박세리,김연아,손흥민,kpop아이돌 등등,,, 글로벌 세계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한국인이 무수히 많은 이유이다.
그러나 그 우수성의 중심에는 한국인의 부모야 말로 세계에서 유래를 찿아보기 힘든
자식에 대한 사랑과 희생이 넘치는 나라이기 때문이 아닐까?
tjddyd09 바둑을 그냥 좋은 취미로나 하면 모를까, 지금은 프로 기사 되어봐야 밥 못 먹고 산다, 고각 해야 젊은 프로들 고깃집 에서 알바 하며 불판 이나 닦는다고 하잔아,  
tjddyd09 다른건 몰라도 그동안 일본 사람들이 전세계에 바둑을 보급 해 놓은 공로 하나는 우리가 인정 해야 한다, 오죽 하면 일본어인 GO 가 바둑의 세계 공통어가 되었겠는가 ?? 왜 한국기원은 유럽에 프로기사 파견 해서 바둑을 보급 하지 않는건가 ?? 바둑이 최초에 중국에서 만들어진거지만 일본이 전세계에 보급 했다는건 엄연한 사실 이다,  
econ |  2020-10-04 오후 1:39:00  [동감2]    
조훈현 국수가 당시 우승하지 못했다면 그의 키드라 할수있는 이세돌, 박정상, 박영훈을 비롯한 송아지 삼총사 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게다가 조치훈의 대 성공이 없었다면 이창호에게 금은방을 하던 그의 조부가 바둑을 시켰을까?
까르피디엠 |  2020-10-03 오전 10:01:00  [동감0]    
전주의 박치선님과는 한 수 겨룰 기회가 있었는데요,, 박치문님은 그저 멀리 대구에서 좋아하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윤실수 내가 좋아하는 라틴어격언 ! 현재를 즐기라! 명문이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명화를 떠올리게 합니다.  
tjddyd09 박치선씨는 박치문 선생의 동생, 얼굴도 거의 붕어빵임, ㅋㅋ 누가 누구 인지 잘 구분이 안될 정도, ㅋㅋ  
서방국가 |  2020-10-02 오후 9:58:00  [동감2]    
박치문 !
당신도 참 멋진 인물일세
30년도 넘은 얘기지만
김희중과 이창호의 대국을
그렇게 맛갈지게 쓸수가 있을까 ?

이양반이 소설을 썼으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능가
하지 않았을까 ?
박작가 !
건강히 꺼지지 않는 촛불처럼
멋진글 늘 기다려 봅니다 ^
바둑정신 |  2020-10-01 오후 8:41:00  [동감0]    
잉 잊지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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