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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커제, 3·三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네’ (5편)
‘이보게 커제, 3·三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네’ (5편)
[바둑의 미래서밋] 김수광  2017-08-23 오전 00:42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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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파고는 눈물을 흘릴 줄 모른다. 눈물을 알아보지도 못한다. 거대한 산처럼, 파도처럼, 성벽처럼 자신을 막아선 알파고 앞에서 커제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알파고는 2016년 자태를 드러낸 지 2년도 안 되어 바둑계를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전 세계에 바둑이 무언지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고, 더는 인간이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인간은,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갖춘 인공지능에게서 바둑의 진수를 배우고 있다. 한 시대를 지배하는 이론적 체계를 패러다임이라고 할 때 알파고가 바둑의 패러다임까지 바꾼 것은 아니지만 바둑이론의 상당부분을 수정하게끔 만들었다.

알파고는 2017년 5월, 중국랭킹 1위이며 사실상 세계 일인자 커제를 3-0으로 제압한 뒤 은퇴했다. 선물도 남겼다. 알파고가 또 다른 알파고와 대국한 기보 50개가 공개됐다. 충격적이었다. 현재 인간의 이론으로는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수준의 내용이었다. 최고 실력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있는 한국국가대표팀상비군도 즉시 알파고의 바둑을 놓고 해부에 나섰지만 좀처럼 진척이 되지 않을 정도로 그 내용은 난해했다. 그들로서도 당장 해설을 해줄 수 없었다.

그래서 기다렸다. 연구가 좀더 무르익을 때까지.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흘러 국가대표상비군을 만나 바둑이론이 인공지능 알파고로 말미암아 얼마나 바뀌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간이 지났다고 해도 국가대표팀이 알파고의 바둑을 훨씬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그래도 프로기사들이 체감하고 이해하는 폭이 처음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알파고의 모든 수를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할지는 몰라도 지금까지 인간들이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었다.

앞으로도 인간을 현격히 앞서가고 있는 알파고를 완벽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연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알파고의 바둑을 연구하는 것이 인간바둑 이론의 발전에 확실히 도움이 될 것이기에.

알파고가 두번째로 치른 공식대국인 바둑의 미래서밋을 취재한 얘기부터 현대바둑이론서들을 온통 물음표 투성이로 물들여 버린 알파고의 바둑수법 이야기까지 취재수첩 형식으로 다뤄 보고자 한다. 앞 부분은 취재 여정 중심으로, 뒤쪽에서는 알파고의 영향으로 눈에 띄게 바뀌어 버린 바둑이론 이야기로 꾸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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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이보게 커제, 3·三은 그렇게 쓰는 게 아니네’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표현하고 톡톡 튀는 커제는 열성팬도 많고 안티팬도 많다. 중국에서도 연배가 좀 있는 팬들은 커제의 언행을 탐탁지 않아하는 경우가 많고, 젊은 쪽은 열광한다. 중국 바둑관계자의 얘기다.

2016년 봄, 이세돌이 인공지능 알파고와 한창 대국하고 있을 때도 커제는 자신의 생각을 강하게 표출했다. 매치 시작 전엔 “알파고가 한판도 이길 수 없다는 데 전 재산을 걸겠다.”고 했다. 이세돌이 지자 “내가 알파고와 둔다면 승산 60% 이상으로 이길 자신이 있다.”와 같은 강한 발언을 했다. 하필 이세돌이 한창 인공지능과 대국하는 하는 기간에 쏟아 놓은 이런 말들은 한국팬들에게 그리 곱게 들리진 않았을 터이다. 삼성화재배 우승으로 세계 정상에 서 본 적 있는 김지석은 “이세돌-알파고 1국과 2국을 지켜 보고 나선, ‘알파고라고 하는 존재는 나보다 100배는 강하구나. 이세돌 9단이 한판 건지기도 어렵겠다.’ 생각했다.”고 하니 참 대조적이다.

▲ 커제.

▲ 꿈에 그리던 승부. 알파고와 대국하게 된 커제.

커제의 거침없는 발언은 한국팬들에게서 ‘자신이 아니라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하게 된 게 그렇게 배가 아픈가?’ 하는 반응을 낳을 뿐이었다. 커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변덕마저 보여줬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압도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는 절대 알파고에게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한 것이었다. 자신의 말을 자주 바꾸는 것 또한 팬들로부터 호감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소였다.

그래서였는지 2017년, 커제가 미래의 바둑서밋에서 알파고와 대국하게 됐을 때 커제는 응원하는 사람만큼이나 커제의 승리를 그리 바라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자신이 해놓은 언동에 대한 ‘대가’이기도 했다. ‘그래 한번 알파고 얼마나 무서운지 직접 경험해 보지 그래’ 이런 냉정한 반응이었다.

응원할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진화한 알파고와 맞붙게 된 커제를 놓고 이길 가능성을 ‘제로’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구리는 후배의 사기를 고려해 승산을 10%로 봐줬고 녜웨이핑은 “천지신명이 돕는다면 모를까 0-3으로 질 것”이라고 냉정하게 예상했다. 인공지능과 사람의 실력 격차는 너무나도 벌어져 있었다.

알파고가 베일을 완전히 벗지 않은 상태에서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국할 때는 모종의 숭고함 내지 장엄함 같은 것이 있었다. 이세돌은, 기계에 맞서는 ‘인간 대표’로서 마치 터미네이터를 맞아 싸우는 존 코너처럼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달랐다. 알파고는 ‘마스터’라는 이름으로 이미 연말·연초에 나타나 인간 고수들을 60대0으로 꺾으며 압도적인 실력 차를 확인해 준 터였고 게다가 시간도 더 흘렀으니 더 강해진 알파고였다. 보나마나 한 승부을 앞두고선 아무 느낌도 나지 않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막상 커제 대 알파고 1국 시작을 앞두고 60초 카운트 다운이 진행되자 나는 심장이 터져나가 버리는 것 같았다. 이세돌 대 알파고 1국 때와 느꼈던 것과 같은 경험이었다. 나 역시 커제가 1승이라도 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나 혹시 모를 1승이 나온다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어둡고 깊은 바닷속에 한줄기 빛이 뚫고 들어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아니, 꼭 승패에만 국한한 심정이 아니었을 수도 있다. 다시 등장한 알파고는 어떤 파격을 선보이고 커제는 또 어떻게 혼을 불살라서 맞설 것인가. 그런 순전한 기대감이 심장을 두들겨댔을 수 있다.



우습게도, 초반 진행만으로도 두근거림은 이내 사라져갔다.

커제는 알파고가 좋아하는 3·三으로 좌상귀를 차지하더니 그 뒤엔 화점이 놓은 우하귀에서 3·三으로 귀를 파냈다. 3·三을 극초반에 사용하는 알파고의 취향을 역으로 이용해 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연말연초 마스터는 사람이 생각지 못한 빠른 타이밍에 3·三을 사용해 국면을 잘 이끌어 나가는 기보를 남겼다. 커제도 나름대로 연구를 했을 테고, 실전에서도 그것을 자주 사용해 보았다. 재미도 보았고 자신감도 얻었다. 그러곤 그 원조인 알파고에게 자신 있게 사용해 본 것이었다.

커제는 3·三을 판 뒤 변화에서 김이 팍 샜다. 바깥의 중요한 돌이 축으로 잡혀 버렸다. 그것도 놀라운 것이, 커제가 좌상귀를 차지하는 방법이 3·三이 아닌 다른 곳이었더라면 축머리에 해당돼 요석이 축으로 잡혀버리는 걸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알파고는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변화를 이끌어냈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알파고는 말없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이보게, 커제 3·三은 그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네’

초반 접전 실패는 커제가 심한 타격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심리적으로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좌변 접전에서도 커제는 선수도 아닌 ‘들여다 보기’에 공포를 느꼈다.

바둑의 미래 서밋 3번기 1국
흑 커제 9단 : 백 알파고

▼ 3과 7이 눈에 확 들어온다. 3은 귀 차지이고 7은 귀 침투인데 그것을 모두 3·三으로 한 것이다. 이렇게 극초반에 3·三을 차지하는 건 알파고가 좋아하는 수법인데 커제는 한동안 초반 3·三에 맛을 들여서 자주 사용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현대바둑에서 3·三 귀 차지는 천대받아 왔다는 점이다. 3·三은 근거의 아이콘으로서, 발이 빠르고, 주변의 배석과 연계하기보다는 독립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자세가 너무 낮다는 이유로 외면받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극초반에 화점에 3·三 침입을 하지 않는 경향이 있었다. 너무 큰 세력을 허용하고서 대세를 잃을까봐여서다. 그러나 알파고가 자주 사용하자 재조명받은 것이다.

커제는 알파고가 좋아하는 수법을 역이용해보자고 했다. 마음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기계를 대상으로 심리전 같은 것을 펴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커제는 3·三으로 재미를 곧잘 보아 왔는데, 원조 '3·三장인(匠人)' 알파고는 '3·三은 이렇게 사용하는 것이 아니네'라는 듯 3·三 대응의 진수를 보여줬다.

▼ 알파고는 백1로 막은 뒤 이하 6까지 진행했다. 여기까지는 이젠 정석처럼 굳어진 수순이다. 이 다음이 중요하다.

▼ 백1, 3이 책략 담긴 수였다. 물론 수법 자체야 '족보'에 있는 것이지만, 지금 변화 외에도 다양한 변화가 있기에 알파고는 가장 적절한 수법을 찾아봤다고 할 수 있다. 실전이 조금 더 진행되자 알파고가 의도했던 게 뭔지를 알 수 있게 됐다.

▼ 커제가 나름대로 최선의 수순으로 대응했다. 흑3을 축으로 잡는 백6의 기쁨은 알파고의 차지였다. 이때 좌상 대각선 방향에 오롯이 놓인 커제의 3·三의 위치를 알파고는 의식했다고 할 수 있다. 3·三은 묘하게도 축머리 노릇을 못 하고 있다. 흑A의 화점이나 흑B의 소목에 있었다면 알파고가 개운하게 축으로 흑을 잡진 못했을 것이다. 극초반에 벌어진 이 공방은 좌상과 우하 두 개의 3·三과도 겨뤘다고 할 수 있는데 알파고는 3·三에 대한 상황별 대응법 하나를 마치 가르치듯 실전에서 보여주었다.

▼ 이어서 커제는 흑1로 좌변을 차지했고 알파고는 백2로써, 훗날(당장이 아닌) 축머리 활용을 막는 동시에 세력을 확장했다. 커제는 강요당하듯 흑3의 견제를 할 수밖에 없다. 알파고가 유유히 바라던 곳인 백4로 침투했다. 알파고가 초반 주도권을 잡아 가는 장면이다.

▼ 만약 커제가 앞 그림 흑1이 아니라 지금 그림 흑1로 자신의 진영을 키우자고 하면 백2가 빛나는 요소다.

▼ 수순이 더 진행됐다. 백1은 현대 바둑으로서는 이해불가한 수다. 첫째로 선수가 아니다. 둘째, 하변 흑의 움직임을 간접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면 어떤 꿍꿍이인지를 알기 어렵다. 셋째, 이후 진행을 보면 백1은 꾸준히 백에게 두터움을 더해주는 좋은 자리가 됨을 알 수 있다.

▼ 직후 실전진행이다. 커제가 무서운 승부호흡으로 흑4~14까지 실리를 파내는 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이후 17까지의 진행을 보면 주도권은 알파고가 쥐고 있다. 알파고의 반면 운영에서는 '여유'와 '중후함'이 느껴진다. 또한 백3 부근을 보면 보이지 않는 백의 그물망이 교묘하게 펼쳐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알파고는 무난하게 두면서도 한 번도 우세를 잃지 않았다. 형세는 미세했지만 이미 중반에 알파고는, 이겨 있는 상태에서 슬슬 안전운행하면서 확실히 승리했다. 커제가 이길 찬스는 없었다. 프로기사들은 결국 몇 집 차로 졌는지보다는 뒤집을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무서워한다. 알파고는 여전히 무난하게 두면서도 한번도 우세를 잃지 않았다. 적진에서는 날렵하고 자신의 진영에서는 과감했다. 커제는 대국 중 머리를 꼬며 헛웃음을 짓는가 하면, 나라 잃은 사람처럼 자세가 풀리기도 했다. 커제의 표정을 보면 그 무기력감을 알 만했다.

2국에서 커제는 1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싸우면서 알파고를 난전으로 끌어들였다. 잘 통한 듯했다. 알파고 제작사인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는 “100수 부근까지 알파고의 가치망에서는 접전이라고 평가하고 있었다.”고 알렸다. 커제도 이를 알았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몹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고 있었다.

알파고는 중요한 시점이 오면 감탄할 만한 수를 보여준다. 대개 인간이 예상을 잘 못하는 수다. 119수가 많은 이들을 경악하게 했다. 이 한수로 그때까지의 접전은 종언을 고하고 알파고의 독무대가 시작됐다. 화려한 바둑은 시원시원하지만 그만큼 허망하게 끝난다. 얼마 못 가서 커제가 항서를 썼다.

▼ 바둑의 미래 서밋 3번기 2국
흑 알파고 : 백 커제 9단

▼ 이 한수(흑1)가 모든 것을 침묵하게 했다. 사이버오로에서 생중계 해설하던 최철한은 "이것은 인간의 수가 아니다."라며 탄복했다.

흑1이 놓이기 전 커제가 희망을 품기 시작했던 건 바둑이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난전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때까지 알파고의 가치망(Value Network)에서도 팽팽한 형세임을 나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역시 중요한 것은 '한방'인 것 같다. 아무리 바둑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꼬여 있더라도 논란을 종결시키는 핵심이 있음을 알파고는 보여주고 있다(물론 모든 난전이 그렇진 않겠지...)

"A로 백 대마를 잡는 수가 있고, B로 붙이면 상변 타개가 가능하다. 또 C로 우변 백 대마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돌을 안정시킨 점까지 감안한다면 ‘상황종료’를 알려 준 것이다."(김성룡)

▼ 커제가 백1로써 우상 방면을 돌본다면 알파고는 흑2~8까지 중앙을 제압하며 결정타를 날릴 것이다.

▼ 백1로 중앙의 약점을 지킨다면 흑2~4까지 혹은 흑2의 바로 아래 A(실전처럼)에 두어 판을 결정지을 수 있다.

2-0으로 이미 승부는 끝났지만 마지막 판에서 커제는 백을 들게 해달라고 구글 측에 제안했다. 2015년에 백으로 34연승이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바 있는 커제는 자신의 백번 능력을 실험해 보고 싶었던 것 같다.

커제는 3국에서, 2국 때처럼 난전을 이끌어 내보고자 의도적으로 곳곳에서 손을 빼고 다녔다. 반면을 어지럽게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그 틈에 착실히 두터움을 쌓아 놓았다. 나빠지는 형세를 뒤집으려고 커제는 더욱 강력하게 난전을 유도했는데, 싸움이 애초에 무리했을 뿐 아니라, 수읽기 착각까지 겹쳐서 처참한 처지가 됐다. 커제는 어떻게든 계가까지 해보고 싶어했는데 알파고가 대마를 잡아버리는 바람에 돌을 거두지 않을 수 없었다.

▼ 바둑의 미래 서밋 3번기 3국
흑 알파고 : 백 커제 9단

▼ 알파고가 신수(흑1)를 들고 나왔다. 무척 실리적이고 실전적으로 보인다. 이 수의 의중을 빠른 시간 안에 간파하기 어렵다고 본 커제는 아예 손을 빼 백2로 좌하 흑을 공격했다. 손을 빼지 않고 우변에서 받으면 어찌 될까.

▼ 나중에 우리나라 국가대표팀 상비군 간의 대국에서 이와 비슷한 포석이 여러 차례 나왔는데 백2로 받는 기사도 있었다. 그럼 흑3으로 밀어서 이후 흑5까지는 외길 수순으로 진행된다. 이때 백6은 책에 나오는 맥점. 뚫는 수와 흑5라는 요석을 잡는 걸 맞보기한다.

▼ 앞 그림에 이어서 흑2로 받으면 백3으로 단수쳐 흑을 잡는다. 이후 9까지가 일단락이다. 이 변화는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요석을 잡은 백도 두터워 보이지만 흑2, 흑6, 흑8은 흑에게 기분 좋은 자리들이다. 이 때문에 흑도 불만이 없을 듯하다.

▼ 실전이 좀더 진행되었다. 3국이 안타까웠던 것은 커제가 알파고와 제대로 창을 마주쳐 보기도 전에 자멸했기 때문이다. 백1은 방향착오였다. 흑2와 4가 아주 두텹다. 커제가 너무나도 괴로운 나머지 백5, 7로 판을 흔들고자 했는데 알파고가 흑8로 우하를 제압한 것이 두텁고 큰 자리였다. 커제의 초반 실점이 너무 컸다.

▼ 앞 그림 백1로는 지금 그림의 백1로 변을 안정시키는 것이 좋았을 것이다.

▲ 대국 도중 눈물을 보이고 만 커제.

3국에서 대국 도중 커제는 눈물을 쏟고야 말았다. 한손으로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나보다 강한 사람이 보이지 않으면 아무리 자만을 경계한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법이다. 세계정상을 밟아 본 뒤 더 이상 적수가 없다고 자신만만해진 그때, 커제의 시대가 왔다고 세상이 평가하던 그때, 사람도 아닌 초절정고수가 등장했다.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커제는 벽을 느꼈다. 수십미터로 일어서는 성난 파도처럼 거대한 벽을 형성한 상대 앞에서 저항할 힘이 너무나도 나약할 뿐임을 깨달은 커제는 무력감을 견딜 수 없었는지, 슬피도 울었다.

국후 커제는 “나는 지금껏 내가 바둑의 절반을 이해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실은 정말 조금밖에 모르고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고 말했다.

역시 언어 문제가 힘들었다

대국이 끝나고 나면 매번 약 30분 정도 뒤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들의 위한 시간이다. 그 시간은 기자들이 속보 전송할 여유를 주는 의미도 있었고, 주최측도 무대 정리를 하는 시간을 버는 것이기도 했다.

언어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커제는 중국어로 말하고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는 영어로 말한다. 기자들은 한쪽 귀에만 꽂을 수 있는 이어폰이 달린 휘스퍼링 머신으로 동시 통역을 들을 수 있었다. 중국어는 전혀 모르니 영어로 들어야 했는데 도통 알아듣기가 힘들었다. 영어 실력이 변변치 않았던 탓이 있지만 통역자의 문제도 있었다. 중국인이 말할 때에 이를 통역하는 사람의 발음이 이상하거나 내용이 엉뚱한 경우도 있었다. 한 중국매체의 기자는 "영어통역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나는 중국어로 들으니 문제없지만 영어로 통역을 들으시는 분들은 좀 힘들 수 있겠다.”며 고충을 이해해 주었다. 대회가 중반쯤 진행되었을 때부터는 한국어 통역도 추가됐는데 여전히 아쉬움은 있었다.

▲ 질문하는 기자들.

프레스 컨퍼런스의 나온 얘기 중 모호하거나 확실하게 듣지 못한 부분은 추려내어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내용을 맞춰 보았다. 특히 중국·일본 기자,한국 특파원들과 도움을 주고받았다. 중국·일본 프로기사들도 도움을 주었다. IT와 관련된 세부 내용은 구글 코리아 쪽에 추가로 문의했다. 뉴스 완료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눈물을 쏟으며 3국을 치른 커제는 프레스 컨퍼런스 무대로 나오다가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를 보더니 삼촌을 본 조카처럼 와락 안겼다.

▲ 포옹하는 커제와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

커제는 또 “이렇게 뛰어난 ‘기사’를 만들어준 딥마인드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앞서 1국이 끝났을 땐 알파고를 ‘바둑의 신’으로 추어올리며 ‘과감한 혁신, ‘개척적 사유’, 자유자재’가 알파고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하던 커제였다.

커제는 알파고라는 큰 거울로 자신을 비춰본 성과를 얻은 것 같았다. 구글은 세계적인 천재 기사들과 함께 인공지능이 얼마나 발전했는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

판후이와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는 딥마인드를 대표해 중요한 발표를 했다. 바둑 수에 대해 알파고의 분석을 알려주는 바둑 교육툴을 만들고 있다고 했다. 알파고의 바둑이 세다는 건 알았어도 왜 강한지, 어떤 점이 강한지, 알파고는 알파고의 수와 인간의 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같은 '해석'이 이제는 가능하게 된다는 건 바둑계로선 반가운 일이다. 커제도 이 바둑툴 개발에 참여하게 됐다. 알파고의 바둑교육툴 개발에 참여하면 커제는 알파고를 가까이 둘 수 있게 된다. 안 그래도 세계 최강급의 실력을 가진 커제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 판후이는 알파고팀에 소속돼 있으면서 전 세계에서 알파고와 가장 많은 대국을 해본 사람이다.

▲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왼쪽부터), 커제, 데이비드 실버 박사.

폐막식에서 딥마인드는 바둑계에 선물도 했다. 알파고가 스스로 둔 기보를 차례차례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50국을 공개했고 나중에 5국을 추가했다. 내용이 파격적이었다. 인간 고수들과 둔 내용과는 또 달랐다. 이 내용을 놓고 스웨는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바둑"이라며 "상상하던 저 먼 미래의 바둑 같다."고 했다. 구리는 "알파고 대 알파고의 대국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수백만 판 이상의 셀프 대국을 하는 알파고의 바둑 중 55개 대국만을 공개한 것은 매우 적어 보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는 "충분한 제한시간을 적용한, 그리 많지 않은 기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속기 기보는 수도 없이 많지만 제한시간을 수시간씩 줌으로써 조건을 달리하는 기보는 많지 않은데 그걸 공개했다는 말이었다.

잘 알려졌다시피 이 대국은 해석할 엄두를 낼 수 없을 만큼 내용이 난해하다. 한국 국가대표상비군은 여전히 이 기보를 연구 중이다.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그 내용을 다음편부터 다룬다. (6편으로 이어집니다)

[PHOTOㅣ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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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초보 |  2017-08-24 오후 9:09:00  [동감0]    
알파고와 인간 최고수의 치수고치기는 불필요합니다. 다들 2점에서 3점 사이라고 합니다. 일
반 프로(100위권)는 4점을 놓아야 하고.
바둑정신 |  2017-08-24 오후 8:06:00  [동감0]    
글쓴이 삭제
nodrink |  2017-08-24 오후 1:24:00  [동감1]    
알파고의 대국은 처음부터 끝까지 유리하지요...그건 시합이 아니지요..인간의 대국은 변화무쌍,,처음에 밀리다가도 후반에 따라가 잡고..잘두다가 실수로도 지고...이런 드라마가 연출되는거지요...누구와 누구는 천적이고....조훈현,조치훈, 후지사와바둑이 이창호 바둑보다 보기에는 더 재미 있잔아요.....컴퓨터 바둑은 재미가 없을겁니다. 가슴을 뛰게하는 드라마가 없으니까요..
nodrink |  2017-08-24 오후 1:19:00  [동감0]    
프로기사중에 컴퓨터 전문가가 있엇으면 인공지능이 인간을 이기는건 시간문제라는거 벌써 인지햇을터인데 그냥 누가 제시한 361!의 확률만 믿고 아직 멀엇다고 현실과 동떨어진 예상을 한 거겟죠...컴퓨터의 연산능력이 얼마나 뛰어나느냐는 요즘엔 어떤 암호도 수시간내에 풀어내는 예도 있고 컴퓨터가 없으면 아예 우주선이 운행이 불가하다잔아요..우주선을 운행하려면 초고속의 연산이 필요한데 인간의 속도로는 불가하다는 얘깁니다. 그러니 인간이 컴퓨터에 밀리는건 당연한거고 오히려 인간이 발명한 기계인 컴퓨터를 바둑에 이용할 생각으로 전환해야 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기사끼리 머리를 쥐어뜯으며 대국하는 건 그야 말로 대국이고 컴퓨터와 하는건 일종의 훈련내지는 검산, 복기정도로 여기면 되겟네요..
황토강 |  2017-08-24 오후 12:54:00  [동감0]    
추가로 공개된 5국은 어디서 볼 수 있는지요...?
gump1978 http://homepages.cwi.nl/~aeb/go/games/games/AlphaGo/  
황토강 gump1978님,,,대단히 감사합니다...  
수담1000 |  2017-08-23 오후 11:33:00  [동감1]    
처음 바둑을 배워 7급 정도였을 때 비슷한 친구랑 바둑을 두며 즐거웠던 때가 생각납니다. 재미있었고 이기면 좋고 지면 아쉬움으로 끝났습니다. 놀이였지요. 승리를 탐하지 않았기에 그렇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기려고 했지요. 그러나 승부에 종속되지는 않았기에 부득탐승의 자세가 바둑에 살아있었다고 봅니다. 프로는 프로끼리 3단은 3단끼리 최선의 수가 아니라 자기가 생각하는 최선의 수를 찾아가는 즐거움에 눈을 돌린다면 바둑은 충분히 의미있다고 봅니다. 프로 기사와 알파고와의 대결은 바둑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인공지능 즉 현대 기술의 발달의 수준에 대한 논의로 그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세돌이 한판 이기고 커제가 3판 졌다란 사실, 아무리 프로기사가 덤벼도 이길 승산이 없다, 2점 또는 세잠 깔고 두어야 한다는 식으로 자꾸 승부에 집착한다면 바둑은 더 이상 의미가 없겠지요.
커제의 눈물은 우리 사회에서 경쟁과 승부가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다시한번 위기십결의 첫번째 항목인 부득탐승이 갖는 의미를 되새기며 모두 자기 수준에 맞는 바둑 두기를 통해 삶의 여유와 즐거움을 주는 동반자로서 바둑이 되었으면 합니다. *** 저는 놀이를 연구하는 사람이고 바둑을 좋아하며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합니다. 글이 산만하여 읽는데 불편하셨을테지만 제가 하고 싶은 의미가 전달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jsk8032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수담1000 |  2017-08-23 오후 11:21:00  [동감0]    
알파고와 이세돌, 커제의 대국을 보면서 바둑의 의미를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바둑이란 무엇인가? 저는 바둑을 잘 두지 못합니다. 오로바둑에서 4급 정도. 그런데 바둑을 좋아하고 자주 둡니다. 그럼 알파고와 이세돌이 두는 것은 바둑이고 내가 두는 것은 바둑이 아닌가? 저는 바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바둑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는 무엇일까요? 이이는 격몽요결이란 책에서 학문할 때 어떤 자세 즉 마음가짐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바둑에는 북송시대 안신수가 왕에게 헌사한 위기십결이 있습니다. 바둑의 자세와 태도 뿐 아니라 전술과 전략도 그 안에 담겨 있어 아직도 많은 이에게 애송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첫번째가 부득탐승입니다. 승리를 탐하지 마라!!!!
우리나라 뿐아니라 많은 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이기는 자만이 최고란 생각이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반영한 것이 바둑의 스포츠화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곧 선(善)이요 지는 것은 악(惡)이란 생각으로 확장되었고 결국 바둑도 그 물결에 휩쓸리게 됨으로써 바둑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 자체를 망가뜨려 저처럼 바둑을 즐기는 사람조차 망연자실하게 합니다.
수담1000 |  2017-08-23 오후 11:12:00  [동감0]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글에서도 알파고가 얼마나 강한지 느껴졌습니다.
알파고에 대해 생각해보니 알파는 우리가 알고 있듯이 알파요 오메가다 할 때의 알파이고 고는 go 즉 바둑입니다. 바둑 중에 알파란 뜻이라 생각해봅니다. 서양에 바둑을 알린 것은 일본이고 일본에서는 바둑을 고라고 하니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왜 바둑을 고라고 했을까요? 바로 한국의 고누가 먼저 전해지고 바둑도 고누와 같다고 여겨 고라고 했습니다. 돌고 돌아 결국 알파고는 영어와 한국어와 일본어가 합쳐진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신사마★ |  2017-08-23 오후 10:47:00  [동감0]    
정말 치수고치기는 찬성입니다
킬러의수담 |  2017-08-23 오후 8:56:00  [동감0]    
얼마전 중국에서 열렸던
세계인공지능바둑대회에 대해서는
왜 바둑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것인지요.
예상과 달리 중국의 절예(Fine Art)는 결승에도 오르지 못했고
기대하지 않았던 대만의 인공지능이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었지요.
운영자55 대회결과 보도했습니다.. http://www.cyberoro.com/news/news_view.oro?div_no=A1&num=523310&pageNo=2&cmt_n=0  
흑백마스터 |  2017-08-23 오후 5:08:00  [동감1]    
인간계 최강 커제를 가볍게 한수 가르치는 알파고. 진짜 한수한수 감탄이 나온다.
재오디 |  2017-08-23 오후 4:12:00  [동감0]    
기사 잘 읽었습니다.
소석대산 |  2017-08-23 오전 8:34:00  [동감1]    
잘 읽었습니다. 다음 편도 기대 만땅이네요.

아마 고수도 못되는 주제에 이런 얘기하는 게 좀 그렇지만
알파고 이후로 프로기사들의 기보를 곧잘 놓아보던 습관도 어느 결에 사라져버렸습니다.
놓아본 들 뭐하나.. 왜 이런 생각이 먼저 드는 건지.
벽을 느끼고 절망해도 그건 프로들의 몫이어야 하는데 왜 깜냥도 안되는 나까지...
ㅎㅎ 그냥 그렇다고요.
덤벙덤벙 나는 이세돌과 최신 버전의 알파고가 한 20억원을 걸고 (두 점이 되든, 네 점이 되든, 아니면 정선이 되든) 치수 고치기를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1년에 걸쳐 10番棋로... 그래야 진정한 人間 對 人工知能(A.I.)의 對決로 全世界의 注目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制限 時間 各 네~여덟 時間에 1分 初읽기 5回로 하면 後悔가 없겠죠.  
소석대산 <박정환, 커제, 이세돌> 3인을 대상으로 각각 치수 고치기 10번기를 시행한다면 흥미 만점이겠네요. 정선부터 시작해 매 판마다 승패에 따라 바로 치수가 고쳐지도록 하면 박진감 넘치겠지요.  
덤벙덤벙 그럼 바둑계나 구글로 보아서도 믿지는 장사가 아닐 것입니다. 바둑이라는 게임이나 구글의 기업 홍보 효과면에서는 최고죠. 테니스나 골프는 결코 시도할 수 없는 흥행거리라고 봅니다.  
상수와하수 두분 형님들.... 정신차리세요 백번둬도 백번다 짐니다,,,,, 그런대국 누가 주최하나요? 두분 형님들께서 돈이 많으시면 200억 정도 내놓으시면 가능함니다,,,,  
원술랑 에라이 그지 발싸개 같은 새끼야.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버르장머리 없이 고따위로 시부렁댈래? 이걸 그냥 콱 그냥. 이 새끼 때문에 점잖으신 댓글러들이 부쩍 줄어들었다고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덤벙덤벙 원술랑님, 참으세요. 어느 곳에서나 꾸정물 흐리는 親舊는 있는 法, 너그럽게 容恕합시다. cheers, 그리고 상수와하수님, 이세돌은 다섯 번 두어서 네 판 지고 한 판은 이겼죠? 百 番 두어도 百 番 다 진다는 이야기는 커제에게는 맞을 지 몰라도 李世乭 9段에게는 틀리는 말이죠?  
凹凸居士 덤벙덤벙/ 돌파고와 커파고 기력 차이가 3점이라고 하는데 뭔 이세돌 1승이야기를하는지...  
덤벙덤벙 요철거사, 너는 이세돌이 작년에 알파고와의 5번기에서 네 번 째 판을 이긴 것도 모르는 無識한 親舊이구나.  
원술랑 선생님 죄송합니다. 근데요, 저 새끼는 늘 저런 식입니다. 저 새끼 때문에 댓글난에 오기 싫어졌어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웅덩이를 흐린다고 저 새끼는 하나도 쓸모 없는 잉여인간입니다. 어따, 거사인지 땡중인지 님자도 안붙이냐. 야 이 개불 만도 못한 땡중아. 만날 지하철 입구에 자리 깔고 앉아 목탁 두드리며 구걸하는 주제에 까분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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