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 추는 '국제바둑커플'
탱고 추는 '국제바둑커플'
제9회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 인터뷰&스케치
[김인국수배 ] 정용진  2015-11-09 오전 06:10   [프린트]
▲ 중국의 루핀 씨와 루마니아의 푸글린 아드리아나 씨는 탱고를 배우다가 바둑커플이 된 연인이다. 제9회 김인국수배 폐막만찬장에서 주위의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멋진 탱고 솜씨를 뽐냈다. 탱고 동영상은 본문에. (스마트폰 촬영화면 캡처사진)


장수만세! 바둑만세다!
강진에서 매년 11월 첫째주말에 여는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를 볼 때마다의 느낌이다. 남자 만50세, 여자 만30세 이상의 시니어들만 참가하는 유일한 국제대회라 시선을 끌기도 하지만, 바그너 음악을 즐기는 바그네리안들이 바이로이트축제를 손꼽아 기다리듯 김인 9단을 기억하는 바둑인들이 강진으로 모여드는 대회여서 더 독특하다.

유일하고, 독특한 대회여서일까. 눈길을 끄는 참가자도 많다. 백세시대라고는 하나 70~80대 노령에 국내여행도 아닌 해외여행을 마음먹기가 그리 쉽지 않다. 그것도 바둑대회를 목적으로. 해외에서 참가한 최고령자들은 어떤 계기로, 생각으로 왔는지 문득 궁금했다. 바둑은 얼마나 건강에 도움이 될까.

“바둑은 60부터!” - 오사카에서 온 카와다 카즈코 여사

카와다 카즈코(河田晷子) 여사는 1935년생, 만80세의 나이다. 그렇지만 바둑을 둘 때도 소녀처럼 항시 방글방글 웃는 표정을 지었으며, 소녀마냥 활기찼다. 일본 아마추어 초단 기력으로 여자단체전에 ‘Minka Igo Ladies 팀’ 선수로 출전했다. ‘밍카(Minka)’는 오사카에 있는 지명이란다.

한국 방문은 처음이라 했다. 팀원의 권유로 방한을 결심했는데, 사실 오기전까지는 나이 걱정을 좀 했지만 생각보다 힘들지 않다고 역시 소녀처럼 호호호 웃으며 말한다. 힘들기는커녕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 한국 방문은 처음인데 첫인상이 어떠하신지?
“버스에서 바라볼 땐 일본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도시적 이미지가 강한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한국에 오기 전에는 주변에서 들었던 마늘냄새 같은 거...그런 선입견을 상상하고 왔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 바둑은 언제부터, 어떤 동기로 두시게 되었는지?
“40대에 늦게 배웠다. 어느날 바둑수강생을 모집한다는 지하철 광고를 보고 ‘아 저거 한번 해보고 싶다’는 욕구가 일어 찾아갔다. 그때부터 바둑을 접하기는 했으나 진짜 재미를 알고 열심히 한 건 60대부터였다.”

- 바둑의 어떤 점이 그리 재미있으신가?
“혼자 둘 수도 있고(복기), 혼자 공부할 수도 있고, 무엇보다 돈이 들지 않는다. 바둑과는 평생 떨어질 수 없을 거 같다. 내년에도 건강만 문제 없다면 꼭 다시 오고 싶다.”


▲ 카와다 카즈코 여사의 ‘Minka Igo Ladies 팀’은 3승2패로 5위의 성적을 거두었다.



▲ 이번 대회 최고령 참가자인 쟝 바오총 선수(왼쪽). 만82세다.

“고령에도 계속 둘 수 있는 게 바둑!” - 상하이에서 온 쟝 바오총 씨

상해로래락위기(上海老來樂圍棋) 팀 일원으로 남자단체전에 출전한 쟝 바오총(姜葆充) 씨는 1933년이다. 만82세로 이번 대회 남녀 통틀어 최고령자였다. 그렇지만 바둑을 어찌나 열심히 두는지 번번이 가장 늦게 끝내서 이틀 내내 인터뷰를 벼르기만 하다가 시상식 직전에야 몇마디 나눌 수 있었다. 폐막 후 만찬 뒤풀이에서 노래를 권하자 사양 않고 마이크를 척 잡고 한가락 뽑는 양이 소년 같았다.

역시 첫 방한이란다. 상하이에서 일하는 아들이 이번에 출전한 상하이팀원들을 소개해 같이 오게 되었다. 팀이름 ‘上海老來樂圍棋’는 상하이에서 즐거운 마음으로 온 노인 바둑팀이란 뜻이라고 설명한다. 건네는 명함을 보니 산둥성(山東省)바둑협회 부주석과 산둥성의 성도(省都)인 지난시(濟南市)바둑협회 주석을 지내고 지금은 고문을 맡고 있었다. 기력은 아마5단.

- 바둑은 언제 배우셨나요?
“7세 때 배우긴 했는데 공부 때문에 깊게 하진 못했다. 또 그때는 일본바둑이어서 안 두다가 1945년 일본이 패망하고 돌아간 후에나 좀 두었다.”

- 한국은 처음 오셨는데 인상이 어떠신가? 강진의 음식은 입에 맞으셨는지?
“아주 좋다. 공기도 좋고 특히 사람들이 우호적이다. 강진 음식은 맛있다. 중국음식과 비슷해 이미 익숙해졌다.”

- 바둑이 노인들의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시는지?
“바둑은 연령대를 따지지 않고 계속 즐길 수 있다. 노인들에게 이보다 더 편한 종목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억력 감퇴를 막아줘 치매에도 좋다는 것은 이미 모두 알고 있지 않느냐.”

- 중국에서 친구들과 바둑을 얼마나 즐기고 계시는지?
“매일, 많이 둔다.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다같이 모여 둔다."




탱고 추다 바둑커플된 - 루핀 & 푸글린 아드리아나

그간 김인국수배를 여러 번 취재하면서 파란눈에 금발 서양인, 그것도 여성을 보기 힘들었는데 한정식집에서 가진 전야제에서 젓가락질을 능숙하게 하는 키 큰 서양여성 참가자가 한눈에 들어왔다. “유레카!”

푸글린 아드리아나(Fugulin Adriana)는 상하이에서 일하는 32세 루마니아 여성이었다. 어떻게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됐냐고 물으니 남자친구 따라왔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강진에 왔다기에 둘레를 두리번거렸으나 콧대 높고 장신인 서양남자는 찾을 길 없다. 해서 남자친구를 궁금해했더니 머리가 살짝 벗겨진(^^) 중국남자를 데려와서 ‘깜놀’했다. 루핀(魯頻) 씨는 만50세로 18세 차이가 나는 상대다. 국경이 없는 게 사랑이라는데 나이 장벽쯤 뭔 대수이겠는가만은, 그러니 어떻게 만난 커플인지 더 궁금해졌다.

상하이에 온 루마니아 여자는 중국의 문화에 대해 무지하고 무료했고, 우연히 탱고교실 전단지를 보고 찾아간 교습소에서 우연인지 운명인지, 역시 전단지에 이끌려 온 나이 찬 중국아저씨를 만나게 되고, 춤이란 것이 함께 배우고 추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스킨십도 하게 되고 그러다 서로 호감이 생기고...그래서 여자는 남자를 더 알고 싶어 남자가 ‘좋아 죽는 취미’ 바둑에 관심을 갖고 배우기 시작했고, 남자가 소개해준 여자전용 바둑클럽을 다니면서 제대로 바둑의 재미를 느껴 오히려 자기가 미치도록 더 빠져들어버렸다는...대략 이런 스토리다. (더 흥미진진, 상세한 스토리는 함께 취재한 '월간바둑' 김정민 기자가 12월호에 소개할 예정.)

김인국수배에 남자는 예전부터 오고 싶었으나 50세 출전 나이제한 때문에 못 오다가 올해 드디오 올 수 있게 되었고, 그 사이 유럽이나 중국내 바둑대회에 같이 다녔던 여자 또한 바늘과 실처럼 동반출전했다. 아마5단인 남자는 단체전에, 6급 실력의 여자는 개인전에 출전했다.


바둑대회의 진짜 재미는 하나로 어우러지는 뒤풀이 시간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참가하는 국내대회보다 국제대회가 훨씬 묘미 있다는 말들을 한다. 국적이 달라 구사하는 말도 다른 사람들이 모이는 대회라면 제대로 소통이 안될 터인데도 어찌하여 더 재미있다는 걸까. 그 참묘미는 대회 후 ‘뒤풀이’에 있다는 걸, 김인국수배에서 목도할 수 있었다.

폐막식을 마치고 외국참가자들은 강진군에서 제공한 버스로 3시간여 강진일대 관광을 다녀온 뒤 마지막 공식일정인 폐막만찬을 하는데, 작별의 아쉬움으로 꽉찬 이 자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친구처럼 서로 하나가 된다. 말이 안 통해도, 나이에 상관 없이 축제 뒤끝의 젊은이들처럼 툭 터놓고 어울린다. 중국 참가자가 일본 노래를 부르고 일본 참가자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열창한다. 가사가 어눌하고 음정박자가 맞지 않는 것을 창피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강진처럼 깊숙한 지역에 취재 가면 폐막하기 무섭게 후다닥 결과기사 하나 올리고 부리나케 상경하지 않으면 하룻밤 더 발목 잡힐 각오를 해야하기에 그간 폐막만찬 자리까지 동석할 겨를이 없었는데, 올해는 여유를 부린 덕에 뒤풀이 장면 몇 컷을 담을 수 있었고, 중국남자와 루마니아 여자 바둑커플이 추는 탱고를 동영상으로 찍어 보여드릴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 최연장자인 쟝 바오총(姜葆充) 씨도 흥에 겨워 어린아이마냥 노래했다. 폐막식 후 취재를 '쫑낸' 상황에서 숙소에 카메라를 두고 만찬장에 갔다가 예기치 않게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화질이 영 좋지 않다.


▲ 손에 손잡고 국적을 떠나~. 바둑인은 모두 친구요 하나라는 걸 보여준 만찬 분위기.


▲ 강진군은 5만 명의 군민에 불과한 지자체다. 이 조그마한 군단위 지역에서 적지않은 예산을 지원해 9년째 국제시니어 대회를 개최해 왔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고장이 낳은 바둑영웅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는 얘기다. 대회가 열리는 기간 강진읍 거리 곳곳에서 김인국수배를 알리는 펼침막과 깃발이 나부꼈다.


▲ 거리뿐만 아니다. 시장통 허름한 선술집에 들어서다가도 대회 홍보물을 마주쳐 깜짝 놀랐다. 술집 여주인이 사비로 제작해 세워 놓은 것이었다. 강진의 전 군민이 합심하여 치르는 대회가 김인국수배다.


▲ 자원봉사자들이 발벗고 나서 대회참가자들에게 식음료를 대접하고


▲ 강진의 특산물도 전시하고 판매했다.


○● 제9회 김인국수배 국제시니어바둑대회 폐막기사 보기 ☜ 클릭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바둑정신 |  2015-11-10 오후 7:14:00  [동감0]    
우와
협화천봉삼 |  2015-11-09 오후 4:36:00  [동감1]    
우왓~재미있었겠당~잘 보고 갑니덧~ㅡ,.ㅡ^^
iwtbf |  2015-11-09 오후 2:35:00  [동감1]    
참으로 뜻깊은 행사네요. 이런 행사가 많아져야 바둑이 뿌리를 내릴 텐데
박타령 |  2015-11-09 오전 10:35:00  [동감2]    
강진 군수님과 군민들 감사합니다. 시니어들만을 위한 국제 바둑대회를 만들어서 세계의
많은 바둑 애호가들이 대한민국 시골 강진을 찾아서 즐기고 갔네요. 정용진 기자님도 잘하
셨습니다. 뒷풀이도 남아서 이런 인간 냄새 나는 기사를 쓰셨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공식
기사보다도 오히려 뒷풀이 기사가 더 기억에 남네요. 앞으로도 늘 이 대회가 발전하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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