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사에 남을 이세돌 대 알파고의 대결을 16일 앞둔 2016년 2월22일 오후5시, 서울 마장로에 자리한 한국기원에서 2차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대국 장소, 시간, 규칙, 생중계 방식 등 5번기에 대한 상세내용을 발표하는 자리여서 더욱 관심을 모았다. 앞서 1월28일 구글코리아에서 열었던 첫 기자회견과 마찬가지로 서울과 런던을 화상으로 연결해 이원으로 진행한 이날 기자회견에는 내외신 보도진 2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 인공지능의 실력이 이미 상당하고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다고 들었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이길 자신이 있다”며 자신의 낙승을 장담했다. 제대로 승부가 어우러지려면 1년 이상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예상도 덧붙였다. 여유가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간대표 이세돌이 진다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 한판 지느냐 전부 이기느냐의 싸움이 될 것!
2차 프레스 브리핑을 마치고 이세돌 9단과 구글 딥마인드의 CEO이자 알파고를 만든 개발자 데미스 하사비스와 선전을 다짐하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세돌은 서울 한국기원에, 하사비스는 런던에 있다. “알파고의 기력을 어떻게 판단하나?”란 기자의 질문에 인간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알파고가 판후이와 둔 대국 외에도 몇 판을 더 보았다. 지난해 10월 판후이와 겨뤘던 알파고의 실력은 나와 승부를 논할 정도의 기력은 아니었다. 시간이 흘렀고 알파고의 실력이 늘었겠지만 3-2 이런 스코어가 아니라 내가 한판이라도 지느냐의 승부일 것이다."

알파고의 실력은 자신에게 맞바둑으로는 힘들고 정선(定先, 덤없이 흑을 쥐고 두는 치수)에서 왔다갔다 하는 정도로 예측했다. 한판 지느냐 마느냐의 승부라고 말한 것도 사실 알파고의 실력을 후하게 봐준 표현이었다. 만약 다섯 판 중 한 판이라도 진다면 엄밀한 의미에서 인간이 진 것이나 다름없다는 게 당시의 분위기였다.

▲ 결전의 날이 왔다. 인간 대 기계가 펼치는 ‘세기의 대결’을 하루 앞둔 3월8일,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호텔에서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프랑스 AFP, 일본 요미우리 등 외신을 포함해 300여 명의 취재기자가 발디딜 틈이 없이 빼곡이 들어찼다. 1월, 2월에는 런던과 서울을 연결한 화상 기자회견이었지만 세 번째는 대국자(이세돌)와 개발자(왼쪽 데미스 하사비스)가 결전을 앞두고 얼굴을 맞댄 자리다.

구글의 최고경영자인 슈미트 회장(사진 오른쪽)까지 서울로 날아왔다. 그는 “구글 딥마인드가 ‘강화학습’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 불가능하던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인공지능과 머신러닝 기술 발전이 일어날 때마다 인간 한명 한명이 더 똑똑해지고 유능해 질 것”이라며 “게임 결과와 관계없이 인류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인공지능은 인간처럼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세돌 9단은 “지금까지는 (알파고의 작용 원리나 구조에 대해) 들어도 잘 모르겠던데 오늘은 조금은 알 것 같다.”면서 “방식은 다를지라도 인간의 직관을 모방하는 데 한층 뛰어나진 점을 알게 됐다. 5-0으로 내가 이길 자신이 있다고 여러번 말해 왔는데 듣고보니, 내가 지는 판도 있겠다 싶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재차 “오늘 구글 딥마인드의 설명을 듣고 질 수도 있겠단 이야기를 했다. 이유를 자세히 말해달라”고 요구하자 “예전엔 설명을 듣고 인간이 천 가지의 참고도를 머릿속으로 그린다면 컴퓨터는 백만 단위로 하는 식이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설명을 들으니 그게 아니라 (유력한) 수를 추려내어서 생각해야 하는 폭을 한층 줄였다고 한 대목이 새롭게 다가왔다. ‘그렇다면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지만 여전히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그러면서 “인공지능이 인간처럼 바둑의 아름다움을 이해하지는 못한다. 이번엔 인간이 이기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해 기자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았다.

▲ 결전의 날이 왔다. 세계가 주목하는 이세돌 vs 알파고 대결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대국장. 서울 광화문에 자리한 포시즌스호텔 6층에 마련되었다.

▲ 2016년 3월9일, 오후 12시30분쯤 이세돌 9단이 가족과 함께 묵고 있던 13층 객실에서 부인 김현진 씨, 딸 혜림과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대기실에는 오래 머물지 않았다. 일찌감치 대국장에 들어가 자리하고선 대기실에서 놀고 있는 딸을 불러 긴장을 풀었다. 알파고 개발팀을 이끈 하시비스 CEO가 대국장을 둘러보러 들어왔다가 이세돌 9단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세돌 9단도 웃으면서 하사비스의 내민 손을 잡아 기념촬영에 응했다. 대국 시작 전의 풍경은 화기애애했다.

▲ 오후1시 드디어 5번기 첫판이 시작되었다. 알파고의 손 역할을 하는 구글 딥마인드의 아자 황 연구원이 이세돌 9단과 돌가리기를 하였고, 이세돌 9단이 '홀'을 맞혀 흑을 잡았다. 오른손을 쭉 뻗어 바둑판 우상귀에 첫수를 두었다. 알파고가 중국룰에 맞춰 개발되었기에 대국은 중국룰로 두었다. 따라서 덤 7집반이 적용되었다. (한국의 덤은 6집반)

▲ 모니터에 비친 첫점. 이세돌-알파고의 5번기 대국장에는 구글과 한국기원에서 지정한 사진기자 두 명만 출입을 허용했다. 역사적인 첫점은 우상귀 소목이었다.

▲ 기자실은 국내기자와 외신기자용 두 개를 준비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룸은 보도진을 위해 공개해설장을 겸했다. 세계각지에서 온 기자들의 수도 엄청났지만 취재열기 또한 엄청났다.

▲ 1국을 마친 뒤 대국장을 빠져나오고 있는 이세돌 9단의 모습. 어이없어 하는 웃음에 눈길이 갔다. 실력으로 졌다기보다 너무 얕잡아보다 당했다는 듯한 표정. 30분 쉬고 공개해설장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이세돌 9단은 “알파고에 너무 놀랐다. 진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오늘 바둑은 초반의 실패가 끝까지 이어진 것 같다. 프로그램을 만든 분들께 깊은 존경심을 전하고 싶다”고 말문을 열었다.

알파고에 두번 놀랐다! 이로써 5대5 승부!
이세돌 9단은 알파고의 두 가지 능력에 놀랐다고 첫 대면한 소감을 말했다.
“초반 ‘알파고’가 바둑을 풀어가는 능력에 놀랐고 어려운 장면에서 사람이 생각하기 힘든 승부수를 둬 놀랐다. 져서 충격적이긴 하지만 굉장히 즐겁게 두었고 앞으로의 바둑도 기대된다. 오늘 포석에서 실패했는데 이 점을 극복하면 승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5대5 승부가 된 게 아닌가 싶다.”

다섯 판 전판을 대국자 바로 옆에서 초읽기를 하며 지켜본 정유정 계시원은 “이세돌 사범님이 첫 번째 대국을 시작할 때만 해도 대국을 즐기는 듯한 느낌이었다. 또 알파고를 테스트해 보려는 듯했다”고 전한 분위기대로 첫판은 다분히 알파고를 시험해 보려다 역습을 당한 게 사실이고, 이때까지도 이세돌 9단은 알파고가 생각 이상 만만치는 않으나 여전히 이길 자신이 있었던 듯 보인다. 첫판을 지고도 “이제부터 5대5의 승부”라고 한 말에서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