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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문 특강(1) 장문을 넓히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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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설특집 <두터움> 특강 6편. 이어 후속편 격인 2015년 한가위 특강 <명인의 두터움> 8편. 그간 추상적이고 모호한 개념으로 자리했던 ‘두터움’의 실체를 구체적이고 뚜렷한 이론으로 설명한 문용직 박사의 명절특강에 사이버오로 회원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2016년 한가위 특강! 이번엔 <장문>이다. ‘축’처럼 초보시절에나 배움직한, ‘장문’을 한갓 돌을 잡는 기초적인 바둑의 수법이라고만 여기고 계셨다면 이 강의를 접하는 순간 장문의 또다른 세계, 바둑의 무한한 매력에 경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협소한 범위였는지. 한가위 연휴 엿새 동안 하루에 한 편씩 연재합니다. - 편집자 주. 장문 특강1 - 장문을 넓히고 싶어서 장문 특강2 - 버리는 것이 훌륭한 안목 장문 특강3 - 축이 안될 때의 장문 장문 특강4 - 씌우고 벗어난다 장문 특강5 - 넓히고 역으로-부분과 전체의 관련 장문 특강6 - 잇는다  
인사말 드리면서 잠 못 이룬 더운 여름은 잊은 지 오래다. 바람 부는 가을이다. 애기가 여러분 안녕하신지? 지금 이 글은 바둑 보다가 글 쓰고, 글 쓰다가 바둑 보고 그리 지내고 있다. 누워서 잠을 청하다가 할 일이 생각나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뭐가 그리 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 사는 게,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나고 흩어지고 해 마음 편하기는 쉽지 않은 것. 겨우 10리 길을 가더라도 발에 채이는 돌멩이는 또 얼마나 되는지. 바둑이 위안이 될까. 모르겠다. 바둑세계 또한 인간세상이라 이거저거 뒤섞여 맑기가 어렵다. 본래 이거저거 뒤섞인 것을 세상이라 한다. 바둑의 세계를 좁혀서 반상만 보자. 반상은 어떨까. 그 동안 바둑 글을 써왔는데, 반상 또한 세상의 영향을 그렇게나 받아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건 예 하나만 들어도 수긍된다. 덤이 6집반으로 변하고 제한시간이 짧아지니까 어찌 되던가. 덤이 크니 흑을 잡으면 마음이 부담된다. 백을 잡으면 편한가. 짧은 시간은 상대적으로 흑에게 편하다. 덤 아니어도 중반에 이르러 돌이 서로 뒤섞이면 마음은 불안하다. 적이 바로 옆에 있으니까 그렇다. 그렇다면 바둑은 현대인에게 휴식을 안겨주지 못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은 거 같다. 삶의 비유로써 반상은 훌륭한 도구가 되고, 여러 가지 본능적인 충동을 손끝과 팔목, 어깨로 해소시켜주는 일도 적지 않으니, 바둑은 휴식에 긍정적인 역할 하는 듯하다. 물론, 구부린 등, 두 눈을 앞으로만 모으는 것 등은 바둑이 몸에도 그리 좋지 않다는 증거가 되겠다. 예전에 이런 문제로 정신의학자들이 수필을 써왔는데, 답은 이랬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바둑은 정신 건강에 유익하다. 하긴 그렇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이 없다면, 10년을 하루같이 성경을 읽더라도 실제로는 고집만 쌓는다. 몸도 굳어진다. 그런 식이다. 그러니 바둑엔 잘못이 없다. 있다면 우리에게 있을 뿐. 잘못은커녕 바둑은 신선하기만 하다. 바둑은 원시인의 본성과 생활에 잘 어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의 과거… 채집시대, 수렵시대, 농경시절을 돌아보면, 특히 수렵의 습관이 인간의 본성을 형성하는데 큰 영향을 끼쳤다. 이에는 많은 인류학자들이 동의하는 거 같다. 반상엔 수렵 본능이 짙게 남아있다. 바둑 용어는 그 점을 지지한다. 농경과 관련된 용어는 찾아보기 힘든 반면에 수렵 관련 용어는 많이 남아있는 것이다. 고전『현현기경』의 용어풀이를 보자. ▼ <1도> 현현기경의 문, 조 1도 (문과 조) 우상귀 백1은 문(門)이다. 바로 장문(掌門)의 수법. 좌하귀 백3은 조(罩)다. 올가미(网 罒)라고 하는 것이다. 수렵의 전통을 살리는 수법이다. 장문의 한자는 장문(掌門)으로 본다. 문은 개폐(開閉)할 수 있는 것. 장(掌)은 손바닥. 개폐는 손으로 하는 것. 하긴 올가미에도 손이 필요하다. 올가미와 장문에서 떠오르는 형상과 행동은 좌우(左右)다. 동물을 가두기 위해서는 좌우도 앞뒤도 막아야 한다. 그 망(网)과 문(門)을, 우리는 수법으로 반상에 표현했다. 언어는 실로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는 도구다. 지난 몇 년 필자는 반상 언어를 약간 다뤘다. 세모와 네모, 그리고 두터움이 먼저 기억된다. “바둑의 언어는 모호해야 바람직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도 다뤄봤다. ‘넓다’ ‘좁다’ 그리 표현하는 반상에서의 공간 감성은 다소 미묘한 점이 없지 않았다. 장문은 세모와 친족관계다. 안정을 도모하는 언어가 세모와 네모였다면, 공격 입장에서의 반상 언어는 좌우를 가로막는 데 초점을 둔다. 후자의 언어를 바둑에서는 폭넓게 장문이라 불러도 좋겠다. 아쉬움도 있었다. 오래 전부터 있었다. 일반적으로 장문, 하면 가두어서 잡는 것에서 이해가 그쳤다. 맥에 관한 책을 보아도 문제 몇 개로 그칠 뿐 이해를 확장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아쉬웠다. 가두고 갇힌다. … 답답하다. 좁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 바둑 두면서 마음이 답답해서야 되겠나. 좁은 안목으로야 바둑을 즐길 수 있겠나. 그래, 다뤄봤다. 장문을 확장시켜보고자 시론 하나 써보았다. 시론치고는 다소 글이 길긴 하다. 시론을 길게 쓴다는 것은 그 분야에 재주 없음을 증거하기에 충분하다. 그 증거물은 오로의 칼럼 <문용직 수법> 칼럼 카테고리 중 [수법의 경계] 2011년 6월 23일~7월 6일자 “장문과 장문은유(1-4)”에 있다. 증거를 확인하려는 분들은 참조하시라. ○● 문용직 칼럼 수법 - 수법의 경계 중 장문에 대하여 ☜ 목록 클릭 참고로… 세모 관련 문제는 2011년 5월 31일~6월 1일자, “세모와 네모, 심층에 자리잡다(1-2)”를 참고하시고. ○● 세모와 네모 ☜ 목록 클릭 그때 글을 쓰면서 언제 장문을 제대로 다루고 싶은 맘 없지 않았다. 하지만 장문과 장문 은유를 발전시킬 여건과 능력을 어느 하나도 갖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이제 다시 오늘이다. 오늘(8월 25일) 바둑을 봤다. 박정환과 천야오예의 대국. 제3회 백령배 8강전. ▼ <2도>박정환의 축장문. <2도>의 흑1이 멋진 장문맥이다. 축장문이라 부르는 것이다. 지난 제18회 농심배 2라운드 대국(7월 13일)에서 이동훈 7단이 장문 감각을 선보였다. 장문은 아니 되지만, 장문 감각을 여지없이 예리하게 드러냈다. <3도> 백1이 그것이다. ▼ <3도> 장문의 감각. 약간 다루고 싶은 맘이 들었다. 그저 약간만. 글의 초점을 좁히겠다. 장문의 외연을 넓히고 싶어 가볍게 써봤다.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것을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건 능력 밖이다. 다만, 잡는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1) 버리는 장문 맥 2) 축이 불리할 때의 장문(이 또한 버리는 것이다) 3) 부분에 그치지 않고 전체 바둑판을 조감하면서 장문의 감각을 활용하는 것 4) 장문의 맥을 ‘잇는다’는 시야에서 다시 돌아보는 것, 이상의 네 가지 초점으로 장문을 돌아봤다. 모르겠다. 이 글이 과연 여러분의 실력을 높일 수 있을까? 최근 바둑을 두어보니, 이젠 너무나도 잘 진다. 실력이 쇠락 일도다. 과연 이 글이 필자의 실력 또한 회복시킬 수 있을까? 솔직히 말해서, 글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2011년 쓴 ‘장문 감각’이 다소 어수선하긴 했지만 훨씬 신선하고 깊이가 있다. 이번 글도 그때를 참고했다. 넓게 다루기에는 이제 몸이 버겁다. 나이 탓은 아니다. 가을바람에 흩어지는 낙엽…, 그렇게 사라진 감정들. 사라진 감정도 많다. 김추자의 “나뭇잎 떨어져 길 위에 구르네…” 신촌 봉원사 뒷터에서 그 노래 듣던 때가 30년도 넘었으니. 감정이 메마르면 글도 따분한가 싶다. 1. 장문인가 기세인가 4도 (초보적인 장문을 모른 10번기 승부) 일본기원 최초의 9단인 후지사와 호세이(흑)와 오청원의 10번기에서 얻었다. 흑1 패착. 장문으로 잡혔다. 이 초보적인 장문을 몰라 후지사와는 치수가 선상선으로 고쳐졌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사건인가. ▼ <4도> 장문을 못 본 9단. 5도 (때로는 장문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문은 축보다 애용된다. 축은 축머리를 활용당할 수도 있지만 장문에는 그런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일부러 장문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을 때가 있다. ▼ <5도> 뒷맛이 고약할 때가 있다. 여기 장문은 일감이지만, 다음 백A 이하의 수단이 고약하다. (제11기 일본기원선수권전. 백 島村俊宏 : 흑 坂田榮男) 6도 (버리는 것이 결단) 그래서 여기처럼 버리는 것이 좋았다. 물론 이리 두어서 좋은가? 그것은 장문이든 버림돌이든 그에 달린 것은 아니다. 전체적인 형세판단에 달린 것이다. ▼ <6도> 버리는 것이 속시원하다. 7도 (장문의 감각을 느끼기만 해도 위축되기 쉽다) 초반 포석 단계. 1950년대인가. 우상귀의 흑1이 오청원의 착상이었다. ▼ <7도> 오청원의 착상. 이때가 문제. 좌하귀를 먼저 보자. 흑▲가 앞을 가로막는 장문의 감각이기에 자칫하면 좌하귀처럼 백2 이하로 탈출하려고 하기 쉽다. 그러면 어찌 되나? 백이 불리하다. 흑집이 5선 따라 불어난다. 그래서 우하귀처럼 두는 것이 정석으로 정착되었다. 복잡한 대형정석이다. 복잡하니 다만 참고하시길.... 장문은 물론이고 장문의 감각마저도 당하면 기분이 대단히 위축된다는 것을 좌하귀는 보여준다. 8도 (이런 바둑 보셨는지?) 프로의 바둑이다. 백5가 기세다. 다음 A와 B를 맞보는데 백도 둘 수 있다. ▼ <8도> 기세. 9도 (초반의 기세, 두칸 장문) 흑8을 장문이라고 하기에는 좀 그렇다. 보통은 흑8이 아니라 A로 씌운다. ▼ <9도> 흑8, 장문의 기세를 가진 수법. 여기서는 백이 석점으로 강하니까 짐짓 방향을 가볍게 제한하는 정도의 수법이다. 그러나 흑8은 장문의 기세를 가진 수법이라 하겠다. 백9 전(田)자 행마도 어려운데, 언제 이런 수를 다룰 기회가 있을까. (1972년 명인전 도전3국. 백 명인 임해봉 : 흑 9단 후지사와 슈코) 중요한 거 하나. 여기에서 백은 초반 이르게도 삭감했는데 다소 어렵다. 저 백1이 장문의 힘을 가진 수법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흑은 흑2 아니면 B, 둘 중의 하나밖에 선택지가 없는데, 백1이 좌우를 가로막는 장문의 힘을 갖고 있다. 삭감은 무서운 압력을 행사하는 수법이다. 10도 (삭감처럼 백1도 장문의 기세인가) 여기 백1도 훌륭한 수법이다. ▼ <10도> 전판에 미치는 영향력. 스케일은 좁지만 이와 비슷한 수법을 조(罩, 통발)라고 불렀던 『현현기경』의 안목보다 훨씬 큰 구상이다. 장문보다는 압박이 직접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상변 흑에게, 그리고 전판에 미치는 영향력은 묵직하다. 2, 복잡한 듯, 단순한 장문 왜 딱 잘라 모두지 않고 이리 저리 모호한 세상을 기웃거리는가? 장문의 이해를 확장하기 위해서다. 겨우 몇 개의 맥점만 알아서 사용하기에는 너무나 장문은 아까운 수법이고 맥이다. 무릇 그 어느 것이든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곁가지까지 충분히 섭렵해두어야 한다. 그것이 깊이와 너비를 더해준다. 어려운 문제 감상하면서 진행하자. 11도 (무서운 기백의 공격 - 숨겨진 장문) ▼ <11도> 숨겨진 장문. 명인들의 바둑은 기백이 먼저다. 여기 백1을 보라. 과연! 흑4는 시간을 들여 고민한 수다. 이후 백A는- ▼ <12도> 참고도. 흑2 이하 10까지 백이 안 된다. 이런 진행으로는 백이 곤란하다. (제7기 명인전 도전3국, 백 9단 오타케 히데오 : 흑 명인 조치훈) 13도 (장문이 무서운 참고도) 실전은 백1로 두었다. 그리고 흑6까지...여기서 백7은 실전이 아니다. ▼ <13도> 단호하게 싸우면? A 붙여 싸운 것이 실전인데 여기 백7, 9로 단호하게 싸우면 왜 아니 될까? 이 장면이 복잡한 장문의 바다로 우리를 들어가게 한다. 14도 (장문을 맞보다) ▼ <14도> 2개의 장문. 흑7까지는 필연이라 할 만하다. 문제는 이후 백에게 두 개의 장문이 남는 것. 흑A, 백B, 흑C가 하나고, 흑a, 백b, 흑c가 다른 하나다. 15도 (장문의 바다 - 백의 도전) ▼ <15도> 성공한 듯하지만... 백1 지키면 백9까지, 다음 백이 백a와 백A 이하 백E를 맞봐 성공하는 듯한데... 16도 (장문의 바다 - 배붙임의 맥) 배붙임의 유명한 맥이 기다린다. 이래서 백이 실패한다. 백A는 흑B. ▼ <16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맥이 있다. 이상의 장문들은 어렵기로 하다면 어렵다. 복잡하기로 하면 복잡하다. 그렇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이런 실전, 이런 문제들은 평범한 것들이다. <14~16도>는 그 자체로만 본다면 매우 간단한 것이다. 언뜻 복잡하게 보일 뿐이다. 3. 반상의 감성과 놀이 우린 장문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태도를 갖고 있다. 당하는 입장에서는 놀라움과 함께 불쾌감을 받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화가 났을 때 누군가가 당신의 두 팔을 잡으면서 진정하라고 한다면 더욱 더 분노에 차기 쉽다. 통제 당한다는 느낌, 그것은 느낌 이상의 현실이다. 바둑에서도 그런 인상 받는다. 그래서 대국 중에도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반상에서 그런 감정은 어느 정도 일어나고 사라지는가? 우린 그리 심하게 동요하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우린 논리적인 훈련을 어느새 많이 받아왔기 때문이다. 문명화 과정에서도 그렇지만, 바둑을 배우는 과정에서도 어느새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반상은 감성과 논리를 적절히 조정하는 세계다. 가설적인 이해 하나 세워보자. 바둑판의 배열을 보면 농경시대의 유산이 느껴진다. 고대의 토지는 우물 정(井) 형식으로 구획되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바둑이란 것은 수렵시대의 감성을 살리는 놀이라 볼 수 있다. 수렵이든 농경이든, 그 기반이 무엇이든 모든 놀이는 우리의 잃어버린 또는 지나쳐버린 감성과 본성을 깨우는 경향이 있다. 그것이 놀이의 가장 큰 본질. 그렇다면 장문이 살아있는 바둑은 대단히 훌륭한 놀이라고 할만하다. 수렵의 본능과 농경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말할 수 있다. 바둑 둘 때 장문 마음껏 활용하시라. 마음 턱 놓고 감성 풀어 놓고 두시라. 단, 끝나고 난 다음엔 잠깐의 의식(儀式)을 통해서 현실로 돌아오시라. 장문이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날 필요는 있다. 손을 씻는 것. 몸을 뒤로 젖혀서 허리를 푸는 것. 상대에게 인사하고 일어서는 것. 자신의 불쾌한 내면을 들여다보고, 별거 아님을 확인하는 것. 그런 것이 의식이다.  ▲ 1983년 일본 랭킹1위 기전인 제7기 기성전 도전7번기 최종국에서 조치훈 9단이 후지사와 9단의 7회 연속제패를 저지하고 처음으로 일본 랭킹1~3위 기전을 모두 차지하는 대삼관을 달성했다. 이 도전기는 역사적으로 신구의 세대교체를 보여준 분기점이었고, 결과는 젊은 도전자(조치훈)가 3연패 후 4연승으로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거장 후지사와가 '기세란 이런 것임'을 여전히 보여준 승부였다. 노장의 기세가 불을 뿜은 이 도전기에서 우리가 공부할만한 장문의 재료가 여럿 나왔다. 아래에 장면을 다룬다. 4. 장문의 이해 폭이 넓어져야 할 이유 장문은 잡는 것. 그러나 장문의 용법은 넓어질수록 좋다. 장문의 개념이 처음 드러났을 때, 그때의 중국은 『현현기경』에서 보듯이 힘바둑으로 돌을 잡는 것에만 초점을 두었다. 오늘날 집이라고 부르는 공간을 그들이 이해할 수는 없었다. 집 중심으로 반상을 바라보는 일본의 경우에, 바둑의 언어에서 격자(格子)무늬 반상을 그린 형태적 언어-日字, 一間 등-이 발생하였다는 것은 집 중심 사고와 돌 중심 사고의 차이를 잘 알려준다. 이제 공간은 돌 못지않게 중요한 기반이 되었다. 장문이 쓰임새를 넓혀야만 하는 이유다. 돌 중심의 바둑관 아래에서 세워진 장문 개념은 집(공간)을 중심으로 바둑을 바라보는 세계관 아래에서는 좁은 식견에 머물기 때문이다. 개념은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실과 언어의 괴리감이 커질 것이다. 현실 인식이 좁아지고 왜곡될 것이다. 가둔다. 덮어 씌운다. 넓은 곳에서 좁은 곳으로 몰아간다. 이 모든 것은 바로 공간의 제한을 말해주는 요소이다. 장문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포괄하는 개념으로 애초에 태어났지만, 다만 돌 중심 관점 하에서 이해가 좁았던 것뿐이다. 반상에서 “높은 안목”이란 공간의 제한과 확장, 그것이 핵심이다. 알 수 있다. 제약하고 잡고 제한하는 여러 가지 다양한 의도와 형태, 논리가 모두 장문으로 모아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한자로도 그러하다. 손바닥 장(掌). 문(門)은 열고 닫을 수 있는 것이니 폐(閉)라고도 새길 수 있다. 손바닥으로 크게 밀치고 닫는 이미지 느끼시지 않는지? 바로 그 때문에 장문은 부분적인 맥으로만 그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실로 개념이란 것은 넓히고 싶은 것. 이미 우리는 그 실현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 세 개의 기보는 우리가 희망을 실현에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 <17도> 잡지 않아도 몰아갈 수 있다면. 17도 (잡지 않아도 두 팔로 밀어갈 수 있다면) 반상은 승부. 상대의 바로 앞에까지 다가설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런 힘만 있다면 무엇이 두려울까. 백2가 그런 힘 될까. (제7기 기성전 도전5국. 백 기성 후지사와 슈코 : 흑 명인 조치훈) ▼ <18도> 기세를 표현하는 장문의 감각. 18도 (기세를 드러내는 반상 언어를 표현하고 싶다면) 기세를 드러내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반상이 일어설 수 없다. 장문의 감각으로 힘껏 밀어 갈 수 있어야 한다. 흑1 이하는 그런 자리. 흑5는 장문의 감각이라 할 만하다. (제7기 기성전 도전2국. 백 명인 조치훈 : 흑 기성 후지사와 슈코) ▼ <19도> 슈코의 기세, 장문의 기세. 19도 (어지러울 때 집중할 수 있다면) 백1은 승부수다. 백A, 흑B, 백1, 흑C, 백2, 흑D, 백E 정도의 삭감이면 무난하지만 흑F로 건너가게 해서 집이 부족하다. 그나저나 흑2 장문도 좋은 기세다. (제7기 기성전 도전7국. 백 명인 조치훈 : 흑 기성 후시사와 슈코) [잠깐 드리는 말씀] 1) 여전히 일본 바둑이 참고도의 대부분을 이룬다. 다시 공부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1970~80년대 공부하던 때의 자료를 벗어나기는 힘들다. 정신도 20대에 내린 닻을 다시 걷어 올려 항해하기란 힘들지 않던가. 누구라도 말이다. 다행히 예(例)로서는 그런대로 쓸 만하다고 본다. 2) 장문은 수법. 구체적인 맥은 이미 고전에서 대부분 다 파악되었다. 아마도 90% 가까이 파악되지 않았을까. 장문도 그런 거 같다. 하지만 장문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바둑의 경우 독자 여러분도 할 수 있다. 실력이 아마추어라도 가능하다. 외연을 넓힌다는 것은 또한, 장문에만 국한되는 것은 물론 아니겠다. 잡는 것에 스스로를 좁히지만 않는다면 실력 또한 한 순간에 한 높이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감사!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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