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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맑은샘 “일본은 반드시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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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엣! 혼토데스카?(앗! 정말입니까?)” 지난해 겨울 열린 제14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제2차전에서 일본 신예 후지타 아키히코 3단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대국 현장에 있던 기자가 일본 관계자에게 엔에스엔 메신저로 알렸더니 소스라치게 놀랐다. 일본 바둑계는 여러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에 기대를 낮춘 지 오래지만, 한국 중국 일본이 단체전으로 겨루는 이번 농심신라면배엔 더욱 기대를 접은 듯했다. 지난해 전 세계 바둑계가 깜짝 놀랄 대표 명단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90년생), 안자이 노부아키 6단(85년생), 후지타 아키히코 3단(91년생), 다카오 신지 9단(76년생), 이다 아쓰시 3단(94년생)의 5명. 다카오 신지만 빼곤 파릇파릇한 신예들이었던 것이다. 특히 안자이와 후지타는 그 전에 세계대회 본선조차 밟아본 적조차 없었다. 일본이 선발 기준을 공식적으로 밝히진 않았지만 ‘타이틀 보유자 위주로 된 대표 선발 체계에 변화를 일으켜 신예 기사들에게도 기회를 주자’는 뜻으로 보였다. 일본 바둑계에선 이 선발을 두고 떠들썩했다. 주로 비난의 목소리였다.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이냐!’ 일본기원은 초조했을 것이었다.  그나마 베테랑에 속했던 다카오 신지가 1차전에서 졌다. 그런데 무명에 가까운 후지타가 승리를 얻어내자 일본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던 것이다. 비록 일본은 3차전까지 가진 못했지만 마지막 선수 무라카와까지 꽤 괜찮은 대국 내용을 보여주었다. ▶ 아사가야로 이전한 홍도장. 밤에 찾아갔더니 어두워 전경이 잘 보이진 않는다. 결과가 어찌 됐든 변화의 방향이 성공적이든 어떻든 일본의 노력을 보니 다행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대로 앉아 무너지고 있진 않겠다는 태도 같아서다. 전통을 엄격히 고수하는 일본 바둑에서 이 정도의 ‘개혁’도 해내기는 만만치 않았으리라. 솥발 같은 형세를 이루는 한국 중국 일본 가운데 어느 하나가 주저앉으면 누구에게도 좋을 리 없다. 얼마 전 일본 바둑 교육계에서 힘쓰고 있는 홍맑은샘 초단을 얼마 만났다. 홍 초단이 운영하는 ‘홍도장’은 지난 12월에 도쿄 이치가야에서 몇 지하철로 몇 정거장 떨어진 아사가야로 이전했다. 아사가야 지하철역에서 내리면 한국의 홍대 앞 거리를 미니어처로 압축시켜 놓은 듯이 앙증맞은 번화가가 나오는데 미로 같은 길을 한참 지나 주택가에 다다르면 도장이 웅크리고 있다. 옆의 번화가의 소음은 어떻게 된 것인지 도장은 산속처럼 조용하다. 30여 명의 일본 도장생들이 바둑 공부를 하고 홍 초단이 곁에서 도움말을 주고 있었다. 그의 귀한 시간을 잠시 빼앗았다. - 농심신라면배의 이번 대표 선발은 파격이었습니다. “신예에게 좋은 기회가 되었습니다. 용기있는 결단이었다고 봅니다. 한데 한국ㆍ중국처럼 선발전을 거쳤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국가대표가 되고 싶어하는 열망이 있는 기사는 많습니다. 그러나 기회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습니다. 선발전이 있으면 대국 수를 늘리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많은 실전 대국은 기사의 실력 향상에 필수적입니다. ” - 대국 수 가 모자라다고 보십니까? “일본기사는 1년에 평균 30판 안팎의 대국을 합니다. 젊은 기사들은 대국료도 필요없으니 실전할 기회가 늘어났으면 좋겠다고들 합니다.”  - 실전대국이 적은 것은 좀 아쉽겠지만 연구회에서 보충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구회가 열리는 횟수도 너무 적습니다. 대만 출신 장리요우 7단이 만든 이마켄(今硏)이 30명 이상 모인다고 하는 가장 활발한 연구회인데 1주일 1번 모이는 데 그칩니다. 뭔가 카리스마 있는 존재를 구심점으로 삼아 약간은 강제적으로 모이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 이를 테면 어떤 식으로…? “한 예로, 일본기원이 연구회를 조직해서 자주 연구하게 하고 4~5년 정도 탈퇴할 수 없도록 하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7대기전 본선에 진출하면 자율을 보장해 준다든지 하는 식입니다.” - ‘강제’가 쉽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데요. “그래서 카리스마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조치훈 9단이나 요다 노리모토 9단 같은 대선배가 ‘일본 바둑을 부흥시키기 위해 우리가 뭉치자’고 하면 후배 프로기사들이 힘을 낼 겁니다. 과거 중일수퍼대항전 때 중국 녜웨이핑 한 명을 못 당해 일본이 졌을 때 일본 프로기사들의 정신적 리더 후지사와 슈코 9단이 모두 머리를 밀자고 하자 다들 밀었습니다. 이런 정신력을 이끌어 줄 리더가 필요합니다.” - 이렇게 하면 일본 바둑이 국제 무대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일까요? “일본이 과거 강했던 시절로 돌아갈 거라고 확신합니다.” - 현재로선 이야마 유타 9단에게 기대가 쏠리고 있죠? “국제 무대에선 생각만큼 힘을 못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재력이 있고요, 무라카와 다이스케 7단 같은 기사들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 3대기전의 리그(기성ㆍ명인ㆍ본인방)에 들어가면 리그 한 판당 90만(약 1000만원)엔 가량의 대국료를 받게 됩니다. 리그는 한 달에 한판을 진행하는데요, 이 때문에 기사들이 이런 리그에 진입하면 일년 농사를 지었다고 하죠. 정상급 기사가 3개 리그에 모두 들어갔다면 수입이 더욱 풍족해집니다. 프로기사들이 성적을 내주고, 어린이들이 많이 배우고, 일반에 인기를 끌어야 주최사(우리 개념은 후원사)가 바둑에 매력을 느낍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날로 악화 되고 있습니다.” - 한국이나 중국과의 교류전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네, 교류전이 활발해져 합니다. 중국과의 교류전은 쿵링원((孔 令文) 7단(녜웨이핑 9단과 쿵샹밍 8단의 아들) 이 가교 역할을 해주고 있어 점차 많아지는 추세입니다. 콩링원 7단이 직접 통역도 많고 아주 열심히 합니다. 하지만 한국과는 교류전이 활발하지 않습니다.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바둑교육 창의력 돋보이나 이론은 부족 도장에서 기초를 다시 다져주기도 기보 보는 방법도 심도 있게 가르쳐 - 프로지망생들의 환경은 어떤 상황입니까? “일본기원은(관서기원은 별도로 치고) 한해 6명을 뽑습니다. 한국이 12명, 중국이 18~22명을 뽑는 데 비해 너무 적습니다. 관문이 너무 좁아 프로되기가 어려우니까 학부모들도 바둑 가르치기를 부담스러워 해서 아이들이 하나 둘 바둑을 떠납니다. 그렇더라도 일단 아이를 프로기사로 키우려고 작정한 학부모들은 철저하게 아이를 지원합니다. 자신의 아이의 의사를 존중합니다.” - 홍맑은샘 사범은 교육 현장에 계신데 한국과는 어떤 다른 점을 느끼십니까? “저는 도장에 있습니다만 바둑교실의 상황도 듣고 경험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바둑교실은 대국 위주로 가르친다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창의력은 뛰어납니다. 이것이 프로가 되어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볼 때 현재 한국과 중국의 프로기사들의 초반을 보면 틀에 박힌 듯이 둡니다. 나름대로 새로운 수법을 연구하는 것 같아도 그 자체가 정격화되고 맙니다. 그러나 일본 프로기사들의 바둑은 그렇지 않습니다. 세계대회에서 성적이 썩 좋지는 않다고 해도 새로운 시도는 일본에서 가장 많이 행해집니다. 일본 어린이들은 첫 수를 우상귀로 국한하지 않고 자유롭게 두며 심지어는 천원이나 변에 두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현상이 아주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5ㆍ五나 천원, 대외목 등 신예 시절 변칙수를 구사하던 야마시타 게이고 9단를 한국 프로기사 중 아무도 꺾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야마시타 9단이 데뷔 초기이던 시절이었고 지금 한국의 정상급들이 신예이던 때였습니다만, 나중엔 비공식적으로 이세돌 9단까지 나왔는데도 이 9단이 졌다고 하죠. 한데 창의성은 좋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바둑교실 교육은 단점도 있습니다.” - 단점을 말씀해 봐 주시죠. “바둑교실에서 대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까닭에 사활이나 기보공부가 부족합니다. 이론이 부족하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래서 아주 간단한 지식이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도장에선 기초부터 다시 잡아줘야 하는게 다반사입니다. 실전과 이론 어느 하나 놓쳐서는 안 되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 일본은 바둑교재가 잘 발달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요. “책은 많지만 수준별로 정리가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보단 실전을 중시하도록 교육받고요. 지금보다 어린이들이 사활문제를 더 많이 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기보 보는 법도 다시 가르칩니다. 대국의 흐름을 읽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겁니다. 참고로, 이야마 유타 9단은 어릴 때부터 이시이 구니오 9단으로부터 온라인으로 1000판을 두면서 상세히 복기를 받았습니다. 기본기가 아주 충실해질 환경에 있었다고 하겠습니다.” .jpg) ▲ 도장 한 켠 서가에 꽂힌 많은 바둑책들. - 도장이든 내제자 형태든 일본에서 프로지망생을 기르는 곳이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현재 도쿄에 4군데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제가 운영하는 홍 도장이고요. 후지사와 카즈나리 8단, 미무라 도모야스, 기쿠치 야스로(아마추어) 씨의 3개 도장이에요. 다른 지역에는 도장이 있는 곳이 아주 드물어요. 이창호 9단이 조훈현 9단의 집으로 들어가 직접 배웠던 것처럼 내제자 형태가 예전엔 발달해 있었는데 최근에 재정적인 어려움 때문에 많이 줄어서 지금은 다카바야시 다쿠지(高林 拓二) 6단이 유일하게 내제자를 두고 있습니다.” - 홍 도장은 도쿄 이치가야에 있었는데 아사가야로 옮긴 이유가 있나요? “아사가야에 좀 더 공부하기 좋은 조용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2004년에 일본에 왔고요. 2005년 12월에 도장을 시작했으니까 7년 만에 도장을 옮긴 거네요. 이전하면서 일반사단법인인 됐습니다. 주위 분들이 더 열심히 해서 공익사단법인이 되도록 노력해 보라고 합니다. 지원을 받는 점도 좋지만 국가에서 인정한다는 사실이 더 기쁘네요.” - 현재 어떤 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까? “도장생은 총 50명이고요 이 중 11명이 인세이(院生); 한국의 연구생 개념)입니다. 한국처럼 도장생이 매일 오지는 않고 30명 정도가 출석합니다. 주말에는 도장생들이 도장에서 숙식을 하기도 합니다. 일본은 초등과정을 정확하게 마쳐야 해서 프로 교육을 받는 과정이 더 어렵습니다. 프로기사의 자제로는 고야마 구야 군(고야마 데루미 6단)와 고나가이 유 양(고나가이 마사루 8단의 자녀)가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도장에선 매년 1꼴로 입단에 성공합니다. 사범은 하성봉 아마국수, 미쓰나가 준조 6단 등 5명이고요 사활, 복기 위주로 학생들을 교육시킵니다. - 일본바둑 부흥하기 위한 제안을 많이 해 오신 것으로 압니다. 대의 요약해 봐 주신다면? “일본기원이 현행 6명을 뽑는 입단제를 바꿔 12명 이상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일본 프로기사가 많아도 ‘젊은 피’는 잘 수혈되고 있지 않습니다. 6명을 증원하는 게 무리하다면 6명을 연수기사로로 지정해 좋은 성적을 내면 본 기사가 되도록 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요점은 프로기사는 본질은 이겨야 한다는 겁니다. 성적을 내야할 기사들, 즉 성적을 내는 기사들은 모아서 ‘특수부대’를 만들어야 세계대회에서 성적을 높일 수 있습니다. 또 성적을 잘 내지 못하는 기사는 대국을 통하지 않고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도록 할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랭킹제를 들여와야 합니다. 자신이 성적을 잘 내는 기사인지 아닌지 냉정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일본 주최의 세계대회 후지쓰배는 폐지됐고 바둑에 대한 관심은 점차 줄고 있습니다. 기원은 손님을 찾아 보기 어렵고 바둑교실, 바둑도장들도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일본의 바둑인구는 현재 250만명 정도로 추산하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인구일 거라고 이야기됩니다. 중심지인 도쿄 인구의 1%만 바둑에 관심을 가져도 바둑 산업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보급기사들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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