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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대결 이야기⑤ 불사조 조훈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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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으로, 기록으로 보면 90년대에 판판이 벌인 사제대결은 제자의 일방적 승리로 보인다. 제자에 의해 20년 만에 무관으로까지 전락한 조훈현 9단. 하지만 ‘순국산' 서봉수 9단이 끝없이 얻어터지면서도 오뚝이 같은 불굴의 투지로 전관왕 조훈현의 독주에 태클을 걸었듯이 조9단도 불사조처럼 투혼을 살랐다. 승부세계의 장강의 앞물결은 한번 흐르면 다시 거슬러오르지 못한다. 그 정도의 내상을 입으면 재기하지 못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조훈현 9단은 달랐다. 그는 확실히 특별한 승부사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담배를 끊고 틈날 때마다 북한산을 오르내리며 체력을 다졌다. 마음도 달리 먹었다. 지난 15년 세월 그는 아래를 굽어보았을 뿐 쳐다볼 일이 없었다. 90년부터 하나둘 타이틀을 내주며 실지(失地)하기 시작한 조훈현 9단은 92~95년 대회전에서 참패하며 대장정에 돌입해야 했다. 조9단이 향한 대장정은 세계대회였다. 해외 거점을 마련해 재기의 발판을 모색한 것. 국제무대 공략 전략으로 국내무대 재기한 스승 94년에는 사제대결(도전기) 도합 27번기에서 참패를 당하면서 국내 거점이 붕괴직전에 처했으나 5회 동양증권배와 7회 후지쯔배를 석권, 세계기전에서는 제자를 능가했다. 이 해에는 단체전인 진로배 우승까지 견인해 89년 우승한 응씨배를 포함, 세계최초로 세계대회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했다. ‘망명객' 소리를 들었지만 해외 거점을 기반으로 대대적인 항전에 돌입했다. 해외와 달리 여전히 제자에게 후달렸던 국내기전에서는 95년 초 12기 대왕전까지 내주며 20년 만에 단 하나의 타이틀도 갖지 못한, 무관의 수모까지 겪었던 조9단은 1년 만(96년 3월말)에 패왕을 탈환했고, 이어 5월 비씨카드배와 6월 기왕전까지 단숨에 치고들어가 국내기전 3관왕에 복귀하며 화려하게 재기했다. 96년에는 제자와 11승 13패로 대등한 접전을 펼쳤다.  ▲ 조훈현 9단은 94년 5회 동양증권배 우승에 이어 7회 후지쯔배까지 석권하며 세계기전에서만큼은 제자를 능가했다. 게다가 이 해에는 단체전인 진로배 우승까지 견인해 89년에 이미 우승한 바 있는 응씨배를 포함하면 세계최초로 세계대회 사이클링히트를 기록한 첫 기사가 되었다.
97년에는 다시 동양증권배를 우승했고 바둑왕과 배달왕기전을 추가하며 6관왕에까지 올랐다. 놀라운 분전이었다. 98년 11월에는 91년에 탈환했다가 93년 다시 0-3으로 내준 국수를 5년 만에 되찾기도 했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무리의 지도자는 늘 젊은 경쟁자의 도전을 받고 언젠가는 자리를 내주게 된다. 조9단 역시 자신이 키운 제자에게 일인자 자리를 빼앗겼다. 동물의 세계에선 리더 자리를 빼앗긴 왕은 그 순간 무리를 떠나거나 철저하게 도태되지만 조9단은 포기하지 않았고 사라지지도 않았다. 제자에게 숱하게 꺾이면서 더 강해졌고 아킬레스건이었던 끝내기 실력도 늘었다. 라이벌 서봉수와 경쟁하면서 늘었듯이 제자와 10년 전쟁을 벌이면서도 끝없이 의문을 품고 공부했던 것이다. 제 손으로 가르친 제자였지만 다시 배울 건 배웠다. 90년대 중반 대규모 사제대결에서의 과다출혈 이후 전략도 바꾸었다. 국내기전 공략은 게릴라 전법으로 대체했고 대신 상금도 많고 단기간에 치러 체력부담이 덜한 세계기전에 전력을 다했다. 이것이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대회에서 자주 우승할 수 있었던 숨은 동력이다. 다시 천재론을 들먹여 본다. 격투기 무대처럼 숨돌릴 틈 없이 돌아가고 있는 요즘 바둑세계에서 나이 예순에 이르도록 이처럼 짱짱하게 활약한 기사가 조훈현 말고 누가 있는지. 타고난 감각에 전류보다 빠른 두뇌회전, 치열한 승부근성 따위의 수사를 나열할 것도 없다. 라이벌로 거명되던 고바야시 고이치 9단도 녜웨이핑 9단도, 한참 연하인 마샤오춘 9단조차 존재감이 사라진 마당이다. 이 하나의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비록 도전무대에서 시나브로 비껴나고 있지만 조훈현이란 이름 석 자는 우리 가슴에 영원한 승부사로, 반상의 불사조로 남을 것이다. <월간바둑>  ▲ 다른 상대도 아닌, 자기 손으로 키운 제자에 의해 20년 만에 무관으로 전락하는 변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조훈현은 과연 위대한 승부사였다. 국내무대에서는 젊은 제자의 기세에 밀려 일인자 자리를 내주고 말았지만 대신 세계무대 공략으로 방향을 틀어 승부세계에서 환갑 진갑 지났다는 50대 나이까지 제2의 전성기를 누리며 포효했다. 사진은 95년 2월24일 한국기원에서 둔 제12기 대왕전 도전4국 종국 모습. 20년 만의 무관전락을 확인하는 마지막 공배메움 순간이다. 244수를 끝으로 계가를 하니 제자의 흑 1집반 승.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졌던 기사가 다시 창공을 치솟아올라 마지막까지 승부사의 불꽃을 불살랐으니...
 ▲ 90년대 한국바둑 10년 간을 관철한 사제대결을 한 컷으로 보여준 [월간바둑] 박수동 만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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