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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사이버오로 홈페이지(cyberoro.com)에 [조선사바둑전]과 [대륙풍]을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이자 바둑사학자 이청 작가가 박정상 프로의 팬으로서 그의 대성을 바라며 박정상 9단의 이미지와 바둑에 어울리는 별호(별명)를 지어 특별히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자 註) |
'천자문'에 검호거궐주칭야광(劍呼巨闕 珠稱夜光)이 있다. 검은 거궐이 명검이고 구슬은 야광이 좋다는 말이다.
거궐은 도장(刀匠) 구야자가 만들어 월의 구천왕에게 바쳤다는 전설의 명검이다. 순자에도 합려, 간장막야(干將, 莫耶) 거궐 등이 옛날의 명검이라 했다. 춘추전국시대 중원에는 거궐, 간장막야와 함께 용천검, 태아검, 적소검 등 10대 명검이 있었다.
'열전'에 전하는 10대 명검 중 승영(承影)이 전하는데 검자루만 보이고 검날이 보이지 않는 명검이었다. 그림자만 있고 실체는 보이지 않는 칼은 상대를 예측불허의 곳에서 공격할 수 있기에 대항할 사람이 없었다. 10대 명검들은 하나같이 당시대 최고의 도장의 손에 만들어졌다.
명검은 도장의 타고난 재능과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지지만 10대 명검은 그것만으로 부족했다. 절대의 명검이 제작되기 위해서는 절정의 도장의 기술과 노력, 그리고 혼을 능가 하는 비원(悲願)이 필요했다.
간장막야 검이 그렇다.
간장은 초나라 도장의 이름이고 막야는 그 아내다. 아내도 거궐을 만든 도장 구야자의 제자로 검을 만드는 도장이었다. 초나라 왕은 간장의 소문을 듣고 어느날 간장을 궁으로 불러 세상에 다시 없는 검을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간장은 집으로 돌아와 3년의 각고 끝에 웅검, 자검 두 자루를 만들고 자신과 아내의 이름을 붙여 간장, 막야라 한다. 간장은 막야 검만을 챙겨 들고 궁으로 들어가며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 나는 돌아오지 못한다. 초왕이 또 다른 명검을 만들지 못하도록 나를 죽일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면 막야 검을 주고 곡절을 말해라.
간장은 임신한 아내와 막야 검을 남겨 놓고 궁으로 들어가 돌아오지 못한다. 그의 아내가 낳은 아들이 미간척(眉間尺)이다. 미간척이 장성하자 어미는 막야 검을 꺼내주며 검의 내력을 말해준다. 미간척은 아버지의 복수에 나서고 초왕의 기찰망에 걸려 추적을 당하게 된다.
그때 초왕에 원한이 있는 또 다른 협객을 만나는데 두 사람은 금방 의기투합을 한다. 협객은 두 사람의 원한을 풀기 위해서 당신의 머리가 필요하다 말하고 미간척은 군말 없이 머리를 내놓는다. 협객이 빼든 막야 검에 물방울 떨어지듯 떨어진 미간척의 머리는 막야 검과 함께 초왕에 헌상된다. 공을 인정받은 협객도 그 자리에 동석을 하게 된다.
초왕은 미간척의 머리와 또 다른 명검 막야를 보고 협객을 가까이 불러 격려를 하고 기회를 노린 협객이 막야 검을 들어 초왕의 머리를 떨군다. 그 순간 쟁반 위에 있던 미간척의 머리가 초왕의 머리에 달려들어 귀를 물어뜯는다.
'한서열전' '수신기' 등에 전하는 간장막야는 인간의 손으로 비려지는 한갓 물건도 열과 성(誠) 그리고 비장한 도장의 내력이 담겨 있어야 된다는 교훈을 준다. 한송이의 국화꽃이 피기 위해서도 봄부터 여름이라는 시간과, 개화를 재촉하는 소쩍새의 간절(?)한 바람이 있어야 하듯, 명검은 만년한철의 재료와 절정의 기예를 가진 도장의 혼(魂)이 어우러질 때 만들어진다. 하물며 인간이랴.
벽상검청룡도(壁上劍靑龍刀)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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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일러 기산기림(碁山碁林)이라고 한다. 수많은 기객(碁客)들이 바둑판 하나 메고 절대고수를 찾아 강호(江湖)를 표표히 떠돌며 길 위에서 싸우고 길 위에서 죽는 모습이 검객들의 시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음에서 나온 말이다. 검산험로(劍山險路) 하던 시대는 갔지만 검삼험로보다 처절하고 사실적인 에피소드가 바둑이라는 세계에서 오늘도 태어나고 죽으며 명명(明滅)을 한다.
별호는 검객들과 그들의 분신인 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절정의 기객들은 강호에서 부득불 별호를 하나씩 얻게 되는데 바둑황제, 돌부처, 일지매, 된장바둑, 비금검객 등이 그들이다. |
2006년 후지쯔배를 우승했을 때의 당당한 모습. 아래 대국사진은 중국의 저우허양 9단과 벌인 결승전 장면. |
나는 몇해전 태백산 천제단에서 박정상을 만난 적이 있다. 원성진과의 산상 대국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는 태백 역사(驛舍)에서 두 젊은 고수들과 대화를 나누며 내일의 창창한 동량이 되어주기를 바랐었다. 박정상은 다음해 곧바로 후지쓰배를 우승하여 바둑팬들을 기쁘게 했다. 박정상은 출정의 시간에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는 말을 했다.
사지강지(死之强之)라는 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승부사로서의 번민과 투혼이 있기에 그런 말도 나오는 것이겠다. 박정상은 금년에도 중환배 결승에 올랐다. 바둑 안에서는 이미 정상급임을 인정받았다 할 수 있다.
프로기사로서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는 천명은 독한 마음이다. 정상급 프로기군의 바둑 실력은 그야말로 백지 한 장 차이다. 프로에 갓 입문한 초단이 세계대회 8강에 들어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곳이 그곳이다.
검산험로 기산기림의 정상에 오르는 것은 이런 마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박정상은 얼마전 모 기자와 대화에서도 그 마음에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별호 하나가 있으면 좋겠다고도 했다.
나는 이 마음을 이해한다. 죽을 때까지 강해지겠다는 자신에 대한 다짐에는 바둑에 대한 무한 사랑과 헌신의 마음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