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부터 그들의 행마가 궁금해진다
벌써부터 그들의 행마가 궁금해진다
태백산 천제단 산상대국 이모저모
[배달바둑한마당] 김상우  2007-10-05 오후 07:26   [프린트]


이세돌, 송태곤, 조한승, 박정상, 강동윤….

위에 열거한 프로기사들에겐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무슨 공통점일까?
이들 모두가 태백산 천제단 대국을 두었던 기사로 대국 다음 해엔 하나같이 폭발적인 성적을 내면서 일류급 기사로 성장했다는 공통분모가 있다.

올해로 여섯 번째 행사를 가진 배달바둑한마당축제는 매년 10월 3일 개천절을 맞아 태백산에서 올리는 천제와 함께 정기적인 행사로 꾸준히 열리고 있다. 2001년부터 시작된 행사가 거듭되기를 벌써 6년째, 이제는 태백시에서 별도 시 예산을 책정할 정도로 탄탄히 자리매김을 했고 그 덕에 배달바둑한마당축제는 팬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이름이 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지금까지 다섯 번의 대회가 치러지는 동안 태백산 천제단대국은 재미있는 공식이 이어져 오고 있다.
2001년 1회 대회 때 이세돌 3단이 산상대국을 두고 난 그 다음 해, 후지쯔배 우승과 국내기전 2관왕에 오르는 뛰어난 성적으로 바둑문화상 ‘최우수 기사’로 선정되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2회 대회를 치렀던 송태곤 3단도 2003년 후지쯔배 준우승, 바둑왕전 우승 등 각종 기전에서 폭발적인 괴력을 발휘하며 팬들에게 ‘소년장사’란 애칭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한두 번이라면 우연이지만 이후로도 이 공식이 이어졌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3회 대회엔 조한승 7단이, 4회에는 박정상 5단이 후지쯔배를 우승하면서 그 공식을 깨뜨리지 않았다. 작년 5회에는 강동윤 4단이 전자랜드배를 품에 안으며 생애 첫 본격기전 우승이란 기염을 토해내 천제단 대국의 특효를 여지없이 증명해주었다.

이런 효험이 5년 동안 지속되기에 이르자 대회 관계자들의 자부심도 엄청나다. 5년 동안 이 대회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오고 있는 태백바둑협회 장성일 회장은 “태백산의 정기가 우리 기사들에게 좋은 성적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 기사들 사이에 천제단 대국을 갖기 위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진 않을까 걱정되기도 한다.”며 재미있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아무튼 이런 공식이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천제단 대국의 주인공은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이 아닌가.
팬들 역시 잘 알다시피 두 기사들의 올해 성적은 예전만 못하다. 이창호 9단이야 왕위전-중환배 우승 등 올해 성적이 나쁘다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의 건강 문제가 크게 대두되는 상황에서 전성기가 지났다는 등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는 시기다.
최철한 9단도 지난 GS칼텍스배를 이세돌 9단에게 빼앗긴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고 침체일로를 걷고 있어 두 기사의 천제단대국은 기묘한 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태백산을 올라가는 두 기사의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최철한 9단은 일행을 제치고 가장 먼저 정상에 도달할 정도로 다람쥐와 같은 날렵함을 과시해 혀를 내두르게 했다.
평소 테니스와 골프 등 운동을 즐겨하는 이창호 9단 역시 험준한 산길을 거침없이 올라 기자에게 사진 찍을 타이밍을 잘 주지 않았다. 천제단까지 올라가는 동안 등산객들은 이창호 9단을 알아보고 꽤 귀찮게(?) 했다. 사인공세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정상에 오르기까지 모두들 반가움을 드러냈다. 이창호 9단은 등산객들 하나하나 사진을 같이 찍어주면서 싫다는 기색 한 번 내지 않은 채 팬들에게 일일이 인사를 전하는 등 대가의 면모를 풍기기도 했다.

천제단에 올라가서도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의 인기는 식을 줄 몰랐다. 많은 등산객들이 사인요청과 사진 찍기를 원했고 두 기사 모두 대국이 시작될 때까지 등산객들과 함께 하며 즐거워했다.
어느 한 60대 등산객은 이창호 9단에게 “요즘 건강이 좋지 않다 하셨는데 태백산 정기를 듬뿍 받아 돌아가셨으면 합니다. 이창호 9단님 바둑을 잘 보고 있어요. 항상 건강하시고 건승하세요.”라며 덕담을 건네자 이창호 9단 역시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하며 화답하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정겨움이 가득했다.

천제단대국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시작됐다.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에게 전통의상인 두루마기와 관을 씌워줬을 땐 주위에서 웃음이 터지기도 했는데 사연인즉 관 크기가 작아 머리에 맞지 않아서였다.
“지금까지 천제단에 올라오신 프로기사님들 중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네요. 역시 머리를 많이 쓰시는 대기사님들이라 확실히 다른가봅니다.”며 태백바둑협회 관계자가 농담을 건네자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대국은 한 폭의 그림처럼 멋진 자태를 만들어냈다. 해발 1500M가 넘는 태백산인지라 산 정상에는 짙은 구름이 깔려있어서 바둑을 두는 두 기사의 모습은 마치 신선의 그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한 수 씩 주고받는 두 기사의 머리 위에서 태백산의 정기가 한껏 뿌려지고 있다는 느낌이 절로 든다.

이창호 9단의 승리로 대국이 끝났지만 승리와 패배는 의미가 없었다. 국후 짤막한 복기를 마친 두 기사는 ‘지금까지 태백산에 올라와 대국을 갖은 기사들은 다음 해에 한결같이 좋은 성적을 내고 있는데 어떤 느낌인가?’라는 질문에 모두 “지금까지 그래왔다면 나 역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겠는가. 다음 해에 팬들에게 더 좋은 모습으로 보답해드리고 싶다.”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였다.

태백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서일까? 내려오는 두 기사의 발걸음 역시 가볍다. 가을 냄새가 물씬 풍겨오는 태백산 정취에 이창호 9단과 최철한 9단이 흠뻑 녹아든 모습을 보면서 벌써부터 그들의 행마가 궁금해졌다. 내년에는 과연 어떤 활약을 보여줄까? 관계자들의 입심을 빌리자면 누가 되던지 세계대회 우승은 따 논 당상이라는데 5년 동안 보여줬던 태백산 정기의 대단한 힘에 이젠 일체의 의심도 가지 않는다.


천제단 대국과 함께 당골광장에서 벌어진 아마추어 대회에선 임진영 아마7단이 주장으로 뛴 천제단 팀이 우승을 차지했다. 임진영 아마7단과 김정우 아마7단, 김세영 아마6단 등 시니어와 주니어 멤버들이 화합을 이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한 천제단팀은 재미있게도 대회 관계자의 예언이 정확히 적중돼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했다. 전날까지 팀 이름을 정하지 못하다가 대회 관계자 한 분이 코치해 준 말이 그대로 들어 먹힌 것이다.
“내가 우승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줄까? 팀명을 천제단으로 정하면 백발백중으로 우승하니까 팀명 안정했으면 꼭 이걸로 하라고. 내가 장담할께!”라고 호언하더니 정말 그 말대로 이뤄진 것이다.

그 말의 효험을 제대로 받았는지 천제단 팀은 5전 전승으로 우승을 결정했고 주위의 시샘을 한 몸에 받았다. 주장인 임진영 아마7단은 다음 대회에서도 ‘천제단’팀으로 명칭해 팀을 꾸리겠다고 밝혀 대회 2연패를 노리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불태우기도.

말 그대로 행사는 하나의 축제로 시작해 하나의 축제로 끝이 났다. 아마추어 대회가 모두 끝난 후에는 대회에 출전한 선수들 모두가 다함께 모여 식사를 했고 그동안 서로들의 사는 얘기가 궁금했는지 이야기꽃은 끊이지 않았다.


지면을 빌어 대회관계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인터넷과 신문 등 취재단들과 선수단들에게 아낌없는 배려를 해주신 관계자 분들과 매년 배달바둑한마당축제를 위해 애쓰시는 태백바둑협회 임원들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배달바둑한마당 축제가 해를 거듭할수록 더욱 발전되고 큰 대회로 가꿔지길 바라는 맘이다. 내년에는 어떤 기사가 태백산 천제단을 찾을까 궁금하다.

‘내년에는 조국수님과 서명인님을 초정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에 귀가 쫑긋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이창호-최철한 9단의 태백산 천제단 산상대국 기보는 월간바둑 11월호에 이창호 9단의 자전해설로 상세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바람맞은날 |  2007-10-06 오후 8:45:00  [동감0]    
아직까지는 단언할 수 없는 듯. 나이도 어리니까 조금 더 지켜보져. 언제 짠짜라하고 다시 부활할지 모르잖아요.
드리대바 |  2007-10-06 오후 7:32:00  [동감0]    
외 그만 도?
치우2세 |  2007-10-05 오후 8:44:00  [동감0]    
태곤이 생각만 하면 마음이 아픕니다. 창호의 뒤를 확실히 이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다른 분야로 진출한다면 그 분야에서도 소년장사처럼 힘을 발휘하길 기대해 봅니다. 학업이든, 사업이든.
간달프2 송태곤 바둑그만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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