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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씬, 5시간 들여 10초 분량 얻지요”
최초의 바둑감독 김선호 2단의 <신의 한수> 제작 뒷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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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제작은, 보통 12시간을 촬영하면 대략 3분 분량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바둑이 나오는 장면은 5시간 걸려서 10초 분량을 만들 수 있죠.” 바둑을 소재로 한 영화 <신의 한수>의‘바둑감독’을 맡았던 프로기사 김선호 2단의 말이다. 영화 내 바둑 장면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정성이 드는지가 느껴진다. 음향감독, 무술감독은 들어봤어도 바둑감독은 생소하다. 바둑 영화 자체가 드물다. 생생한 바둑 묘사를 위해 생겨났다.  “바둑영화에서 대국 묘사가 어설프면 마치 축구장에서 선수들이 손으로 경기를 하는 것 만큼이나 이상한 지경으로 갈 수 있습니다.” ▶ 영화 <신의 한수> 바둑감독 김선호 2단. 김선호 2단은 조범구 감독에게 이렇게 어필했다. 조범구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범구 감독은 김선호 바둑감독의 말이라면 그 누구의 말보다 존중해주었다. <신의 한수> 스태프 중 바둑을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국 씬을 촬영할 때면 스태프들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을 잡지 못하거나 당황했다. 영화에 관한 한 프로들인 그들도 처음으로 시도되는 바둑 영화에서 바둑감독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철저하게 바둑감독의 주문을 따랐다. 끝맺음자막(ending credit)에 ‘바둑감독 김선호’가 또렷히 적혀 위로 스크롤 되던 때는 김선호 2단에겐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바둑감독 김선호 2단한테서 영화 <신의 한수> 뒷얘기를 들어봤다. ○● <영화 ‘신의 한 수’ 특집> 1편 - ‘신의 한 수’에 이세돌 기보 있다? 없다? ☜ 못 보신 분들 클릭 ○● <영화 ‘신의 한 수’ 특집> 2편 - 목숨 걸린 '사활문제'라면? ☜ 못 보신 분들 클릭 - <신의 한수> 제작팀이 바둑감독으로 선정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단지 20~30대 프로기사이면 좋겠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아마도 영화에 관심 있고 젊은 감각을 지닌 바둑 고수를 원했겠지요. 예전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은 터라 지원했습니다. 지원자가 5명이더군요. 이 중 이성재 9단이 바둑감독으로 선정됐습니다. 한데, 이후에 개인적인 사정으로 관뒀고 작년 6월께부터 한국기원 추천으로 제가 하게 됐습니다.” - 김선호 2단은 전에 마술을 배운 적도 있다면서요? “7~8년전 2년 넘게 취미 삼아 했습니다. 전문적으로 할까도 생각했습니다. (학원을 다녔습니까?) 아뇨, 독학이었습니다. 동영상들을 보면서 해법이 뭘까 혼자서 찾았어요. 이 세계 사람들은 답을 함부로 알려주지 않습니다. 마술의 정체는 소수가 공유하지요. 열 몇 시간씩 어떤 트릭일까 찾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어려운 것으로만 10개 이상 방법을 알아냈습니다. 예를 들면 병 따개를 입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병 속에 넣었다 뺐다 하는 마술이었어요. (새로운 분야를 추구하는 성격 덕에 바둑감독에도 도전하신 것 아닐까요?) 성격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습니다.” - 바둑감독은 어떤 일을 합니까? “기보를 준비해 바둑판마다 세팅하고, 배우들의 바둑에 관련된 연기를 보다 실감나도록 돕습니다. 편집되어 사용하지 않은 기보도 많지만 준비한 기보는 줄잡아 150국이 넘습니다. 여러 대국이 동시에 진행되는 도박장 씬에선 한번에 무려 40국이 필요했죠.” - 그럼 세팅과 연기에 관해 차례대로 들어보죠. 기보의 출처는 어떻게 되죠? “내기 바둑 대부분은 국내 프로기전에서 따왔고 조금씩 변형했습니다. 실전 그대로 사용한 예는 없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영화의 흐름을 기보가 반영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육덕엔터테인먼트 마크가 그려진 컨테이너 차량 안에서 ‘꽁수(김인권)’와 ‘선수(최진혁)’가 대국하던 때는 선수가 조금씩 유리해지지만 꽁수가 교묘하게 역전하도록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 ‘교묘함’이 힘든 영역이었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서건우 사범이 많이 도와줬습니다. 장생이 나왔던 씬은 작년 바둑리그 기보에서 가져온 것인데 장생은 실제 모양 그대로이지만 초•중반 내용을 바꿨습니다. 영화 내용이 초반 신경전을 펼치는 것이어서 첫 수를 우상귀에 두지 않는다든지, 갑자기 천원에 둔다든지 하는 수순이 필요했습니다.” - 국내 프로기전 이외의 곳에서 따온 기보도 있었습니까? “도박장 씬의 40개 대국은 저의 온라인 대국 실전에서 따서 조금씩 손 봐서 썼습니다. 도박장 씬에선 엑스트라 분들 때문에 고생 좀 했죠. 세팅해 놓은 걸 가만히 두어야 하는데 오목 두시는 분, 바둑돌을 쓸어 담는 분, 심지어는 놓인 돌 모양에서 시작해 바둑을 두시는 분까지 다양한 분이 계셨습니다.”  - 배우들이 바둑 연기를 할 땐 어떤 점에 신경 썼습니까? “바둑이 잘 안 풀릴 때 감정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감정이 실린 손동작 등, 이런 건 승부사가 미묘한 지점을 잡아챌 수 있을 겁니다. 이른바 손연기인데요, 처음에는 배우들이 잘 표현하지 못했습니다. 착수하는 손에는 대국자의 거짓 없는 감정이 묻어나거든요. 배꼽 역의 이시영 씨는 극중에서 차분한 캐릭터인데 착수하기 전 바둑통에 너무 쉽게 손을 내밀어서 캐릭터와 잘 어울리지 않는 점이 보이더군요. 그래서 움직임이 적고 절제된 손동작을 하도록 했습니다. ◀ 수감자로 독방에 갇힌 태석(정우성)이 정체 모를 옆방 바둑고수와 소리만을 이용해 분필로 바둑판, 바둑돌을 그려 가며 바둑을 두는 장면. 여기에 나오는 기보는 국내 프로기전에 나오는 대국들이다. 미스테리의 바둑 고수와 두는 바둑인 만큼 수준 높은 내용들로 구성됐다.[사진제공/ 쇼박스(주)미디어플렉스] 김인권 씨(꽁수)는 얼굴에 돌을 던지거나, 상대를 약 올리기 위해 입으로 ‘똑딱똑딱’ 시계 소리를 냈습니다. 이런 건 김인권 씨 본인이 생각해 낸 애드립이었는데, 개성이 드러난다고 생각해 저는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의외로 도박장 씬에선 바둑판 세팅 외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현실에 바둑 전문 도박장 같은 건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참고로 말씀드립니다만 도박장 씬에서 이용객들이 바둑판 옆에 쌓아두는 5만원권은, 따져보면 수십억원어치가 됩니다^^. 돈 같은 소품은 관리가 아주 엄격한데요, 건드려서도 안 되고 허락 없이 사진을 찍어서도 안 됩니다. 예전에 스태프 지갑에 실수로 가짜 돈이 섞여 들어가는 일이 있어서 큰 문제가 된 적이 있다고 합니다.” -정우성 씨는 제작발표회 때 바둑을 배워보고 싶었지만 도와주시는 프로기사가 ‘짧은 시간 안에 배울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 프로기사가 김선호 2단이었나요? “오해들을 많이 하시더군요. 저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안 그래도 바둑이 일반 대중 사이에 배우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어 아쉬워해 오던 참이었습니다. 정우성 씨는, 제가 곁에서 보기에 연습을 아주 열심히 하는 배우였습니다. 바둑돌을 항상 손에 들고 다녔습니다. 차에서도 돌을 만지작거렸고 착수를 연습했어요. 제작이 중반에 들어설 즈음엔 많이 능숙해졌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 이범수 씨는 바둑 연기를 하고 몰입하기를 반복하면서 “바둑이란 거, 참 멋있는 것 같아요.”라는 말을 제게 했습니다.” - 팔려온 어린이 바둑 고수‘량량’의 존재도 참 신기하더군요.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어린 아이한테서 드러나고 그 순수함의 세계는 워낙 강력해서 그 어떤 것도 순수함을 대적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신의 한수> 전반을 통해 흐릅니다. 안성기 씨(주님)가 “(숨어서 대국하는 이는) 아이가 분명하다.”라며 죽기 전에 “너무 유연해서 꺾이지 않아.”라고 한 것도 그러함을 나타낸 것이죠. (기억력이 좋으시네요?) 대본을 달달 외워서 모든 배우의 대사를 다 욉니다. ^^” - 인상 깊었던 연기는 어떤 게 있나요? “김인권 씨의 코믹 연기가 역시 일품이었습니다. 김인권 씨는 프로기사들이 쓰는 은어를 애드립으로 쓰려고 여러 번 시도하곤 했는데 타이밍이 나오지 않아 결국 쓰지 못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 은어 중 하나는 “심뽕났네~ 심뽕났어~”입니다. 뜻을 풀면 ‘심장 뽕빨났네’인데 ‘망했을 때 혼란스러운 감정’을 나타낸 겁니다. 대신 김인권 씨는 영화에서 “꼬니네, 꼬니야”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나라 옛 놀이 중에 검은색과 하얀색이 나오는 게 있는데 ‘바둑이 퍽 불리해지면’ 옛날 어르신들이 이런 은어를 사용하시는 걸 듣곤 했습니다.”  - 대역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손만 나오는 씬은 모두 대역이 한 거라고 보면 됩니다. 저는 정우성 씨(태석)와 최진혁 씨(선수)의 손을 대신했습니다. 배우와 같은 옷을 입고 피도 묻히며 연기했죠. 손이 배우와 비슷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정우성 씨와 제가 손을 나란히 대어 보던 순간 스태프들이 탄성을 질렀어요. 정말 비슷했거든요. 이다혜 사범도 이시영(배꼽) 씨와 손이 비슷한 편이었습니다. 이 밖에 이현호 사범이 살수 대역을 맡았고, 서건우 사범이 이 사범을, 윤재웅 사범이 왕사범을, 안달훈 사범이 귀수를, 아마추어 고수 정성오 씨와 채현지 씨가 교도소장과 배꼽의 대역을 했습니다.” ▶ 정우성(태석)의 손? 아니다. 대역을 맡은 김선호 2단의 손이다. 정우성 씨와 손이 하도 닮아서 스태프들도 신기해했을 정도. - 영화 제작은 처음이었고 바둑감독이란 역할도 영화에서 처음 시도된 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좀 조심스럽네요^^. 영화 일을 하는 사람과 바둑 하는 사람 사이의 생활 패턴, 마인드 면에서 간극이 컸습니다. 간단히 ‘시간 사용’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2시에 촬영이 잡혀도 실제로는 무작정 6시간을 기다려 8시에 시작한다든지 하는 일은 숱하게 있고요, 어느 날 갑자기 촬영해야 하니 빨리 나오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습니다. 바둑 하는 사람들은 시간 관념이 철저하잖습니까. 대국 개시 시각에 늦으면 기권패를 당하고 옆에서 초를 읽는 동안 수를 읽어 내야 합니다. 시작과 끝 개념에서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어찌 보면 별일 아니라고 보일 수도 있는 사안이지만, 저는 도중에 제 일을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 바둑이 잔인함의 소품으로 사용돼 논란도 있습니다. “바둑돌로 사람을 때리고 그걸 먹이고, 사람을 칼로 찔러 바둑판에 찍고… 실망스러워하고 괴로워한 바둑인이 많았으리라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파한 사람 중 하나를 뽑으라면 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제작 초기에 김인권 씨(꽁수)가 바둑판을 밟고 서는 장면을 목격하고서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감독님께 바둑계 어르신들이 몹시 싫어할 것이라고 말씀드렸어요. 감독님은 “이것은 영화입니다. 일반 대중도 이 영화를 보지요. 영화적 허용으로, 애교로 넘어가 주시죠.”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심하게 반대해서 결국 편집된 장면도 있습니다. 최진혁 씨(선수)가 중소기업들을 상대로 사기 바둑을 해서 한달 안에 재산을 모두 날려버리는 내용이었는데, 당한 중소기업의 회장이 일당의 협박에 못 이겨 목 매달아 자살한 장면이었습니다. 통편집됐지요. 제가 인식을 바꾸기까지는 6개월 가량 걸렸습니다. 액션 영화를 보다 보면 골프채나, 야구배트가 타격 도구로 사용되곤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골프계나 야구계가 들고 일어나진 않지요. 아무래도 바둑은 국내 처음으로 영화가 시도되다 보니 논란이 있는 듯합니다. 개인적으로는 바둑이 일반 대중의 관심에서 잊히는 마당에, ‘바둑’이 대중에게 관심을 받고 회자되는 자체가 중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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