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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호의 내려놓음, 새로운 출발점에 기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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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냉정하게 판을 짜는 새로운 이창호 코드 필요할 수도…" 국수전 3국을 보고선 어렴풋이나마 이창호 9단의 역전방어는 힘들 것 같다고 느꼈다. 요 몇 달간 이창호 9단의 패배가 부쩍 많아진 데 반해 최철한 9단의 상승곡선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최철한 9단의 국수 탈환과 더불어 1989년 이후 단 한 번도 타이틀을 손에서 놓아본 적이 없던 이창호 9단의 무관 전락은 또 하나의 마침표를 찍고 묵묵한 뒤안길을 표한다. 22년 만에 모든 것을 내려놓은 이창호 9단으로선 복잡 미묘한 감정이 물밀듯이 엄습하겠지만 언젠가는 맞닥뜨려야 할 또 하나의 과정이라면 오히려 홀가분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22년 만에 맞는 새로운 출발점이다. 더욱 독하게, 더욱 강하게, 더욱 어지럽게 판을 짜는 최철한 코드에 맞서려 한다면 이보다 더욱 치밀하게, 더욱 유연하게, 더욱 냉정하게 판을 짜는 새로운 이창호 코드가 필요할지 모르겠다. 제54기 국수전 도전5번기 4국 ●이창호 9단 ○최철한 9단 장소: 서울 성동구 홍익동 (재)한국기원 특별대국실 날짜: 2011년 2월 14일 결과: 98수 백불계승 장면1 (수습은 어떻게?) 흑이 하변에 침입한 백돌들을 날일자로 씌워 공격하고 있다. 흑14로 건너 붙인 상황에서 다음 백의 수습이 주목되는 장면이다. 백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 실전진행1 (때 이른 이상감각) 먼저 실전진행을 보자. 백2와 4의 붙임은 악수교환들이지만 수습을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두어야 할 수순들이다. 여기서 10으로 끊지 않고 9로 지킨 수가 때 이른 의문수로 판을 이상하게 만든 주범이 됐다. 흑9는 우변을 확실히 지키면서 백 대마 전체를 미생으로 남기겠다는 의사표시지만 중앙 흑돌의 두터움이 달라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백이 선수를 잡고 18로 굳혀선 백이 한발 앞섰다. 참고도1 (두터움이 달라진다) 흑9로 끊어가 흑13까지 두어지는 것이 가장 무난한 수순이면서도 실전보다 더 나은 절충이다. 하변 백돌들이 선수로 살았지만 흑도 그에 못지않은 중앙 두터움을 얻어서 불만족스럽진 않다. 실전진행1의 중앙 두터움과 비교해본다면 그 차이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참고도2 (악수 교환이 싫다고) 실전진행1의 2와 4 교환을 생략하고 그냥 끊을 경우엔 대형사고가 난다. 조금만 수읽기를 하면 알 수 있는 결말이다. 장면2 (성동격서의 표본) 흑1로 모자 씌운 수는 상용의 삭감 수법이다. ‘모자는 날일자로 벗어라’라는 바둑격언과 같이 일감으로 떠오르는 백의 다음 수는 날일자로 받는 것이다. 그러나 최철한 9단은 평범을 거부한 백2의 독수를 들고 나왔다. 백2는 시기적절한 타이밍이자 전 국면을 움켜쥐게 한 멋진 성동격서(聲東擊西)의 한 수라 극찬해도 괜찮을 만한 수다. 실전진행2 (보이지 않는 요처)) 백2의 붙임에 실전은 흑3의 역응수타진으로 맞대응했다. 백이 어떻게든 받아준다면 흑3의 한 수를 충실히 활용하겠다는 의도였으나 백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4로 젖혀버린다. 쌍방 흑17까지 서로의 갈 길을 가는 모양이 됐지만 다음 백18의 수가 이 판의 주요한 승착으로 작용하면서 판의 주도권은 완연히 백에게 넘어가고 만다. 흑19로 끊겨 좌변이 허물어졌지만 다음 백24로 움직이자 흑말 전체가 공중에 붕 뜨고 말았다. 백18은 보이지 않는 요처였다. 참고도3 (흑의 의도) 백2의 날일자로 평범하게 받는 것은 흑이 원하는 바다. 보는 바와 같이 흑3으로 붙이고 5로 끊는 상용의 맥이 준비돼 있다. 이하 11까지 두게 되면 좌변을 삭감한 것과 동시에 중앙 흑모양을 두텁게 정비하는 이중적 효과를 얻을 수 있어 소기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게 된다. 참고도4 (별무신통) 반대로 받아도 결과는 매한가지다. 역시 5의 끊임이 유효하게 작용하고 있다. 참고도5 (△의 효과) 백△로 붙였을 때 흑1로 젖힌다면 백2의 되젖힘이 기다리고 있다. 실리의 손해를 보지 않으려면 흑7까지 버텨야 하는데 이하 백2, 6의 효과로 10의 바깥 젖힘을 둘 수 있다. 축이 되지 않아 끊을 수가 없다. 참고도6 (좌변을 지키지 않은 이유) 실리만 놓고 따지자면 백1로 좌변을 지키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겠다. 그러나 흑2로 빠지게 된다면 B로 한 점을 살리는 위력이 반감될 뿐만 아니라 A로 젖히는 수도 신경 쓰인다. 이러한 다목적인 의미를 생각한다면 2의 자리는 빼앗길 수 없는 요처다. ‘후수의 선수’라 불러도 될 만한 곳이다. 실전진행3 (파국의 조짐) 계속되는 실전진행이다. 초반 우변의 절충과 하변 싸움의 결과가 상대적으로 미흡했던 흑으로선 끌려다니는 진행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흑1의 처진 날일자는 무리를 각오한 승부수이나 백2의 응수가 계속된 좋은 수가 되면서 또 하나의 의문수로 전락한다. 흑5의 위협사격에 되레 백6으로 중앙을 잡자고 하자 흑9, 10으로 젖히면서 화를 냈는데 이렇게 되선 파국을 면할 수 없게 됐다. 참고도7 (발상의 전환) 백2가 왜 좋은 수일까? 흑3으로 민다면 백4로 귀를 지키는 수가 안성맞춤이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A로 늘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중앙 흑대마가 미생이고 주위 배경도 백에게 유리하다는 것을 고려해야겠다. 같은 정석이라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처럼 발상의 전환을 수시로 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고수라 말할 수 있다. 참고도8 (사는 것은 문제없다) 실전진행3의 흑13으로 차렷한 것은 백대마를 잡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흑1로 막는 순간 2의 끊음이 정확한 유효타로 작용해 사는데 별 어려움이 없게 된다. 실전진행4 (100수 이전에 끝나버리다) 내친걸음인지라 우변이 깨지는 것은 안중도 없다. 흑8까지 안형을 빼앗지만 되레 백9로 끊어가자 더 이상 백대마를 잡으러 가지 못한다. 100수 이전에 끝나버린 것도 그렇지만 내용에서도 완패에 가까운 허무한 결말이 실로 충격적이다. 참고도9 (잡는 길은 없다) 백대마를 끝까지 잡으러 간다면 흑1로 서는 것이 최강의 응수다. 하나 백22까지 썩은 밧줄로 호랑이를 동여매려는 사태가 발생한다. 결론적으로 이 바둑은 최철한 9단이 잘 둔 것도 있지만 이창호 9단의 이상감각과 판단에 어느 정도 문제가 있음은 부인할 수 없겠다. 22년 동안 단 한 번도 타이틀에서 떠나본 적이 없는 그였기에 이번 국수전 시리즈의 패퇴는 많은 팬에게 씁쓸함을 안겨다 준다. 하지만 내려갈 때까지 내려갔다면 이제는 올라갈 일만 남았다는 말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팬은 느끼고 있다. 아직 이창호 9단이 모든 것을 내려놓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란 것을. [글 | 김상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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