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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해당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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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 내려가 있던 후배 P가 오랜만에 찾아왔다. 그는 독특한 사람이다. 신춘문예로 등단한 시인이지만 문예활동보다는 고건축(古建築) 분야의 사진작업에 더 관심이 많아 전국 사찰을 순회하며 개, 보수 현장 사진작업으로 생계를 꾸려간다. 말로는 '집개(집을 지키는 개·고정급료를 받는 회사원을 지칭하는 듯)보다 들개(그렇다면 이쪽은 프리랜서겠지)생활이 마음에 들어서…'라는데 글쎄, 그의 말대로라면 나는 자유로운 들개생활을 청산하고 고달픈 집개생활로 돌아온 바보가 된다. 아무튼, 저녁 무렵 P와 부산 LG배부터 함께 움직였던 프로기사 M형과 회포를 풀기 위해 회사 근처의 식당엘 갔다. 식당은 앉을 곳이 눈에 잘 띄지 않을 만큼 매우 붐볐다. 대체로 사람의 입맛이란 비슷해서 내 입에 '맛있는 집'이면 또 다른 사람의 입에도 '괜찮은 집'이 되는 법이다. 종업원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구중궁궐을 돌아들 듯 식당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8인상과 4인상이 준비된 방에 자리를 잡았다. 옆좌석의 8인상에는 누군가 예약한 듯 물수건과 수저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우리는 그 옆으로라도 앉을 수 있게 됐다는 안도감에 만족하며 종업원에게 주문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으로 조촐한 만찬의 뚜껑을 열었다. "언제 올라온 거야?" "내일이 아버님 기일이라서요, 곧 다시 내려가야 됩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로 10분이나 흘렀을까. 주문한 음식대신 지배인이라는 중년여자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섰는데 이들보다, 무리 중에서 흘린 말이 먼저 내 귀로 들어온 것이 문제의 발단이 됐다. "우리 11명인데 예약을 안 해서…. 자리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첫 번째 문제는 우리 옆 좌석의 8인상에 11명을 앉히려는 지배인의 무리에서 비롯됐다. 천박한 셈속이 앞선 것이다. 그러나 '내 돈 내고 먹는 권리'를 가진 11명이 별다른 의무감도 없이 8인상에 앉을 리는 없다. 당연히 이들은 '에이, 너무 좁아서 안되겠네. 다른 데로 가지.'라며 방으로 들어서던 발길을 돌렸고 일련의 상황을 지켜본 우리는 괜한 송구스러움을 가지게 됐다. 그때 지배인이 웃으며 우리에게 다가섰다. "저기, 이 자리는 원래 저 손님들이 예약하신 자리거든요. 조금 손님 수가 늘어난 것 같은데 죄송하지만 다른 자리로 옮기시면 안될까요?" 무리 중 누군가의 말처럼 이들은 예약을 하지 않았다. 태연히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보니 지배인은 내가 그 말을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모양이다. '얄팍한 말로 사람을 기만하다니…' 발끈, 노여움이 솟구치려는 순간 M형이 먼저 웃으며 일어섰다. "아니, 뭐 괜찮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 의외의 싹싹한 양보에 고개를 든 양심의 가책일까. 지배인은 필요 이상으로 허리를 굽히며 사례했다. "아이고, 고맙습니다. 홀에도 좋은 자리가 있습니다. 그리로 제가…" 노여움에 앞선 이해와 양보. M형이 보여준 마음의 여유는 곧 P와 나의 마음에도 넉넉한 여백을 만들어주었고 우리는 웃는 얼굴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첫 번째 문제 해결. 여기까지는 모두가 좋았는데…. 새로 앉은 곳은 홀 한구석에 놓인 TV 앞에 길게 늘어선 자리였다. 때마침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플레이오프 LG와 기아의 최종 5차전이 중계돼 우리는 본의 아니게 뭇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됐다. 별로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나 곧 M형과 P가 주고받는 이야기에 묻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게 됐으니 여기까지도 그런 대로 괜찮은 셈이다. 그런데 종업원이 밑반찬을 가져다줄 때 두 번째 문제가 발생했다. 다시 지배인이 나타난 것이다. 또 한번 웃음 그득한 얼굴로(그 가식적인 표정이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손님, 죄송한데요, 한번만 더 양보해주실 수 없을까요? 예약한 손님이 넘쳐서…." 화를 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리가 들어설 때마다 예약한 손님이라니…. 거짓임을 잘 알고 있는데. "이봐요, 아까도 예약한 손님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양보했으면 됐지, 또 일어서라는 겁니까?" 지배인은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얼버무렸다. "아니, 그게…. 그때는 저희가 자리를 안내해준 게 아니지 않습니까?" 아까 그 무리가 예약한 손님은 아니지만 누군가 예약한 자리였고 너희가 그 자리에 앉은 것은 우리가 안내한 것이 아니라 너희 스스로 찾아 들어가 앉은 것이 아니냐. 그런데 이번에 진짜로 아까 그 자리를 예약한 손님이 왔으니 자리를 양보해주었으면 좋겠다. 뭐, 대충 그런 말이었다. 지배인은 당황한 탓에 또 한번 자충수를 두었다. 종업원이 우리에게 자리를 안내했다는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차가운 얼굴로 지배인의 자충수를 매섭게 응징했다. "이거 봐요, 좀 확인하고 얘기를 하세요. 우리는 종업원이 안내해줘서 그 자리에 앉았던 거라고요. 그리고 저 손님들, 정말 예약손님 맞아요? 내가 한번 물어볼까요?" 지배인은 앞서와는 전혀 다른, 대찬 반응에 움찔, 놀라 별 말도 못하고 주춤 물러섰다가 이내 새로 들어선 무리를 이끌고 다른 좌석으로 피하듯 달아났다. 그때였다. 불현듯 혼잣말과 함께 해당화가 떠오른 것은. "아아, 정말 싫다. 이 동네…. 해당화가 그리워지네, 해당화가…."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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