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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장통증 견디며 건져올린 나현의 묘수
긴박했던 나현의 하루, 이것이 주장의 진면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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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구라의 썰전說戰 - 열두번째 '썰'] '반상의 구라' 김성룡 9단. 막강한 입심을 자랑해 얻은 별명이지만 화려한 애드립이나 시시껄렁한 잡담이나 곁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판에 박은 해설과는 거리가 먼, 솔직발랄직선적인 어법으로 팬들을 즐겁게 한다. 매주 사이버오로가 멍석을 깐다. 주간관전평 '김구라의 썰전'. 나는 바둑리그 5년차 감독이다. 어느덧 중견감독이 되었다. 비극적인 얘기 같지만 방송 해설이나 오로에 글을 쓰지 않으면 감독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되지 않는다. 사정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다른 스포츠 감독처럼 억대 연봉인 줄 알고 “바둑은 선수가 알아서 하는데 감독이 하는 일이 뭐가 있어”라는 얘기를 하실 때마다 힘이 빠진다. 그래도 팀이 지면 내 대국을 진 것보다 10배는 더 괴롭다. 그런 마음을 이해 못하고 감독에게 이런 말 하는 선수가 너무 얄밉다. “사범님이 열 받으실 일이 뭐가 있어요 이기든 지든 월급이 나오는데.” “지면 대국료 없는 우리 같은 선수들이 더 열 받죠.” 틀린 말은 아니지만 감독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몰라도 너무 몰라주는 망발(?)이다. 소심한 복수로 다음 경기 오더에서 제외하고 싶지만 빼면 질 것 같아 참을 때가 많다. 7월16일 후반기 바둑리그 첫 경기가 열렸다. 내가 감독을 맡고 있는 포스코켐텍과 CJ E&M의 경기. 대국 시작이 7시에서 6시30분으로 30분 앞당겨져 선수들에게 저녁식사는 자율로 맡길 수밖에 없었다. 오후5시 한국기원 1층에서 나현을 만났다. 농심배 예선대국이 있는 걸 알았기에 잠깐 물어봤다. “어떻게 됐어?” “졌어요.” 얼굴이 어두웠다. 상대는 민상연. 상연이한테는 미안하지만 나현이 당연히 이길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부득이하게 하루에 2판을 둬야 하는 더블헤더가 있는 날엔 감독은 민감해진다. 첫판을 이기면 덜하지만 질 경우엔 피로감이 훨씬 커 저녁 바둑리그에 영향을 미친다. 기분 전환 시킬 겸 같이 간단히 요기나 하자고 말했다. “감독님 저 병원에 좀 빨리 다녀오겠습니다.” “왜. 어디 아프니?” “허벅지랑 옆구리가 너무 아파서 참기가 어려워요. 빨리 다녀 오겠습니다.” 나현은 8시30분에 대국에 들어가니 시간이 충분했다. 더욱이 농심배 예선대국을 4시간 가까이 두고온 상태라 그저 조금 아픈 정도인 줄로만 알았다.  ▲ 7월16일 한국기원 대회장에서 열린 17회 농심신라면배 대표선발전 4라운드에서 나현(랭킹 8위)이 민상연(랭킹 40위)에게 져 탈락했다. 이변이었다. 그런데 나현이 탈장한 상태에서 대국했다는 사실이 국후 밝혀졌다. 6시10분, 나현 아버님의 전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범님 정말 면목이 없습니다. 현이 오늘 대국 못할 것 같습니다. 수술해야 할 것 같다네요.” “네에???” 순간 너무 놀랐다. “탈장인 것 같다네요. 정밀검사 나오는 대로 수술받아야 한답니다. 애가 너무 아파서 울고 있어요. 진통제로 일단 아픈 것 다스린다네요.” 감독으로서 할말이 없었다. 그렇게 아프면 농심배 두다가 바로 병원으로 갈 것이지 참고 두다가 더 악화됐다는 얘기. 주장이 기권한다는 것은 그 날 경기를 반쯤은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 회사에 상황 설명을 하자 선수 보호가 우선이니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6시30분 바둑리그 세 판이 시작되었다. 변상일 대 이지현의 대국은 장고대국. 50% 가능성을 점치고 있었다. 2국은 김진휘(5장) 대 강동윤(1장). 이런 경우 감독의 오더가 제대로 적중한 짜릿한 상황이다. 야구의 번트 같은, 적시에 필요에 의한 희생타가 되기 때문이다. 3국은 류민형 대 신진서. 이길 확률이 40%라고 보면, 4국 김명훈 대 박재근은 우리의 우세. 나현 대 박승화도 우세라고 볼 때 오늘은 승산이 있는 경기였다. 7시40분. 류민형의 형세는, 검토실의 ‘양산박’ 박건호(양산 출신)에 따르면 50집쯤 졌다고 했다. 솔직히 보면서도 민망했다. 신진서에게 그렇게 데굴데굴 구를 수가 없었다. 프로들은 찬스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질 때의 상황을 ‘상대에게 즐거움만 계속 줬다’는 뜻으로 ‘관광’ 당했다고 말하는데 딱 그 말이 어울리는 바둑이었다. 포스코켐텍 1패. 김진휘 역시 기분만 내고 지는 바둑으로 가고 있었다. 워낙 류민형이 구르다 보니 그나마 이 바둑에 희망을 걸었지만 “희망고문”으로 가고 있었다. 두 판을 지게 되면 (나현이 5국을 기권하니) 우리 팀은 이미 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 때 핸드폰에 문자가 하나 찍혔다. “8시20분까지 나현 대국장으로 갈 확률 있음.” 팀이 지고 있는 분위기를 바꾸려 팀원들에게 “나현이가 우리 팀 지고 있다고 온다고 한다는데” 라고 하자 모두 놀랐다. 특히 김명훈이 가장 많이 놀랐던 것 같다. 2패를 안고 4국에 들어가야 하는 명훈이는 (나현의 기권이 기정사실화되는 상황이면) 둘 맛이 안 난다. 이미 3대0 승패가 확정된 처지에서 승부와 관계 없는 판을 둬야 하기 때문이다. 팀원인 김혜민의 차로 한양대병원에 도착한 시간이 8시10분. 메르스 때문에 못 들어가는 상황을 안면몰수하고 뛰어들어갔다. 나현은 링거를 꽂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가면 안 된다, 나현은 가겠다, 실랑이가 오가고 뒤늦게 쫓아온 안전요원에게 나는 쫓겨났다. 10분쯤 지났을까 나현이 진통제를 맞고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베스트 드라이버 김혜민은 기원까지 5분 만에 주파. 8시30분 대국은 무리 없이 진행되었다. 그 와중에 미운오리 김진휘(전반기 5전 5패)가 번트 대라 했더니 강동윤에게 홈런을 쳤다. 분위기는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 사실 이 날 우리는 져도 됐다. 나현의 투혼으로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 번트만 잘 대어달라며 내보낸 타자가(상대팀 주장에 맞선 희생타. 이겨주면 대박이고!) 홈런을 쳐버렸다. 그것도 팀의 패배가 거의 확정되는 분위기에서. 이런 순간을 기사회생이라고 하나. 한국리그 5연패에 허우적거리던 김진휘가 7승1패를 달리고 있는 강동윤을 잡았주었다. 이런 맛으로 감독한다. 다행히 나현의 바둑은 형세가 좋았다. 그런데 그 좋던 바둑이 이길 수 없는 상황까지 내몰렸다. 고통을 참느라 매우 일그러진 얼굴이 방송 화면에 비쳤다. 하지만 사활의 묘수가 등장했다. 이 날 나현을 더 극적으로 만드는 수! 바둑을 보면 이렇다.  ▲ <장면1> <장면1> 박승화는 흑1을 두면서 우변과 하변의 사활을 압박했다. 만약 백이 2로 중앙을 살리면 흑3,5 이하로 우변 백이 잡힌다. 흑13이 성립되기 때문이다.  ▲ <장면2> <장면2> 그렇다면 흑1에 손을 돌려 백2로 살아두면 어떨까. 이럴 때 흑3,5가 언뜻 좋은 수처럼 보인다. 백이 6으로 이을 때 흑7~13까지 완벽하게 매화육궁으로 백이 잡혔다. 사는 길이 없는 것일까.  ▲ <장면3> <장면3> 백1이 있긴 하다. 사활의 묘수다. 살았다. 흑2,4에 백은 5로 두어야 매화 육궁을 피할 수 있다. 살긴 사는데..., 문제는 이렇게 진행하면 흑은 A로 백 다섯점을 선수로 잡을 수 있다. 백은 B로 두지 않으면 양자충이다. 실전과 비교하면, 이렇게만 되면 두 곳 모두 백이 살아도 흑이 약간 유리하다.  ▲ <장면4> <장면4> 나현의 묘수다. 아마 방송을 시청하신 분들은 보셨을지 모른다. 박승화가 실망하는 표정을. 이 묘수에 대한 아래 동영상 해설은 식구들이 모두 여행을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혼자 셀카로 찍은 영상이니 조잡하다. 이해 바랍니다. ^^  ▲ 통증을 참으려 입을 앙다문 채 대국하는 나현의 모습. (왼쪽 대국자) 묘수가 나올 때 즈음 나현의 어머니가 병원에서 오셨다. 검사결과가 나왔는데 탈장은 아니고 왼쪽 복부 근육에 고름이 많이 찼다고 했다. 내일 수술해야 하니 끝나면 바로 한양대병원 응급실로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아들이 이겼다고 웃을 수도 없는 묘한 상황이었다. 다 진 줄 알았던 김명훈마저 역전했다. 3대0으로 패배가 확정되나 싶었는데 창졸간에 4대1로 승리했다. 10시40분. 아픈 나현을 위해 김혜민이 기꺼이 “운짱”을 다시 맡았다. 안조영은 하룻밤 같이 응급실서 지내겠다고 했다. 하지만 말렸다. 대학병원은 아직 메르스 때문에 외부인 출입이 어렵다. 가 봐야 입장 불가다. 그런 마음만이라도. 우리 후배들 너무 고맙다. (나 지금 우는 거야? 그런 거야? ^^;;)  ▲ 요때까지만 해도 오만가지 생각으로 착잡했다고요. 감독노릇, 이거 거저 먹으며 하는 게 아닙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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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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