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왜 부안으로 갔나?(한국기원을 위한 변명)
바둑, 왜 부안으로 갔나?(한국기원을 위한 변명)
[전국체전바둑대회] 손종수  2003-10-18 오후 01:59   [프린트]


“왜 하필이면 부안(扶安)에서?” 많은 사람들이 한국기원을 향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직 정식 가맹단체는 물론, 준가맹단체 가입조차 하지 못한 바둑이 전북 전주에서 개최된 제84회 전국체전의 전시종목으로 채택되었다는 것은 바둑인이라면 누구나 환영할 일이고 이 대회가 성사되기까지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의 오랜 노고를 치하해야 마땅한 일이지만 하필이면 그 개최장소를 핵폐기물 처리장 유치 문제로 관, 민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부안으로 정했느냐는 것이다.

당연한 질문이다. 이 대회를 총괄한 집행부(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 역시 그러한 사정을 모르지 않을 터인데 아니,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터인데 어떻게 해서 부안행을 결정하게 된 것일까. 사실,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는 바둑이 전국체전 전시종목으로 결정된 이후 줄곧 전주에서 개최되기를 희망해왔고 전북체육회의 부안 개최를 강력하게 반대했었다.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가 마지막에 주장을 굽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부안 개최를 제안한 전북체육회에 거절하기 어려운 명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 각자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10개월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대한체육회 준가맹 경기단체조차 가입되지 않은 바둑이 어떻게 제84회 전국체전에 참여종목으로 결정될 수 있었는지(시범종목이나 전시종목일지라도 전국체전의 참여종목이 되려면 먼저 대한체육회 정식 가맹 경기단체가 되어야 한다) 그 전후 사정을 알아야 한다.

한국기원은 2001년 4월 25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바둑, 올림픽으로 가는 길 가능한가’라는 주제의 세미나를 통해 오랜 숙원사업인 ‘바둑의 체육전환과 올림픽 가입’에 박차를 가했다. 9월 15일 100만인 서명운동 발대식을 가진 뒤 불과 45일만에 서명자 100만 명을 돌파, 국민적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성과를 거둔 바 있으며 2002년 1월 25일 대한체육회로부터 인정단체를 승인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체육전환과 올림픽의 길은 여전히 멀고 험하다. 그 첫 번째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단체 가입만 해도 인정단체→준가맹단체→정가맹단체의 절차를 밟아야 하는데 운 좋게 2004년에 대한체육회 이사회를 의결을 거쳐 준가맹단체가 된다고 해도 정가맹단체가 되기 위해서는 모범적인 준가맹단체 활동을 하며 3년을 더 기다려야 한다.

3년 뒤 2007년에 무조건 정가맹단체가 되는 것도 아니고 소수 이사회가 아닌 전체 대의원 총회의 의결을 거쳐야 한다. 대한체육회의 규정대로라면 최소한 2007년까지는 올림픽은커녕 대한체육회 정가맹단체 가입도 어려우며 당연히 바둑의 전국체전 참여도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한국기원이 체육전환 선언 이후 첫 번째 숙제로 안겨진 전국체전 참여로 고심하고 있던 2003년 1월, 전북도청 군수회의에서 그 해결의 실마리가 풀렸다. ‘부안을 바둑의 메카로 만들겠다’는 취임공약에 따라 크고 작은 바둑행사를 잇달아 부안에 유치해온 김종규 부안군수가 전북에서 개최될 제84회 전국체전에 바둑을 전시종목으로 채택할 것을 제안했고 전북체육회에서 이를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로서는 이미 한중일 청소년 바둑대항전과 조남철배 어린이 바둑대회, 왕위전 도전기를 유치하고 바둑공원, 바둑박물관 건립추진 등 바둑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온 김종규 군수에게 또 한번 외면할 수 없는(언젠가는 갚아주어야 할) 빚을 진 셈이다.

그러나 전시종목이라도 정가맹단체의 자격을 갖춰야만 체전 참여가 가능하다는 대한체육회의 규정 때문에 전북도청(전북체육회)의 결정만으로 모든 일이 마무리될 수는 없었다. 한국기원은 바둑이 2003년 1월 전북도청 군수회의에서 전국체전 전시종목으로 발의된 이후 7월까지 그 채택을 위해 수차례에 걸쳐 대한체육회를 방문, 협의했으나 좀처럼 확답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대한체육회의 일관된 주장은 ‘당장 바둑을 전시종목으로 채택하는 건 다른 경기단체들의 거부감이 너무 크다. 우선, 체전의 문화행사로 출발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것이었다.

여름이 다 지나도록 수그러들지 않았던 대한체육회의 주장은 전혀 예상 못한 상황에서 ‘전시종목 채택 승인’으로 급선회하게 됐다. 한국기원의 입장을 거들어준 것은 엉뚱하게도 ‘이번 체전에 바둑과 더불어 인라인스케이트, 게이트볼이 정식종목으로, 산악은 시범종목으로 참여하게 된다’는 8월 12일자 한겨레신문의 오보(誤報)였다.

바둑의 전국체전 채택은 이때부터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8월 21일 한국기원이 최종 참여계획안을 제출하고 8월 27일 대한체육회가 바둑을 전북체전 전시종목으로 채택할 것을 확정했다. 남은 문제는 시간. 체전 개막을 불과 한달 앞두고 참여가 확정됐다는 말은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가 그 한달 안에 선수단 구성, 개최장소 및 선수단 숙박 등 세부적인 사항까지 모든 논의를 끝내야 한다는 말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전국체전의 주최는 대한체육회이며, 주관은 전북체육회, 전북교육청인데 이 중에서 대회장소와 관련된 결정은 전북체육회에서 결정한다는 것이다. 한국기원은 대한체육회로부터 대회장소가 부안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각 이의를 제기한 뒤 전주 개최를 희망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대한체육회 역시 한국기원의 이의제기에 공감을 표명해 전주시내의 모 대학 체육관을 대회장소로 섭외하고 선수단 숙소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대회 개최 2주 전 전북체육회 이사회에서 전격적인 부안 개최 결정이 내려졌다.

전북체육회의 입장은 ‘그동안 부안군이 바둑의 메카로 거듭나기 위해 여러 가지 바둑관련 사업을 추진해왔고 애초에 바둑을 전북체전 전시종목으로 채택하자고 발의한 곳 역시 부안군이므로 대회장소는 부안군으로 결정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이었다. 전북체육회에 수차례에 걸쳐 부안 개최 불가의 이유를 밝히며 장소 변경을 희망했음에도 이와 같이 결정된 것은 지극히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한국기원으로서는 바둑이 체전의 전시종목으로 채택되는 기회를 포기할 수 없었다. 정가맹단체만이 참여가 가능한 체전에 전시종목이라도 참여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한국기원이 대외적으로 정가맹단체에 준하는 위상을 획득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얻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거니와 한국기원과 전북바둑협회는 다른 곳에서 대회를 개최할 수 있었는데도 부안에서 강행한 것이 아니다. 한국기원이 부안의 정서를 얼마만큼 고려했느냐 하는 것은, 선수단 구성을 끝내놓고도 개막 하루 전까지 긴급 대책회의를 열어 대회를 포기할 것인지, 진행할 것인지를 고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북체육회의 부안 개최 결정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만큼 이번 대회가 올림픽 입성을 꿈꾸는 한국기원의 향후 행보에 다각적인 영향을 끼칠 행사였기 때문이다. 바둑이 전국체전의 참여종목으로 채택되는 일은 올림픽 입성뿐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1천여 어린이바둑교실은 물론, 한국 바둑계 전체의 발전을 좌우하는 중대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이것으로 재정이 열악한 한국기원이, 대회경비를 전담하고 부안군민의 정서와 충돌하는 부담까지 끌어안으면서 부안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설명이 된 것으로 생각하고, 이번 대회에 부안개최 이외의 문제는 없었는지 살펴본다.

전국 시도선수단이 숙소로 정해진 채석강리조트에 도착한 날부터 일부 선수단장 또는 감독으로부터 ‘숙소가 비좁고 대회장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항의를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 문제 역시 부안군민의 정서와 무관하지 않다.

당시 부안 시내에서는 매일 밤늦게까지 500여 명이 모이는 촛불시위가 있었고 유일하게 바둑선수단만이 부안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한국기원으로서는 대회장(부안 예술회관)에서 가까운 시내에 숙소를 정하는 것은 시위군민들과 선수단이 충돌할 위험이 있다는 우려를 갖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대회의 안전운영에 책임이 있는 한국기원이 채석강리조트를 숙소로 택한 것은, 선수단의 안전과 선수단의 대부분을 구성하는 어린이와 여성들의 숙박환경을 고려해 모든 선수가 안전하게 한 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곳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회당일 선수단 및 관계자들이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게 된 문제는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직접 경험한 것이기 때문에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한국기원은 대회 전날, 부안경찰서로부터 시위예정 소식과 대회당일 선수단이 인근식당을 이용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고 대회장 외부에서의 식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 여러 업소를 수배하여 컵라면과 빵, 음료수 500인분을 준비했다.

그러나 행사당일 배달차량이 시위대의 저지로 예술회관 내 반입이 불가능해졌다. 집행부는 경찰의 협조를 얻어 부안경찰서 주차장에서 경찰의 도시락차량과 함께 이동하여 대회장으로의 재차 진입을 시도했으나 그마저 봉쇄, 사상초유로 점심을 거르고 대회를 강행하는 부끄러운 기록이 만들어졌다.

이미 부안군민의 정서를 알고 있었으니 여기서 다시 그분들을 탓하고 싶지는 않다. 집행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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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정신 |  2003-10-21 오후 8:31:00  [동감0]    
이런 글 올려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노력해야겠지요
박하늘이 |  2003-10-21 오전 10:35:00  [동감0]    
이렇게 좋을수가.. 그러나, 아직도 한국기원 내에서는 몇몇 인사가 바둑의 대한체육회 가입을 반대한다고 들었는데, 이제 그만 하시지요..(이기주의)
호야씨 |  2003-10-20 오후 11:36:00  [동감0]    
이제 중요한건 앞으로의 일정입니다 차근차근 심도있는 계획으로 목표를 이루셔야죠..발전하는 한국의 바둑환경에 사이버오로가 첨병이 되시길..
호야씨 |  2003-10-20 오후 11:31:00  [동감0]    
여러가지 악조건속에서 일단 전국체전의 전시종목으로서의 바둑을 전 국민에게 알린 모든 관계자분들..애 많이 쓰셨습니다 손종수님의 진행과정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나니 이해가 됩니다
토리영 |  2003-10-18 오후 9:20:00  [동감0]    
사정(혹은 이유)이 있었겠지만, 전북체육회는 좀 더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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