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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후원자’를 찾아라!
클래식 음악계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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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가 위기라는 말이 꾸준히, 심심찮게 들린다. 필경 여러 가지 원인과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7년 정유년(丁酉年)에는 어떻게 대처해야할까. 기존 관념과 관성에서 벗어나 생각을 달리 해 접근해볼 점은 없을까. 내 안에서 쉽게 답을 찾지 못한다면 타 분야에서 해법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관점에서 신년맞이 칼럼 두 편을 연재한다. 먼저 클래식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피아니스트 유영욱 교수에게 바둑계 후원사(자) 감소에 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기전 감소의 가장 큰 원인이 후원자 감소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클래식 음악계도 대중화 문제로 항상 고민하고 연구한다. 그들의 후원자들에 대한 올바른 대처와 관리는 특히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클래식 음악계는 어떻게 살아남으려 애쓰고 있을까?” 참고로, 이 글은 [월간바둑] 1월호에 게재한 칼럼이기도 하다. ○● 월간바둑 홈페이지 보기 ☜ 클릭 유영욱 교수는 세계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피아니스트로 소문난 바둑애호가다. 사이버오로 뉴스에 소개한 바가 있다. 연세대학교 음대 교수로 후학을 기르며 ‘클래식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그가 바둑애호가로서 바라본 시각’은 음미할만한 대목이 많다. -편집자 주- 유영욱 교수의 바둑애정에 대해 좀더 알고 싶으시다면 아래 클릭! ○● 유영욱 교수, "이창호는 바흐, 이세돌은 리스트" ☜ 클릭   ▲ 이런 때가 있었다. 결코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바둑은 20여년 동안 세계바둑대회를 휩쓸었다. 이 시기 중국과 일본은 감히 최강국의 자리를 넘볼 수 없었다. 사진은 제3회 진로배 시상식(1995년, 3연패, 사진 위)과 1993년 세계 4대기전(응씨배, 후지쯔배, 진로배, 동양증권배) 제패 축하연 장면. 이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까? 요즘 바둑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모두 바둑계 걱정으로 한숨이다. 사람마다 걱정하는 시각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아마 가장 본질적인 위기감은 최근 잇단 국내기전의 폐지에서 느끼는 것 같다. 이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프로기사들의 생활고(苦), 즉 소수 일류기사들을 제외한 대다수 기사의 수입문제가 주로 화제를 이뤘다. 그런데 ‘기전 폐지’라는 바둑계의 근간을 흔드는 이슈 앞에 이런 문제는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기전 폐지와 기사들의 처우는 언뜻 두개의 다른 문제 같지만, 후원금이라는 하나의 공통분모로 연결된다. 프로바둑계를 먹여 살리는 자금은 기전과 광고 유치를 통한 기업의 후원금이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는데, 기업이 후원의 규모를 줄이다 보니 중하위권 기사들의 대국 수입이 먼저 타격을 받게 되고, 기업이 그마저도 감당하지 않기로 할 때 기전이 폐지되는 것이다. 결국 두 문제(프로기사의 수입문제와 기전 폐지 문제)의 원인도 해결책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는데, 즉 후원금 흐름의 감퇴가 원인이고 후원금 흐름의 회복이 해결책인 것이다. 그럼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왜 최근 몇 년 사이 후원금이 꾸준한 감소 추세를 보여왔느냐?’일 것이다. 그 질문에 답하기 앞서 후원금을 제공하는 ‘후원자’라는 존재에 대해 먼저 생각해 보도록 하자. ‘후원자’란 무엇인가? ‘후원자’ 하면 언뜻 스폰서가 떠오르지만 사실 중대한 차이가 있다. 둘 다 재정적 지원을 한다는 면에서는 같다. 하지만 ‘스폰서’가 광고효과 등을 통한 사업적 이익을 창출하는 게 후원하는 목적이라면, ‘후원자’는 지원대상에 대한 개인적 관심과 호감 혹은 부의 사회환원 같은 이타적인 목적에서 후원한다는 게 다른 점이다. 후원자의 유명한 예를 찾자면, ‘메세나’라는 말의 어원이 된 재정 로마시대의 마에케나스나, 피렌체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메디치 가문을 들 수 있다. 둘 다 그들의 막강한 권력과 부를 예술의 진흥에 쏟으며 수많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유지했고, 그들의 영향으로 로마와 피렌체는 각각 자기 시대의 찬란한 문화 중심지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바둑계의 역사에서도 눈에 띄는 후원자가 하나 있는데 바로 도요토미 히데요시다. 우리에겐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은 인물이지만, 그는 분열되어 있던 일본을 통일한 후 닛카이라는 당대 일본바둑 1인자에게 ‘혼인보(本因坊)’라는 작위를 하사하며 바둑의 위치를 단번에 격상시켰다. 그후 사회적 지위와 생계를 보장받게 된 기사들은 집중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됐고 이것이 현대바둑의 완성으로 이어진다. 그 영향으로 한국과 중국 바둑의 현대화가 시작되었으니, 히데요시는 가히 현대바둑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국 바둑역사에서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같은 정재계의 거물을 포함한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었다. 이들의 후원은 공통적으로 후원 대상에 대한 개인적인 애정과 신념에서 비롯되었지 대중의 관심과 인기, 경제적/정치적 득실과는 무관했다. 다시 말해 후원 분야의 발전과 부흥을 추구하는 순수한 의도의 발현이었지 수지타산을 따지는 스폰서의 마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사리사욕의 동물인 인간에게 이런 고결하고 이타적인 행위가 가능한가 싶겠지만, 이런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의 힘인 것이고 후원자의 입장에서는 ‘팬심(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둑이 수천 년을 이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도, 사회지도층의 한결 같은 ‘팬심’을 끌어낼 수 있는 고품격의 매력을 갖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럼 이런 후원을 실질적으로 성사시키는 촉매제는 무엇일까? 보통 큰 기부가 이루어질 때 겉으로 드러나는 대의명분은 따로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인과 개인 사이의 친분과 호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예술계에서도 그 분야의 권위자와 정재계 실력자들의 개인적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후원이 이루어지곤 한다. 가령 과거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한국기원 총재를 맡아 바둑계를 위해 수많은 기여를 한 것도 바둑지도를 통해 싹튼 조남철 九단과의 우정이 사실상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럼 다시 후원금 감소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훨씬 열악했을 시기에도, 우리 기사들의 실력이 국제수준에 훨씬 못 미쳤을 시기에도 꿋꿋하게 증가해온 후원의 규모가 왜 하필 최근 들어 감소하고 있는 걸까? 바둑계 밖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 내부상황에서부터 실마리를 풀어나가야 하는데, 그 시작점에 한 사람이 서있다. 바로 우리 대한민국의 자랑 이창호 九단이다. 바둑역사에 길이 남을 그의 활약으로 한국바둑계는 황금기를 맞게 됐지만, 그가 몰고온 변화로 현재의 위기상황 또한 초래되었으니 역사란 참 역설의 연속이라 하겠다. 과거를 이해함으로써 미래가 보이듯이, 이창호 九단이 몰고온 변화의 본질을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위기탈출의 실마리를 모색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 누가 이창호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세계가 이창호를 좇는 시대가 있었다. 이창호는 한국이 낳은 불세출의 기사였고 한국바둑을 세계 최정상에 올려놓은 견인차였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다던가. '소년국수 시대'를 열며 타이틀 보유자의 연령대를 단박에 낮춘 이창호였지만, 후원(사/자)이라는 대목만 놓고 볼 때, 예전만 못하게 되는 단초를 제공한 면 또한 있다. 이창호 九단이 1989년 KBS바둑왕전에서 13세의 나이로 우승했을 때 전세계 바둑계는 충격에 빠졌다. 당시 바둑을 몰랐던 나마저도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는데 바둑인들이야 오죽 했겠는가! 그 후 끝없이 이어진 그의 활약은 바둑기사의 적정 연령대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바둑 고수’하면 신선 같은 풍모의 노인을 떠올리던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부터 중장년층 기사들이 활발히 활동하던 80~90년대까지, 바둑에는 나이에서 오는 연륜과 깊이가 중요하다는 것이 정설로 통했다. 한국바둑의 선구자 조남철 九단은 49세에 서봉수 九단에게 명인을 넘겨줄 때까지 전성기를 누렸고, 53년생 바둑 황제 조훈현 九단은 2000년대까지 계속 세계 최정상에 서있었다. 두 사람 다 20대에 두각을 내기 시작해 40~50대까지 꾸준히 정상의 실력을 유지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창호 九단의 등장 후 처음엔 예외적 천재성으로 받아들여지던 그의 행보가 머지않아 일반 기사들의 보편적 기대치로 바뀌고 만다. 즉 이창호 九단이 특별하다기보다 원래 10대에서 20대 초반이 기사 인생의 전성기라는 스포츠적 패러다임이 새롭게 자리잡은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이세돌 九단을 비롯한 송아지 삼총사의 활약이 이어졌고 졸지에 노병으로 전락한 30~40대가 일선에서 후퇴하며 그 빈자리에 초롱초롱한 신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어린 꿈나무들의 독무대가 열린 것이다. 이 변화에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위험한 면도 있었다. 앞서 후원자를 움직이는 힘은 대부분 개인 대 개인의 친분관계에서 온다고 말한 바 있다. 사람은 보통 20대 중반에서 30대로 넘어가며 완전한 어른으로 받아들여지고 폭넓은 사회생활이 시작되니, 기사들이 바둑계의 후원자들과 제대로 된 친분을 쌓기 시작할 수 있는 시기도 일러야 20대 중반 정도일 것이다. 그렇다면 승부사로서의 수명이 적어도 30대까지는 유지돼야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인데, 기사의 전성기가 이르고 짧게 온다는 것은 후원자들과의 인맥을 쌓을 시간도, 또 그 인맥을 활용할 시간도 부족하다는 의미가 된다.  ▲ 기생이 되어라! 바둑보급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기생이 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평소 지론처럼 말했던 조남철 9단. 바둑후원자를 모시는 일이라면 천리길도 마다않고 뛰어가 설명하고 설득해 후원을 이끌어내던 그였다. 그랬기에 진정 '한국 현대바둑의 아버지'로 불리는 거다.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한국기원 총재 때 기사 수가 100명도 안되던 시절 50여 명에 이르는 기사를 기업체에 취업시켰고, 생활이 안정된 기사들이 연구에 전념하게 되면서 한국바둑은 수준이 급상승했다. 한국기원이 보관한 예전 자료를 보면 후원자 있는 곳에 조남철 9단이 그림자마냥 찍혀 있는 사진이 많다. 김우중 회장에게 명예 아마단증을 수여하고 있는 이 사진도 그 하나이다. 실제로 조남철 九단이 한국바둑의 최고봉이라는 자신의 위치를 200% 활용하여 한국기원의 주춧돌을 세운 것이 30~40대였고, 뒤를 이어 활동한 김인 九단, 윤기현 九단 등도 30대는 돼서야 효율적인 인맥 활용을 시작할 수 있었다. 새로운 주류로 등극한 신예들은 기껏해야 20대 초중반이었고 그들에게 후원자들과의 관계 같은 것은 관심조차 갖기 쉽지 않은 분야였을 것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선배들이 그 역할을 어느 정도 이어가긴 했지만, 아무래도 현역만큼의 영향력을 기대하긴 어려웠을 것이고, 스스로 뛰지도 않을 무대를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쓰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후원자들과 기사들 사이의 인간적 연결고리는 점점 끊어지기 시작했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이런 위험성이 어느 순간 감지되어 한국기원 차원의 대응이 어떤 식으로든 들어갔을 것이나, 이 시점은 공교롭게도 한국바둑 역사상 최고의 황금기와 맞물려 있었다. 여기서 ‘황금기’란 한국바둑계의 성공과 번영이 절정에 이렀던 90년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 시기에 한국바둑계는 국제 성적이면 국제 성적, 기전 유치면 기전 유치, 어느 것 하나 막힘없이 승승장구했다. 이런 풍요의 시대에 미래의 위험을 논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순조로운 시기였던 만큼 심지어 이런 변화들이 미래 바둑계를 향한 자연스런 진화과정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걱정스런 현실이 눈앞에 닥쳐온 것은, 중국바둑의 약진이 시작되며 한국바둑의 황금기가 마무리 된 2005년 이후부터였다. 연승행진의 열기가 꺾이고 황금기의 거품이 가라앉으면서 그동안 잠복해 있던 위험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기전 유치에 촉매제였던 후원자들과 기사들 사이의 개인적 친분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고, 기업들은 당연한 시장논리에 의해 후원 감축을 시작했다. 이제 기사들이 직접 다시 발로 뛰며 후원자들을 설득해야 할 시기가 왔으나 원상복구는 쉽지 않았다. 예전에 직접 발로 뛰어본 세대들은 이미 은퇴한 지 오래였고, 인수인계가 이뤄지지 않아 예전 선배들의 개인적 인맥과 노하우가 대부분 잊혀진 것이다. 황금기에 입단한 현역 세대는 바둑만 잘 두면 된다고 배워왔고, 후원자와의 교류, 기전 유치 및 운영 같은 것은 제대로 이해를 해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당연히 왜 이런 위기가 닥쳤는지, 어떤 대응이 필요한지 알기 힘들었을 것이고, 아마 지진이나 홍수 같은 천재지변 정도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사태에 대한 이해 부족이 심각성을 키운 것이다.  ▲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가 보면 은색동판에 이름을 새긴 명판이 붙어 있는 좌석을 많이 볼 수 있다. “오페라극장 2,171석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라며 객석기부 후원을 수시로 받고 있다.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운영을 위하여 본 기부금을 출연할 것을 약정합니다”란 객석기부 약정서라는 것도 쓰고 지정한 좌석에 기부자의 명판을 새겨 자부심을 갖게 한다. 음악계에서 후원자를 유도하는 한 예지만 바둑계라고 벤치마킹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사진/ 예술의전당)  ▲ 위 객석기부가 소액 후원자를 모으는 아이디어라면 예술의전당 음악당 안에 자리한 'IBK챔버홀'은 거액 후원사(자)를 구하는 방책이다. 600석 규모의 실내악 전용 공연장인 ‘IBK 챔버홀’은 2011년 10월 개관했다. 이 연주회장은 IBK기업은행에서 후원했다. (사진/ 예술의전당) 이제 한국바둑계는 바뀌어야 한다. 현재의 상황은 암울해 보일지 모르지만, 지금이라도 과거의 시행착오를 개선한다면 곧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선 빠른 시일 내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변화부터 몇 가지 정리해 보았다. 첫째, 후원자에 대한 개념을 바꿔야 한다. 후원자는 스폰서가 아니다. 스폰서에게는 광고효과와 사업적 이득으로 보답하지만 후원자에게는 진심 어린 감사와 존경의 표현으로 보답한다. 예술계에서는 정기적으로 후원자들을 위한 감사이벤트를 열고, 감사패나 벽에 새기는 명패부터 시작해 대국실이나 건물에 그들의 이름을 붙이는 등 모든 수단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들의 후원 사실을 널리 알리고 기억시킨다. 사소한 광고효과보다 이런 진심 어린 표현들이 후원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더 큰 후원을 끌어낸다는 것을 명심하자. 둘째, 유명 기사들이 직접 발 벗고 후원자 확보에 나서도록 하자.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九단 같은 유명 기사들이 직접 나서면 기전 몇 개쯤은 어렵지 않게 유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최근 유창혁 九단이 사무총장으로 취임했다는데, 유명 기사가 바둑계를 위해 봉사하기로 했다는 것은 정말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고 앞으로도 이런 소식들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또한 기전 유치는 첫 단계에 불과하고 정말 중요한 것은 후원자들과의 지속적인 친분 유지라는 것을 항상 명심하도록 하자. 결국 후원자들에게 바둑의 중요성을 직접 이해시키고 상기시킬 힘도 의무도 프로기사들에게 있는 것이다. 더욱 멀리 보면 어린 기사들에게 인맥 형성과 관리의 필요성에 대해 교육하고 동참시키는 과정도 지금부터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더는 몇몇 선배기사들의 개별적 활동에만 의지할 일이 아니라 모든 기사가 직간접으로 참여하는 등, 바둑 두는 것 못지않게 이러한 역할 또한 기사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자리 잡도록 하자. 셋째, 적절한 사업 시스템을 구축하자. 바둑계의 기본 경영모델은 인기 스포츠팀보다는 박물관, 미술 전시관, 순수예술 공연장 등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들 모두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육성시키는 장소들로서 대중성에서 취약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또한 대중성으로 평가받거나 좌지우지 되지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수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바둑 역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각 시대마다 대중적 인지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그 본질적 가치와 품격은 한결 같이 존중 받아왔다는 점에서 공통적인 부분이 많다. 소수의 후원으로 발족되고 유지되지만 항상 대중친화 작업에 힘쓴다는 점 또한 중요한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소수의 엘리트와 일반 대중 사이의 효율적인 균형과 접목을 연구해온 세계가 문화예술계인 만큼 바둑계가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새로운 안목과 지혜를 전수해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는 제안을 하고 싶다. 맨 앞에서 언급했지만 대다수 프로기사가 겪고 있는 생활고는 바둑계를 내부로부터 좀먹고 있는 암적인 질환이다. 프로 지망생들 처지에서도 그렇다. 프로기사들이 승부로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모습을 보면 누가 그 어려운 입단대회에 도전하고 싶을까? 기전 재유치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지금의 방식 그대로를 답습한다면 그 수혜자는 여전히 소수의 정상급 기사들로 한정될 것이다. 여기서 고정관념을 깨 보자. 후원의 궁극적 목표가 사업성이 아니라면 후원의 종류를 꼭 기전 유치에 한정시켜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예술계에서는 수많은 목적과 명분의 기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바둑계는 너무 한가지 틀에 자기자신을 가둬놓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예컨대 프로기사들에게 최소생계를 보장해 그들이 바둑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기사 진흥기금 같은 것을 모금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둑애호가들의 궁극적 소망이 바둑계의 발전과 활성화라고 볼 때 설득만 잘 한다면 이런 기금에 동참할 사람들은 꽤 될 것이라 본다. 일단 어느 정도 액수가 모이면 현재 대국료 없이 두는 대국들의 대국료를 대신 지급한다든지, 바둑리그의 규모를 키워 더 많은 기사가 참여할 수 있게 한다든지, 심지어 대국료 받는 승단대회를 부활시킨다든지 등의 다채로운 분배 방식을 연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10년쯤 전에 예일대학교 음악대학에 누군가 익명으로 1억 달러(약 1200억 원)를 기부해서 큰 뉴스가 된 적이 있다. 예일대학교 전체를 위해 했어도 엄청난 액수를 학생수가 고작 수백 명에 불과한 음악대학에, 그것도 음악대학만의 독점적 사용을 조건으로 기부한 것이다. 나중에 관계자 말을 들어보니 후원자는 음대 학장과 친분이 있던 어떤 미디어 재벌이라고 했다. 그 기부 덕분에 예일 음대는 모든 학생이 전액 장학금으로 다니는 엄청난 체제로 탈바꿈 할 수 있었고, 전 세계에서 뛰어난 학생들이 몰려와 학교의 명성이 대번에 올라갔다. 작은 단과대학 하나를 위해 그 정도 기부를 심지어 익명으로 하는데, 한국바둑의 본신(本身)인 프로바둑계를 위한 기금모금이 과연 현실성 없는 얘기일까? 꿈을 갖는 사람에게 현실도 따라오는 법이다. ‘위기가 기회다’라는 말은 보통 힘든 상황에서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지만, 지금 한국바둑계의 위기는 말 그대로 전화위복의 기회이기도 하다. 사람은 변화를 반기지 않는다. 위기의식만이 사람으로 하여금 기꺼이 변화하도록 만든다. 그동안 쉬운 성공 속에서 한국바둑계는 초심을 잃고 안일해졌다. 이번 위기는 과거의 시행착오를 이해하고 미래를 위한 초석을 새롭게 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악재인 동시에 호재다. 로마가 항상 존망의 위기가 왔을 때마다 그것을 극복하며 더 위대한 나라로 성장했던 것처럼, 한국바둑계도 이번 위기를 통해 더 큰 미래로 나가는 의미 있는 성장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변변치 않은 글이지만 바둑계를 위해 조금의 영감이나마 제공할 수 있었다면 바둑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 이상의 기쁨이 없을 것이다.  ▲ 유영욱 (연세대학교 음대교수/피아니스트) ‘한국의 베토벤’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유영욱은 10세 때 자신의 작품 발표회를 가질 정도로 작곡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이며 어릴 적부터 국내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예원학교 재학 중 도미한 그는 예비학교를 거쳐 줄리어드 음대에 입학 후 학부과정을 통해 Martin Canin, Jerome Lowenthal 교수에게 사사하고, 맨해튼 음대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Solomon Mikowsky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8년 제13회 스페인 산탄데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하며 유영욱은 4만 유로의 상금과 세계 20여 개국을 아우르는 콘서트 투어, 유명 음반회사와의 리코딩 계약 등을 부상으로 받게 된다. 그후 무려 300회가 넘는 해외연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된 그는 모스크바의 Richter Competition, 포르투갈의 Vianna da Motta Competition, 미국의 International E.Competition, 캐나다의 Montreal Competition 등에서도 수상하며 국제적 연주자로 자리 매김하게 된다. 2007년 베토벤의 고향 독일 본에서 열린 국제 베토벤 피아노 콩쿠르에서 “베토벤이 피아노를 친다면 유영욱처럼 연주했을 것이다”라는 심사위원의 극찬을 받으며 우승한 그는 2009년 연세대 음대 교수로 임용되어 귀국해 국내와 해외를 아우르는 활동을 전개해 왔다. 해외활동은 가히 눈부시다. 상트 피터스버그 심포니, 프랑스 국립 오케스트라, 스페인 국립 오케스트라, 드레스덴 심포니, 쾰른 오케스트라, 비엔나 챔버 오케스트라 등 해외 여러 중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제임스 콘론, 세르지우 코미시오나, 핀커스 스타인버그, 헤수스 로페스 코보스 등의 뛰어난 지휘자들과 교감을 나눴다. 런던의 Wigmore Hall, 라이프지히의 게반트하우스, 취리히의 Tonhalle, 베를린 필하모닉 홀, 뉴욕의 92nd Y Tisch Hall, 파리의 UNESCO 홀 등 여러 저명한 공연장에서 연주하고 독일 베토벤 페스티벌, 뉴욕 국제 키보드 페스티벌, Berliner Begegnungen, Ruhr Klavierfestival, 요코하마 페스티벌, Radio France 페스티벌 등 세계적인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된 그는 북미, 유럽, 남미, 아시아는 물론 이집트, 레바논 등 중동까지 진출하며 현지 언론들의 찬사를 받았다. 국내활동으로는 2008년 6월,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단독 리사이틀로 고국의 클래식 팬들에게 첫 인사를 한 바 있으며, 2009년에는 교향악축제에서 부산시향과 협연하는 동시에 국내 첫 앨범인 [BEETHOVEN 32]를 발매하기도 했다. 서울시향, KBS교향악단, 코리안 심포니, 인천시향, 부천시향 등 여러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들과 협연하고 예술의전당, 세종문화회관, 성남아트센터,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부산시민회관 등 국내 모든 주요 공연장을 아우르며 해외활동 못지않게 국내활동 역시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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