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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수첩/ 이창호의 잃어버린 여권
김인 단장 '원성진, 당당했던 그 발언 꼭 지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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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감정이 일시에 뒤섞인 멍한 표정이다. 10월 10일 월요일 오전. 출국수속을 마친 이창호 9단이 김포공항내 면세점 부근에서 미묘하게 복잡한 표정을 짓고 서있다. 멍한 듯, 메스꺼운 듯, 울렁거리는 표정이다. 뭔가 당황했는지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이창호 9단, 이런 이 9단의 모습을 발견한 한국기원 관계자는 표정을 보자마자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했다. 예상보다 문제가 심각했다. 이 9단이 면세점 코너에서 '여권'을 '분실'했다. 해외로 나가는 모든 이가 그렇듯이 이창호에겐 이날 여권이 반드시 필요했다. 제13회 농심 신라면배의 한국팀 대표로 와일드카드를 받았고 10일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 개막식에 한국대표팀의 얼굴로서 기자회견장에 나가기로 한 몸이다. 처음부터 참가하기 어렵다고 했으면 모르겠지만, 일정이 다 짜여져 있는데 못 가면 아무래도 '민폐'가 된다. 게다가 이창호 9단은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성격이다. 일단 여권을 찾아야 한다. 여권이 없으면 중국행 비행기를 타더라도 중국공항에서 입국이 안된다. 이런 종류의 사건은 자주는 아니지만 간혹 있기 마련. 잃어버렸어도 다시 찾아 해결한 경험이 많다. 당황하지 않고 차근차근 행마를 복기하면 여권은 어디선가 튀어나오기 마련이었다.이 9단의 경우 사건 발생장소가 공항 밖이 아니라 공항 안, 그것도 면세점이다. 이미 출국수속을 밟은데다 면세점까지 와서 물건 구매를 하려면 비자를 면세점 안에까지 잘 들고 왔다는 이야기. 이 9단의 상황 설명을 들은 한국기원 관계자들이 곧바로 이 9단의 길지 않은 동선을 추적했다. 김포공항 국제선 면세점은 별로 크지 않기에 출국수속후 이창호 9단의 동선은 정말로 그리 길지 않았다. 아이를 가진 아내에게 선물할 것을 한 가지 구매한 후에, 문득 여권이 사라진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유독 입덧이 심하다는 어린 아내다. '느림의 미학'의 대표주자인 이창호 9단이지만 요즘엔 아내를 위해서는 속력행마'를 한다고 한다. 들은 이야기다.) 기원 관계자와 이 9단이 이 9단의 옷과 소지품을 다시 살핀 후, 이 9단이 출국심사대를 떠난 후의 동선을 따라 다니며 샅샅이 훑었다. 점원들에게도 모두 확인한다. 저인망식으로 확인한다. 이상하다. 이쯤되면 어디서 튀어나오거나, 여권을 발견한 누군가 나와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여권을 찾는 시간은 길어지고 비행기 탑승시간은 끝나간다. 곧 출발한다. 아! 결국 출발했다. 이창호의 얼굴은 점점 사태에 대한 당혹감과 미안함, 그리고 일종의 창피함 그런 게 뒤범벅이 된 채 일그러져 갔다. 목소리가 잘 안 나오고, 머리를 긁적이는 일이 잦아진다. 한 숨. 자신의 일을 챙기느라 농심배 한국대표팀과 함께 중국으로 출발하지 못한 사람이 생겼다는 것도 이 9단의 마음에는 결정적인 부담이다. 여권은 정말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인천공항에 가서 '중국으로 가는 특별한 방법'을 알아보는 것이었다. - 정말 그렇게라도 할까? - 이에 대해 한국기원과 대회 후원사인 농심이 논의했다. 한국기원과 농심은 이창호 9단이 한국에 남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어차피 이창호 9단이 선발 출전할 것이 아니라면 그냥 한국에 남고, 개막식 기자회견에는 원성진 9단이 대신 참여하는 것으로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이 9단도 전화통화를 통해 후원사인 농심과 한국기원의 의견을 전해 들었다. 이 9단은 "후원사인 농심에 미안하다. 대회 관계자들에게 미안하다.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여러번 했다고 한다. ▲ 중국까지 와서 삼겹살을 그것도 두번씩이나? 한국인의 삼겹살 사랑은 조금 유별난 면이 있긴 하다. 한국 선수단은 중국의 삼겹살 집에서 두 번이나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그런데 불만인 사람은 별로 없었다. - 한국인들이 특히 좋아하긴 하지만 중국인들 또한 돼지고기를 즐기며, 한국인 만큼까진 아니더라도 삼겹살을 좋아한다고 한다. 글쎄, 이런 경험, 이창호 9단과 비슷한 경험을 개인적으로 겪은 적이 있다. 다들 비슷한 경험이 한 번 쯤은 있지 않았을까? 예전에 응씨배를 취재갔다 선수단 보다 먼저 중국에서 귀국하는 길에서였다. 호텔에서 같이 묵던, 다른 기자의 여권을 들고 공항에 갔던 것이다. 티켓팅을 위해 천연덕스럽게 여권을 내미는 순간 항공사 직원의 말. "니 여권이 아닌데요" 꽥. 호텔내 책상 서랍에 서로의 여권을 같이 넣어둔 게 실수였다. 당황했다. 어떤 느낌이냐고? 누군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순간적으로 '심장이 잠깐 멎는 것 같으면서 괄약근이 쫄깃쫄깃해지는 느낌'이다. 또 다시 경험하고 싶지는 않은데, 해외를 나가다보면 누구나 실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 이런 거, 지나고 나면 또 별 거는 아니다. 아무튼 이러해서 이창호 9단의 얼굴은 제13회 농심배 개막식 사진에 보이지 않게 됐다. 이9단은 전날인 9일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프로암대회(본선 8강멤버와 24명의 아마추어 팬이 참여) 행사에 참여했는데, 계속 바삐 움직이느라 정신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행사장에선 "좋은 아빠, 엄마 되자" 그랬다는데. 농심신라면배 개막식장에서도 비슷한 말을 할 수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은 든다. [이창호 9단이 왜 개막식에 참석하지 않았는지, 너무 시시콜콜한 면이 있어 당일 개막식 기사 등에 따로 소개하지 않았다. (실제로는 다 같이 쓰지 말자고 하는 바둑 기자단 간사의 말도 있었고, 다들 동의했었기 때문.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고.) 못 온 이유는 여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시시콜콜한 당시 상황은 대회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재구성했다.] 그 후, 이창호 9단이 없기도 하여 1차전이 열리는 베이징에서 한국팀의 실질적 주장은 원성진 9단이 됐다. 실제로도 그는 한국 대표팀중 한국랭킹이 가장 높다. 5위다! 개막식과 함께 1차전이 베이징에서 진행되던 5일간, 이창호 9단의 빈 자리는 원성진 9단이 메웠다. 원 9단이 팀의 맏형 노릇을 했고, 기자회견에선 이 9단 대신 참석해 큰 자신감을 보였다. 원성진 9단은 "구리의 농심배 성적이 좋지 않아 한국이 (많이) 우승할 수 있었다. 구리가 이번 대회까지만큼은 계속 그랬으면 한다."고 약간 도발적인 발언을 했다. 구리가 "농심배 통산 성적이 1승 5패인데 그 유일한 승리가 원성진"이라며 "이번에도 원성진 있는데 운이 따르길 바란다"고 말한 것에 대한 답변이었다. '한 방'씩 주고 받은 기자회견장이었지만, 원성진 9단과 구리 9단은 서로 친한 편에 속한다. 술로 친해졌다 할 수 있는데, 원성진의 말로는 구리의 술 실력은 결코 당할 수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의 술대결(?)은 2008년 제주도서 이뤄졌는데 제12회 한중천원전이 끝난 후였다. 예상외로 '말 술' 이라는 구리가 먼저 떡실신했다고 한다. 당시 이를 지켜보던 관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평소 익숙치 않은 한국 소주의 맛과 향에 중국인인 구리가 버티기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도 한다. 원 9단은 그 때 일을 묻자 "그 때 그렇게 술을 마신 후 난 열흘넘게 앓아 누웠었다. 구리는 실로 무서운 기사다. 감당하기 어렵다"라며 익살. 이러저러한 일이 있었지만 1차전은 안국현의 2승후 탈락, 중국 저우루이양의 탈락 후, 탄샤오의 1승, 일본의 2명 탈락으로 결말이 났다. 일단 연승전의 특징상 한국이 가장 유리한 위치다.◀ 40도가 넘는 독한 백주를 커다란 글래스에 따라 마시는 중국인들이 의외로 소주에 약하다. 백주를 글래스로 권하는 중국인을 만나면 상대에겐 소주를 글래스로 권하는 것도 한 방법.(주의 : 이러다 진짜 죽는다.) 한국소주 처음처럼, 중국발음으론 '추인추러' 정도 된다. 김인 단장이 1차전이 끝난 후, 김포공항에 돌아와 1차전을 마감한 소회를 밝혔다. 14일이었고, 이창호 9단이 여권을 잃어버렸던 김포공항이었다. 김인 국수는 바둑계의 존경을 받고 있지만, 저녁 때가 되면 김인 국수의 앞에서 숨바꼭질(?)을 하시는 분들이 가끔 있다. 술 한잔 하다보면 이야기가 길어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어르신과 오래 이야기하는 게 부담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바둑계의 많은 사람들이 '잠깐, 여기 좀 앉게' 하는 김인 국수의 인자한 초청에 겁을 먹곤 하더라. 아무튼 1차전 단장을 맡은 김인 국수의 말이다. 선수단의 박수소리가 컸다. "중국은 항상 강했어요. 한국이 농심신라면배에서 12번중 10번을 우승했는데 상대적으로 한국에겐 과한 성적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한국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좋은 성적를 거뒀어요. 이번에 우리 선수(안국현)가 잘해줬고 다들 대회를 위해서 노력해줘서 고맙습니다. 또 원성진 9단이 개막식에 참석해 구리에게 당당하게 말했지요. "이번 대회도 구리가 양보하라"고. 이렇게 당당하게 말했으면 원성진은 그 발언을 반드시 책임져야 합니다. 한국의 11번 째 우승을 위해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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