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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대회가 진화하고 있다
규모갖춘 대회만도 100개 넘어...특색살린 대회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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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바둑대회가 진화하고 있다. 대회 수가 상상 이상으로 대폭 늘어난 것이야 꽤 된 얘기이고, 오로지 우승자를 가리기 위한 순위 경쟁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채롭고 저마다 특색을 띤 대회로 다변화하는 현상에 방점을 찍고 싶다. 국내 프로기전 하나 유치하기가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아마대회는 상대적으로 가벼운 몸집(예산) 덕분에 활황을 띠는 걸까? 예산 부담이 적으니 그런 면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들여다보면, 꼭 그렇게 말할 수만은 없다. 마치 맞춤형 물품처럼 수요자의 요구와 공급자의 필요가 딱 맞아떨어지기에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국위선양에 기여하고 국민사기를 진작하는 엘리트체육도 중요하지만 이 뒤를 생활체육이 떠받쳐야 하는 것처럼, 피라미드 하부마냥 프로바둑을 지지하는 광범위한 아마추어 바둑층이 없다면 높은 경쟁력과 긴 생명력을 가질 수 없다. 말단기자로 왕성하게 현장을 뛰어다니던 80년대말~90년대초만 해도 손에 꼽을만한 전국규모의 아마대회는 마산의 학초배, 부산의 롯데배, 대구의 아마대왕전, 서울의 세실배, 아마국수전 정도였다. 전국의 대회를 다 돌아다니며 취재한다 해도 한해 열 군데를 넘길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한바둑협회 홈페이지의 대회일정에 명기된 대회만도 50여 개에 이른다. 대한바둑협회가 주최주관하거나 공인한 대회 수만 이렇다는 얘기다. 바둑대회가 인허가를 받아 개최하는 행사가 아니므로 정확한 통계를 얻긴 힘들다. 해서 현장에서 뛰고 있는 사람의 얘기로 추산할 수밖에 없다. A7은 바둑행사나 이벤트를 기획하고 진행을 대행하는 전문업체다. 국내에서 이 분야에 먼저 뛰어들었고 유일하다시피한 회사다 보니 국내 대부분의 대회가 이 업체에 진행을 맡기고 있다. 아마대회 현황에 대해선 여기 증언이 가장 근접할 수밖에 없다. 홍시범 대표에게 한해 대회를 몇 개나 대행하느냐고 물었다. 100개 정도 된다 한다. 진행 전문업체의 손을 빌려야할 정도라면 규모가 제법 되는 대회일 텐데, 무려 100개란 말에 깜짝 놀랐다. 규모를 갖춘 대회 가운데 A7이 대행하지 않고 개최측이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대회가 한 10% 가량(10개)이라고 하니, 최소한 100개를 웃도는 대회가 한해 전국방방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말이다. 대한바둑협회 홈페이지에 고시된 대회 수보다 갑절이 넘는 수치다. 더 놀라운 건, 미처 파악하지 못한 소규모 대회까지 더하면 족히 수백 개는 될 것이라는 것. 아마추어 바둑대회가 동절기인 12월부터 3월까지 휴면기라는 걸 헤아리면 나머지 8개월 동안 100여 개의 대회가 줄을 잇고, 이는 매달 평균 12~13개씩 치러지고 있다는 얘기다. 제법 규모를 갖춘 대회만 대상으로 셈했을 때가 이 정도다. 5월14일 석가탄신일은 A7이 하루 동시에 가장 많이 대회를 진행한 날이었다 한다. 세종시에서 유치한 내셔널리그를 필두로 남원시 춘향바둑대회 등, 무려 6군데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대회도 열었다 하면 기본 1천 명씩은 참가한다. 요근래 참가자가 가장 많았던 대회는 5월5일 어린이날에 펼친 일요신문배로 1천200명의 어린이가 몰렸다. 직전 4월24일에는 부산시장배, 용인시장배, 김포시장배, 대전교육감배 4개 대회를 동시에 진행한 바 있는데, 도합 2천400명이 참가했다고 말한다.  ▲ 딱 봐도 어떤 대회인지 알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바둑대회는 지역의 특색을 한껏 살려서 다양하게 진행한다. 사진은 경기도 양주시에서 여는 김삿갓배. 국내 프로기전은 고전 양상을 보이는데 아마대회는 어찌하여 폭발적인 팽창을 보일까. ‘응팔 드라마’나 ‘알파고 바람’은 근래에 끼친 영향이니 논외로 치고 몇 사람에게 요인을 물어보았다. 1) 대한바둑협회가 생기고 각 시도바둑협회가 발족하면서 일선 현장에서의 각개약진이 이루어지고 이것이 풀뿌리바둑, 보급을 확장시켰다는 평은 일단 바둑 내적인 요인으로서 무게가 있다. 2) 일선 생활형 지도자들이 마치 모세혈관까지 파고든, 방과후수업과 같은 교육적 접근이 한몫했다는 평 또한 일리 있다. 3) 이와 동시에, 이 시기 지방자치제가 자리를 잡았고 지역적 특색을 살리려는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면서 바둑이 덕을 보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바둑을 좋아하는(혹은 활용하려는) 지자체 장들의 호의가 큰힘이 되었다는 덧붙임까지, 바둑 외적인 요인을 곁들여 분석한 시각에도 공감할만하다. 덧붙이면 이렇다. 여타 분야에 비해 바둑대회는 목돈이 드는 행사가 아니다. 그러면서도 개막식과 폐회식이 분명한 행사다. 어린이대회라 하더라도 보호자 한두 명은 반드시 따라오니 적법하게, 이처럼 얼굴 알리기 좋은 행사가 어디 있을까. 더군다나 바둑은 사건사고가 날 건덕지가 없는 행사다. 해서 누이 좋고 매부 좋으니 지자체장들이 바둑대회를 적극 후원한다는 ‘썰(?)’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4) 정치적 시각으로 분석하는 이도 있었다. 아마바둑이 눈에 띄게 팽창한 시기를 이명박정권(2008년~)부터라고 보며 그 이전 10년을 아마바둑의 암흑기로 표현했다. 노조의 분위기는 보수정권 아래에서보다야 진보정권에서 더 득세하는 편이나 이것이 바둑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둑 후원할 자금이 있으면 사원 복지에나 쓸 일이지 무슨 낙이 있다고 애먼 데 쓰느냐’는 항변이 나올 수 있다. 문화보다는 밥이 먼저라는 분위기에서 바둑대회에 대한 후원은 그만큼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실제 한 아마바둑대회를 후원한 기업가에게서 나온 얘기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는 어느 분야에서나, 어느 시대에서나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정권에 따라 경제상황이 달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바둑을 둘 줄 몰랐던 민주정권의 대통령들에 비해 보수정권(군사독재정권을 포함)의 대통령들이 바둑을 좋아했던 게 사실이고 더 적극적으로 후원한 편이긴 하다. 정권에 따라 평가할 여지가 없진 않으나 물이 끓어오르는 비등점(沸騰點)이 느닷없지 않듯 아마바둑계가 활황을 띠기까지에는 그간의 숙성기를 거친 과정이 작용했을 것이다.  ▲ 올해로 9회째를 맞이하는 노사초배는 함양군수를 비롯한 바둑인들이 노사초 선생 사적비에서 제를 지내고 참배를 한 뒤 대회장으로 직행해 개막하는 의식을 거친다. 함양이 낳은 노사초 국수를 기리고 내세워 지역을 알리는 특색 있는 바둑대회다.  ▲ 14년 전에 선을 보인 청풍명월배는 진정한 바둑잔치가 어떤 것인지 보여준 대회로 우승상금과 순위에 연연해하지 않고 남녀노소 누구나 어울려 즐기는 바둑페스티벌로 자리잡았다. 고무적인 것은, 대회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다양화하는 현상이다. 아마국수전이나 지금은 없어진 학초배 같은 형태의 아마대회는 1세대 기전이랄 수 있다. 이러한 전통기전이 꽤 오랫동안 대세로 자리하다가 하나둘 자취를 감출 무렵, 2000년대를 넘어서면서부터 지자체가 적극 후원하여 선보이기 시작한 게 노사초배나 김삿갓배, 문경새재배 같이 지역 특색을 대회명에 아예 대놓고 드러낸 2세대 기전이다. 이러한 흐름에서 제천에서 개최하는 청풍명월배는 좀더 특이했다. 이 무렵 2세대 기전들도, 물론 이전의 대회에 비해 기력별, 혹은 단체별로 매우 다채롭게 꾸리긴 했지만, 1세대 기전들보다야 비중이 덜하긴 했으나, 대다수 1세대 기전이 그랬던 것처럼 우승상금을 전면에 내세우고 순위를 가리는 토너먼트 형식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사실 그간 바둑대회라 하면 이러한 방식이 상식이자 기본 골격이었다. 어쩌면 바둑대회에서 이러한 형태 이상의 아이디어를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일지 모른다. 단지 대다수가 우승상금을 놓고 펼치는 토너먼트 방식을 따를 때 우승상금을 없애고 상품으로 옥수수와 고등어를 주고 낮에는 수담을 나누고 밤에는 노래와 장기자랑으로 잔치를 벌이는 청풍명월배가 신선한 충격을 주었고, 바둑대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촉발제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바둑대회가 개인경쟁에 치우치기보다는 참가선수 모두가 즐기는 축제로 자리하는 모습은 서양의 바둑친구들을 보며 일찌감치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그간의 관성 탓에 과감히 실행하지 못하던 것이었다.) 축제로서의 기능뿐만이 아니다. 가령 나눔정신을 실현하는 대회로 매년 제주도에서 여는 인코(INCO)배 서귀포칠십리 바둑대회 같은 행사도 있다. 거리바둑축제도 있고, 최근에는 남원에서 여자들만의 바둑대회인 춘향바둑대회도 선보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거나 혹은 미처 모르는 수많은 대회 가운데 이처럼 다양하고 다채로운 대회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벅차다. 지난 주말 정선에서 열린 아리랑바둑대회는 그 지역 천혜의 자연경관과 풍물을 한껏 살려 캠핑과 산나물, 5일장을 연계한 구상이 돋보였다. 10월초에 화성시에서 '정조대왕 효 축제' 기간에 여는 바둑대회 가운데 가족페어부문-부자팀, 모녀팀, 형제팀, 자매팀, 남매팀, 연인팀, 조손팀, 부부팀 들이 나란히 손을 잡고 참가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아름답다. 시장배, 도지사배와 같은 지자체장을 내세운 바둑대회, 교육감배와 같이 교육청에서 날인한 상장을 수여하는 대회에 수많은 지역민과 어린학생들이 참가해 즐기는 시절을 맞았다. 적어도 아마추어바둑에 한하면 ‘호시절’이라 말할만하다. 솔직히 한국바둑계는 80년대까지만 해도 운영적인 면에서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다 89년 조훈현 9단이 ‘덜컥(^^)’ 응씨배를 우승했고 이에 자신감을 얻으면서 이후 세계대회를 줄줄이 제패하는 예상 외의 ‘줄경사’를 맞았다. 마치 어느날 보잘 것 없었던 강남 땅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거금을 손에 쥔 ‘졸부’가 된 것 같았다. 이때 90년대 10년 동안이 한국바둑의 최전성기였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중요했다. 기분에 들뜨지 말고 차분히 미래를 준비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후 날로 바둑붐이 가라앉는 시대에 직면한 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의 거센 추격까지 맞으면서 오늘날 고전을 면치 못하게 되고 보니, 이 잃어버린 10년이 후회막급할 따름이다. 다행이 천우신조(天佑神助)와도 같은, 때마침 극적인 ‘알파고 바람’이 불어주었다. 제갈량의 동남풍이다. 호시절을 맞은 아마바둑계가 이 시점 ‘잃어버린 10년’을 반추하고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할 것인지 고민할 때다.  ▲ 정선아리랑 전국바둑대회는 선수들이 화암동굴 입구에 자리한 하늘바람공원 야영장에서 숙박을 한다. 우승상금도 없거니와 입상한 팀이나 참가한 팀이나 똑같이 상품(정선 산나물 박스)을 나눠준다. 정선아리랑 바둑대회는 청풍명월배를 모델로 삼아 만든 대회지만 청풍명월배가 제천 세명대 안에서만 치르는 데 비해 정선아리랑 바둑대회는 다소 규모는 작되 지역 자원을 최대한 연계하는 아이디어로 주목받고 있다.  ▲ 바둑대회가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신나고 즐겁지 않다면 누가 그 먼데까지 기꺼이 달려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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