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국, 186수 만에 흑으로 불계패. 제2국, 211수 만에 백으로 불계패. 예정에 전혀 없던 시나리오다. 충격의 2연속 패배를 당한 뒤 기자회견에 나선 이세돌 9단은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려 해도 절로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놀란 건 이미 어제였고, 이젠 할 말이 없다. 내용적으로 나의 완패였고 초반부터 한 순간도 내가 앞섰다고 할 순간이 없었다. 알파고가 완벽한 대국을 펼쳤다."

이틀 전 첫판을 지고 나서 “첫 경기에 졌지만 (다섯 판을 모두 진) 판후이와 저를 비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경험적 측면에서 세계대회 1국을 진 적도 많기 때문에 1국 패배에 영향을 많이 받지는 않을 것이다. 알파고에 대한 평가는 한판만 둬서 뭐라 말하기 어렵다”고 말할 때와는 어조도 달랐고 여유도 사라졌다. 그렇지만 불세출의 승부사답게 전의(戰意)를 다잡았다.

"3판이 남았다. 한판이라도 승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 인간과 인간지능 알파고의 대결은 전 세계의 톱뉴스이자 핫이슈였다. 언론사의 대형 옥외 모니터가 설치된 곳이면 거리 어디에서나 실시간 중계화면을 만날 수 있었던 일주일이었다. 바둑을 전혀 모르는 주부, 할머니까지도 몇 시간이고 TV 앞을 떠나지 않고 '인간 이세돌'을 응원하는 진풍경을 보였다. 사람들의 마음은 이미 이기고 지느냐의 승부에 있지 않았다. 가공할 괴력을 지닌 인공지능 앞에서 기계는 결코 가질 수 없는 '인간의 도전정신'을 이세돌과 함께 발휘한 것이며, 이 표표하고도 빛나는 인간정신이 통하는 그 순간을 함께 맛보고 싶었던 것이기에 열렬히 성원했고 열광했다.

▲ 5-0의 무난한 승리에서 처지가 완전히 바뀌어 0-5의 패배를 걱정하던 순간, 제4국에서 고대하던 1승을 올렸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덤벼 일군 1승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인간 도전정신을 보여준 이 대결은 이세돌 9단이 '지고도 이긴 대결'이라는 평을 남기게 했다.

▲ 백1의 끼움수가 '신의 한수'로 명명된 그 유명한 78의 수다. 현장에 있던 프로기사들도 이 수를 보긴 했다. 하지만 다른 수순을 모두 생략한 채 이렇게 막바로 끼워가는 수단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토록 완벽한 모습을 보이던 알파고는 물론이고 알파고의 착수를 바둑판에 대신 옮기던 아자 황 씨, 시종 무표정하기만 하던 그조차 '이 무슨 해괴한 수인가?' 하는 당황한 표정이 묻어났다.

▲ 애초 인공지능이 1승만 거둬도 이긴 거라고 했던 예상은 거꾸로 인간이 1승을 거두는 게 기적이라는 평가로 바뀌었다. 미지의 인공지능을 상대로 네 판 만에야 고대하던 1승을 올린 이세돌은 '인류대표로서 희망의 메시지'를 던진 승부사로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4국에서 이세돌 9단이 승리를 확정짓자 기자실에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사람들이 누구랄 것도 없이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우레와 같은 박수로 기뻐했다.

▲ 승부사의 자존심이니 체면이니 모든 짐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인간으로서 거둔 1승에 인간으로서 기뻐하는 천진난만한 웃음, 이처럼 아이마냥 좋아하는 이세돌을 본 적이 없다.

오후 6시13분, 4국을 마치고 기자회견 장으로 들어온 이세돌은 수줍게 웃었고 전 세계 기자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세돌!' '이세돌!'을 부르짖었다. 이세돌은 "한판 이기고서 이렇게 축하받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경기를 하기 전에 5-0, 4-1 이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3-1로 앞서고 있다면 1패를 하는 것이 아프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오히려 3연패를 당하고 1승을 하니 이렇게 기쁠 수가 없다. 훗날에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어치 있는 1승으로 기억할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