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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파고 이후 15일, 또다른 세계의 포석을 논하다
춘란배의 '알파고 빙의' 박정환과 맥심배 이세돌의 바둑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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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라의 썰전說戰 - 스물여섯 번째 '썰'] '반상의 구라' 김성룡 9단. 막강한 입심을 자랑해 얻은 별명이지만 화려한 애드립이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판에 박은 해설과는 거리가 먼, 솔직발랄직선적인 어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매주 사이버오로가 멍석을 깐다. 주간관전평 '김구라의 썰전'. 이번은 알파고 신드롬 이후 달라진 일류들의 수법에 대해 말한다. 평소에 말하기 좋아하고 어느 순간부터는 말로 먹고 사는 직업을 가진 나로서도 벅찼다. 1년 동안 말할 양을 3주 만에 다 토해낸 것 같다. 너무 충격 받아 정신이 혼미한 적도 있고 내가 이긴 것보다 더 기쁜 순간도 있었다. 인간에서 신의 영역 속으로 들어갔던 이세돌이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다. 누구는 바둑이 늘었을 거라고 했고 누구는 똑같을 것이라 했다. 나 또한 신세계를 경험했던 이세돌의 수가 너무 보고 싶었다. 복귀전치고는 급이 맞는 상대라는 점도 이야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이세돌 대 김지석의 맥심배 8강 이야기에 앞서 춘란배로 먼저 시작해 본다. 춘란배를 이야기해야 한다 - 같은 대목, 다른 길 올해는 유독 세계대회가 많다. 4년에 한번 여는 응씨배도 있고 2년에 한번 치르는 춘란배도 마침 시작을 알린 해다. 알파고는 이러한 해에 특히 바둑열기를 뜨겁게 해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알파고의 수를 보면서 과연 바둑의 패러다임이 바뀔 것인가 묻는 질문들이 많았다. 뭔가 바뀌려면 일류 선수들의 바둑을 봐야 한다. 가장 좋은 기회가 되었던 대회가 춘란배다. 그것도 한 중전이면 금상첨화. 16강전에서 우리의 박정환은 알파고로 초반 빙의했다. 한국랭킹 1위가 일반 대국도 아닌 세계대회의 중요한 판에서 알파고의 수법을 그대로 들고 나왔다는 점은 알파고의 수가 그만큼 훌륭했다는 방증이다.  ▲ <장면1> 춘란배 16강전 (흑) 미위팅 9단 : (백) 박정환 9단 <장면1> 흑25번째 수로 2선을 붙였다. 이 수는 중국의 미위팅이 둔 한수다. 이세돌-알파고 5국에서 이 수는 없었다. 초반 24수까지는 똑같았지만 변화한 것이다. 중국에서도 이 바둑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는 걸 바로 이 한수를 보면 안다.  ▲ <장면2> <장면2> 여기서 박정환은 백1로 참았다. 미위팅은 이세돌(5국) 같이 흑2로 두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미위팅은 딱 한번만 이세돌과 다르게 뒀다. 박정환도 알파고와 다른 한수를 둔다. 바로 백3이 그것. 알파고는 한칸 옆쪽(눈목자)에 두었는데, 사실 바둑의 역사에서 화점에서 눈목자로 받는 수법은 20세기 이전 바둑의 기본이었다. 백3의 날일자 응수는 ‘우칭위엔의 날일자’라 할 만큼 역사적으로 보면 짧다. 현대바둑의 기본으로 보이는 날일자, 이 한수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잘해봐야 100년 미만이라는 점이다.  ▲ <장면3> <장면3> 바둑은 또 5국과 비슷하게 흘러갔다. 흑33의 3-三침입, 이 수로 이 바둑은 이세돌-알파고의 5국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이제부터 박정환-미위팅의 대결이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그런데 이 변화도에 숨은 이야기가 있다. 5국이 끝난 후 출입이 통제된 이세돌의 대국장에서는 프로들끼리 이 수에 대한 연구가 있었다. 그리고 이세돌의 멘트가 있다. 현장 상황은 이랬다. 먼저 대국장에서 가장 가까이 공개해설장에서 해설하고 있었던 김성룡이 1번으로 입장. 이미 아자황은 자리를 떴고 심판이었던 이다혜 4단과 계시원까지 총4명이 남은 상황에서 조금 뒤 친형인 이상훈 9단이 들어왔고 뒤를 이어 조훈현 9단과 프로기사가 아닌 VIP 몇 분이 같이 들어왔다. 이상훈 9단이 동생에게 바로 한 얘기는 "그냥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두라니까 왜 그렇게 의식을 해”였다. 그리고 나서 중반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그리고 초반에 관한 감상이었다. 우선 이세돌은 미위팅 같이 흑33을 3-三에 두지 않았다. 형이 이유를 물었다. 그런데 이때 이세돌은 이런 그림을 보여줬다.  ▲ <장면4> <장면4> 이세돌은 백1,3으로 알파고가 두면 흑4로 붙여야 할 것 같은데 이걸 잘 모르겠다고 했다. 확신이 안 들었다는 얘기와 함께. 그리고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장면5> <장면5> 백1~흑8까지는 박정환과 미위팅의 변화. 이 변화는 사실 이세돌의 형 이상훈이 얘기한 수순. 흑이 실리가 커서 좋지 않냐. 또한 백이 바둑을 짜 나가기가 어렵지 않냐,였다. '사람이라면 그렇겠지.' 아마 이세돌도 속마음은 그렇지 않았을까. 춘란배가 끝나고 돌아온 박정환 9단에게 전화로 물어봤다. <장면4>를 이세돌은 말하더라고 했더니 박정환은 정수일 것 같은데 흑4로 붙이는 수를 둘 때 다음이 어려워서 실전 진행을 택했다고 한다. 다시 <장면4>로 돌아가- 1. 이세돌은 백1,3의 알파고 수 예측. 그 다음 흑4로 둬야 하는데 뭔가 어려운 변화가 예상되어 다른 방향을 생각하게 됨. 그리고 실전에서는 다른 길로 감. 2. 박정환은 백1,3의 알파고 수도 생각해 봤지만 흑4를 당할 경우 다음 변화에 자신이 없어 실전처럼 둠. 한 장면을 두고 이세돌과 박정환은 몇 수 앞의 흑4가 두어질 경우 그 다음의 변화가 무척 어렵다고 봤고, 어려운 그 다음의 변화를 두고 반대로 갔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건 흔히 말하는 기풍의 차이와는 많이 다르다. 이번 알파고 때 많이 쓰였던 단어 ‘직관’이 아닐까. 우리는 그동안 그걸 프로의 감이라고 했는데.  ▲ '인간계'로 되돌아온 이세돌의 첫 대국 상대는 김지석.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이었다. 이 대국에서 두 기사는 마치 알파고의 언어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이제 맥심배 8강 - 알파고의 언어로 얘기하고 있는 그들 사실 맥심커피배 입신최강전 8강전(이세돌-김지석)이 끝나고 잠을 한숨도 못 잤다. 실로 오랜만에, 궁금해서 미칠 것 같은 상황이 된 것이다. 이 바둑을 본 팬 여러분은 과연 어떤 점이 이 바둑에서 인상적이셨는지 궁금하다. 아마 마지막 장면, 흑이 백돌을 빵빵 따내는데도 결국 백(이세돌)이 한수 빨라 상대를 잡는 모습. 여기서 희열을 느끼지 않으셨는지…. 그럼 프로들은 어떠했을까.  ▲ <장면6> 맥심배 8강 (흑) 김지석 9단 : (백) 이세돌 9단 <장면6> 초반에 모두들 깜짝 놀란 한 수가 있다. 바로 이세돌이 선보인 백1. 잘 보면 우하귀가 뭔가 하다 만 느낌이 들지 않으시는지. 랭킹 10위권 안에 드는 5명에게 전화를 했다. 백1, 어떤 것 같냐고? 모두 처음 보는 수라고 했다. 우스갯소리로 알파고에게 배운 것 같다는 농담도 곁들여서.  ▲ <장면7> <장면7> 백1-5까지, 이게 보통 많이 두는 수순이다. 그렇다면 <장면6>의 백1은 무슨 뜻일까.  ▲ <장면8> <장면8> 백1-4까지 교환한 상황에서 백5로 두면 흑이 3-三을 받지 않을까봐 그렇게 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것 밖에는 얘기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그런데 여기서 박정환은 이런 얘기를 했다. 진짜 놀랐다,라고 말할 수 있는 수! “흑6으로 두는 게 싫었을 것 같아요.” 이 말에 전화로 몇 번 확인했다. 진짜로... “그 곳은 프로들이 아는 곳이 아니잖아”라고 말하고 싶었다. 알파고 이후에 (일류들과 더) 갭이 커진 것인가. 왜 이세돌과 박정환은 알파고랑 대화하고 있지. 우리는 모르는 언어로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비록 춘란배에서 졌지만 박정환은 전화로만 목소리를 들어도 구름 위에서 놀고 있고, 인간계로 복귀한 이세돌은 확실히 한차원 더 도약한 것이 아닐까. 인공지능에게 지면 바둑계는 망한다고...? 아니다. 우린 또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다. 이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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