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전(51기) 무대에 처음으로 올라간 최기훈(崔基勳) 초단이 본선 첫 판(16강 토너먼트)에서 백전노장 조훈현 9단을 꺾었다는 뉴스를 보고 “최기훈이 누구야?”라며 고개를 갸우뚱한 분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고백하거니와 기자(記者) 또한 최기훈 초단에 대해 거의 몰랐다. 날마다 바둑현장에서 뛰는 일선 기자가 아닌 한발짝 물러선 처지에 있는 데스크이다 보니 한해 9명씩 입단하는 새내기들의 이름과 얼굴을 일일이 기억하지 못한다. 가을날 잘 여문 밤송이가 후두둑 토해내는 밤알들처럼 쏟아지고 있는 신예 기사들의 이름은 고사하고 솔직히 프로기사들의 단위도 기연가미연가할 때가 많다. 한국기원의 프로기사 수가 200명을 넘어섰고, 매년 승단하는 기사가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쩝-. 무엇보다 내 기억용량의 한계 탓이 크다.

한국기원이 발간하는 ‘2007바둑연감'을 뒤져 기사명감에서 최기훈 초단을 찾아봤다.

1988년 4월 2일 생(부산) 허장회 9단 문하, 2006년 입단 딱 두 줄이다. 경력 사항이 전혀 없다. 그렇다면 올해 국수전 본선이 첫 본선진출이라는 얘기다. 입단기록에 대해 좀더 뒤져봤더니 2006년 5월 105회 입단대회에서 박정환 초단과 함께 프로 데뷔를 했다. 박정환 초단이라면 한국바둑계에 모처럼 13세 4개월의 나이로 입단한 기재로 프로기사들이 미래의 유망주로 첫 손에 꼽는 최연소 기사다. 어린나이로 주목받고 있는 동기(同期)에 비하면 최기훈은 존재조차 거론된 적이 없는 무명기사였다. 요즘 ‘초단돌풍'이 거세다고는 하나 왕위전 도전권 문턱에까지 갔던 한상훈이나 한국바둑리그에 참가한 배준희, 윤찬희, 박승화가 아닌 ‘무명 초단' 최기훈이 조훈현 9단을 이기고 국수전 8강에 당당히 올랐다는 소식은

그래서 더 놀라웠다. 수양산 그늘이 3년은 간다고, 아무리 조훈현 9단의 위세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국내외 신예기사들을 여지없이 혼쭐내던 ‘군기반장' 아니던가.

최기훈이 누구야?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최기훈 초단이 국수전 본선에 올라간 사연이 이색기록감이다. 예선결승에서 이현욱 6단에게 ‘시간승'을 거두었는데, 시간승이야 예전부터 프로바둑에서 종종 발생하는 일이기에 대수로운 일도 아니고 더군다나 속기전이 많아진 요즘은 별 얘깃거리 축에도 끼지 못한다.

그럼 무엇이 문제이고 어떤 게 재미있다는 말인가.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하여간 바둑계 토픽감이 기자들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은 채 넘어간 사건이 있었다. 이현욱 6단에게 극적인 행운의 시간승을 거두고 본선에 턱걸이한 최기훈 초단이 본선 첫 판에서 조훈현 9단을 멋지게 이겼으니, 되는 집안은 호박을 심어도 수박이 열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일 게다.