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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악동 '커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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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바둑계에 커제 열풍이 분다. 중국에 가서 커제가 어떤 기사냐고 물어보니, 답을 하는 사람마다 들떠 말한다. “중국을 이끌어갈 바둑 영웅의 재목이다.” “잘생겼다.” (흠, 이건 논쟁의 여지를 열어두고 싶다.) “과감하고 거침없다.” 마치 양 손으로 기자의 어깨를 잡고 커제에 대해 말해줄 듯한 기세다. 중국 바둑관계자들과 중국 바둑팬들은 그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있다. ‘아니 커제의 인기가 이 정도였나…’ 짐작은 했으나, 영웅을 갈망하는 중국바둑팬들은 커제가 바로 그 영웅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나인 듯 보였다. 2008년 입단. 입단 직후엔 그저 그랬다. 2013년 삼성화재배 16강, 2014년 천원전 준우승. 드디어 반짝였다. 그렇다 하더라도 ‘꽤 잘하는 수준’이라고 여기는 정도였으나 같은 해에 거둔 갑조리그 18연승이 굉장했다. 갑조리그는 중국의 내로라하는 기사와 한국 용병이 가세하는 무대다. 18연승이란 질주는 다른 기사들을 압도할 만한 실력이 아니고선 내기 어려운 성적이다. 마침내 2015년, 제2회 백령배를 우승함으로써 기량이 절정에 이르렀음을 증명했다. 또래 기사들로는 응씨배에서 우승한 판팅위도 있고, 몽백합배에서 우승한 미위팅도 있다. 이들은 97년생인 커제보다 한살 많을 뿐이다. 그런데도 커제는 이들을 제치고 단연 집중조명을 받는다. 이유가 뭘까. 그냥 성적뿐 아니라 카리스마를 지닌 ‘영웅’을 갈망하는 중국바둑계의 염원 때문일 것이다. 카리스마는 절대적 권위를 뜻한다. 이런 걸 커제한테서 찾고자 하는 것 아닐까. ‘커제는 뭔가 다르다, 끼가 있다’ 이런 것일게다. 그럼 구리는 어떤가. 전성기를 지났고 위세가 예전만 못하다. 스웨는 어떤가. 현 중국랭킹 1위다. 랭킹 1위와 1인자가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지만 스웨는 랭킹 1위에 걸맞은 성적과 재능 그리고 카리스마를 보여준다. 한국기사들은 여전히 스웨를 최고의 경계대상 1위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스웨도 영웅 후보의 한 명으로 손색없다. 그런데도 인기는 중국랭킹 2위의 커제에게로 쏠리고 있다. 실력과 더불어 범상치 않은 커제의 말과 행동이 한몫해서일까. 평온한 어조로 겸손한 말만 하며, 세계대회 본선•결승이 열리는 기간에 논어와 맹자를 읽으면서 조용히 마음수련을 하는 스웨보다는 잔뜩 자신감에 차 있고 도발적인 커제가 대중에게 더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것 같다.  ▲ 관심의 중심이 되고 있는 커제.  ▲ 6월16일 열린 2015 박카스배 한중바둑 미래천원전 개막식에서 오유진(왼쪽 아래)이 '(오더는 달리 정해졌지만) 커제 선수와 두고 싶었다.'고 밝히자 객석에 있던 커제가 얼굴을 가리며 멋적은 웃음을 짓고 있다. 곁의 동료들도 즐거워하고 있다. 커제는 2014년, 제16회 아함동산배에서 우승한 뒤 인터뷰에서 ‘다가올 중일아함동산배는 일본 이야마 유타 9단과 겨룬다. 어떻게 전망하나?’라는 물음에 “일본 1인자 이야마 유타 9단과 바둑을 둬본 적은 없지만 내가 우세하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거침없다. ‘상대도 정상급 기사인 만큼 서로 어려운 승부가 될 것 같다.’라든지 ‘내가 좀 부족하지만 열심히 준비해 잘 맞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따위의 미지근한 말투가 아니다. 미지근한 건 그냥 기자가 지어서 써도 그만이다(실제로 그러지는 않지만). 이후 중일아함동산배가 열리고, 장담한 대로 커제가 우승했는데 이때는 “역시 이야마 유타 9단은 대단했다. 이번 대국을 하면서 자신감이 떨어졌다. 전에 이야마 유타 9단에 대해 아주 건방진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은 없던 걸로 하고 싶다.”며 쿨하게 웃어 젖혔다. 또다른 모습이다. 커제의 ‘끼’는 독특한 외양과 행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달 초 평창에서 열린 LG배에서 기자는 우연히 커제의 걸음걸이에 시선이 꽂혔다. LG배 16강전을 치르러 숙소에서 나오는 그는 고개를 삐딱하게 꺾고서(마치 마샤오춘이 예전에 종종 이런 고갯짓을 보인 것처럼…) 편의점에서 파는 플라스틱 컵에 담긴 커피를 빨대로 '꼬나문 채'(정말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한 거 같다) 건들건들 불량스럽게(?) 걸어서 대회장으로 이동해 왔다. 허리를 곧추세우고 무표정으로 조신조신 걷는 옆의 스웨랑은 참 대조적이었다.  ▲ '내가 하고 싶은 걸 한다' 커제(왼쪽)와 '바른생활의 사나이' 스웨가 대국을 하러 숙소에서 대국장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이달 18일 열린 2015 박카스배 한중바둑 미래천원전 2라운드에서 커제는 다른 대국자들에 비해 조금 일찍 대국장에 나왔다. 카메라맨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보통 이럴 때 기사들은 약간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하여 짐짓 화장실을 가는 척 자리를 뜬다거나 마실 차를 타러 가는 게 다반사인데, 커제는 마치 관심을 즐기는 것 같았다. 상대 이동훈과 돌을 가린 뒤에도 커제는 무언가를 계속 씹고 있었다. 껌인 듯하였다. 오래 씹고 있는 걸로 봐선 방금 전 먹던 음식이나 혹은 씹은 뒤 금세 녹는 카라멜 류는 아닌 듯했다. 껌을 씹으면서 대국하는 건 통상 예의에 어긋난 행동으로 여긴다. 그렇지만 커제는 그저 맛있게 질겅질겅 씹었다. 커제는 팔찌를 꼈다. 은색이다. 한쪽 손목에만 했길 망정이지 두 군데 다 찼으면 딱 수갑의 형상이다. 허리춤엔 열쇠와 각종 액세서리 뭉치를 찼다.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찾아보기 쉽지 않은 취향이다.  ▲ 커제의 수갑패션(?) 팔찌 + 열쇠 콤비네이션. (사진제공 | 월간바둑 이시용 사진전문기자) 주장전에서 이동훈에게 이긴 그에게 승리소감을 물었을 때 양 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대답한다. 도대체 자잘한 건 신경 쓰지 않는다. 온라인에서도 ‘인기 짱’인 커제는 인터넷 문자 해설도 많이 한다. 글도 거침없다. 대국자가 장고에 들어간다 싶으면 농담과 뒷얘기를 풀어놓는다. “예전에 말이죠. 대회 숙소로 쓰던 호텔 로비에서 여직원에게 ‘좋~은 데 좀 있으면 알려주쇼.’라고 했더니 그 직원이 얼굴이 빨개지면서 ‘어떻게 저한테 그런 걸 물어볼 수 있어요?’라면서 쏘아붙이더군요. 여러분, ‘좋은 데’라는 게 제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곳인가 보죠? ^^” 이런 커제도 승부의 중압감이 없이 사는 건 아니다. 중요한 대국 전날이면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이를 걱정한 아버지를 보다 못해 중국의 한 바둑 관계자가 ‘술을 먹여보는 방법이 있다’고 귀띔했다. 아버지는 그 조언을 제2회 백령배 결승 때 실천했고, 결국 술을 마시고 잠을 푹 잔 18세 커제가 추쥔을 누르고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커제는 요즘 ‘세계대회 우승도 하곤 했으니 자신의 행동거지에 신경을 쓰라’는 조언을 듣는다고 한다. 모르겠다. 커제가 그 말을 새겨들을지 어떨지. 강한 자신감과 예의 없음의 경계 위에 놓인 칼날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커제. 그에게 ‘끼’를 죽이라고 하면 혹여 실력도 같이 죽지 않을까, 중국바둑계는 그걸 더 걱정할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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