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사이버오로 홈페이지(cyberoro.com)에 [조선사바둑전]과 [대륙풍]을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이자 바둑사학자 이청 씨가 한가위 민족 대명절을 맞아 사이버오로 회원들을 위해 특별히 기고한 글입니다. (편집자 註)

조선실록은 곳곳에서 바둑의 고사를 들어 난정에 빠진 국정을 바로 잡고자 했다. 국가 운영을 승부를 다투는 한판의 바둑으로 보고 국왕과 신하들이 고민하는 모습은 자못 신기하고 신선하다.

선조실록에 보이는 석천(射天)과 망양(忘羊)이 그런 경우다. 석천은 사기은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은기는 은의 무을(武乙)이 천신(天神)에 기분이 상해 허수아비를 만들어 천신이란 글자를 써 놓고 천신을 대신한 노예와 바둑을 두어 자신이 이기면 허수아비에 욕을 하고 하늘을 향해 활을 쏘았다는 고사(古辭)에서 나온 말이다.

석천은 욕이자 저주다. '공영달'은 귀신에게 일러바치는 것이 주(註)고 귀신에게 무엇인가를 비는 것이 저(詛)라 했다. 시경은 삼물(개 돼지 양)을 바쳐 너를 저주한다 하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탓하고 욕하던 살벌한 인간의 모습이 참으로 오래 된 것을 알겠다.
선조실록의 석천은 임진왜란을 자행한 일본에 대한 조선의 감정이다. 드러내놓고 욕을 하는 것보다 에둘러 석천의 고사를 들어 무을의 저주를 퍼붓고 있다. 욕을 하더라도 이토록 고급스럽게 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은 석천을 불러온 자신들의 나태와 과오도 잊지 않는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미증유의 전란을 불러온 조선의 오피니언들의 뼈저린 반성과 참회를 토로한다.
실록은 망양(忘羊)이라 했다. 조선의 원병 요구에 응한 명나라는 조선의 석천의 마음을 이해하지만 자초한 망양(忘羊)이 있다고 했다. 망양은 장자에 나오는 고사로 양을 잃었다는 뜻이다.

옛날 장과 곡이란 양을 치는 목동이 있었다. 두 목동이 양을 지키다가 한꺼번에 양들을 잃어버렸는데 주인이 이유를 물었다. 장은 책을 보다가 정신을 팔았고 곡은 바둑을 두다 정신을 팔아 양이 도망가는지도 몰랐다는 것이다.  한 일은 다르지만 결과는 같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하나라는 것이다.
명은 조선의 출병 요구를 이해하면서 일본에만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조선이 탐탁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조선도 전란을 부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석천의 마음은 산해경에 나오는 바둑의 돌(제대지석)과도 연결이 된다. 망양은 주역과 좌전에 보이는 여러 사건들과 연결이 된다. 주역 대장괘에 상양우역(喪羊于易)이란 말이 있다. 역땅에서 양을 잃었다는 말인데 주역에 처음 보이는 역자(易字)다. 고힐강은 은허점사에서 상우우역(喪牛于易)을 발견하고 주역의 한 모습이라 했지만 연구가 더 필요한 말이다.

		어쨌든 이 유서 깊은 고사들이 바둑을 함유하고 있다는 것은 놀랍다. 바둑의 역사가 문자의 출발 시기와도 맞닿아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세종실록에는 당국(當局)과 사안(謝安)이 나온다. 세종이 김종서의 출정을 놓고 당국 앞의 사안의 자세로 있겠다 한 내용이다. 당국은 바둑판을 앞에 놓은 것을 말하고 사안은 '세설신어'에 전하는 동진의 장군이다. 사안은 80만 대군으로 쳐들어온 전진의 부견의 군대를 맞아 불과 8만 명의 병력으로 전투를 벌여 대승을 거둔 사람이다.
그림 백민 화백

사안은 치열한 전투 중에도 바둑을 두며 전쟁은 우리가 이긴다는 말로 부하 장수들을  진정시킨 사람이다. 장수들은 태산 같은 사안의 여유에 마음 놓고 전쟁에 임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겼다.

당국은 파국(破局) 종국(終局) 등의 바둑 용어를 낳는다. 국가 운영의 모습이 바둑의 용어를 차용한 것이 흥미 있다.

다시 한가위를 맞는다. 25사(史)는 동이족에 신명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청명한 날을 맞아 춤추고 노래하고 밤을 새워 논다고 했다. 주역은 고지무지이진신(鼓之舞之以盡神)이라 했다. 북치고 춤추고 노래하며 온힘을 다해 신을 모신다는 의미다.

한가위를 유만공(1793-1869)은 세시풍요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신선 같은 한가한 팔월 돌아왔네 / 신라 때부터 있어온 가배를 즐기세나
옥 같은 낱알 방아찧은 쌀이오 / 은 같은 비늘 투망질해온 고기일세
(仙呂農家八月回.新羅餘俗樂嘉俳. 玉粘春來中稻米.銀鱗網去小川魚)


한가위는 우리 조상들이 한해를 열심히 살고 추수철을 맞아 벌인 한바탕 신명의 축제였다. 조상에 제사하고 가족과 이웃들이 모여 잠시 삶의 에너지를 보충하던 신명의 날이었다.  2007년 한가위. 바둑 안에서 맞이하는 한가위도 보람이 있고 사랑이 있었으면 한다. 

* 재미삼아 잠깐 퀴즈 !!
다음 중 바둑과 관계된 한자 용어 5개를 골라보세요?
(1)파국 (2)신명 (3)석천 (4)장땡 (5)당국 (6)종국 (7)망양 (8)파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