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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읽기에 넘어진 소신산(小神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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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국과 2국 모두 화끈한 명승부를 주고받은 끝에 최종국까지 오게 된 두 영웅. 마지막 대결에서 이긴 자가 삼성화재 우승의 영예와 2억원의 실리까지 움켜쥐게 된다. 그 긴박한 승부는 마지막까지 엎치락뒤치락하는 손에 땀을 쥐는 명국이었는데 소신산이라 불리며 끝내기에서 무적을 자랑하던 박영훈 9단은 모두의 눈을 의심케 하는 엄청난 착각을 일으키면서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고 만다. 마지막 최종국의 순간을 다시 한 번 뒤돌아 보자.  제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결승3번기 최종국 ○박영훈 9단 ●이세돌 9단 장소: 삼성화재 본사 특별대국실 날짜: 2008년 1월 24일 결과: 265수 끝, 흑1집반승 장면1 (백이 둘 차례) 초반 포석장면이다. 흑의 실리와 백의 두터움이 팽팽한 균형을 이룬 상황. 백이 둘 차례인데 일감은 어디일까? 참고도1 (검토실에서 나온 의견) 당시 사이버오로 해설을 맡았던 조한승 9단과 검토실의 여러 기사들은 백이 선택할 수 있는 자리가 A~C중 한 군데일 것이라 입을 모았다. A는 백상변 모양의 확장과 우변 흑진의 삭감을 겸하는 자리고 B는 좌변 흑 두 점을 압박하면서 상변 모양을 키우는 자리, C는 흑▲한 점을 확실히 제압하면서 우하귀를 백집으로 굳히는 수다. 검토실의 많은 기사들은 현실적으로 C의 자리가 가장 커 보이며 일감이라 말했다. 실전진행1 (예상치 못한 한 수) 그러나 박영훈 9단의 선택은 검토실의 의견을 모두 외면한 백1이었다. 상변 모양을 곤고히 한 다음에 다음 수를 보겠다는 의미였는데 이세돌 9단은 1의 치받음에 대꾸도 하지 않고 2로 날아가 버렸다. 3정도의 아픔 정도야 별 것 아니라는 생각인데 박영훈 9단의 허를 찌른 자유로운 발상이었다. 이후 선수를 둘러싼 쟁탈전은 좌변으로 옮겨 붙었고 이세돌 9단은 좌변에서 어느 정도의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선수를 뽑으면 괜찮다는 발빠른 임기응변으로 대망의 A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실전진행2 (흑 주도권 잡다!) 계속되는 실전진행이다. 이하 흑17까지 우하귀를 크게 유린하며 중앙에 두터움까지 장만해서는 흑이 괜찮은 결말이 됐다. A의 빠지는 선수권리와 B의 날일자로 압박하는 수, C로 밀어가는 수 등 다음 행마가 눈에 쏙쏙 들어오는 게 흑의 즐거움을 대변해준다. 실전진행3 (흑 완착) 하지만 흑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한다. 실리에 민감한 박영훈 9단은 1의 자리를 선수로 당하는 것이 굉장히 아프다 보고 백1로 젖혀 이었는데 이세돌 9단은 여기서 성급하게 생각하고 만다. 백이 1선 젖히는 역끝내기가 싫어 때 이르게 8로 젖히는 끝내기를 서두른 게 검토실에선 완착이라 말한다. 백에게 끝내기를 당해주더라도 A의 날일자로 날아들었으면 여전히 흑의 우세였다는 의견. 역으로 백9가 와서는 다시 팽팽한 형세다. 장면2 (백의 위기일발이었던 순간) 중반 내내 팽팽하던 국면은 바야흐로 미세한 형세까지 흘러들었다. 이 장면에선 실리상 백이 조금이나마 앞서 있다는 검토실 진단. 여기서 이세돌 9단은 중앙을 삭감하는 겸 중앙 백 일단에 엄청난 노림수를 품고 한 수 한 수에 살기를 띄우고 나섰는데. 그러나 이 노림수를 작렬시키기 전 무심코 선수라 생각한 흑17이 한 발 엉킨 스텝이었으니…. 참고도2 (바로 결행했어야!) 실전진행의 A를 두지 말고 흑1로 바로 건너 붙였으면 백X가 위험했다. 미리 쌓아둔 흑▲의 지원병들이 있기 때문에 1로 끊겼으면 타개하기가 만만치 않았다는 의견. 이세돌 9단은 A를 확실히 교환해두고 1을 결행하려 했지만 박영훈 9단은 그 찰나를 정확히 포착하며 위기를 벗어난다. 실전진행4 (절묘한 교환들) 백7로 받기 전 박영훈 9단은 이하 5까지 절묘한 선수교환을 하면서 백의 안위를 돌보았다. 이세돌 9단으로선 카운터펀치를 날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 이하 13까지 백의 타개가 순조롭게 되면서 미세하나마 백이 나빠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곧이어 등장한 흑14가 이 판을 흔드는 기막힌 모티브가 된다. 참고도3 (흑의 의도) 실전진행4 흑14의 의도는 다음과 같다. 평범하게 1로 응수한다면 2, 3의 교환다음 흑4의 선수가 굉장히 아프다는 얘기다. 7까지 된다고 보면 흑은 중앙에서 쏠쏠한 이득을 본 반면 백은 공배 연결에 급급한 모습이다. 이래서는 장담할 수 없는 형세. 조금이라도 흑의 의도를 거스르는 착점을 연구해야 한다. 실전진행5 (이겼으면 천하명점이 됐을 백1!) 박영훈 9단은 중반 어려웠던 형세를 대변하듯 일찌감치 초읽기에 몰렸다. 이 시점에서는 마지막 초읽기였는데 1분 만에 찾아낸 백1의 자리가 검토실의 모든 프로기사를 놀라게 한 수. 이겼으면 승착이 될 수 있을만한 뛰어난 감각의 한 수였다. 1의 의도는 흑▲ 석 점을 잡자는 것과 연계해 중앙 백말을 효율적으로 연결하겠다는 다목적인 의도가 깔려있었다. 이하 흑12까지는 필연적인 행마였는데 마지막 초읽기에 부들부들 떨던 박영훈 9단의 손은 백13이란 치명적인 패착을 두고 만다. 참고도4 (백의 의도에 간단히 걸려드는 장면) 흑1로 쉽게 이어준다면 간단하게 지는 꼴이다. 이하 2로 때려내는 것이 기분 좋은 빵따냄. 흑이 3으로 백 넉 점을 잡는다면 6까지 선수활용을 하고 8로 석 점을 먹어 이걸로 승부는 끝난다. 백이 깔끔하게 승리를 다지는 그림. 애초 흑▲로 들여다 본 수가 아무 의미 없는 바보로 전락하지 않는가. 참고도5 (이었으면 백 승!) 실전진행5에서 보았듯이 백13은 치명적인 패착이었다. 참고도처럼 그냥 이었다면 이하 백7까지 A와 B를 맞보아서 백승리가 그대로 굳어지는 장면이었는데 실전은 차이가 크다. 잘 둬 왔던 박영훈 9단이 간단한 수를 착각하면서 그대로 무너져버린 실로 아쉬운 장면이다. 실전진행6 (단 한 수의 실착이 나락으로) 실전진행을 보면 알 수 있다. 백A로 끊어도 B의 패따냄이 있어 백은 A로 끊지 못했는데 검토실은 그래도 A로 끊었어야 했다는 의견이 있었다. 결국 A자리는 이세돌 9단의 손으로 돌아갔고 백은 되레 중앙전투에서 손해를 보며 승리를 건네주고 만다. * 삼성화재배 최종국은 월간바둑 3월호 상보에서 더 자세한 해설로 소개될 예정입니다 -기자 리뷰 2004년의 박영훈, 그리고 2008년… 삼성화재배 두 번째 준우승에 머문 박영훈 9단을 보며 “이렇게 두었다면 어땠을까?” “그 수도 생각했었는데….” “영훈이 네가 여길 두었다면 골치 꽤나 썩었을 거야.” “…….” 웃을 때마다 누군가를 유혹하는 듯한 반달눈이 매력적이다 못해 사랑스럽기까지 한 박영훈 9단. 삼성화재배 결승 최종국이 끝나고 그 천진난만한 웃음을 꼭 기대한건 아니었지만 난 그의 모습이 이렇게나 풀이 죽어 있을 줄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결승 최종국은 박영훈 9단에겐 쓰디쓴 아픔이 잔뜩 묻어난 통한의 패배였다는 걸 그 바둑을 감상한 팬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리라. 초반 포석의 실패를 뒤로 하고 꾹꾹 참아내는 인내심 끝에 대역전승을 눈앞에 두었다만 그놈의 초읽기가 무엇인지. 기자가 박영훈 9단에게 위로를 건넨다면 단지 초읽기 유죄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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