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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전문기자가 본 '신의 한 수'
조선일보 이홍렬 기자의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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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조선일보 이홍렬 기자가 쓴 <바둑전문기자가 본 '신의 한 수'> 칼럼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손에 바둑돌만 쥔 '그냥 액션 영화' 살육·내기의 도구로만 바둑 활용돼 '바둑 영화'라는 문구가 무색할 정도 영화 '신의 한 수'를 보러 간 데는 호기심이 많이 작용했다. 바둑은 그동안 영화계로부터 자주 눈길을 받던 소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워낙 다면(多面)적 얼굴을 지닌 장르여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기도(棋道)로 부르며 숭상하는 전통과는 별도로 바둑은 예술·문화·스포츠 등 다양한 대접을 받는다. 10여년 전엔 대학 캠퍼스에 상륙하면서 어엿한 학문으로도 자리 잡았다. 물론 바둑은 게임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도박의 수단도 된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채로운 바둑의 모습을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그려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영화를 보고 난 뒤의 느낌은 '흥행 문법에 최대한 충실하게 만들어진 오락 영화'쯤으로 정리된다. 적어도 '바둑 영화'란 문구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게 핵심이다. 극영화가 수신(修身) 교과서일 필요는 당연히 없다. 드라마는 갈등과 파격이 요체이고 이를 살려내기 위해선 웬만한 충격 요소가 불가피하다. 다만 문제는 전편에 흐르는 잔혹하고 처절한 장면들이 '바둑 영화'의 전개 과정에서 얼마나 적실(適實)했느냐의 여부다. 어떻게든 잔혹함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무대로 차용한 바둑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다량의 바둑돌을 삼키게 하는 장면, 바둑돌을 스타킹에 넣어 돌리다 안면을 내리쳐 피가 솟구치는 장면이 이어진다. 칼로 손을 내려치는 상황에서 바둑판이 '도마'가 되는가 하면 심지어 혀를 자르는 상황까지도 등장한다. 바둑계에서 바둑판과 바둑돌은 영화계의 카메라 이상으로 신성한 물건들이건만 살육의 도구로 동원되고 있다. 폭력과 복수란 주제를 살리는 데 꼭 이런 직설적, 엽기적 방법밖에 없었을까. '신의 한 수'에서 바둑을 화투·트럼프·마작 등 다른 어떤 것으로 대체해도 바로 그 장르 영화로 탈바꿈이 가능하다. 유일하게 특화된 것이라면 맹기(盲棋·머릿속으로 바둑을 두는 것) 정도다. 하긴 주연배우인 정우성 스스로 "이건 바둑 영화가 아니고 액션 영화"라고 이미 양심선언(?)을 한 상황이다. '신의 한 수'가 바둑 영화라고 끝까지 주장한다면 '소림사 시리즈'를 종교 영화로 강변하는 사람이 나와도 말리기 힘들어진다. 중국은 올가을 학기부터 바둑을 초등학교 정식 종목에 넣기로 했다. 창의적 사고 계발, 집중력 배양, 인내심 고취 등 교육적 가치를 높이 인정하면서 택한 정책이다. 각급 학교는 바둑 특기자 선발 경쟁에 불이 붙었다. 지도자는 한국 방문 내내 바둑 이야기만 하다 갔다. 가위 '전 국민의 바둑화'로 향하는 분위기다. 우리나라 학부모 중 '신의 한 수'를 보고 나서 자녀에게 바둑을 가르쳐 보겠다고 마음먹을 숫자가 얼마나 될까. 진짜 '바둑 영화'를 보고 싶다. 칼 휘두르고 바둑돌로 면상 내려치지 않아도 바둑은 얼마든지 훌륭한 영화 소재가 될 수 있다. 미국 영화 '뷰티풀 마인드'만 해도 천재 수학자 존 내시의 지성(知性)을 상징하는 수단으로 바둑을 활용하고 있다. 바둑 하면 내기와 복수와 폭력만을 떠올리게 된 한국적 세태가 걱정스럽다. 영화를 그냥 영화로만 보지 못하는 내 죄가 큰 건지도 모른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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