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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라의 꼼수에 딱 걸린 아줌마
제천 청풍명월 바둑축제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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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라의 썰전說戰 - 열네번째 '썰'] '반상의 구라' 김성룡 9단. 막강한 입심을 자랑해 얻은 별명이지만 화려한 애드립이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판에 박은 해설과는 거리가 먼, 솔직발랄직선적인 어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매주 사이버오로가 멍석을 깐다. 주간관전평 '김구라의 썰전'. 프로들은 바둑대회와 바둑축제의 차이를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유는 하나. 항상 승자들을 위한 대회만을 봐 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럽과 미국의 바둑대회같이 승패를 떠나 그 자체를 즐기는 팬들을 볼 때마다 부럽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외국 바둑인이 와도 색다른 경험에 놀랄 수 있는 대회를 드디어 만났다. 바로 제14회 청풍명월 바둑축제다. 7월 25일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제천행 기차를 타러 오송역으로 향했다. 두달 전 세종시로 이주 하다 보니 지방 바둑행사에 일하러 가기는 여러모로 편하다. 처음 타보는 충북선 기차노선. 청주를 지나 목적지인 제천까지 1시간 20분 만에 도착했다. 제천이 자랑하는 청풍명월배는 올해로 14회를 맞이하는 대회다. 세명대학교 체육관에 걸려 있는 현수막을 보니 대회가 아닌 바둑축제로 적혀 있다. 예전엔 왜 대회와 축제를 똑같이 생각했을까. 이유는 하나다. 아마추어 동호인대회라고 했던 바둑대회들을 보면 대부분이 프로의 경기방식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결국은 상금이 목적인 대회를 하다 보면 대국이 한판 끝날 때마다 참가했던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된다. 정작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시상식엔 아무도 박수쳐 줄 사람이 없었던 대회들. 내가 아는 아마추어 바둑대회는 항상 그랬다. 우승자를 위한 바둑대회가 아니다 그런데 청풍명월배는 달랐다. 프로가 관광겸 응원겸(천풍조 프로) 즐기러 오고, 선수가 되어 두기도 하고(최문용 프로), 아마4단인 프로기사의 아버지도 자연스럽게 대회에 참가하고(안영길 프로의 아버지 안기종씨), 15급인 프로의 엄마도 당당히 선수로 바둑을 둔다(고근태 프로 어머니 황순자씨). 할아버지부터 손주들까지 3대가 5명 한팀이 되어 ‘가족끼리’란 이름으로 참가를 한 팀도 있다. 졌다고 우울하지도 않고 누구 하나 찌푸린 얼굴이 없다. 참가비 3만원만 내면 양질의 식사 4끼를같이 할 수 있고 어른들은 옥수수를 안주 삼아 생맥주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 그렇다고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지도 않다. 시원한 아이스크림까지 제공해 준다. 숙소도 방학에는 비어 있는 호텔 수준의 대학 기숙사에서 1박2일을 보낼 수 있다. 주최측은 지역 특산물을 홍보하고 팔리는 상품은 지역 경제활성화에 도움을 준다. 또한 대회가 매개가 되어 참가자는 지역 관광도 하면서 주말을 즐긴다. 그 동안 유럽과 미국 바둑대회를 보면서 부러웠던 것-즐겁게 즐기는 것들을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하고 발전시킨 바둑축제. 청풍명월배는 분명 바둑대회이면서 축제였다.  ▲ 청풍명월배 대회전경. 물경 14회째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 진정한 바둑축제 최문용 5단이 청주 청맥팀 선수로 단체전을 나왔다. 처음엔 이 친구(나이로 5년 후배)가 왜 이러나 싶었다. 아마추어로 전향한 것도 아닌데 이래도 되나 싶었다. 사실 프로가 아마대회에 출전하는 것은 한국기원 규정을 살펴봐야 할 정도로 특이할 만한 일이다. 상금을 노린 것이 아닌, 동호회 회원 자격으로 참가한 것이니 이상하지는 않다. 여하튼 최문용 5단과 대국한 동호인들은 색다른 체험에 즐거워했다는 점이다. 프로가 같이 팀으로 나와 아마추어와 함께 해준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바둑보급 아닐까. 제한시간 1시간 30분 동안 상대와 100수도 안 둘 때도 있었다. 진행 관계상 프로가 프로의 바둑을 중간에 판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 사범 이걸 어쩌냐? 판정해야 하는데 어쩌지.” 난감했다. 오히려 최문용의 상대가 내 마음을 읽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제가 진 걸로 하고 싶습니다. 잘 배웠습니다.” 정말이지 고마웠다.  ▲ 1시간 반 동안 요만큼만 둔 최문용 프로(왼쪽 대국자). 워낙 수순이 더뎌 판정을 내리기 난감했는데 아마추어 선수가 자기가 졌다고 해 무난히 넘어갔다. ^^;; 최문용은 아마추어와의 대국에서도 프로 대국 같은 열정을 보여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 안영길 프로의 아버지 안기종 씨의 모습도 보인다.  ▲ 72세 할아버지와 73세 할머니의 대국. 73세 할머니가 누나라고 부르라고 했다. ㅎㅎ 인천에서는 버스 45인승을 빌려 여성기우회원과 남자회원을 포함해 엄청난 인원이 단체로 왔다. 그 중 ‘1승을 부탁해’라는 여성팀이 있었다. 상대는 참가팀 중 가장 어린 충암도장의 초 약체팀. 축제 성격에 맞게 유치원부터 초등 3학년까지 바둑에 푹 빠진 초보 어린이들로만 구성됐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부모는 마치 여행을 온 것같이 즐겁다. 유심히 지켜봤더니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1승을 부탁해’ 팀은 2:2 상황에서 드디어 대망의 1승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들보다 어린 ‘얼라’의 꼼수에 아줌마가 걸렸다. 우하귀 흑집 모양에서 백이 단수를 치면서 흑을 다 잡았다. 보강만 했으면 아줌마의 승리. 옆에서 유심히 지켜보던 충암도장팀은 신이 났다. 아줌마: 너무 아깝다. 한번만 물려주면 안돼? 충암 얼라: (시크한 목소리로) ‘앙 돼요!’  ▲ 얼라가 야박하게 물러주지 않자 바로 복기에 들어갔다. ^^ 아무도 우승이 누구인지에 관심이 없다. 그저 우리 팀이 어떤가만 생각하고 만족하면 그뿐이다. 대다수의 참가자는 감자와 옥수수를 부상으로 받았다. 경품추첨의 백미인 42인치 TV를 놓쳤을 때 아쉬움은 컸지만 모두 만족했다. 제천바둑협회 전무이사인 이정숙 누님이 부탁을 하나 했다. 협회회원 한 분이 꼼수로 너무 괴롭힌다고 가르쳐 달라고 했다. 사진이 실제 물어본 장면이다. 그곳에서 가르쳐 드리면 분명 까먹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약속을 했다. 동영상으로 만들어 드릴테니 까먹으시면 화장실 가서 살짝 보면서 대응하시라고. 궁금하신 분은 밑에 동영상을 보시라.  ▲ 이 꼼수를 가르쳐 주삼! 제천바둑협회 이정숙 전무이사의 간절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원포인트 레슨을 해드린다. 내가 굶주린 것은 7월26일 대회를 마치고 오후, 다시 오송으로 가는 무궁화호 기차를 탔다. 너무나 궁금한 조-조대결을 인터넷 영상으로 봤다. 난 그 동안 무엇에 목말라 있었을까. 어릴 적 바둑이야기가 들어간 책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이긴 것만 기억하는 그런 세상에서 살다 보니 스토리 없는 바둑에 입맛이 맞춰져 있었다고 할까. 그저 승패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생각해보니 난 승부 이전의 이야기에 너무 굶주렸던 것 같다. 작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조-조대결의 시간패도 어찌 보면 다시 한번 레전드의 대결을 보고 싶다는 열망을 더 끓어오르게 하는 요소가 됐다. 7월의 마지막 주말. 청풍명월 바둑축제, 그리고 조훈현, 조치훈. 여러분도 즐겁지 않으셨는지요? 지난회 썰전에서 약속드린 댓글 경품, [꼼수 퇴치법]을 받으실 분은 아이디 ‘장총수’ 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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