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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다시 베트남에서 온 편지
3월, 다시 베트남에서 온 편지
[해외통신] 이강욱(프로기사)  2021-03-29 오후 04:24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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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강욱과 베트남 소녀기사 하꾸윈안.


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활동 중인 이강욱입니다.

오랜만에 베트남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연초부터 신민준 9단의 엘지배 우승, 신진서 9단의 농심배 5연승 등 고국에서 전해오는 기분 좋은 소식이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친 제 베트남 생활의 시름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베트남 학생들까지도 연일 중국을 상대로 좋은 모습 보이는 신진서, 신민준 이른바 '양신'에게 푹 빠져버렸답니다.

약 한 달 전쯤입니다.

유이 선생님으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3월에 열리는 센코배에 베트남 대표로 하꾸윈안이 출전하게 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전까지 훈련 시켜줄 수 있을까요?”

▲ 15세 소녀, 하꾸윈안

제 글에서 몇 차례 소개해 드렸는데 하꾸윈안은 ( 지금부터 ‘안’ 으로 쓰겠습니다.) 제가 열심히 가르치며 키우는(?) 베트남 바둑의 미래라고 할 수 있는 재목입니다.

15세 여자 선수지만 이미 여자 선수의 수준을 넘어 베트남 남자 정상권 선수들과도 비등하게 버텨낼 정도까지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프로기사에게 2~3점 정도로 한국에서 널리 알려진 타이젬에서는 강7단~약8단 정도의 수준입니다. 물론 한국에서 보시기에는 턱없이 부족할 수준이지만 열악한 베트남의 바둑환경을 고려한다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베트남은 바둑 저변이 부족하여 한국처럼 다양한 상대를 만나기가 매우 어려운 지경임에도 이미 안이는 동년배를 뛰어넘어 베트남 전체 여자 선수들을 따져 봐도 호적수를 찾을 수 없는 월등한 실력입니다.

인터넷 대국을 통해 부족한 실전을 채운다고는 하지만 프로지망생들과 같은 다양한 상대, 동년배 라이벌과의 경쟁 등을 통해 발전해 가는 한국과 같은 선순환 구조는 꿈도 못 꾸는 형편입니다.

간간이 인근 태국, 싱가포르에서 개최됐던 동남아 대회들마저도 코로나의 영향으로 잠정 연기되어 실력을 자세히 평가받을 기회조차 전혀없는 형편이고요.

안이에게도 큰 동기 부여가 필요한 때에 센코배 참가 소식은 선생인 제게도 적당한 자극이 되었습니다. 주 3회 2~3시간의 정규 수업 외에 휴일에도 강도 높은 벼락치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미리미리 공부시켜서 준비 좀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안이에게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며 채찍질하곤 했지만안이의 집이 너무 멀고 -교통이 좋지 않아 자전거로 왕복 2시간 거리입니다.- 학업도 병행해야 하니 제 마음처럼 쉽지는 않은 형편이라...

그래도 내심 안이의 실력에 대해서 자신은 있었습니다. 한, 중, 일, 대만을 제외한 동년배 여자선수라면 '누구와 두어도 이긴다!' 는 자신감이지요.

그동안 열심히 또 꾸준히 준비한 안이의 실력을 펼칠 수 있는 무대를 손꼽아 기다려왔는데 이번 센코배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얼마 전 우리 최정 선수의 아쉬운 패배로 막을 내렸던 센코배는 한 · 중 · 일 · 대만 프로들이 참가하는 메인 대회 이외에도 올해는 일본 신예 최강전 (한국에도 잘 알려진 스미레 선수 참가), 그리고 안이가 출전하는 한 · 중 · 일 · 대만을 제외한 8개국이 모인 세계 아마 여류 최강전이 펼쳐졌습니다.

미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유럽 3 )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동남아 4)
프로제도가 있는 미국,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바둑 강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같은 동남아지만 베트남에 비해 비교 되지 않을 정도로 바둑 저변이 넓은 싱가폴, 태국 등
어느 한 곳 만만한 상대가 보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미국 대표는 아마 7단의 기력과 함께 중국식 이름이 표기되어있어 (중국계 미국인) 더욱 저를 긴장케 했습니다. 게다가 '제발 미국만 피하자' 는 저의 안일한 생각을 꾸짖듯 안이의 첫 판 상대는 미국선수로 결정되어서 대회를 앞둔 호찌민시 바둑클럽은 긴장감이 더욱 고조되었습니다.

더구나 안이에게 센코배는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싱가폴, 말레이시아, 베트남, 태국, 동남아 4개국이 초청받아 4강 토너먼트가 펼쳐진 2019년 센코배에서 13세의 대회 최연소 선수로 참가하여 첫판에서는?태국선수에게 승리했지만 결승인 싱가폴 선수에게 승리 직전 무너진 안타까운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 지난 2019 센코배 기념촬영.

올해에도 15세 최연소 참가자, 최근의 모든 국제대회가 그러하듯 센코배 또한 비대면 온라인 대국으로 진행 되었습니다.

가뜩이나 바둑에는 관심이 없다시피 한 베트남에서 이번 센코배는 몇몇 바둑팬을 제외하면 대회가 있는지 조차도 모르는 대회입니다.
한국에서도 최정, 위즈잉 선수 등 세계적인 선수들이 출전하는 메인 이벤트에 많은 관심이 쏠리며 이번 세계 아마 여류 최강전은 조금 쓸쓸하게(?) 시작되었습니다.

저 역시도 베트남이 아닌 한국에 있었더라면 최정VS위즈잉 매치를 기다렸을 지도 모르겠지요? ^^

대국장은 저와 항상 바둑수업을 함께 하는 호아루 체육센터에 마련되었지만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대국 모습을 촬영하고 대국자 이외의 출입을 삼가야 하기에 저와 유이 선생님, 그리고 응원단은 바둑판을 들고 인근 커피숍에 검토실을 차렸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8강전.

미국 7단으로 표기된 중국 이름의 미국 대표선수를 맞은 안이는 초반 포석부터 압도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수읽기를 집중적으로 훈련시킨 덕분인지 돌들이 부딪히기 시작하자 더욱 차이를 벌려가며 베트남 검토진을 들뜨게 한 것도 잠시...

세밀함이 필요한 끝내기 부분에서 거듭된 실수로 보는 이의 마음을 졸이게 하더니 그래도 결국 1.5집승.
제일 강할 거라고 예상했던 미국 선수를 이기며 우승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했습니다.

▲ 안이의 4강 상대는 말레이시아 선수를 꺾은 독일 선수.

8강 대국 내용을 살펴보니 그리 어렵지 않은 상대라 여겨져서 간단한 주의사항만 일러두고 다시 커피숍 검토실로.... 4강 독일선수와의 초반 또한 쉽게 흘러갔고 결승 상대는 누구일까? 를 살피던 중 안에게 큰 의문수가 등장했습니다.
더하여 약하다고 생각했던 독일대표의 착점들은 점점 정확해지고 있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안이 답지 않은 실수들이 계속됐고 급기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달아 결국 저와 모두는 바둑판을 정리하는 정도에 이렀습니다.

'아직은 실력이 부족한 걸까?'

'역시.. 세계는 넓고 강자는 많구나'를 실감하며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유이 선생님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쉽게 마무리 할 수 있었던 독일선수의 무리수가 등장하며 대형 수상전이 벌어졌는데 드라마틱하게도 안이가 1수 빠른 수상전 이였습니다.
행운의 여신이 베트남을 향해 손짓하는 듯 하더군요.

대망의 결승전!

베트남의 결승 상대는 다름 아닌 태국!!

역사적으로나 그 어떤 것으로도 안좋게 얽힌 문제가 없다는데도? 베트남은 왠지 태국에게 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데 하필이면 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만나게 되다니...

"결승과 태국이라는 부담은 내려놓고 최대한 마음 편히 대국해라."
다시 커피숍으로... 왔다갔다 3번째.. (커피만 3잔째네요 ^^ )

마치 내 시합같은 긴장감과 함께? 대국 시작.
걱정과는 달리 기대 이상의 모습으로 초반을 압도.

오히려 태국선수가 부담을 느낀 건지 굳어있는 모습인데 안이는 결승이라는 부담은 없는 듯 평소보다 더 좋은 모습입니다. 결승이 이렇게 쉽게 끝나도 되나? 우승이 이렇게 쉬운 거였나? 하며 마음 놓고 있을 때 쯤 안이의 무리수가 등장...

태국 선수의 수읽기가 조금만 더 정확했더라도 너무나 위험했을 그 순간에 오히려 큰 실수가 나와서 어려움 없이 안이가 승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총 3판의 대국 중 결승전이 가장 내용도 좋고 승리도 쉽게 할 수 있었네요. 유이 선생님과 베트남 응원단은 주위의 이목은 아랑곳없이 박수치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큰 소리로 환호! 영문을 모를 카페의 손님들은 중요한 스포츠 경기가 있었나 하셨을 듯..

이렇게 2021 센코배 세계여류아마 최강전은 베트남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비록 한,중,일 대만이 빠진 아마추어 대회이지만 세계바둑대회의 우승국이 베트남이라는 사실은 센코배를 관심있게 지켜본 전 세계 바둑인들 에게도 큰 충격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베트남 바둑 역사에 있어서도 역대 최고 성적이자 세계대회 첫 우승이라는 발자취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철저히 바둑 변방으로서 자국에서조차 외면받았던 바둑이 베트남에서 세계대회 우승이라는 성과를 이뤄낸 것은 제게도 적잖은 충격(?)이었습니다.

10여 년 전 처음 베트남으로 파견을 결정하며 막연히 머릿속에 구상했었던 여러 목표...... 프로기사 배출, 세계대회 우승 등등 그 중 하나였던 세계대회 우승이 실제 제 앞에 펼쳐지는 짜릿한 순간이었으니까요.

베트남으로 파견 나와 보급을 시작하며 인연을 이어 나간 지 10년 만의 쾌거입니다.

▲ 인터넷 대국 중인 하꾸윈안.

절대 쉽지 않은 도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분의 성원에 힘입어 이뤄낸 성과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이에게 단수부터 시작해서 바둑의 기초를 닦아주신 유이 선생님.

안이의 어린 시절에 해외유망주 초청사업으로 바둑 선진국 한국 바둑유학의 길을 열어주신 한국의 문체부, 한국기원과 LS배 베트남 전국바둑대회의 후원으로 안이가 목표를 갖고 도전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주신 LS 구자홍 회장님.

모두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많은 분들의 후원과 응원으로 오늘 이 쾌거를 이뤄낸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은 아닙니다.

결승에서의 태국 대표선수도 16세의 어린 실력자인데 그저 내 제자가 최고라는 자만에 빠져있던 제게 큰 경각심을 갖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제부터는 한, 중, 일, 대만 등과도 경쟁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꼭! 이루어 내고야 말!

외국인 선생님의 서툰 베트남어 수업도 눈치코치로 이해하려 애쓰고 바둑수업을 위해 먼 거리를 자전거로 오가며 열심히 잘 따라와 준 안이에게 고맙고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하며 꾸준히 발전하는 안이의 모습을 기대해 봅니다.

끝으로 베트남 바둑에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신 여러분!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바로가기 ○● 사이버오로 공식유튜브채널 [오로바둑TV]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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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신봉 |  2021-04-04 오후 7:31:00  [동감0]    
몇년전 하계 방학을 이용한, 해외유망주를 초청하여 교육시키던 문체부의 사
업은 지속되어야 하지않을까요? 바둑세계화에 크게 이바지할 것 같은데...
이번에 우승한 베트남 소녀도 그렇게 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큰 꿈을 그리며
정진하지 않았을까요? 당장은 코로나 사태 때문에 어려움이 예상되는군
요.
tjddyd09 |  2021-04-02 오후 7:11:00  [동감0]    
본문 내용중 타이젬 7~8단 사이가 프로기사 에게 2 ~ 3점 이라 했는데 제가 타이젬 7단 인데 프로 에게 3점에 못 둡니다, 4점은 놔야 비슷 해여, 타이젬 8단 강 중에서나 두점에 두겠죠,
타이젬 7단 약합니다, 프로에 무조건 넉점 접혀요,
Resale |  2021-04-01 오전 10:08:00  [동감0]    
이강욱 프로,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busa99 |  2021-03-31 오후 12:44:00  [동감0]    

바둑불모지 베트남에서 그것도 10년이나 변함없는 열정이 부럽군요. 대기만성 바랍니다.
미월령 |  2021-03-30 오후 11:42:00  [동감0]    
제자를 길러낸다는 것은 멋진 일이야.
노고를 축하하고 더욱 발전하기 바라네.
tjddyd09 |  2021-03-30 오후 11:06:00  [동감1]    
베트남에도 바둑 잘두는 어린이들이 있네요,
베트남에도 바둑이 널리 전파 되었으면 합니다,
하니리 |  2021-03-30 오전 9:36:00  [동감0]    
훌륭함다.Were very proud of you. Thanks!
가만놔둬 |  2021-03-29 오후 11:00:00  [동감2]    
사범님같은 분이 계셔 행복합니다.
조천일출 |  2021-03-29 오후 7:50:00  [동감1]    
고스트 바둑왕으로 번역됐던 히카루노 고를 읽는 기분이었습니다. 바둑만화로 만들어도 좋겠
다는 생각이 드는 감동적인 스토리네요. 잘 읽었습니다.
tjddyd09 김수장 사범님 안녕 하세영 !~~~~넙쭈욱 // 큰절 //  
대충대충 |  2021-03-29 오후 7:18:00  [동감2]    
오랜 기간 남을 위한 삶을 사는 이강욱 사범, 참으로 대단합니다.
단순히 바둑을 잘 두는 사람이 아니라 인품이 훌륭하기 작이 없습니다.
그간 내린 싹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 듯 합니다.
부디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기 바랍니다.
마음은영계 |  2021-03-29 오후 6:47:00  [동감2]    
참 훌륭하신 일을 하고 계시네요.
멀리서나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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