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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바둑화석', 100세 우칭위안
우칭위안의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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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세다. 바둑 하나로 20세기를 가로질러 21세기까지 그 영향력은 살아있는 역사와도 같다. 6월16일 100세 생일을 맞이한 우칭위안(吳淸源, 오청원, 1914년 음력 5월19일 중국 푸젠성 출생, 본명은 吳泉)의 페이스북엔 작년과 마찬가지로 한중일을 비롯한 전세계 바둑인의 축하 메시지가 끊이지 않았다. 일찍이 바둑계에서는 최고의 존경을 담아 ‘살아있는 기성(棋聖)’이란 수식어를 그의 이름 앞에 붙였다. ‘바둑의 성인(聖人)’이라는 ‘기성’의 칭호는 그동안 일본 바둑계에서 슈사쿠(秀策·수책)와 도사쿠(道策·도책), 이 두 기사가 받았지만 모두 사후의 일이었다. ‘살아있는 기성’은 지금껏 우칭위안이 유일하다. 그의 인생은 현대바둑에 큰 영향을 끼쳤다. 어느 분야에나 천재들이 있고 바둑계에도 많은 천재가 있었지만 그의 행마와 생각은 다른 어떤 천재들보다 큰 영향을 끼쳤다. ‘우칭위안 전의 바둑과 후의 바둑이 있을 뿐이다’란 말이 나올 정도다. 100년의 인생이다. 큰승부와 피를 말릴 만한 상황도 꽤 많았지만 우칭위안의 상징성이 강한 2판의 바둑 배경과 20세기 바둑의 전설이 된 ‘십번기’로 간추려 그의 100세 인생을 간략히 살펴본다. ○● 덤의 발견 1938년 일본기원이 ‘덤’을 도입하기 이전엔 모든 바둑은 덤 없는 바둑이었다. 정확히는 우칭위안이 특별히 흉내바둑의 파격을 선보이기 전까진 덤에 관한 규정의 필요성을 상상하지 못했다. 덤을 기본규칙으로 한 오늘날의 ‘호선’ 바둑은 역사가 그리 길지는 않다. 바둑을 ‘가문의 직업’으로 여기던 일본에서 공식대국은 치수제였다. 덤이 없는 호선(互先 흑백을 교대로 잡음), 선상선(先相先 흑2번 백1번), 정선(定先 흑만 잡음), 선이선(先二先 흑2번 두점치수1번)과 같은 치수제로 실력의 높고 낮음을 나눴다. 4판 이상의 승수차이가 나면 치수를 바꿨는데 이런 식의 치수고치기를 ‘쟁기(爭棋)’라고 했다. ‘선(先)’은 덤 없이 흑을 잡는 것을 뜻한다. 우칭위안의 상상력은 덤없는 바둑의 허점을 파고들었다. 소년 우칭위안은 ‘괴동환(怪童丸)’이라 불리며 동시대 일본바둑의 촉망받는 인재이자 바둑 선배였던 기타니 미노루(木谷 實, 1909년~1975년)를 상대로 자신의 발상을 시험한다. 시사신보 주최 吳소년출세기 제7국 치수 : 선상선 /282수 백3집승 (100수 이후 수줄임) ●우칭위안 3단 ○기타니미노루 4단 1928년 가을, 14세의 바둑신동 우칭위안은 어머니 서문(舒文), 맏형 완(浣)과 일본에 왔다. 스승인 세고에 겐사쿠와 일본 바둑계인물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우칭위안은 독학을 통해 13세에 일본 중견프로와 선으로 동등하게 둘 수 있었다. 1929년에는 4단들을 선으로 연파해 드디어 괴동환 기타니 미노루와 숙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이때 엄숙한 승부를 기대하던 기타니는 흉내바둑을 보고 큰 모욕감을 느낀다. 이 바둑은 덤의 부담이 없는 흑(우칭위안)이 중앙 천원에 첫수를 두고 나머지를 백과 똑같이 대칭되는 점에 따라두는 흉내바둑이었다. 덤이 없다면 흑은 언제나 이 수법을 통해 어떤 상대든 편하게 상대할 수 있다. 바둑판의 좌표는 상하좌우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교대로 한수씩 두므로 언제든 그 대칭을 둘 수 있다는 점을 파고들었다. 우칭위안은 이때부터 중앙의 가치, 혹은 전체 바둑의 균형을 위주로 한 포석과 정석의 활용에 대한 ‘신포석’을 나름 구체화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우칭위안의 흉내바둑은 이후 ‘덤’이란 개념과 룰을 도입하게 한 촉매제가 되었다. 덤이 있는 현대바둑은 그 이전 덤이 없는 치수제 바둑과 완전히 다른 방식의 길을 걷게 된다. ○● 신포석 귀에서 변, 변에서 중앙으로 발전한다. 바둑의 논리다. 물론 타당하다. ‘신포석’은 이런 이론에서 한 발 더 앞으로 나아갔다. 우칭위안은 ‘전체의 균형’, ‘조화’를 중시하는 좀 더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신포석이다. 신포석은 1933년 기타니 미노루와 우칭위안이 함께 제기했다. 야스나가 하지메(安永一)가 글로써 두 사람의 생각을 담았다. 세 사람의 공저가 된 [바둑혁명, 신포석]은 당시 1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야스나가의 시니컬한 ‘글빨’이 바둑계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친 것이다. 바둑을 아는 모든 사람들이 ‘신포석과 바둑혁명’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말이다. 슈사이 명인 환갑기념대국, 제한시간 24시간, 정선 1933년 10월 16일 시작 ~ 14차 34년 1월 29일 종료, 백2집승  ▲ 슈사이는 구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로 당시 나이는 59세였다. 당연한 얘기지만, 슈사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신포석에 대해 비판적인 대립각을 세웠다. 이때 신세대 대표 우칭위안은 21세였다. 대국은 1933년 10월, 도쿄의 한 여관에서 열렸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황당하기조차 한 대국 규칙이 적용됐다. 각자 사용할 수 있는 제한시간은 무려 24시간. 제한시간이 워낙 길어 바둑은 여러날에 걸쳐 둬야 했다. 따라서 누군가 중간에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해야 하는데, 그 권리는 명인에게만 있었다. 우칭위안으로서는 상당히 불리한 조건이었다. 이 대국은 엄청난 화제가 됐다. 대국 자체도 화젯거리였지만, 우칭위안이 명인을 상대로 첫수 3·3, 다음 화점, 그리고 바둑판 한가운데 점인 천원에 두는 신포석법을 들고나왔기 때문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명인으로 상징되는 전통에 대한 반항으로 보일 수도 있는 일이었다. 게다가 당시는 중일전쟁 중이라 민감한 상황. 명인의 제자들이 “명인에 대한 예가 아니다”라며 흥분했고, 심지어 우칭위안의 집에 돌이 날아들기도 했다. 이 바둑은 무려 이듬해 1월이 되어서야 끝났다. 중간에 중단된 횟수만 14차례였다. 결과는 명인의 2집승. 이것으로 신구 1라운드는 구세대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 양형모 신포석의 ‘상징’이 된 사건은 일본의 마지막 바둑명인, 슈사이 명인의 환갑기념 대국이다. 기념대국에서 우칭위안은 3·三과 화점, 천원을 차례로 놓는 신포석을 시도했는데, 3·三을 포함한 이런 수법들은 당시 소목중심의 일본바둑에서 ‘금기’의 수였다. 명인 슈사이는 격노했다. 신포석을 익히 들어 알았지만 감히 자신을 상대로 들고 나오리라 상상하지 못했던 것. 이런 ‘파격’의 시도는 당시의 일본 토착 기사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우칭위안의 파격을 일본인들도 응원했고 우칭위안은 바둑계를 뛰어넘어 파격을 상징하는 스타가 되어갔다. ○● 10번기/명국의 조건 - 우칭위안을 둘러싼 환경 “우칭위안 선생과의 10번기는 39년 9월부터 41년 6월까지 벌어졌지, 그동안 기타니 선생께선 다른 시합에는 일체 참가하지 않고 이 10번기에만 몰두할 정도로 정력을 기울이셨다네” - 조남철 9단의 회고록. 기타니 미노루는 고(故) 조남철 9단의 스승이다. 신포석의 부상에 있어서 우칭위안만큼이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만 우칭위안과의 10번기로 인해 승부인생에서 큰 상처를 받았다. 제자였던 조남철은 10번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꼈다. 조 선생은 자신의 회고록에서 “(기타니는) 전력을 다했지만 패했다. 평소 내색을 않기로 유명한 기타니 선생도 10번기 패배만큼은 충격이었던지 삭발까지 했다. 당시 기타니도장의 분위기는 초상집처럼 우울했다”고 전한다. ‘10번기’란 두명의 고수가 10번의 바둑 대결을 펼쳐 승패에 따라 치수를 변경하는 승부를 뜻한다. 연속된 4번의 패배로 치수가 변경되면, 고수들은 큰 심리적 타격을 받곤 했다. 정작 10번기의 당사자인 우칭위안 스스로는 바둑 이외의 것에 무심했다. 어쩌면 스스로 현실에서 도피했다고 봐야 하겠다. 국적 이동의 시기부터가 심란하다.  ▲ 우칭위안과 조남철의 한때. 천재로 부각된 우칭위안은 1934년부터 일본 귀화의 압박을 받다, 결국 1936년 4월 고이즈미(小泉)로 개명하고 일본에 귀화한다. 42년엔 일본인 오카즈코(吳和子, 2012년 12월 29일 별세, 향년 90세, 中原和子 나카하라 가즈코)와 결혼해 평생을 함께 한다. 1942년은 28세의 나이로 일본 최연소 8단이 된 해다. 반면 중일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1931년 9월, 일본은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이란 이름의 식민국가를 만든다. 1937년 7월엔 일본의 100만 관동군이 중국을 본격적으로 침탈한 중일전쟁이 발발한다. 치수고치기 십번기(치수제는 덤이 없는 바둑이다)가 이즈음부터 시작된다. 이미 이때쯤의 우칭위안은 바둑의 1인자였다. 한편 1945년 일본 패전과 함께 우칭위안의 일본국적은 소멸(1979년 재취득)됐고 10번기에는 기본적으로 이방인 우칭위안과 일본인들과의 바둑대결이란 구도가 숨어있다. ‘십번기 기획’은 요미우리 신문이 맡았다. 우칭위안과 요미우리의 협력 관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우칭위안은 1939년 기타니 미노루(5승 1패)와의 십번기를 승리하며, 기타니-우칭위안의 투톱시대를 마감하고 1인 독주 시대를 시작한다. 이후 41년 가리가네 준이치(4승 1패), 42년 후지사와 구라노스케와 10번기(정선치수로 시작, 6-4로 후지사와 승리), 46년 사형인 하시모토 우타로와 1차 십번기(하시모토와 합의해 당시로선 파격인 제한시간 7시간으로 줄임, 6승 2패), 48년 이와모토와의 십번기(5승 1패, 10시간 바둑), 50년 하시모토 우타로와 2차 10번기(5승 3패 2무승부, 10시간 바둑. 51년 후지사와 구라노스케와 2차 10번기 (6승 2패 1무승부), 52년 후지사와 구라노스케와 3차 10번기(5승 1패, 상대를 선상선에서 정선으로 떨어뜨림, 충격으로 후지사와 일본기원 은퇴), 54년 사카다 에이오와 10번기(6승 2패, 정선으로 떨어뜨림), 55년 다카가와 슈가쿠와의 10번기 (6승 2패)까지 20년 가까이 진행된 '십번기'의 전설로 남게 된다. 우칭위안은 덤이 없는 치수고치기 룰로, 거의 모든 최정상급의 기사들을 상대했으며, 상대의 치수를 선상선, 혹은 정선까지 떨어뜨린다.  ▲ 우칭위안-기타니 10번기. <사진자료/ 일본기원> ○● 승부관 “이기고 지는 것은 운이며, 이 흐름에 몸을 맡긴다” - 우칭위안 우칭위안의 승부관은 2000년대의 프로들과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요즘의 프로들은 승부에 대해 “이길 수도 질 수도 있다”라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승부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대량승부의 시대에서 ‘진검승부’의 자세는 장기적인 프로생활에 도움이 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칭위안은 10번기의 상대들이 ‘진검승부’의 장에 나서듯 비장했던 것과 달리 “이기고 지는 것은 운이며, 이 흐름에 몸을 맡긴다”는 식의 말을 한다. 확실히 그의 바둑두는 모습은 경건하긴 하지만 목숨을 걸고 달려드는 무사의 모습까진 아니다. 우칭위안과 함께 신포석을 창안했던 기타니는 훗날 이런 말을 남겼다. 이 말은 한국에서도 은근히 유명해져서 영화나 만화에서도 즐겨 써 먹는 어구가 됐다. 정상에 오르지 못한 자의 회한이 담긴 말이라 중독성이 있다. “강한 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기는 자가 강한 것이다.” ○● ‘살아있는 화석’ 우칭위안 “재미는 덤이 있을 때 더욱 크다. 덤이 없다면 흑을 잡으면 100%, 백을 잡으면 0%의 승률이 나올 것이다. 그러므로 덤은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 이창호 “결국 덤과 관계없이 실력이 반영되지 않을까요?” - 이세돌 ‘덤’에 관한 이창호 이세돌의 대답이다. 문용직 박사는 그의 저서 바둑의 발견에서 “덤이 없는 바둑과 덤이 존재하는 바둑은 프로기사들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덤이 있으면 중반의 두터움과 끝내기가 포석의 연구보다 승부에서 중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우칭위안은 본격적인 덤 있는 바둑, 프로기전 타이틀의 시대에서는 이전만큼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교통사고로 인한 건강악화도 있었고 나이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우칭위안이 51세일 때 우칭위안과 요미우리신문과의 오랜 관계가 끝났다. 십번기의 시대, 덤 없는 바둑의 시대가 우칭위안과 함께 저물었다. 본인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우칭위안은 자신의 승부를 통해 바둑을 보다 공정한 룰로 인도했으며 바둑을 좀 더 넓게 자유롭게 만들었다. 오늘날의 바둑이 스포츠로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아주 멀게는 우칭위안의 공로도 있을 법하다. 처음의 흉내바둑으로 돌아가 본다. 그의 바둑 이론은 ‘컴퓨터 바둑’ 프로그래머들이 굳이 ‘361!’을 모두 연산할 필요가 없음을 컴퓨터가 등장하기 아주 예전에 증명했다. 뭐, 그렇게 말해도 되지 않을까? 바둑판은 좌우상하의 완벽한 대칭이며, 바둑판 전체로서 가치 있는 수순들이 필요한 곳은 당연히 ‘361!’이 아니어서 획기적으로 경우의 수가 줄어들게 된다. 인공지능 바둑이 프로기사를 이기는 그날, 그의 이론은 어떤 식으로든 그 인공지능에 ‘살아있는 화석’처럼 프로그래밍 되어 있을 것이다. 그의 승부는 이제 ‘화석’이 되었지만 100년이 넘어서도 그의 생각은 여전히 살아있을 것이다. 바둑이 존재하는 한 말이다. <월간바둑 5월호> <100수 우칭위안 주간특집 관련기사> ○● 인터뷰- “내가 만든 신포석 핵심은…” ☜ 바로보기 클릭 ○● 우칭위안, 백년의 기탁(寄託) ☜ 바로보기 클릭  ▲ 1992년 제2회 부산시민바둑대회에 초청받아 부산을 방문한 우칭위안 내외. <사진자료/ 월간바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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