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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응답하라 2000'
이창호, 박정환과의 2012 '첫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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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 전초전은 패배! 지난 8월 말 열린 제1회 바이링배 취재로 중국 베이징에 갔을 때 이야기다. 8강에서 아쉽게 탈락한 박정환 9단과 함께 저녁 식사후 바둑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한 기원에 들렀다. 베이징 시내에 위치한 이 기원의 중국바둑팬들에게 여기 같이 온 박정환이 현재 한국 랭킹 1위라고 소개하자 상당수의 기객들이 신기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며 사인을 요청했지만, 기자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들이 엄지를 추켜올리고 세계 최고라 칭하며 현황을 물어보는 사람은 아직도 '이창호'였다.  2012년 한국은 영화, 드라마, 음악을 가릴 것 없이 '90년대'를 추억하는 복고가 대유행이다. 그 시절 문화의 중심축에 서 있었던 청년들이 이제 나이들어 소비의 주체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90후 세대'가 점령하고 있는 바둑계도 대부분의 팬은 아직도 '1인자'하면 새롭게 나오는 현재의 강자보다는 자신들의 젊음과 함께 빛났던 이창호 또는 이세돌을 생각한다. 12년 전만 해도 이창호는 한국바둑의 전부였다. 90년대 초부터 세기말까지 세계바둑을 휩쓴 한국바둑의 중심에는 항상 '이창호'가 있었고 , 특히 새 천년의 초반은 무르익은 기량이 절정을 달한 그의 황금기였다. 2001년 초 통산 1천 승, 통산 1백 회 우승의 대기록을 달성했고 이어진 세계대회로는 LG배, 도요타덴소배, 응씨배, 춘란배에서 정상에 섰으며 국내에서 국수, 기성, 패왕, 명인위도 모두 그의 손 안에 있었다. 하지만 2003년 이세돌에게 LG배를 넘기고, 2005년 최철한에게 국수를 빼앗기며 서서히 흐름은 달라졌다. 그 뒤로 세계대회 준우승 9회라는 안타까운 기록도 그렇지만, 이제 국내 신예기사들에게조차도 이창호는 더이상 철옹성이 아니다. 38세의 이창호, 현대바둑의 격전장에서 불혹이 다가오는 기사에게 갑자기 '현역 최강'으로 복귀할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전설의 후반기를 장식할 멋진 무대, 제7회 응씨배 4강전이 12일 앞으로 다가왔다. 더구나 준결승 상대는 현재 한국랭킹 1위에 올라있는 신세대의 대표주자 박정환. 과거와 현재, '1인자'간의 격차는 얼마나 될까? 누구도 이창호의 기량이 부족하다고는 말하진 않겠지만, 세월이 흐트러놓은 집중력과 체력은 문제다. 중요한 일전을 며칠 앞두고 그 차이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정상회동'이 있었다. 제40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16강에서 올해 들어 처음으로 '신구 1인자' 이창호와 박정환이 서울 성동구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마주 앉았다. 11일 오후 1시에 시작된 대국은 오후 4시 반쯤 백을 잡은 박정환이 불계승을 거뒀다.(192수 끝) 이 대국 전 이창호와 박정환의 공식대결은 총 9번. 지난 전적은 이창호 기준으로 4승 5패지만, 최근 2011년 벌어진 두 번의 대결에서 모두 이창호가 승리했었다.  돌을 거둔 이창호는 가장 먼저 하변을 손으로 가리키며 복기에 들어갔다. 중반 초입의 장면에서 이창호는 좌하에서 먼저 패를 걸었고, 결과적으로 우하귀를 백에게 내 주고 하변에서 공격의 주도권을 얻었다.하지만 하변에서 쫓기던 백이 흑의 그물에서 무사히 빠져나가서 승부의 균형이 급격히 백쪽으로 기울었고, 그 후로는 도처에 있는 백의 '두터움'의 압박을 피하지 못하고 항서를 쓰고 말았다. 이 바둑만 보면 이창호의 바둑이 전보다 많이 조급해진 느낌이다. 초반부터 서두르고, 성급한 공격으로 승리를 얻어내려는 것은 정통 이창호스타일은 아니다. 체력의 부담을 느껴서일 수도 있고, 초읽기를 대비한 고육지책일 수도 있지만, 다가올 응씨배의 '시금석'같은 대국에서 이창호는 이렇게 졌다. 물론 바둑의 경지를 넓히며 변화를 추구하려는 시도는 프로기사의 본분이자 권리다. 속력행마로 한 때를 주름잡았던 조훈현이 '제비'에서 '전신'으로 거듭난 전례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팬으로서는 이창호 9단이 예전 '2000년 스타일의 복고풍'으로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다시 한 번 쯤은 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뚜벅뚜벅' 무심하게 자신의 갈 길을 가면서도 귀신처럼 형세를 변화시키는 '반상의 마술사', 절망속에서도 반집을 찾는 '일품 끝내기'를 보며 "그래 이게 바로 이창호지"라고 쾌재를 부르면서 과거 한 때를 추억하는 재미는 과연 어떨까? 올해 첫 대결인 하이원리조트배 16강 이후 벌어지는 이창호와 박정환의 '빅매치', 제7회 응씨배 준결승 3번기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두장옌(都江堰)에서 벌어진다. 청두는 2000년 이창호 9단이 창하오 9단에게 결승 1, 2국을 얻어내며 응씨배 첫 우승의 초석을 다진 곳이다. 당시 중국 언론에서는 '산을 흔들기는 쉬워도 석불을 흔들기는 어렵다.'고 대서특필하며 이창호의 강함을 칭송했다. 벌써 먼 과거로 느껴지는 '2000년'이지만, 그때처럼 '부동의 돌부처' 이창호가 '유비의 땅' 청두에 재림하길 고대해본다. 오늘(11일) 있었던 '과거'와 '현재'의 대결은 23일 다시 이어진다.  ▲ 이창호 9단의 올해 첫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박정환 9단  ▲이창호 9단. 점심 직후 몇 수 교환 후에는 두 대국자 모두 '돌부처'가 되었다.  ▲ 이 대국에서 이긴 박정환 9단은 8강에서 이지현 3단과 대결할 예정이다. 12일(수요일)이어지는 명인전 16강도 강동윤-백홍석의 빅매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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