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15년 중국 커제 9단은 백령배, 삼성화재배, 몽백합배를 석권하며 세계대회 3관왕에 올랐다. 작년 열린 세계대회 결과를 살펴보면 한국에서 개최하는 양대 기전(삼성화재배, LG배)은 한국기사와 중국기사가 하나씩 우승을 나눠 가졌지만, 중국에서 만든 세계대회(춘란배, 백령배, 몽백합배) 우승컵은 모두 중국기사 손에 들어갔다. 2016년 열릴 격전장에서 한국은 커제로 대표되는 중국세를 어떻게 물리칠까? 올해는 특히 바둑올림픽으로 불리는 응창기배도 열리는 해다. 응창기배 우승컵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까? 아니면 2년 연속 중국이 가져갈까?

▲ 3년 전 7회 응씨배 결승에서 중국기사 판팅위에게 패해 극심한 아픔을 겪었던 박정환. 현재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응씨배 우승에 대한 열망이 클 것이다. 응씨배는 전기대회 준우승자가 다음 대회에 우승하는 일도 두 번(창하오, 최철한)이나 있었으니 올해는 박정환에게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 박정환은 2012년 이후 연말 시상식에서 다승상과 승률상을 4년 연속으로 수상 (연승상은 2011년, 2012년, 2014년, 2015년 수상)했다. 한국랭킹은 2013년 7월부터 1위에 올라 2016년 2월 기준으로 27개월 연속 1위를 기록한 한국바둑의 대표선수다. 2015 바둑대상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은 박정환은 "한국랭킹 1위라면 세계대회도 많이 우승해야 되는데 좀 반성해야 할 것 같다. 열심히 하겠다."라고 수상소감을 말했다.

▲ 2015 국수산맥배. 한중 최강자가 세 명씩 팀을 이룬 단체 대항전이다.

●판팅위 ○박정환 2015 국수산맥배 한중대항전 3R(2015. 08.10-김성룡의 '월간 이 한手'에서 발췌)

박정환이 우하귀에서 한수씩 진행할 때마다. 바둑TV 생중계 해설자는 "그런 수가 있습니까?"를 연발했다. 참고도 우하귀의 진행에는 깊은 노림이 숨어 있었다. 김성룡 9단은 "수가 나기 전까지 일련의 흐름이 마치 단순한 끝내기 수순처럼 진행된다는 점에 묘미가 있다. 차근차근 진행되는 수순에 다 역할이 있었다. 바둑계에 길이 남을 역대급 묘수였다."라고 평가했다.

참고도 백1과 흑2의 교환은 일견 느슨해보인다. 박정환의 바둑은 혹시 약간 엷어질 때는 있어도 집으로 잘 밀리진 않는다. 불리한 형세라도 일단 집균형은 맞춰놓고 승부를 거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 실리 손해를 감수하면서 흑대마를 그냥 넘겨주는 게 좀 이상하게 보였다.

흑대마(세모 표시)는 공격해오는 반대쪽 돌(좌하귀 또는 우하귀 흑)과 연결하면 손쉽게 산다. 백3도 마치 일반적인 끝내기로 보인다. 흑4와 교환이 있어도 만약의 경우 흑대마가 넘어가는데는 장애가 없다. 백5에 의심없이 판팅위가 흑6으로 끊었을 때 드디어 백7의 폭탄이 터진다. 그전에 박정환의 공작이 교묘해서 이미 때는 늦었다.

이 모양에서 흑이 물러서면 패가 생기는데 중앙 흑대마를 공략하는 팻감이 무궁무진하다. 백11로 붙이는 것이 묘수순의 하이라이트였다. 안에서 백이 사는 수를 없애려고 흑이 뚫으면(백13자리) 백은 1선(흑16자리)으로 넘어가고, 흑은 다시 백15자리로 내려서야 한다. 이런 모양에선 백A, 흑B, 백C, 흑D, 백E로 진행되더라도 우하귀와 흑대마가 연결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판팅위는 참고도 흑12로 물러섰고, 이후는 필연의 수순으로 흑진영이었던 귀에서 백이 딱 두 집을 내고 살아버렸다. 우하귀 흑은 집만 파인 게 아니라 자신의 생사를 다시 돌봐야할 처지가 됐다. 김성룡은 "일련의 작전과 심리전이 기가 막히다. 바둑의 고급기술을 다 보여줬다."라고 극찬했다.

▲ 이세돌과 벌인 명인전 결승5번기. 3국에서 흐름을 박정환 쪽으로 돌렸지만, 4국에서 의문수가 나와 역전패했다. 우승은 다시 이세돌 9단이 차지했고, '명인'은 아직 박정환이 가지지 못한 타이틀로 남았다.

▲ [실전진행] ●이세돌 ○박정환 제43기 명인전 결승4국(2016.01.21)

백1에 이세돌은 어쩔 수 없이 흑2로 물러섰다. 이때만 해도 이세돌은 의자 뒤로 길게 누워서 뒷머리를 손에 기대며 승부를 거의 포기하는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이세돌은 백5를 보고서 다시 눈을 반짝였고, 백9가 놓이자 자세를 고쳐앉아 반상에 바짝 다가서서 다시 계가하기 시작했다. 국후 복기 중에 박정환은 "흑10, 12로 백 요석 두 점이 잡히는 걸 깜박했다."고 말했다.

▲ [참고도] 이세돌은 백A가 아니라 참고도처럼 백2로 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쉽게 중앙을 정리해도 백승이 거의 확실한 국면이었다. 백A의 과수를 만든 박정환의 심리는 무엇이었을까?

●박정환 ○커제 제2회 금용성배 3R(2015. 12.18)

한국랭킹 1위 박정환과 중국랭킹1위 커제 가장 최근 대국이다. 박정환이 초반부터 삐끗했다. 좌상귀 흑1부터 백18까지 진행은 백이 좋은 결과(국가대표팀의 분석결과)다. 이 대국은 초반 선취점을 내준 것이 끝까지 발목을 잡았다. 백20~26까지은 커제의 멋들어진 삭감. 이후 흑은 이 백돌을 압박하며 공세를 취했지만, 백이 꼬리를 살짝 떼어주고 곳곳에서 실리를 챙기자 흑은 맥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박정환은 2013년 갑조리그에서 커제와 처음 대국해 승리했지만, 2014년 백령배 준결승 1, 2국과 2015년 말 열린 금용성배 3라운드에서 패해 상대전적에서 1승3패로 밀려있다. 상대전적의 열세보다 내용에서 맥없이 진 판이 대부분이라 문제다.

국가대표팀 최명훈 코치는 "특히 최정상급 기사의 대결에서 초반은 아주 중요하다. 조훈현 9단, 이창호 9단은 전성기 때 초반은 대부분 아는 길, 확실한 길로만 갔다. 박정환도 중요한 승부에서 자기스타일로 좀 더 안정감있게 두어가는 게 필요하다."라고 평했다.

▲ 프로기사가 컴퓨터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 바둑은 사회적으로 어떻게 자리매김할까? 장차 바둑계를 이끌어 갈 박정환이 풀어야할 숙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