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사이버오로 홈페이지(cyberoro.com)에 소설 [청룡도]와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이자 바둑사학자 이청 작가가 최근 발굴한 사료를 기고한 것입니다. 외부 필자의 기고는 본지 편집방침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註)

삼국사기 백제본기는 왕도의 우물 물이 붉고 백강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했다.( 王都井水血色 西海濱小魚出死 百姓食之不能盡 泗河水赤如血色) 키가 열여덟 척이나 되는 여자의 시체가 떠내려왔다고 한다.(秋八月 有女屍浮生草津 長十八尺 )
이는 필시 백제가 망할 징조라 기록하고 있다. 신라가 백제를 도모하기 위한 심리전에서 나온 말로 일종의 도참이다.

우리 역사에서 도참은 고려 조선을 가리지 않고 빈발하게 나타난다. 그중에서 조선 태종의 잠저시절 그와 정치적 긴장관계에 있던 이방간의 에피소드는 압권이다.

1400년 비가 오는 겨울밤이다. 방간의 집을 찾아온 박포는 방간과 바둑을 둔다. 비가 거칠게 내린 모양이다. 먼저 방간이 바둑을 두는데 웬 겨울비가 이리 사납냐고 묻는다. 방간의 질문에 박포가 기다렸다는 듯 언무언(言無言)으로 대답을 한다. 언참을 한 것이다. 박포는 말한다.

겨울비가 길을 무너트리고 그 속에서 바둑을 두며 싸우니 시장에서 전쟁을 할 조짐입니다. 방간의 말은 일상적인 것이지만 박포의 대답은 복심을 담아낸 말이다. 방간은 담대하고 배포까지 갖춘 무장 박포의 말에 덥썩 그의 손을 잡고 의기투합한다. 그들은 기왕 말이 나온 김에 선공을 취할 계획까지 나간다.

(去年冬至, 抵芳幹第爲博戲, 是日適有雨, 告之曰: ‘時令不和, 宜愼之。' 至今年正月二十三日初昏, 天氣赤於西北, 明日又至芳幹第告曰: ‘天有妖氣, 宜愼處之。' 芳幹曰: ‘何以處之?' 苞曰: ‘不典兵謹出入, 整衣冠重行止, 如前朝諸王之例, 斯乃上策. 태종실록)

방간은 박포, 강인부, 민원공 등의 무장을 부장으로 삼고 자신의 아들인 '이맹공'을 선봉으로 삼아 3백여 명의 사병을 이끌고 동대문(송도)을 거쳐 도성으로 입성, 가조가(可祚街 : 시장)에서 이방원의 부대와 시가전을 벌이게 된다. 조선실록에 나타나는 최초의 언참이 바둑과 연관이 되어 있다는 것이 흥미있다. 조선실록 안에는 이와 유사한 기록이 여러 건이다.

토정비결에 버금가는 점복서, 관제영첨에 나타난 바둑점괘

필자는 바둑을 이용한 도참(언참)이 점복서에 인용되어 있는 경우를 여러 편 보았다. 그중에서도 조선후기 토정비결에 견줄 수 있는 점복서인 관제영첨(關帝零籤)이 주목된다. 관제영첨은 임진왜란시 명군이 들여온 도교적 점복서로 점술을 구하는 방법과 괘의 선택이 단순하고 분명하여 조선에 급격하게 퍼진 책이다. 관제는 관우를 말하고 영첨은 뽑은 점괘를 이른다.

관제영첨은 총 백괘(百卦)로 되어 있다. 산통에 산대 백개를 넣고 흔들다가 하나를 꺼내 산대에 적힌 괘를 책에서 찾아 읽는 방법은 복잡한 주역이나 여타 점복술과는 비교할 수 없이 실용적이여 인기를 모으 게 된다. 특히 명의 장수 '양호'가 조선조정을 설득하여 관우의 사당을 곳곳에 세우면서 관제영첨의 인기는 더욱 높아진다.

필자가 본 관제영첨은 국립도서관에 보관된 1924년 판과 (민속자료원 해제) 한글본을 비교하여 57첨 난가관기와 84첨 수가범수(須賈范誰)에 바둑을 비유한 점괘가 있어 소개를 한다. 다시말해 관제영첨 백괘 중에 두괘가 바둑을 원용하여 점괘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이다.

57첨. 난가관기(爛可觀棋)

사단이 백 가지로 생각이 어지러우니 / 남의 말 들을 것 없이 스스로를 주장하라 / 한번 둔 수를 유의하여 / 어지러운 판세를 잘 고려하라 (事端百出慮誰長/莫聽人言自主張/一着仙機君記取/紛紛闡裏更思量)

난가관기는 왕적신의 일화에서 따온 바둑계의 유명한 고사다. 인용된 시는 난만(爛漫) 속에서 생로를 찾으라는 의미에서 지어진 시다. 난만은 바둑의 또 다른 표현이다. 생각이 백 가지로 복잡한 것은 어지러운 바둑의 수상(數想)마냥 선택의 길이 다양하나 승리의 길은 외길이듯 심사숙고를 요한다 말하고 있다. 일착선기군기취(一着仙機君記取)는 선(仙)을 선(先)의 오기로 보아야겠다. 관제영첨의 이본에는 그렇게 되어 있기도 하다. 한번 둔 수는 이미 파기할 수 없는 기록이다는 의미로 매사에 신중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84첨. '수가범수(須賈范誰)'

이 괘는 '수가'가 '범수'를 해한다는 고사에서 가져온 것으로 난가관기와 비슷한 차용이다. 수가범수는 사기(史記)에 나오는 인물들로 덕을 쌓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으로 나온다.

실타래 같은 사연 어지러우니 / 바둑에서 한 수 앞을 내다보라 / 말 많은 여자의 말에 혹하지 말고 / 힘써 예를 다하며 마음을 굳게 하라 (個中事緖更紛然/ 當局須知一着先/長舌婦人休惑聽/方行禮義心堅)

끝없이 예기치 않던 일들과 마주치는 것이 인생사다. 이 괘는 반복의 일상을 신중과 자중으로 살아내며 하루 앞을 내다보는 지혜를 말하고 있다. 어리러운 바둑판에서도 상대의 수를 예상하여 나의 수를 고려하면 승기를 잡을 수 있듯 세상사 또한 그렇다는 것이다. 관제영첨에는 매 괘마다 동파선(東波鮮)이라는 해석이 붙어 있다. '소식'이 관제영첨의 탄생에 일조를 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소식은 '백학관기'란 유명한 바둑시를 남긴 사람이고 주역에도 일가견이 있던 사람이다.

소식은 57첨 난가관기를 공사가 다망해도 마음을 흩트리지 말고 몇번 생각한 후에 행동을 하면 아무런 탈이 없다고 해석한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행동을 조심하면 무슨 해가 있겠느냐 묻는 것이다.

소식은 84첨 '수가범수'도 난가관기와 비슷하게 풀고 있다. 세상사에는 이치가 있는데 그것을 잘 살펴 마음과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한다. 뜻밖의 큰일이 닥쳤을 때도 마음을 굳게 하고 잘 살피면 그것을 헤쳐갈 길이 보인다고 한다.

관제영첨 50첨에는 소식이 직접 등장하기도 한다. '동파권민'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 동파권민(蘇東波勸民)이 재미있다. 소식은 도참이나 언참은 믿을 게 못된다 말한다. 황망한 요언들은 진실한 생각을 해친다 하고 있는 것이다. 관제영첨은 점은 이용하되 점에 모든 걸 맡기지는 말라고 말한다. 점복서 중에서 가장 양심적인 점복서라 하겠다. 바로 이 점이 관제영첨이 끝없이 '요언도참서'를 발본색원해 온 조선시대를 거뜬하게 살아온 이유라고 본다.

관제영첨을 통해본 조선의 점복술 속에 바둑이 사실적으로 살아 있는 것을 볼 때에도 조선의 바둑의 융성이 느껴진다. 민간의 고유한 점복 행위에 바둑이 은유와 형상으로 녹아 있다는 것이 놀랍다.

기록으로 파악되는 조선의 바둑은 대단하다. 조선실록과 승정원일기에 기록된 바둑의 기록은 천여 건이다. 개인문집과 지방의 기록들은 상상을 초월한다. 18세기 중반 제주에서 일어났던 민란을 관원의 눈으로 기록한 '북상기(작자미상)'는 바둑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