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은 이창호가 웃었다
숙녀팀 주장 최정 7단에게 흑 불계승
|
||||||||
정규시즌에서 봤어야할 대결이다. 그랬으면 ‘대박’을 터뜨렸을 것이다. 그만큼 보고 싶었던 두 기사의 대결이었다.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대결! 신사팀의 이창호와 숙녀팀의 최정 간의 대결은 11기 지지옥션배 최고의 매치였는데, 아쉽게도 무산되었다. 총 45건의 사연 중 12명의 시청자가 보내온 최고의 희망 대국! 못다한 승부의 결과는? 이번 특별 이벤트와 관련해 대회 관계자가 보내온 자료다. 바둑TV 시청자가 보낸 45건의 사연 중 12명이나 간절히 바랐던 대결을, 좀 아쉽기는 해도 비공식 이벤트대국으로 보게 되었지만, 여자랭킹 1위 최정 7단과 이창호 9단의 대국은 성사 자체로 화제가 되는 카드다. 전성기가 지났다고는 해도 이창호는 이창호. 여자기사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강해진 지금 과연 여자 최강기사가 어느 정도 경기력을 보일까. 그러고 보니 딱 1년 전, 지난해 오늘(9월26일) 똑같은 이 이벤트 무대에서, 같은 사연으로 두 기사가 마주했고 그때 이창호 9단이 173수 만에 흑으로 불계승을 거둔 바 있다. 이것은 비공식대국이었다. 두 기사의 공식대국은 공교롭게도 하루 전(2016년 9월25일) 2016 KB국민은행 바둑리그에서였고, 그 대국도 이창호 9단이 185수 끝, 흑 불계승을 거뒀다. 통산전적 2대0.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오뉴월 하루 해가 무섭다고, 자라는 새싹은 경험을 쌓는 만큼 줄기가 더 튼실해지고 뻗어나가지만 한창때를 보낸 이는 나이를 먹는 만큼 한계단씩 눈높이가 낮아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승부세계. ‘그러나’ 오늘만큼은 1년이 지났다,고 말하지 못했다. 이벤트대결 2국은 신사팀 주장 이창호 9단이 이겼다. 9월26일 오후7시, 한국기원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11기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 특별 이벤트대국 2탄에서 숙녀팀 주장 최정 7단에게 255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두었다. ![]() ▲ 대국장엔 이창호 9단이 먼저 와 상대를 기다렸다. 봄날의 벚꽃마냥 화사한 원피스 차림으로 사뿐사뿐 걸어들어오는 최정 7단. 배추흰나비가 날아들어오는 줄 알았다.
![]() ▲ 음음...목이 타는지 물 한모금 마시는 이창호 9단. 여전히 상대의 눈을 마주하지 않는다. 여전히 무표정하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저 묵묵한 산.
![]() ▲ 반전무인(盤前無人). 상대를 의식하는 순간 진다. 마음을 가다듬는 최정 7단.
![]() ▲ 돌을 가렸다. 최정 7단이 홀짝을 맞히지 못해 백을 쥐고 두게 되었다.
![]() ▲ 시청자들이 편하게 바둑판을 볼 수 있도록 서로 자리를 바꾸고...(카메라가 바둑판을 내리비추는 화면을 시청할 때, 흑을 쥔 쪽이 아래에 자리하도록 하기 위해 서로 자리를 바꾸는 것이다.)
![]() ▲ 잘 두겠습니다.
![]() ▲ 손을 쭉 뻗어 우상귀 화점에 첫수를 착점. 이후 반상에 천둥이 칠지 돌풍이 불지 아무도 모른다.
![]() ▲ 조금 따갑고 밝은 스튜디오 대국이지만 대국자는 주위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건 없건 이내 무아지경에 빠진다.
이창호 전성기를 보듯 끝까지 ‘뚜벅걸음’으로 승국 끌어내 단단하고 침착하게 두는 두 기사답게 초반부터 몸싸움을 펼치기보다는 서로 잔잔한 흐름을 택했다. 일단 우상변과 우하변에 단단한 진영을 구축한 흑이 실리로 앞서가기 시작했고 백은 아랑곳 않고 두텁고 유장하게 두며 회심의 한방을 노렸다. ▼ <장면1> A로 좀 힘을 주어 누룰 수도 있건만 이창호의 수법은 흑1로 평범하다. 백2에 흑3 하나 교환하고 또다시 흑5. 한칸...한칸이다. 이쯤되면 이 한칸들은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게 보인다. 백에게 던진 화두다. 이렇게 국면은 조용한 강물처럼 흘러갔다.
바둑은 전성기의 이창호를 보는 듯 찔러도 피 한방울 나지 않게 두어가는 흑의 페이스가 지속되었다. 이렇게 상대의 장기에 맞춰주고도 이길 수 있다면 명장일 것이다. 좌하변 흑진에 노림수를 결행하지 않은 게 아쉽다는 후회가 엄습해 올 즈음, 역시 일찌감치 판을 흔들어대는 전략으로 나갔어야 하지 않느냐는 이민진 해설위원의 분석이 나올 무렵 견고해 보이던 상변 흑진에 뛰어들어가 패싸움을 벌이는 승부수로 최정 7단이 일순간에 판을 흔들어 버렸다. ▼ <장면2> 아무런 수가 나지 않을 곳 같았던 상변 흑진에 백1, 3으로 격랑이 일었다. 그리고 치열하게 A의 패싸움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최정이 달리 '소녀장사'란 말을 들은 게 아니었다.
유유자적 마지막까지 갈 것 같았던 바둑이 상변 치열한 패싸움으로 불이 붙더니 역전 양상을 띠었다. 여기서부터 이벤트대국이 무색했다. 한순간, 상변에서 입은 타격으로 분명 이창호 9단이 꺾였다고 생각했다. 최정 7단도 이창호 9단 자신도 그리 판단했다. 해설자도 관전자들도 그걸로 판이 엎어졌다고 확신한 그 순간부터 오직 한 사람, 이창호 9단만이 신발끈을 고쳐 죄었다. ▼ <장면3>
이렇게 백 두점을 끊어먹을 때까지도 반집을 다투는 극미한 형세였으나마 백(최정)이 유리했다. 이렇게, 이런 식으로 뚜벅걸음으로 끝을 향해 걷기 시작하는 사람이, 이창호였지? 신산(神算)으로 불리던 특유의 끝내기 계산력을 발휘하며 상대도, 해설자도 미처 실감하지 못하는 새 어느새 형세를 뒤집고 간격을 벌려 놓고 있었다. 그렇군, 우리가 잠시 돌부처의 바둑을 잊고 있었던 게야. 최정의 파이팅도 대단했지만, 불리할 때일수록 결코 조급해하거나 티를 내는 법 없이 한땀한땀 여기저기 눈에 보이지 않는 반집들을 기워 기어이 따라붙는 이창호의 바둑을 오랜만에 볼 수 있어 좋았던 밤. 2017년 11기 지지옥션배의 마지막 밤은 이랬다. 지지옥션배 신사 대 숙녀 연승대항전은 (주)지지옥션이 후원하고 한국기원이 주최한다. 올해 11기 대회는 숙녀팀이 우승해 1억 2000만원의 우승상금을 거머쥐었다. 대회 총규모는 2억 4500만원이다. ○● 5개월 만의 복귀대국, '아기엄마' 김혜민이 웃었다 ☜ 이벤트대국 1탄 보기 ▲ - 오늘 대국 설명을 좀 해주시죠?
“중반에 제가 많이 안 좋았는데 어떻게 역전하게 된 거 같습니다.” - 본선무대에서 조혜연 9단에게 져서 끝났는데, 만약 이겨 연승했다면 연승목표를 어디까지 잡으셨는지? “1승하는 게 정말 어렵기 때문에 그런 목표를 세우지는 않았고요, 워낙 상대팀의 수가 많이 남아 기대를 전혀 않았습니다.” - 오늘로 지지옥션배가 마무리했는데 끝내는 소감 한마디? "일단 힘들긴 했지만 오늘 즐겁게 바둑을 둔 거 같고요...신사팀이 올해 성적이 안 좋았지만 내년엔 더 잘할 수 있도록 분발하겠습니다.” ▲ - 상변 싸움에서 백이 괜찮다고 본 거죠?
"싸울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끝내기에서...” - 중앙 두점을 내주었을 때(장면3) 그때 다시 안 좋아졌나요? "계가가 정확히는 안됐는데...만만치 않아졌고...사실 그 전에 상변에서, 거기서 잘 뒀으면 승리를 확정지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 본선무대에서 얼굴을 전혀 못봤는데 꼭 두어보고 싶었던 상대가 있었나요? "제 목표는 안두고 이기는 거였는데 목표달성해 기뻤고요. (웃음) 이창호 사범님과 두고 싶었는데 운좋게 우리가 이기게 되어...” - 인기가 좋은데 본인의 매력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성적을 좀 내서 그런 거 같고...예쁘게 봐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지지옥션배 많이 사랑해 주세요.” ▲ 인터뷰를 마치자 마자 두 기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시 바둑판 앞에 서서 승부처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스튜디오 조명을 끄지 않는다면 밤새 검토할 기세다.
▲ 대회가 끝나고 사람은 떠나도 승부사들의 혼이 담긴 기보는 남는다. 이들의 역사가 남아있는 한, 지지옥션배는 영원하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