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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과 하이페츠, 그리고 말름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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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직관과 감각, 전광석화(電光石火) 같은 수읽기 능력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사는 누구일까? 80년대였다면 대부분 조훈현 9단을 넘버원으로 꼽을 것이고, 2007년 추석 연휴 현재를 기점으로 보자면 이세돌 9단이 아닐까. 연휴를 뭉개며 먼지 쌓인 음반을 정리하다 보니 문득 이세돌 9단을 생각나게끔 하는 아티스트가 있다. 다소 두서없고 황당무개한 비교일지도 모르겠다. 넉넉한 한가위 넉넉한 마음으로 보름달을 보며, 송편 한 쪼가리를 씹듯 느긋하게 읽어주시길 바란다.^^ 바둑의 ‘속기’에 비견되는 빠른 연주가 바로 ‘속주’다. 속주하면 생각나는 연주자 둘이 있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10대 학창 시절 마음 속 우상이었던 기타리스트 잉베이 말름스틴(Yngwie Malmsteen 1960~ )과 나이 30에 클래식에 눈뜨게 한 야사 하이페츠(Jascha Heifetz 1901~1987)다. 이세돌과 야사 하이페츠, 그리고 잉베이 말름스틴. 최근 절정의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이세돌의 바둑을 보며 그 정밀하고 치밀한 수읽기에 감탄하는 것처럼 하이페츠와 말름스틴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들을 거느린 비르투오소(virtuoso)들이다. 초절기교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최고의 번개손 기타리스트로 평가받던 말름스틴도 이미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이지만 이세돌의 바둑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두 사람이 생각날 정도로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던 인물들이다. 하이페츠 탄생 100주년이기도 한 2001년 18세의 이세돌은 일약 세계대회 결승 무대까지 도약한다. 2001년 2월 26일과 27일, 그 날의 잔상이 아직도 오버랩 되는 것은 현장에서 받았던 충격이 워낙 강렬했기에 그럴 것이다. 마치 둔기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기억. 대국 이모저모가 여태까지 또렷이 재생되는 것은 바둑밥 경력 10년 동안의 어떤 취재 보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이었기 때문이리라. 잠시 필름을 돌려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1․2국이 열렸던 삼성동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로 가 본다. 당시 이세돌 3단이 창 하오(常昊) 루이(芮乃偉) 저우 허양(周鶴洋) 등 정상급 기사들을 연파하고 세계대회 결승까지 치고 올라가자 바둑팬들의 관심은 최고조에 올라 있었다. 방송과 신문 인터넷 등 각종 언론 역시 경천동지(驚天動地) 할 사건이라며 최종 결과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던 터였고.  ▲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5번기 1국 이세돌의 상대는 ‘번기 불패’의 관록을 자랑하는 이창호 9단이었다. 이때까지 이창호는 세계대회 결승에만 13번 진출해(TV타이틀 제외) 12번 우승했고, 그 가운데 11번의 번기 대결 중 10번을 승리했었기에 필자는 이세돌의 돌풍이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것으로 예상했었다. (사실 이창호 9단의 팬이었던지라 주관적인 감정이 어느 정도 개입된 점은 인정한다^^.) 그런데 웬걸. 이세돌은 두 판 연속 이창호의 대마를 고꾸라뜨렸다. 연승 자체도 센세이션이었지만 내용면에서도 극적인 반전의 연속이었기에 마치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한 전율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월간『바둑』2001년 4월 편집 후기에 당시 받은 인상을 옮겨 적기도 했다.) [장면1] 장면1은 결승 1국의 하이라이트. 이세돌의 백△ 공격에 흑의 타개가 관심사로 떠오른 장면이다. 실전에서 이창호는 흑1에 붙이고 3으로 맞끊었는데 이 수가 결정적인 실착이었다. [1도] 국후 검토에 의하면 1도 흑1로 밀고 3에 젖혔으면 사는 수가 있었다고 한다. [2도] 이세돌은 2도 백1 이하 27까지 정확한 스텝으로 이창호 9단의 대마를 접수하며 선승했다.  ▲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5번기 2국 [장면 2] 장면2는 결승 2국의 승부처. 여기에서 이창호가 백1로 꼬부려 수싸움을 벌였으면 흑이 곤란했다. [3도] 이후의 예상 변화도가 3도. 백14까지 백의 선수 빅이다. 다음 백A였으면 흑의 회복불능이었다. [4도] 그런데 이창호는 실전에서 4도 백1로 들여다 본 후 7로 치고 나왔다. 상대의 실수를 본능적으로 감지한 이세돌은 흑32까지 상중앙 백대마를 포획했고, 이후 흑36을 본 이창호는 돌을 거뒀다. 당시 18세의 이세돌은 천하의 이창호 대마를 두 번 연속 때려잡으며 월드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비록 결승2라운드에서 내리 세 판을 패하며 ‘반상 쿠데타’에는 실패했지만 세계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 이세돌은 현재 세계 최고의 기사 중 한명으로 성장했다. 어느 분야에서건 대성하려면 조기교육, 영재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하는 게 현실인건 지금이나 100여 년 전이나 마찬가지였나 보다. 바둑으로 천재성을 인정받는 이세돌이 열두 살 때(95년 7월) 입단해 두각을 나타냈던 것처럼 하이페츠도 일곱 살 때 독주회에 데뷔해 신동으로 구 소련의 일원이었던 리투아니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즈음 그는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할 정도의 실력을 갖췄다고 한다. 아홉 살의 나이에 당대 러시아 바이올린계의 최고봉인 레오폴드 아우어(Leopold Auer) 교수 문하에 들어간 하이페츠는 1913년 독일 라이프찌히에서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는데, 그 연주와 관련해 한동안 회자됐던 일화가 있다. 당시 관객석에는 최고의 바이올리니스였던 크라이슬러(Fritz Kreisler)와 짐발리스트(Efrem Zimbalist)가 참석했었다. 12세 소년의 연주를 듣고난 후 크라이슬러는 짐발리스트에게 “자네나 나나 이제는 바이올린을 내던져 박살내는 편이 나을 것 같네”라고 했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올 정도로 하이페츠는 어려서부터 신출귀몰한 솜씨를 보였다.「Heifetz historical collection 1917-24」라는 타이틀로 CD화 된 음반에서 사라사테의 [카르멘환상곡]이나 랄로의 [스페인교향곡 제4악장]을 들어보면 하이페츠의 바이올린이 이미 어린 시절에 완성됐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 잉베이 말름스틴 스웨덴 출신의 말름스틴은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어머니의 영향으로 세 살 때 피아노를 배웠고 다섯 살 때 클래식 기타를, 일곱 살 때 일렉트릭 기타 독학을 시작했다. 명기(名器) ‘팬더 스트라토캐스터’를 손에 넣은 열다섯 살 무렵부터 무려 5년 동안 하루에 10시간 이상씩 기타 연습을 해 왔다는 일화는 ‘노력 없는 천재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실례(實例)이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되지 않는 일이 있다고 한다. ‘완벽한 테크닉의 화신’으로 불렸던 하이페츠의 기교는 후천적으로 길러졌다기보다는 타고난 것이었다는 게 음악평론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아무리 열심히 연습한다고 해도 ‘독특한 완벽함’은 성취하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다. 선천적으로 터득한다는 ‘절대음감’처럼 이세돌의 번뜩이는 수읽기 역시 타고난 천재성이 가미되지 않고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는 게 대부분 바둑평론가들의 견해다. 속기와 속주의 대가들인 세 사람에게는 ‘정확함’이란 공통점이 있다. 중요한 바둑에서 미지의 길에 선뜻 발을 내딛을 수 있는 담대함 속엔 이세돌의 ‘정확한’ 수읽기가 무장돼 있다. 하이페츠는 마음먹은 곡을 전부 무대에서 소화해 내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정확한’ 악기 조절 능력을 기저에 깔고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록음악에 클래식을 접목시키며 ‘바로크 메탈’을 완성시킨 말름스틴의 창의적 작업 역시 ‘정확한’ 곡 해석능력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창의적인 수를 앞세워 절대 상대가 하자는 대로 해주지 않는 이세돌의 독창성. 경계 없는 연주력과 레퍼토리, 어떠한 곡에서나 예리한 통찰력을 보여줬던 야사 하이페츠. 하나의 장르와 주법에 머무르지 않고 끊임없이 실험정신을 발휘했던 잉베이 말름스틴은 일맥상통하는 무언가가 있는 듯하다. 물론 이러한 근저에는 치열한 탐구 정신이 수반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필자가 뽑은 이세돌의 바둑은 앞서 언급한 제5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1, 2국이다. 기량은 물론 지금이 더 뛰어나겠지만 당시 월간『바둑』에서 ‘반상의 체 게바라’로 표현한 것처럼 집을 챙길 때는 챙기고 공격할 때는 일직선으로 공격하는 그런 작전이 너무나 신선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물론 전적으로 개인적인 취향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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